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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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영제는 대한민국의 검사 출신 변호사이다. 1979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임용되어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장,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지청장,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 등을 역임했다. 검찰 퇴임 후에는 변호사로 활동하며, 한솔제지 사외이사, 충남대학교 법학대학원장, 세종대학교 감사를 지냈다. 2002년에는 저서 《미국 특별검사제도의 과거와 미래》를 발간했으며, 2016년에는 검찰의 독립성, 자격, 수사상 문제점을 다룬 《누구를 위한 검사인가》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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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천군 출신 - 구만섭
구만섭은 대한민국의 공무원으로, 행정고시 합격 후 총무처, 행정안전부, 대통령비서실 등에서 근무하며 천안시 부시장, 제주특별자치도 행정부지사, 국가기록원장, 행정안전부 차관보 등을 역임했고, 현재 대통령비서실 지방시대비서관으로 재직 중이다. - 서천군 출신 - 신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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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제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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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정보 | |
이름 | 서영제 |
원어명 | 徐永濟 |
로마자 표기 | Seo Yeongje |
출생일 | 1950년 |
직업 | 법조인 |
경력 |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 강경지청장 |
배우자 | 김윤주 |
종교 | 무신론자 |
2. 생애
서울지방검찰청 서부지청장으로 있던 2000년 7월,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거론되었던[26] 서영제는 2005년 12월 12일부터 'Lee International IP & Law Group'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38]
2006년 3월, 한솔제지 사외이사로 취임했지만,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는 공직자윤리법 위반을 이유로 검찰에 취업해제조치를 통보했다. 이에 서영제는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며, "재직 시 담당했던 한솔제지 관련 사건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던 사건"이라고 주장했다.[39]
2016년 10월 26일, 대한변호사협회와 법조언론인클럽 공동주최 토론회에서 서영제는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검사가 어떤 것인지 명확히 하는 데서 검찰 신뢰 회복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조 발제를 했다.[40] 그는 특별검사 제도의 '특별 검사'라는 명칭을 제안한 인물로, "한국 실정상 변호사보다 검사라는 표현이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최순실 국정농단 특별검사 마지막 날인 2017년 2월 28일에는 "책임 안지는 특검제 유지해야 하나?"라며 특검 제도를 비판했다.[41]
2017년 1월 7일 SBS TV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우병우에 대해 "철저하게 검사다운 검사"라고 평가했다.[42]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검찰 개혁에 대해 "검찰도 이번 기회에 개혁된 후 ‘지휘체계’가 아닌 ‘검사 개인’이 주체가 돼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43]
2003년 6월 5일, 큰 딸 서지은이 검사 이영상과 결혼식을 올렸는데, 양가 가족과 친지만 참석한 비공개 결혼식이었다.[30]
김용철 (1958년)은 삼성 비자금 관련 폭로에서 "성균관대학교 선후배 사이인 노인식이 서영제 집에 선물을 갖다주며 관리했다"고 주장했다.[31]
2. 1. 검사 임용 및 주요 경력
1950년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태어난 서영제는 대전고등학교와 성균관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4년 제1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76년 제6기 사법연수원과 공군 법무관을 거쳐 1979년 11월 1일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임용되었다.[1]서울지방검찰청 검사 시절, 서영제는 "시가 100억원 상당의 골프장과 그 일대 임야 소유자가 불법취득한 것이니 부정축재 재산환수조치를 하고 있는 고위 공직자에게 청탁하여 복지법인이 증여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며 2500만원을 받은 김종성 변호사를 변호사법 위반으로 구속했다.[1] 서울지방검찰청 서부지청 특수부 부장검사 시절에는 호적 변조 및 금품 수수 관련자 18명을 구속했고,[2] 김일성 회고록 출판 첩보를 입수하여 인쇄소 등을 압수수색했다.[3] 또한 노동자들의 국민연금 보험료를 유용한 기업체 대표 16명을 적발하고, 강서구의회 의장이자 택시업체 두원교통 대표 김인환 등 5명을 업무상 횡령으로 구속했다.[4]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고 불법 옥상 전자 광고탑을 운영해 50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전 노동부 장관 조철권을 구속했고,[5] 6~7년근 인삼을 산삼으로 속여 15억원어치를 판매한 5명을 구속했다.[6] 유명 제화회사의 매출전표를 이용해 고리대금업을 한 신용카드 사채업자와 회사매출전표를 넘겨주고 수수료를 받은 제화회사 직원 등 51명을 구속했다.[7]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 부장검사 시절에는 중국에서 필로폰을 위조해 한국과 일본에 판매한 국제 필로폰 밀조·밀매조직 3개파 64명을 적발하여 35명을 구속하고 29명을 수배했다.[8]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의 권유로 6.27 지방선거에서 서울시 용산구의원에 당선된 이영석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구속했다.[9] 상습도박조직 용산파 등 10개파 202명을 적발해 101명을 구속하고 판돈 6.45억원을 압수했다.[10]
1999년 2월 전주지방검찰청 차장검사에서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으로 자리를 옮긴 서영제는 조선일보의 프리미엄 조선에 연재한 《서영제 전 서울중앙지검장의 수사 비화》에서 "범죄정보기획관실은 검찰 내 핵심부서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범죄정보1담당관, 2담당관에게 업무를 전담시키고 있었는데 연구관과 수사관들까지 포함해 소속 직원이 모두 마흔 명 가까이 이르렀다"며, "어떤 언론에서는 가히 ‘검찰 내의 안기부’라고 불릴 만하다고 했다"고 밝혔다. 또한 "범죄정보기획관실이 당초 목적과 달리 범죄 정보뿐 아니라 ‘동향 정보’도 수집하면서 '동향과 정책'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매일 작성하여 당시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밝혔다.[11]
서울지방검찰청 서부지청장 시절, 구권화폐를 미끼로 한 장영자의 사기 혐의를 확인하려던 기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하려는 것을 "없던 일로 하자"며 풀어주기도 했다.[12] 또한 서울 시내 구청장의 혼인빙자간음 사건 수사 중 피고소인이 "서영제 지청장이 ‘남자라면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말했다"고 주장한 것이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13]
1995년부터 2년간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장으로 있으면서 조직폭력배 500여 명, 마약 등 강력사범 500여 명을 검거한, 조양은이 연루된 양은이파 사건과 구권화폐 사기사건으로 장영자를 구속한 강력 수사통이었다.[14][15]
2. 1. 1. 대검찰청 마약부장
2001년 대검찰청에 마약과가 신설되면서, 서영제는 검찰의 마약 수사를 총지휘하는 초대 마약부장 자리에 올랐다.[16] 그는 "앞으로 1~2년이 마약의 대량 유통을 막는 중요한 시기"라며, "직장인이나 상업 종사자 등 평범한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마약을 접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 공급 경로를 차단하는 데 힘쓰겠다"고 밝혔다.[16] 실제로 그는 마약 부장으로 재직하며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17] 매일경제신문에 '매경춘추'라는 기명 칼럼을 통해 "이제는 종교만으로 범죄를 제어할 수 없고 합리적인 도덕재무장(道德再武裝)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다.[17] 또한, 국내 밀반입 히로뽕의 절반 이상을 공급해 온 동북아 최대 마약 밀매조직 '김사장파'의 두목 김동화 씨와 조직원 우모 씨 등 일당 4명의 신병을 중국으로부터 넘겨받아, 외국에서 한국인 마약사범을 처음으로 인도받는 성과를 올렸다.[18]2. 1. 2. 청주지방검찰청 검사장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시절인 2000년부터 미국 청문회 기록, 법학 교수, 검사, 변호사들의 논문 등 자료를 수집해 분석하여 총 5장으로 구성된 《미국 특별검사제도의 과거와 미래》를 청주지방검찰청 검사장 재직 중이던 2002년에 발간, "대한민국의 특검제와 미국의 특검제를 비교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19]2001년 11월 5일 검찰 게시판에 "특검제 도입의 위헌성"을 주장했던 서영제는 파업유도 특검팀의 특검보 출신 김형태 변호사와 함께 11월 8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 특검제 도입의 위헌 여부를 놓고 공방을 벌였다. 그는 "대통령이나 법무부 장관에게 특검 임명제청권을 주지 않고 대한변호사협회로부터 후보 2명을 추천받아 이중 1명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강제한 국회의 특검안은 헌법이 보장하는 삼권분립 원칙에 위배된다"며 "미국의 특검제는 법무부 장관이 특검 발동권 및 임명제청권을 가진 상태에서 수사범위와 대상을 미리 정해 연방항소법원에 특검 임명을 제청, 스스로 권력을 양도하는 형식을 도입함으로써 위헌 소지를 없앴다"고 주장했다.[20]
청주지방검찰청 검사장 재직 시 직원들의 스트레스 해소와 대민 서비스 자세 향상을 위해 '웃음의 날' 행사를 마련해 화제가 되었다.[21] 2002년 3월에는 고소, 고발 등 사건 처리를 위해 서기관급 이상 공안·수사·집행·사건 과장 4명에게 1주일에 1건씩 사건을 배당, 처리하여 검사의 고유 권한을 검찰 사무직에 처음으로 위임하였다.[22]
2002년 9월 중순 <충청리뷰>의 검찰 비판 보도 이후, <충청리뷰> 관계사 및 <충청리뷰>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충청리뷰> 윤석위 대표이사를 서원대학교 철거공사 사례비 수수 혐의(공갈)로 구속한 검찰은 특수부 등 3개 검사실과 수사과까지 총동원, 지자체 7곳, 기업체 50여 곳, 음식점 영업광고까지 게재 경위를 집중 조사했다. 또한 이사가 아닌 소액 주주에게도 전화를 걸어 "무슨 이유로 그런 신문에 출자했느냐, 원해서 한 것인가 아니면 억지로 한 것인가" 등의 추궁성 질문으로 주주를 압박했다. 충북지역 시민·사회단체와 학계, 종교계 등은 검찰의 <충청리뷰> 수사를 언론탄압으로 규정, 즉각 중단을 요구했다.[23] 충청리뷰는 청주지방검찰청의 광고주 집중수사에 따른 영업손실과 명예훼손에 의한 이미지 손상에 대해 1.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청주지방법원에 제기했다.[24]
2003년 2월 공직자 재산 공개에서 재산 변동이 3.1151억원으로 13위를 기록하였다.[25]
2. 1. 3.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
노무현 대통령과 독대한 후[27]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에 깜짝 발탁된[28] 서영제는 "국가를 망하게 하는 기소는 할 수 없고 국민이 박수치지 않는 수사는 하지 않겠다"며 SK그룹 수사 종결 이후로 예정된 다른 대기업 관련 수사를 한시적으로 중단하거나 속도 조절할 의사를 내비쳤다. 이에 참여연대는 "수사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눈치보기"라며 비판했다.[29]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 시절, 노무현의 형 노건평과 여당 대표였던 정대철, 송두율 교수 수사를 지휘하여 기소했으며, 굿모닝시티 사기분양 사건, 대우건설 정치권 로비사건 등을 처리했다.
우병우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2부 부부장검사이던 2004년 2월, 안상영 부산광역시장이 부산구치소에서 서울구치소로 이감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자 징계 대상에 거론되었지만, 서영제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기관경고로 그치게 했다.[32] 그러나 서영제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있으면서 "아무 일도 안한다"는 비판을 받았다.[33]
2. 1. 4. 대구고등검찰청 및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
노무현 정부 시절, 대구광역시에 소재한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에 취임한 서영제는 2005년 4월 8일 "전통 가치와 윤리가 무너지고 있는 현실에서 대구는 이를 보존하고 얼이 살아있는 지역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한 "대구검찰이 처음 시도한 기업 경영기법인 6시그마 운동은 대검도 관심을 가지는 사안"이라며, "6시그마 제도를 정확히 파악해 실질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34]이후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으로 취임하여 2004년 6월 1일 취임식을 열고 직원들의 화합과 일하는 검찰상을 강조했다.[35]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 후보로 외부 인물 영입보다 내부 인사를 찾겠다고 밝히면서[36] 서영제도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사법시험 1기수 후배인 정상명 대검찰청 차장검사에게 밀렸다. 2005년 11월 21일, 서영제는 “수사는 검사가 하는 것이 아니라 ‘법’이 하는 것이고 사람을 수사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사실’을 수사했다”면서도 “반평생의 검찰 생활에서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장밋빛 희망을 가득 싣고 들어온 저의 '검사 수레'는 이제 텅 빈 채 1990년 대검찰청에서 야간 때 입으라고 준 누더기 잠바만 실려 있습니다"라는 퇴임사[37]를 남기고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을 마지막으로 26년간의 검사 생활을 마쳤다.
3. 학력
4. 경력
기간 | 직책 |
---|---|
1979년 11월 1일 ~ 1982년 | 서울지방검찰청 검사[43] |
1982년 8월 ~ 1983년 |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 검사 |
1983년 ~ 1985년 |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검사 |
1985년 | 장기해외연수 |
1986년 ~ 1987년 | 광주지방검찰청 순천지청 검사 |
1987년 | 법무연수원 교관 |
1988년 | 고등검찰관 |
1989년 ~ 1990년 | 대전지방검찰청 강경지청장 |
1990년 |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
1991년 ~ 1992년 | 대검찰청 공안제3과장검사 |
1993년 | 부산지방검찰청 공안부장검사 |
1993년 ~ 1995년 | 서울지방검찰청 서부지청 특수부장검사 |
1995년 ~ 1997년 |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장검사 |
1997년 ~ 1998년 | 서울지방검찰청 서부지청 차장검사 |
1998년 | 전주지방검찰청 차장검사 |
1999년 2월 |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 |
1999년 6월 17일 ~ 2000년 7월 14일 | 제13대 서울지방검찰청 서부지청 지청장 |
2000년 2월 14일 | 검찰-국방부 병역비리 합동수사반[44] |
2000년 | 대검찰청 검사 |
2000년 ~ 2001년 | 법무연수원 기획부장검사 (겸직) |
2001년 ~ 2002년 8월 | 대검찰청 초대 마약부장 |
2002년 2월 8일 ~ 2003년 3월 12일 | 제50대 청주지방검찰청 검사장 |
2003년 3월 13일 ~ 2004년 5월 31일 | 제46대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 |
2004년 6월 1일 ~ 2005년 4월 7일 | 제12대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 |
2005년 4월 8일 ~ 2005년 11월 21일 | 제36대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 |
2005년 12월 12일 | Lee International IP & Law Group 상임고문 |
2006년 3월 | 한솔제지 사외이사 |
2006년 ~ | 리인터내셔널특허법률사무소 변호사 |
2009년 ~ 2011년 | 충남대학교 법학대학원장 |
2012년 | 한솔제지 사외이사 |
2015년 11월 ~ 2018년 11월 | 세종대학교 감사 |
5. 저서
출판일 | 제목 |
---|---|
2002년 3월 31일 | 《미국 특별검사제도의 과거와 미래》 |
2015년 12월 10일 | 《누구를 위한 검사인가》 |
6. 수상
- 1998년 홍조근정훈장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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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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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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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전문 서영제 전 서울지검장, “책임 안지는 특검제 유지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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