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국청사 청동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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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부산 국청사 청동북은 1666년 제작된 청동 금고로, 현재 국청사에 소장되어 있다. 전체 직경 40.5cm의 중형으로, 일반적인 금고 형식을 따르면서도 고려 후기 금고의 특징인 유려한 연당초문이 새겨져 있다. 측면에는 3개의 반원형 고리가 있고, 후면에 양각으로 명문이 새겨져 있어 제작 시기, 장소, 시주자, 제작자 등을 알 수 있다. 특히, 명문을 통해 조선 후기 승려 장인 '태응'의 존재와 활동 범위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 이 금고는 현존하는 수가 적어 희소성이 높으며, 조선시대 금고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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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국청사 청동북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부산 국청사 청동북 |
유형 | 보물 |
지정 번호 | 1733 |
지정일 | 2011년 12월 23일 |
주소 | 부산광역시 금정구 북문로 42-0 (금성동, 국청사)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국청사 |
문화재청 ID | 12,17330000,21 |
추가 정보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 |
문화재 명칭 | 국청사소장강희5년명금고 |
지정 번호 (유형문화재) | 93 |
지정일 (유형문화재) | 2008년 9월 11일 |
해제일 (유형문화재) | 2011년 12월 23일 |
문화재청 ID (유형문화재) | 21,00930000,21 |
위치 정보 | |
2. 국청사 소장 장천사명 금고의 특징
조선 현종 7년인 1666년에 제작된 청동 금고이다. 조선 전기의 금고는 거의 남아있지 않으며, 17세기에 만들어진 금고 역시 수가 매우 적기 때문에 은해사 소장 금고(1646년)와 더불어 희소성이 높아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전체 직경은 40.5cm로 중형에 속하며, 측면이 뒤로 접혀 짧은 전(테두리)을 이루고 뒷면에 넓은 공명구가 뚫려 있는 일반적인 금고의 형태를 따른다. 앞면의 문양 구성은 고려 후기 양식의 영향을 일부 보여준다. (자세한 내용은 #문양 참조)
일반적인 금고와 달리 측면이 아닌 후면에 양각으로 명문을 새긴 점이 매우 독특하다. 명문에는 제작 관련 정보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자세한 내용은 #명문 참조), 이를 통해 '대장 태응(太應)'이라는 승려 장인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어, 조선 후기 장인 계보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 금고는 문양이 단순하지만 희귀한 17세기 작품이라는 점, 독특한 후면 양각 명문 방식 등 조선시대 금고의 주조 기술과 장인 사회 연구에 있어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2. 1. 문양
금고의 앞면인 고면(鼓面)은 두 줄의 동심원으로 구획되어 있다. 중앙의 당좌구(當座區)는 특별한 문양 없이 소문(素紋)으로 처리되었다. 그 바깥의 중구(中區)에는 원권 범자문(梵字文)이 장식되어 있는데, 광명진언 6자 가운데 5자만이 새겨져 있다. 비슷한 시기의 범종에서는 6자를 모두 새기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이 금고처럼 글자 수가 줄어든 것은 후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양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추정된다.가장 바깥 구획인 외구(外區)에는 단선(單線)으로 표현되었지만 유려한 연당초문(蓮唐草紋)이 시문되어 있다. 이러한 외구의 당초문 장식은 다른 조선 후기 금고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특징으로, 고려 후기 금고 양식의 영향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2. 2. 명문
이 금고는 일반적인 금고가 측면에 명문을 음각하는 것과 달리, 후면에 양각으로 명문이 새겨진 점이 독특하다. 이는 조선시대 금고 중에서는 드문 예에 속한다.명문에는 금고의 제작 관련 정보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항목 | 내용 | 한자 표기 |
---|---|---|
원 소장처 | 경상도 경주부 남쪽 연화산 장천사 | 慶尙道 慶州府南 蓮花山 障川寺 |
제작 시기 | 강희 5년 병오년 (1666년) 3월 | 康熙伍年 丙午 三月日 |
무게 | 백근 (百斤) | 百斤 |
시주(施主) | 박충민, 이막남 | 朴忠民, 李莫男 |
제작자(大匠) | 대장 태응, 신열, 영득 | 大匠 太應, 慎悅, 永得 |
화주(化主) | 계호, 설은, 설암, 설심 | 戒湖, 雪訔, 雪岩, 雪心 |
이 청동북(금고)의 뒷면 명문에는 원래 봉안되었던 사찰의 이름이 '경상도경주부남련화산장천사(慶尙道慶州府南蓮花山障川寺)'로 기록되어 있다. 명문에 언급된 장천사(障川寺)는 현재의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에 있었던 장천사지로 추정된다. 이 사찰 터는 대곡댐 건설로 인해 수몰되었는데, 수몰 전인 1999년 이루어진 발굴조사에서 '강희 40년'(1701년)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었다. 이를 통해 장천사는 대략 18세기경에 폐사된 것으로 추측된다.
명문 원문은 다음과 같다:
'경상도경주부남련화산장천사금기중백근」강희오년병오삼월일주성」시주질」박충민」李莫男」대장태응」신열」영득」화주질」계호」설은」설암」설심(慶尙道慶州府南蓮花山障川寺禁氣重百斤」康熙伍年丙午三月日鑄成」施主秩」朴忠民」李莫男」大匠太應」慎悅」永得」化主秩」戒湖」雪訔」雪岩」雪心」)’
또한, 금고 측면에는 제작 이후 어느 시점에 추가로 새겨진 것으로 보이는 점자(點字) 형태의 명문이 남아있다. 이 명문을 통해 제작자인 '대장 태응(太應)'을 비롯한 장인들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어, 조선 후기 승려 장인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3. 장천사와 승려 장인 태응
명문에는 청동북이 '강희 오년 병오 삼월일'(1666년 3월)에 제작되었으며, 무게는 '백근(百斤)'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제작에 참여한 장인으로는 '대장(大匠) 태응(太應)', '신열(慎悅)', '영득(永得)'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이 중 '대장'이라는 직함으로 보아 태응(太應)은 당시 승려 장인 집단을 이끌었던 인물로 보인다.
또한, 명문에는 시주자인 박충민(朴忠民)과 이막남(李莫男), 그리고 화주(化主)였던 계호(戒湖), 설은(雪訔), 설암(雪岩), 설심(雪心) 등 당시 사찰 운영과 불사(佛事)에 관여했던 인물들의 이름도 함께 기록되어 있어, 청동북 제작 배경을 엿볼 수 있다.
3. 1. 승려 장인 태응
부산 국청사 청동북의 명문에는 제작자로 '대장(大匠) 태응(太應)'을 비롯하여 신열(慎悅), 영득(永得)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이름으로 미루어 승려 장인으로 추정되며, '대장'이라는 직함은 태응이 당시 장인 집단을 이끌던 우두머리였음을 시사한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태응이 '대장'의 직함으로 참여한 금속공예품은 이 청동북이 유일하다.
태응의 이름은 이 청동북 외에도 비슷한 시기의 다른 불교 미술품에서도 확인되며, 주요 활동 내역은 다음과 같다.
연도 | 작품 | 역할 및 내용 |
---|---|---|
1633년 | 무량사 대세지보살좌상 | 복장 발원문에서 화원(畵員)으로 불상 제작에 참여한 것으로 기록됨. (복장물 등 금속 기물 제작 참여 가능성, 추가 연구 필요) |
1636년 | 법주사 종(鍾) | 중사자암명(中師子庵銘) 대시주 명단에 이름이 포함됨. |
1673년 | 수덕사 노사나 괘불화 | 제작에 참여한 것으로 이름이 기록됨. |
이러한 기록은 태응이 금속공예뿐만 아니라 불상 제작 관련 작업 및 불화 제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던 승려 장인이었음을 보여준다. 그의 행적은 조선 후기 장인 사회, 특히 승려 장인의 계보와 활동 양상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는 제작자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은해사 소장 수도사명 금고와 비교될 때, 국청사 청동북이 갖는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이다.
4. 국청사명 금고의 의의와 가치
조선 시대의 금고는 고려 시대에 비해 현존하는 수가 적으며, 특히 17세기에 제작된 것은 매우 드물다. 은해사에 소장된 수도사명 금고(1646년)가 대표적인 예인데, 국청사 소장 금고는 이보다 20년 뒤인 1666년에 제작된 것으로 그 희소성이 높게 평가된다.
이 금고는 고려 시대 금고의 양식을 일부 계승하면서도 조선 후기 금고 양식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특징을 보여준다. 고면(鼓面) 중앙의 당좌구는 문양이 없으나, 그 바깥 중구(中區)에는 6자 광명진언 중 5자만 원권 범자문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는 동시대 범종 양식과 비교했을 때 수가 줄어든 것으로, 후기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모습으로 추정된다. 또한, 가장 바깥 구획(외구, 外區)에는 단순하지만 유려한 연당초문이 시문되어 있는데, 이러한 문양은 다른 조선 후기 금고에서는 보기 드문 것으로 고려 후기 금고 양식의 영향을 보여주는 특징이다.
금고 뒷면에 양각으로 새겨진 명문은 이 유물의 가치를 더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명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원문 | 번역 |
---|---|
慶尙道慶州府南蓮花山障川寺禁氣重百斤」康熙伍年丙午三月日鑄成」施主秩」朴忠民」李莫男」大匠太應」慎悅」永得」化主秩」戒湖」雪訔」雪岩」雪心」 | 경상도 경주부 남쪽 연화산 장천사의 금고로, 무게는 백근이다. 강희 5년 병오(1666년) 3월에 주조하였다. 시주자는 박충민, 이막남이며, 제작자는 대장(大匠) 태응, 신열, 영득이다. 화주는 계호, 설은, 설암, 설심이다. |
이 명문은 제작 연대(1666년), 원래 봉안되었던 사찰(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장천사), 무게(백근), 시주자, 제작 장인, 사찰의 화주 등 제작 당시의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대부분의 금고가 측면에 음각으로 명문을 새기는 것과 달리, 이 금고는 후면에 양각으로 명문을 새긴 점이 독특하며, 이는 조선 시대 금고의 주조 기술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명문을 통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17세기의 승려 장인 '태응(太應)'의 존재와 활동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은 큰 학술적 의의를 지닌다. 수도사명 금고는 제작 장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금고는 '대장(大匠)'이라는 직함과 함께 태응의 이름을 명시하여 조선 후기 장인 계보 연구에 새로운 단서를 제공한다. 태응은 이 금고 외에도 법주사 중사자암명 동종(1636년)의 시주 명단, 무량사 대세지보살좌상(1633년)의 복장 발원문(화원으로 참여 기록), 수덕사 노사나 괘불화(1673년) 등 다른 불교 미술품에서도 이름이 확인된다. 이는 태응이 금속 공예뿐만 아니라 불상 제작 관련 작업이나 불화 조성에도 참여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며, 당시 승려 장인들의 다양한 활동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결론적으로 국청사 소장 금고는 17세기 작품으로서의 희소성, 고려와 조선 양식의 과도기적 특징, 명문을 통한 역사적·기술사적 정보 제공, 그리고 승려 장인 '태응' 연구의 새로운 자료라는 점에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수도사명 금고와 더불어 조선 시대 금고 연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유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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