부령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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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부령군은 함경산맥을 비롯한 산악 지형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역으로, 고성산이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청진시로 흘러드는 수성천이 있으며, 삼림 지대에는 담비, 불곰, 아무르 표범 등 희귀 동물이 서식한다. 역사는 고구려와 발해를 거쳐 고려, 조선 시대에 걸쳐 분쟁 지역이었으며, 조선 세종 때 6진 중 하나인 영북진이 설치되었다. 현재는 1읍 3구 5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철공업, 광공업, 전기 발전이 주요 산업이고, 금, 구리, 석회석 등이 매장되어 있다. 함북선과 무산선이 지나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철도의 역이 있다. 조선 후기 학자 김려가 유배되어 머물렀던 곳으로, 그가 지은 〈사유악부〉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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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령군 - [지명]에 관한 문서 | |
---|---|
지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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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부령군 |
원어 이름 (한자) | 富寧郡 |
로마자 표기 (매큔-라이샤워) | Puryŏng kun |
로마자 표기 (한국어 개정 로마자 표기법) | Buryeong-gun |
행정 구역 종류 | 군 |
국가 | 북한 |
도 | 함경북도 |
지리 | |
면적 | 1900 km² |
인구 | |
총인구 (2008년) | 48,958명 |
행정 구역 | |
하위 행정 구역 | 1읍, 3 노동자구, 5리 |
읍 | 부령읍 |
기타 | |
통계 조사 년도 | 2008년 |
2. 지리
대부분 산악 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고성산(해발 1,754m)이 가장 높다. 주요 하천으로는 청진시로 흘러드는 수성천이 있다.[1]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영역이었고, 이후 발해가 이곳을 다스렸다. 발해의 동경용원부는 이 부근(현재 청진시 부거리(富居里))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1] 발해 멸망 후에는 여진족의 영역이 되어, 고려와 조선, 그리고 여진족 사이의 항쟁 지역이 되었다.[1] 고려 말에는 석막성(石幕城)이라 불렸다.[1] 조선 세종은 이곳에 육진 중 하나인 영북진(寧北鎭)을 설치했다.[1] 대한제국 시대에 부령군의 일부였던 청진이 개항장이 되었다.[1] 일제강점기에는 함경북도에 속했다.[1]
1985년 청진시에서 분할될 때, 부령1동과 부령2동이 합해져 부령읍이 되었고, 고무산동은 고무산로동자구로 개편되었다. 현재 부령군은 1읍, 3개 로동자구, 5개 리로 구성되어 있다.
부령군의 주요 산업은 철공업, 광공업, 전기 발전이다. 금, 구리, 석회석 등이 매장되어 있다. 밭농사를 중심으로 한 농업과 양잠업도 이루어지고 있다. 특산물로는 송이버섯이 많이 생산된다.
함북선과 무산선이 교차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철도의 역이 부령에 있으며, 도로 교통도 발달하였다.[1]
북쪽으로는 회령시, 동쪽과 남쪽으로는 청진시, 서쪽으로는 무산군과 접한다. 1985년에 청진시 부령구역이 부령군으로 개편되었다.[1]
군 면적의 약 90%가 삼림 지대이며, 담비, 불곰, 아무르 표범과 같은 희귀종 동물이 서식한다. 기후는 해양성 기후와 대륙성 기후의 영향을 모두 받는다.[1]
3. 역사
일제강점기까지의 부령군은 현재의 청진시 대부분을 포함해 바다와 접한 큰 군이었다.연도 사건 1398년 석막성으로 불림.[1] 1431년 석막성에 영북진 설치, 절제사가 경성군 겸임.[1] 1449년 부거현(富居縣) 폐지, 민호를 석막으로 옮기고 부령으로 개칭, 도호부로 승격.[1] 1895년 부령군이 됨.[1] 1908년 청진 개항.[1] 1910년 청진부로 승격.[1] 1914년 청진부에서 분리되어 부령군 설치.[1] 1949년 련천면·부거면·삼해면·관해면이 나진군에 편입.[1] 1952년 12월 군면리 대폐합으로 부령군 재편 (1읍 18리).[1] 1960년 10월 청진시에 편입되어 부령구역·송평구역이 됨.[1] 1970년 7월 함경북도 소속 부령군으로 복귀.[1] 1972년 7월 다시 청진시에 편입되어 부령구역이 되고, 일부는 청암구역이 됨.[1] 1985년 12월 다시 함경북도 소속 부령군으로 복귀.[1]
4. 행정 구역
5. 경제
지역 경제는 금속 가공, 광업 및 전력이 주도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금, 구리, 규암, 석회암 광상이 발견된다. 산간 계곡에서는 옥수수, 콩, 벼, 밀, 보리, 기장, 수수를 수확하는 곡물 농장이 있다. 논은 군 전체 면적의 2%를 차지한다. 양잠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6. 교통
6. 1. 철도
함북선과 무산선이 지나며, 도로 교통도 이용된다. 푸령은 함북선과 무산선이 교차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철도역이다.[1]
7. 문화
조선 후기 학자 김려가 부령군에 유배되어 4년간 머무르면서 그곳 사람들과 나눈 우정을 기억하며 지은 〈사유악부〉가 있다. 〈사유악부〉는 김려가 남긴 《담정유고》(潭庭遺藁)에 실려 있으며, 악부 290수를 모은 책이다. 박혜숙이 1996년에 그 가운데 165수를 뽑아 번역해 책으로 펴냈다.[3]
모든 악부는 “問汝何所思 所思北海湄”라는 구절로 시작하여 7언 10구가 이어진다. 시작 구절을 한국어로 옮기면 “그대 무엇을 생각하는가? 북쪽 바닷가를 생각하네”이다.
참조
[1]
웹사이트
함경북도 부령군 역사
http://www.cybernk.n[...]
[2]
간행물
2008년 인구 조사
http://unstats.un.or[...]
조선중앙통계국
2009
[3]
서적
부령을 그리며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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