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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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서노는 졸본 부여 또는 연타발의 딸로, 북부여 해부루왕의 서손 우태와 혼인하여 비류와 온조를 낳았다. 우태 사후 고구려 동명성왕과 혼인하여 고구려 건국을 도왔으며, 유리명왕이 고구려에 오자 두 아들과 함께 남하하여 백제를 건국했다. 기원전 6년에 6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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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서노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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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칭호 | 왕후, 태후 |
원래 이름 | 소서노(召西奴) |
다른 이름 | 연소서노(延召西奴) |
국적 | 부여(扶餘),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
가문 | 연씨(延氏) |
생애 | |
출생 | 기원전 66년 (추정), 부여(夫餘) |
사망 | 기원전 6년 2월 (음력), 백제 위례성(百濟 慰禮城) |
사망 원인 | 미상 |
매장지 | 미상 |
거주지 | 부여(扶餘),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
가족 관계 | |
배우자 | 우태(優台), 동명성왕(東明聖王) |
자녀 | 비류(沸流), 온조왕(溫祚王) |
아버지 | 연타발(延陀勃) |
어머니 | 미상 |
형제자매 | 미상 |
왕족 정보 | |
직업 | 백제(百濟) 국조모(國祖母) |
재위 기간 (백제) | 기원전 18년 ~ 기원전 6년 |
역할 (고구려) | 고구려 왕후 |
재위 기간 (고구려) | 기원전 37년 ~ 기원전 18년 |
전임자 | 신설 |
후임자 | 원비(院妃) |
기타 정보 | |
종교 | 미상 |
군사 소속 | 백제(百濟) |
존호 | 국조모 소서노(國祖母 召西奴) |
묘호 | 미상 |
시호 | 미상 |
법명 | 미상 |
묘소 | 미상 |
능묘 | 미상 |
연호 | 미상 |
2. 설화
현재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설화는 다음과 같다.
소서노는 연타발(延陀勃)의 딸이며[5], 북부여 왕 해부루(解扶婁)의 서손(庶孫)인 우태(優台)와 혼인하였다. 우태 사후, 동명성왕과 혼인하여 그를 도와 고구려 건국에 일조했다. 이후 부여에 있던 동명성왕의 장남 유리명왕이 고구려에 올 때 추모왕과 결별하고 비류와 온조 두 아들과 함께 남하하여 백제를 건국했다고 전해진다.[5]
《삼국사기》에 따르면 소서노는 기원전 6년, 백제의 초대 국왕이자 자신의 둘째 아들인 온조왕 재위 13년에 6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2]
《삼국사기》 고구려 건국 설화에 나오는 내용으로 '동명성왕이 졸본(卒本)에 정착하여 졸본 부여왕(이름 미상)의 둘째 딸(이름 미상)과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았는데 비류와 온조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으로 볼 때 졸본 부여왕의 둘째 딸이라고만 기록되어 있을 뿐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졸본 부여왕의 둘째 딸 즉, 동명성왕의 부인은 이름이 소서노인지 확실하지 않다.
또 다른 설화에는 연타발(延陀勃)의 딸이며[5], 북부여왕 해부루(解扶婁)의 서손(庶孫)인 우태(優台)와 처음에 혼인하였다. 우태 사후, 동명성왕과 혼인하여 그를 도와 고구려 건국에 일조했다고 한다. 이후에 부여에 있던 동명성왕의 장남 유리명왕이 고구려에 올 때 추모왕과 결별하고 비류와 온조 두 아들과 함께 남하하여 백제를 건국했다고 전해진다.
부여의 부족인 계루부의 공주로 태어났다. 아버지인 왕은 연타발이며, 부여의 부족 왕인 해부루의 손자인 우태와 결혼하여, 비류와 온조 두 아들을 낳았다. 남편인 우태가 일찍 죽고, 과부인 소서노는 고구려의 시조가 되는 주몽을 만났다[3]. 주몽과 소서노는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주몽은 소서노와 결혼함으로써 계루부를 기반으로 병력을 모으고 민심을 장악하여 고구려를 건국한다[3].
기원전 19년, 소서노는 아들 비류와 온조와 10명의 가신과 그 일족, 그리고 계루부의 많은 백성들과 함께 남하했다. 기원전 18년, 온조는 가신들과 힘을 합쳐 하남 위례성에 위례성을 쌓고 나라를 세워 국호를 십제(十濟)라고 했다. 국호를 십제라고 한 것은 10명의 가신과 나라를 세웠기 때문이며, 그 나라가 후의 백제이다[3].
3. 두 왕국 건국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소서노는 졸본[1]의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인 연타발의 딸이자 주몽의 두 번째 부인이었다. 소서노의 첫 번째 남편은 우태였다. 부여 부족인 계루부의 공주로, 아버지는 연타발이며, 해부루의 손자인 우태와 결혼하여 비류와 온조 두 아들을 낳았다. 남편 우태가 일찍 죽고, 과부였던 소서노는 주몽을 만났다[3]. 주몽과 소서노는 결혼했고, 주몽은 소서노와 결혼함으로써 계루부를 기반으로 병력을 모으고 민심을 장악하여 고구려를 건국한다[3].
기원전 19년, 소서노는 아들 비류와 온조와 10명의 가신, 그 일족, 그리고 계루부의 많은 백성들과 함께 남하했다. 기원전 18년, 온조는 가신들과 힘을 합쳐 하남 위례성에 위례성을 쌓고 나라를 세워 국호를 십제(十濟)라고 했다. 십제는 10명의 가신과 나라를 세웠기 때문이며, 이 나라가 후의 백제이다[3].
4. 소서노의 죽음
5. 가족 관계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소서노는 졸본[1]의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인 연타발의 딸이자 주몽의 두 번째 부인이었다. 소서노의 첫 번째 남편은 우태였다. 주몽의 장남 유리가 고구려로 돌아와 태자가 되자, 소서노는 두 아들 비류와 온조를 데리고 남쪽으로 가 백제를 건국했다.
소서노는 부여 부족인 계루부 공주로, 연타발의 딸이다. 부여 부족 왕 해부루의 손자인 우태와 결혼하여 비류와 온조 두 아들을 낳았다. 남편 우태가 일찍 죽고 과부가 된 소서노는 주몽을 만나 결혼했다. 주몽은 소서노와 결혼하여 계루부를 기반으로 병력을 모으고 민심을 장악하여 고구려를 건국했다[3].
기원전 19년, 소서노는 아들 비류, 온조와 10명의 가신, 그 일족, 그리고 계루부의 많은 백성과 함께 남하했다. 기원전 18년, 온조는 가신들과 힘을 합쳐 하남 위례성에 위례성을 쌓고 십제(十濟)를 건국했는데, 이 나라가 후의 백제이다[3].
6. 대중 문화 속 소서노
참조
[1]
백과사전
Encyclopedia of Korean Culture
http://100.empas.com[...]
[2]
백과사전
Doosan Encyclopedia Online
http://100.naver.com[...]
[3]
뉴스
召西奴
http://world.kbs.co.[...]
KBSワールドラジオ
2013-01-10
[4]
문서
온조왕 어머니 사망 기록
기원전 6년
[5]
문서
송양의 딸설
[6]
문서
비류와 온조의 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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