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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샤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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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샤반은 에도 막부에서 다이묘 등이 쇼군을 알현할 때, 헌상품을 보고하고 하사품을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다이묘의 전봉 결정이나 쇼군 가문의 행사에서 대참하는 역할도 수행했으며, 원복을 행하는 다이묘와 세자에게 예법을 가르치기도 했다. 후다이 다이묘가 주로 임명되었으며, 오메츠케, 메츠케와 함께 중요한 직책으로 여겨졌다. 1603년 혼고 노부토미의 임명이 최초로 여겨지며, 분큐 개혁으로 폐지되었다가 부활했다. 여러 번에서도 소샤반 또는 소샤역을 설치했으며, 에치고 나가오카 번과 센다이 번처럼 명칭이 변경된 사례도 존재했다. 오가키 번의 소샤반은 번주 직할로 운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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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샤반
개요
종류일본 율령 하의 무관
역할에도 시대의 쇼군을 알현하는 임무
교토의 니조 성 경비
조정과의 연락 담당
정원약 30명
임기1년
상세 정보
임명 과정하타모토 중에서 선발
소샤반으로 임명되기 위해서는 특정한 가문 출신이거나 특별한 능력을 갖추어야 함
주요 업무쇼군을 알현하는 의식 진행
다이묘와 쇼군 간의 연락 담당
막부의 중요 행사 감독
특징쇼군에게 직접 보고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짐
막부 내에서 중요한 역할 수행
임기 후에는 중직으로 승진하는 경우가 많음
역사
기원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간토로 이주했을 때부터 시작
발전도쿠가와 히데타다 시대에 제도가 확립됨
후다이 다이묘와 구 다케다 가신단의 하타모토가 임명됨
역할 변화초기에는 군사적 역할 수행
평화 시대에는 의례 및 연락 담당으로 역할 변화
니조 성 경비간분 연간 이후, 교토 니조 성 경비 담당
조정과의 연락 및 감시 역할 수행
조직 및 구성
구성원하타모토 출신
고부신 (가마쿠라 시대부터 이어진 가문) 출신 우대
임명 기준가문 배경
개인의 능력 (무술, 학문 등)
쇼군에 대한 충성심
야시키오테마에
참고
관련 인물오오쿠보 타다토모
야마우치 가쓰토요

2. 에도 막부의 소자반

에도 막부의 소자반은 주로 다이묘와 쇼군 사이의 연락 및 의례를 담당했다. 이들은 다이묘와 하타모토가 쇼군을 알현하거나 헌상품을 보낼 때, 쇼군에게 보고하고 하사품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다이묘 관련 중대 결정이나 불행 시 상사(上使)로 파견되거나, 도쿠가와 쇼군가 및 고산케의 법요에 대참하거나, 원복을 행하는 다이묘·세자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역할도 맡았다.

소자반은 정원이 정해져 있지 않았지만 20~30명 정도였으며, 1603년(게이초 8년) 혼고 노부토미의 임명을 최초로 본다. 후다이 다이묘가 주로 취임하여 출세의 등용문으로 여겨졌으며, 오메츠케, 메츠케와 함께 중요한 역할이었다. 1658년(만지 원년)부터는 소자반 중 4명이 지샤 부교를 겸임했다. 1691년(겐로쿠 4년)에는 하타케야마 모토하루가 다이묘가 아닌데도 등용되는 특례가 있었는데, 이는 무로마치 막부 간레이 가문 출신임을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가 존중했기 때문이다. 소자반은 1862년(분큐 2년) 윤8월, 분큐 개혁으로 폐지되었다가 다음 해 10월에 부활했다.

2. 1. 역할

다이묘·하타모토쇼군을 알현할 때, 또는 재국(在国)의 다이묘가 헌상품을 사자에게 들려 에도성에 파견했을 경우, 그 씨명과 헌상품의 내용을 확인하여 쇼군에게 보고하고, 쇼군이 하사를 할 때 그 전달을 담당했다. 또한 다이묘의 전봉 등 중대한 결정이나 다이묘 가문의 불행 시 상사(上使)로서 파견되거나, 도쿠가와 쇼군가 및 고산케의 법요에서 쇼군이 참례하지 못할 경우의 대참을 하기도 했다. 또한 쇼군의 앞에서 원복을 행하는 다이묘·세자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역할도 맡았다.

만지 원년(1658년) 이후 소자반(奏者番) 중 4명은 지샤 부교를 겸임했다.

2. 2. 임명 및 특징

정원은 정해져 있지 않았지만, 20명에서 30명 정도였다. 통설에서는 게이초 8년(1603년), 아시카가 전례에 밝은 무로마치 막부 공봉중 출신의 혼고 노부토미의 임명을 최초로 보지만, 그 이전에 임명되었다는 이설도 있다. 후다이 다이묘가 주로 취임하는 역할이었고, 많은 경우 초임 역할이었기 때문에 다이묘에게는 출세의 등용문으로 여겨졌다. 오메츠케·메츠케와 함께 막부의 중요한 직책 중 하나였다. 쓰메슈로부터 등용되는 경우가 많았고, 에도성 내의 쓰메세키(詰席)는 부용의 사이였다.

2. 3. 예외적인 임명

1691년(겐로쿠 4년), 하타케야마 모토하루가 다이묘가 아닌데도 등용되었는데, 이것은 무로마치 막부 간레이 가문 출신임을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가 존중했기 때문이라는 특례였다.

2. 4. 폐지와 부활

분큐 2년(1862년) 윤8월, 에도 막부분큐 개혁(文久の改革)에 의해 폐지되었지만, 다음 해 10월에 부활했다.

3. 여러 번의 소자반

여러 번에서 소샤반(奏者番) 또는 소자역을 설치한 경우가 있었다. 다만, 에치고 나가오카 번처럼 소샤반에서 도리쓰기(取次, 중계역)로 직책명을 개칭하거나, 센다이 번처럼 소자역을 신사이(申次)로 개명한 사례도 있다. 도다 씨(戸田氏) 시대 오가키 번의 소자반은 번주 직할이었으며, 인원은 8명에서 13명이었다.

3. 1. 명칭 변경 사례

에치고 나가오카 번처럼 소샤반에서 도리쓰기(取次, 중계역)로 직책명을 개칭한 사례나 센다이 번처럼 소자역을 신사이로 개명한 사례도 있다.

3. 2. 오가키 번의 소자반

도다 씨(戸田氏) 시대 오가키 번의 소자반은 번주 직할로, 인원은 8명에서 13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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