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루넨 마루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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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쓰루넨 마루테이는 핀란드 출신으로, 본명은 마르티 투루넨이며 일본에서 귀화하여 정치인, 작가, 번역가로 활동했다. 1967년 루터교 선교사로 일본에 건너와 일본인 여성과 결혼 후 귀화하여 '쓰루넨 마루테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그는 가나가와현 유가와라 정 의원을 거쳐 2002년부터 2013년까지 참의원 의원으로 활동했으며, 유기농업을 지지하고 재일 외국인에게 참정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서로는 《푸른 눈의 의원이 간다》, 《일본인이 되고 싶다》 등이 있으며, 《겐지모노가타리》 등 일본 문학 작품을 핀란드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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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루넨 마루테이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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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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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이름 | Martti Turunen |
출생일 | 1940년 4월 30일 |
출생지 | 리에ksa, 핀란드 |
국적 | 일본 |
정치 경력 | |
소속 정당 | 민주당 |
웹사이트 | 츠루넨 마루테이 공식 페이지 |
주요 직책 | |
민주당 일본-대한민국 관계 부서장 | 2003년 – 2016년 |
참의원 의원 | 2002년 2월 8일 – 2013년 7월 28일 |
참의원 자연 재해 위원회 간사 | 2002년 – 2013년 |
유가와라 정 의회 의원 | 1992년 – 1995년 |
개인 정보 | |
출생지 (일본어) | 쿠오피오 주・피엘리스예르비・헨텐바라 |
학력 | 핀란드 사회복지 칼리지 졸업 |
훈장 | 욱일중수장 |
로마자 표기 | Tsurunen Marutei |
일본어 표기 | ツルネン・マルテイ 또는 弦念 丸呈 |
핀란드어 표기 | Martti Turunen |
2. 생애
쓰루넨 마루테이는 핀란드 북카렐리아 주 리엑사 출신으로, 핀란드 이름은 마르티 투루넨이다. 사회복지대학을 졸업하고 1967년 기독교(루터교) 선교사로 일본에 건너갔다. 이후 핀란드인 첫 번째 아내와 결혼했다가 헤어졌다. 1974년 34살에 일본인 부인 사치코와 만나 결혼하였다. 영어학원 강사로 일하다 1979년 핀란드어 이름을 일본 발음으로 읽은 '쓰루넨 마루테이'로 일본에 귀화하였다. 이후 10년간 가나가와현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겐지모노가타리》의 첫 28장을 핀란드어로 번역해 알렸고, 일본어로 책을 몇 권 썼다.
1992년 유가와라마치 시의회에 처음 출마하여 당선되었다.[7] 1995년 무소속으로 가나가와현 참의원 선거에 출마해 339,484표로 4위를 기록했으나 낙선했다.[8] 1998년 다시 참의원 선거에 출마해 502,712표를 얻었지만, 당선에는 8,000표가 부족했다. 그는 "저에게 투표해 주십시오. 그리고 푸른 눈을 가진 최초의 일본 시민을 참의원에 보내십시오", "일본을 경제 강국에서 노령과 공해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는 시민 친화적인 국가로 바꾸자"라고 호소했다. 또한 "의회의 40%에서 60%가 여성이 되도록 입법 기관에 성 할당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8]
2000년 민주당 후보로 중의원 선거에, 2001년에는 참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모두 낙선했다. 2001년 159,920표를 얻었지만, 당선에 필요한 표보다 14,036표가 부족했다.[9] 그러나 2002년 현직 의원 오하시 쿄센의 사임으로 차점자 승계에 따라 의원직을 승계받았다.[10][11]
2007년 선거에서 242,742표로 재선에 성공, 소속 정당 내 6번째로 높은 득표수를 기록했다. 하지만 2013년 선거에서는 82,858표(12위)로 낙선했다.[2]
쓰루넨은 다나카 사치코와 결혼해 슬하에 두 자녀를 두었다. 핀란드인 아내와의 사이에서도 세 자녀를 두었다.[12] 2006년 핀란드 언론인 마르쿠스 카요는 다큐멘터리 시리즈 《Nousevan auringon Kajo|떠오르는 태양의 빛fi》 3편에서 쓰루넨을 인터뷰했다.[13] 2015년 자서전 《푸른 눈의 사무라이》를 Gummerus에서 출판했다.[12]
2. 1. 어린 시절과 핀란드에서의 삶
쓰루넨 마루테이는 1940년 4월 30일 핀란드 북카렐리아 주 리엑사에서 마르티 투루넨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핀란드 원주민이다.[3] 알베르트 슈바이처를 동경하여 선교사를 지망했으며, 1964년 사회복지 칼리지를 졸업했다.[3] 계속 전쟁 말기, 쓰루넨(당시 4세)과 그의 가족은 마을에 대한 소련 게릴라 공격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생존자 중 하나였다.[4]1967년 27세의 나이에 핀란드인이었던 첫 번째 아내와 함께 루터교 평신도 선교사로 일본에 왔다.[5] 1968년 기독교(루터교) 선교사로 핀란드인 아내와 함께 일본에 온 그는, 도쿄도토시마구이케부쿠로의 선교사관에 살면서, 시부야구의 도쿄 일본어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웠다. 1970년 오이타현벳푸시에서 아동복지시설 직원으로 일하다가 핀란드인 아내와 이혼했다. 1974년 선교사를 사임하고 일본인 여성과 국제 결혼하여, 나가노현미나미아즈미군아즈미촌으로 이주한 후 영어 회화 학원 강사로 일했다. 1979년 자신의 핀란드어 이름을 일본 발음으로 읽은 '쓰루넨 마루테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귀화하였다.[6] 그 뒤 10년 동안 가나가와현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겐지모노가타리》의 첫 28장을 핀란드어로 번역하여 알렸으며, 일본어로 책을 몇 권 썼다. 1981년 가나가와현아시가라시모군유가와라정으로 이주했다. 2013년 가나가와현가마쿠라시니시카마쿠라로 이주했다.
2. 2. 일본으로의 이주와 귀화
1967년 기독교(루터교) 선교사로 일본에 왔다.[3] 1974년 34살에 일본인 부인 사치코와 만나 결혼하였다. 영어학원 강사로 일하다가 1979년 자신의 핀란드어 이름을 일본 발음으로 읽은 '쓰루넨 마루테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귀화하였다.[6] 그 뒤 10년 동안 가나가와현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겐지모노가타리》의 첫 28장을 핀란드어로 번역하여 알렸으며, 일본어로 책을 몇 권 지었다.1968년 핀란드인 아내와 함께 도쿄도토시마구이케부쿠로의 선교사관에 살면서, 시부야구의 도쿄 일본어학교에서 일본어를 습득했다.[5] 1970년 오이타현벳푸시에서 아동복지시설 직원으로 일했다. 핀란드인 아내와 이혼 후, 1974년 선교사를 사임하고 일본인 여성과 국제 결혼하여 나가노현미나미아즈미군아즈미촌으로 이주했다. 그 후 영어 회화 학원 강사로 전직했다. 1981년 가나가와현아시가라시모군유가와라정으로 이주했다.[6]
3. 정치 경력
쓰루넨 마루테이는 54세에 가나가와현 유가와라 정(湯河原町일본어) 의회 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7] 이후 참의원과 중의원 선거에 여러 번 도전했으나 낙선했다. 2002년 오하시 쿄센 참의원(비례대표)의 사퇴로 그의 자리를 승계받아 일본 최초의 서구 출신 국회의원이 되었다.[10][11]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으나, 2013년 낙선하여 정계에서 은퇴했다.[15]
쓰루넨 마루테이의 정치 경력은 다음과 같다.
선거 종류 | 날짜 | 소속 정당 | 득표수 | 당락 | 비고 |
---|---|---|---|---|---|
유가와라 정 의원 선거 | 1992년 3월 22일 | 무소속 | 1,051표 | 당선 (4위) | 일본 최초의 서구 출신 지방 의원 |
제17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 (가나가와현 선거구) | 1995년 7월 23일 | 무소속 | 339,484표 | 낙선 (차점) | 정 의원직 사임 |
제18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 (가나가와현 선거구) | 1998년 7월 12일 | 무소속 | 502,712표 | 낙선 (차점) | |
제4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가나가와현 제17구) | 2000년 6월 25일 | 민주당 | 85,227표 | 낙선 (차점) | |
제19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 (참의원 비례구) | 2001년 7월 29일 | 민주당 | 159,920표 | 낙선 (9위, 차점) | |
참의원 의원 (참의원 비례구) | 2002년 2월 8일 | 민주당 | - | 보궐 당선 | 오하시 쿄센 사임으로 승계, 일본 최초 서구 출신 국회의원 |
제21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 (참의원 비례구) | 2007년 7월 29일 | 민주당 | 242,742표 | 당선 (6위) | 재선 |
제23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 (참의원 비례구) | 2013년 7월 21일 | 민주당 | 82,858표 | 낙선 (12위) | 정계 은퇴[15] |
3. 1. 유가와라 정 의회 의원 (1992-1995)
1992년 54세 때 가나가와현 유가와라 정(湯河原町일본어) 의회 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1,051표를 얻어 4위로 당선되었다.[7] 일본 최초의 서구 출신 지방 의원이었다.[7]3. 2. 참의원 의원 (2002-2013)
쓰루넨 마루테이는 1992년 가나가와현 유가와라 정(湯河原町일본어) 의회 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된 후, 1995년 참의원 선거에 처음 도전했으나 낙선했다.[7] 1998년 참의원 선거에서는 8,000표 차이로 낙선하며 "푸른 눈을 가진 최초의 일본 시민을 참의원에 보내십시오"라고 호소하기도 했다.[8] 2000년에는 민주당 후보로 중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2001년 참의원 선거에서도 낙선했다.[9]그러나 2002년, 오하시 쿄센 의원의 사임으로 인해 차점자 승계로 참의원 의원직을 얻게 되었다.[10][11] 이는 당선자 다음으로 많은 표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쓰루넨은 일본 최초의 서구 출신 국회의원이 되었다.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서는 242,742표를 얻어 재선에 성공했지만,[2] 2013년 참의원 선거에서는 낙선하여 정계에서 은퇴했다.[15]
다음은 쓰루넨 마루테이의 참의원 의원 활동 기간 동안의 주요 선거 이력이다.
선거 | 날짜 | 선거구 | 정당 | 득표수 | 결과 | 비고 |
---|---|---|---|---|---|---|
제17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 | 1995년 7월 23일 | 가나가와현 선거구 | 무소속 | 339,484표 | 낙선 (차점) | |
제18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 | 1998년 7월 12일 | 가나가와현 선거구 | 무소속 | 502,712표 | 낙선 (차점) | |
제19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 | 2001년 7월 29일 | 비례구 | 민주당 | 159,920표 | 낙선 (차점) | |
제19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 보궐 | 2002년 2월 8일 | 비례구 | 민주당 | - | 당선 | 오하시 쿄센 의원 사임으로 승계 |
제21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 | 2007년 7월 29일 | 비례구 | 민주당 | 242,742표 | 당선 (재선) | |
제23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 | 2013년 7월 21일 | 비례구 | 민주당 | 82,858표 | 낙선 | [15] |
2010년 10월에는 참의원재해 대책 특별 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3. 3. 정치적 입장 및 활동
쓰루넨 마루테이는 54세에 가나가와현 유가와라 정 의회 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된 후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7] 이후 1995년 참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처음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01년에는 《일본인이 되고 싶다》를 출판하고 참의원에 재도전했으나 다시 실패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후원을 받는 성과를 올렸다.[9] 2002년 오하시 쿄센 참의원(비례대표)의 사퇴로 그의 자리를 승계받아 2004년 10월 4일 참의원에 진출했다.[10][11]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2]1992년 유가와라마치 시의회 선거에서 1,051표를 얻어 4위로 당선되었고,[7] 1995년 가나가와현 참의원 선거에서는 339,484표를 얻어 4위를 기록했으나 낙선했다. 1998년 재도전에서는 502,712표를 얻었지만 당선에는 8,000표가 부족했다. 당시 그는 "푸른 눈을 가진 최초의 일본 시민을 참의원에 보내 달라"고 호소하며, 성 할당제 도입을 제안하기도 했다.[8] 2000년 민주당 후보로 중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2001년 참의원 선거에서도 159,920표를 얻어 낙선했다.[9]
2007년 선거에서는 242,742표를 얻어 재선에 성공했지만, 2013년 선거에서는 82,858표(12위)를 얻는 데 그쳐 낙선했다.[2]
쓰루넨 마루테이의 정치 활동 및 당선 이력은 다음과 같다.
선거 종류 | 날짜 | 소속 정당 | 득표수 | 당락 | 비고 |
---|---|---|---|---|---|
유가와라 정 의원 선거 | 1992년 3월 22일 | 무소속 | 1,051표 | 당선 (4위) | 일본 최초의 서구 출신 지방 의원 |
제17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 (가나가와현 선거구) | 1995년 7월 23일 | 무소속 | 339,484표 | 낙선 (차점) | 정 의원직 사임 |
제18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 (가나가와현 선거구) | 1998년 7월 12일 | 무소속 | 502,712표 | 낙선 (차점) | |
제4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가나가와현 제17구) | 2000년 6월 25일 | 민주당 | 85,227표 | 낙선 (차점) | |
제19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 (참의원 비례구) | 2001년 7월 29일 | 민주당 | 159,920표 | 낙선 (9위, 차점) | |
참의원 의원 (참의원 비례구) | 2002년 2월 8일 | 민주당 | - | 보궐 당선 | 오하시 쿄센 사임으로 승계, 일본 최초 서구 출신 국회의원 |
제21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 (참의원 비례구) | 2007년 7월 29일 | 민주당 | 242,742표 | 당선 (6위) | 재선 |
제23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 (참의원 비례구) | 2013년 7월 21일 | 민주당 | 82,858표 | 낙선 (12위) | 정계 은퇴[15] |
쓰루넨 마루테이는 2003년 시즈오카 공항 건설 반대 국회의원 서명에 참여했고,[16] 같은 해 민주당 한일 의원 교류 위원회 사무총장을 맡았다.[17] 2004년에는 초당파 유기농업 추진 의원 연맹을 설립하여 사무국장을 역임했고, 2006년 의원 입법으로 유기 농업 추진법 성립에 기여했다.[18] 2007년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청년회 주최 집회에서 백진훈 의원과 함께 "정주 외국인에게 지방 참정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2008년 재일 한국인 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재일 한국인을 비롯한 영주 외국인 주민의 법적 지위 향상을 추진하는 의원 연맹'에 참가했다. 2013년 3월 14일 '배외・인종 혐오 데모에 항의하는 국회 집회'를 주최했다.[19]
그는 선교사 경력을 바탕으로 한일 기독교 의원 연맹에 참여했으며, 유기농업을 추진하며 EM을 활용하는 농가를 지원하고 세계구세교와 협력 관계에 있는 EM균 관련 단체 행사에서 강연을 하기도 했다.[18]
4. 개인 생활
쓰루넨 마루테이는 1940년 핀란드 북카렐리아 주 리엑사에서 마르티 투루넨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1967년 루터교 선교사로 일본에 왔으며, 1974년 일본인 부인 사치코와 결혼하였다. 1979년 '쓰루넨 마루테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귀화하였다.[6]
계속 전쟁 말기, 당시 4세였던 쓰루넨과 그의 가족은 소련 게릴라 공격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생존자 중 하나였다.[4]
1981년 가나가와현 유가와라로 이주했고, 2013년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 니시카마쿠라로 이주했다.
2002년 참의원 당선 후 자산 공개에서 예금 총액 21만 엔, 차입금 801만 엔을 공표했으며, 2008년 공개 시에는 예금 총액 1,746만 엔이었다. 2013년 2월, 핀란드 정부로부터 사자 훈장 코맨더 장을 수여받았다.[29]
2017년부터는 집필 활동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오전에는 집필, 오후에는 독서나 텃밭 손질 등을 한다.[32]
4. 1. 가족
쓰루넨 마루테이는 핀란드인 아내와 이혼 후 일본인 다나카 사치코와 결혼했다. 핀란드인 아내와의 사이에는 두 딸과 한 아들이 있으며, 차녀는 작가이자 분자 생물학자인 시니 에젤이다. 일본인 아내 사치코와의 사이에는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두고 있다.[12]사치코는 남편의 선거에 이해를 보이며, 『깨끗하고, 가난하고, 결백하게』(고분샤 간 ISBN 978-4334973599)를 저술했다. 쓰루넨과 사치코의 만남은, 간호사였던 사치코가 27세 때 정신적인 불안정으로 수면제 과다 복용 소동을 일으켜, 입원 중 병원 근처의 기독교 교회에 선교사로 있던 쓰루넨에게 전화 상담을 한 것이 계기였다.[28]
쓰루넨은 매일 아내가 직접 만든 유기 현미 도시락을 지참하며, 자택에 텃밭을 가꾸어 채소를 자급한다. 사치를 좋아하지 않는 부부는 밤에 슈퍼마켓이 문을 닫기 직전에 할인된 생선, 채소, 유기 현미, 빵 등을 구매하여, 요리에 능숙한 부인이 균형 잡힌 식단을 저렴하고 맛있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4. 2. 생활 방식
쓰루넨 마루테이는 일본에 처음 왔을 때 학생 식당에서 육류를 많이 먹어 지방을 과다 섭취했었다.[20] 그러나 참치, 방어, 오징어 등 어육 외의 고기를 사용하지 않는 일본 요리를 매우 좋아하며, 어육 외의 고기는 먹지 않는다.[21][22]취미 중 하나는 호수에 그물을 쳐서 물고기를 잡거나,[23][24] 낚시로 먹을 수 없을 정도의 양의 물고기를 낚아 요리해 먹는 것이다.[25][26] 매일 아내가 직접 만든 유기농 현미 도시락을 지참하며,[27] 자택 텃밭에서 채소를 재배하여 자급자족한다. 사치를 좋아하지 않아, 부인은 밤에 슈퍼마켓에서 할인된 식재료를 구입해 저렴하고 맛있는 요리를 만든다.
의원 숙소에서 생활하게 된 후에는 음식물 쓰레기를 자택으로 보내 비료로 사용하고, 태양 전지 솔라 패널을 설치하여 전력을 일부 충당하는 등 친환경적인 생활을 실천하고 있다. 이러한 생활 방식은 건강 유지에 큰 도움이 되며, 아내 덕분이라고 언급했다.
4. 3. 종교
핀란드 리엑사 출신으로, 1967년 루터교 선교사로 일본에 왔다.[16] 한일 기독교 의원 연맹에 참여했다.세계 구세교 신도이며,[30] 2007년 선거에서 이즈노메 교단의 지원을 받았다.[31] 세계구세교와 협력 관계에 있는 EM균 관련 단체의 행사에서 강연 등을 한다.[18]
부인 사치코는 간호사 시절 정신적 불안정으로 수면제 과다 복용 소동을 일으켰는데, 입원 중 병원 근처 교회에 선교사로 있던 쓰루넨에게 전화 상담을 한 것이 인연이 되었다.[28]
5. 저서 및 번역
쓰루넨 마루테이는 핀란드 북카렐리아 주 리엑사 출신으로, 핀란드 이름은 '''마르티 투루넨'''이다. 1967년 기독교(루터교) 선교사로 일본에 왔으며, 1979년 '쓰루넨 마루테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귀화하였다. 이후 10년 동안 가나가와현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겐지모노가타리》를 핀란드어로 번역했고, 일본어로 책을 몇 권 저술했다.[1] 2015년에는 자서전 《푸른 눈의 사무라이》를 Gummerus를 통해 출판했다.[12]
쓰루넨 마루테이는 저서 및 번역 활동은 아래와 같다.
- '''번역'''
- '''핀란드어 번역'''
- 겐지모노가타리 (무라사키 시키부)[1]
- 세간 흉내 계산 (이하라 사이카쿠)[1]
- 호색일대남 (이하라 사이카쿠)[1]
- 빙점, 속빙점 (미우라 아야코)[1]
- '''일본어 번역'''
- 사막의 독수리 아로의 모험 (시니 에젤) (2015년 신평론 ISBN 978-4-7948-1014-4)[1]
5. 1. 저서
출판 연도 | 제목 | 비고 |
---|---|---|
1993년 | 《푸른 눈의 의원이 간다》 (青い目の議員がゆく|아오이메노 기인가 유쿠일본어) | 와다 무네하루 공저, 하루서방, ISBN 978-4938133436 |
1993년 | 《일본인이 되고 싶어》 (日本人になりたい|니혼진니 나리타이일본어) | 일본어판: 쇼덴샤, ISBN 978-4334973599 |
1994년 | 《일본인이 되고 싶어》 | 핀란드어판: WSOY 출판 |
1995년 | 《쓰루넨, 나라를 세우다》 | 아이분쇼린 |
1995년 | 《푸른 눈의 국회의원 아직 탄생하지 않음》 | 베네세 코퍼레이션, ISBN 978-4828817545 |
1999년 | 《지방 정치 빅뱅》 | 1장 담당, 일본 지역 사회 연구소, ISBN 978-4890227778 |
1999년 | 《일본인 쓰루넨 마르테이》 | 가토 다카시 공저, 미오신 출판, ISBN 4-88701-845-2 |
1999년 | 《병상에 누워 있는 노인을 만드는 나라 일본, 만들지 않는 나라 북유럽》 | 아스나로 서방, ISBN 978-4751520437 |
2001년 | 《괜찮아!》 | 이시즈에, ISBN 978-4900747289 |
2003년 | 《그래, 국회의원이 되자》 | 주오케이출판, ISBN 978-4806118084 |
2004년 | 《미래를 위한 선택, 쓰루넨 매니페스토》 | 아이분쇼린 |
2004년 | 《일본에서 가장 알기 쉬운 일본》 | 아스카 출판, ISBN 978-4756907882 |
2008년 | 《쓰루넨의 사람과 지구의 에코 라이프》 | 하라 서방, ISBN 978-4562041503 |
2009년 | 《자연을 따르는 삶의 방식과 농법, 루옴》 | 이시이 시게루 공저, 에비스코쇼 출판, ISBN 978-4864030083 |
2011년 | 《쓰루넨 씨의 루옴 생활 권장 ~ 대지진이 가르쳐 준 것》 | 이시이 시게루, 카이사 카우트-코이 브라 공저, 미야오비 출판사, ISBN 978-4863668157 |
2014년 | 《핀란드인이 말하는 리얼 라이프, 빛도 있으면 그림자도 있다》 | 신평론, ISBN 978-4-7948-0988-9 |
2015년 | 《푸른 눈의 사무라이》 | Gummerus, 자서전[12] |
2017년 | 《사명, 쓰루넨 마르테이의 자서전》 | 코세이샤, ISBN 978-4-7744-0648-0 |
5. 2. 번역
Martti Turunen|마르티 투루넨fi은 핀란드 북카렐리아 주 리엑사 출신으로, 1967년 기독교(루터교) 선교사로 일본에 왔다. 1979년 자신의 핀란드어 이름을 일본 발음으로 읽은 '쓰루넨 마루테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귀화하였다. 이후 10년 동안 가나가와현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겐지모노가타리》의 첫 28장을 핀란드어로 번역하여 알렸다.[1]; 핀란드어 번역
; 일본어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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