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잠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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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마(海女)는 일본에서 전통적으로 해산물을 채취하는 여성 잠수부를 지칭하며, 한국의 해녀와 유사한 면모를 보인다. 일본의 아마는 삼국지 위지 왜인전에도 기록이 있으며, 1세기 전후의 유물과 만요슈에도 등장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과거에는 흰색 옷을 입고 잠수했으며, 20세기에는 잠수복을 착용했다. 미키모토 고키치가 양식 진주를 발견하면서 아마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으나, 현대에는 아마의 수가 감소하는 추세이다. 일본에서는 미에현 시마반도가 해녀가 가장 많은 지역이며, 와지마시의 해녀들은 독특한 조업 방식을 가지고 있다. 아마는 잠수 기술, 복장, 도구, 그리고 독특한 문화와 신앙을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의 소재로도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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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잠수부) | |
---|---|
아마(해녀) 정보 | |
직업 종류 | 잠수 어업 종사자 |
성별 | 주로 여성 |
주요 활동 지역 | 일본 대한민국 제주도 |
활동 방식 | 숨을 참고 잠수 특별한 장비 없이 맨몸 잠수 |
역사 | |
기원 | 수천 년 전 |
초기 목적 | 식량 확보 |
주된 수확물 | 해산물 (진주, 해조류, 조개류, 갑각류) |
전통 | 어머니로부터 딸에게 전수되는 직업 |
문화적 중요성 | |
상징 | 여성의 강인함과 바다와의 조화 |
보존 노력 | 어족 자원 보호 노력 전통 기술과 문화 보존 노력 |
장비 | |
전통적인 장비 | 면으로 된 잠수복 호흡을 위한 튜브 눈 보호를 위한 고글 |
현대적인 장비 | 고무 잠수복 오리발 마스크 |
잠수 기술 | |
호흡 조절 | 잠수 시간 극대화를 위한 훈련 |
수영 기술 | 효율적인 움직임과 에너지 보존 |
압력 평형 | 수압 변화에 적응 |
위험 요소 | |
저체온증 | 장시간 잠수로 인한 체온 저하 |
익사 | 사고로 인한 익사 위험 |
해양 생물 | 해파리 쏘임 기타 위험한 해양 생물 |
감압병 | 급격한 수압 변화로 인한 질병 |
현대의 아마 | |
감소 추세 | 어업 기술 발전 및 새로운 직업 등장 |
새로운 역할 | 해양 환경 보호 활동가 관광 산업 종사자 문화 홍보 대사 |
관련 용어 | |
일본어 | 해녀(海女, ama): 바다 여자 해사(海士, ama): 바다 남자 |
오키나와 방언 | 우민추(海人, Uminchu): 바다 사람 카이토(海人, Kaito): 바다 사람 |
2. 역사
일본에서 아마(海女, あま|아마일본어)의 역사는 2,000년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 문헌상 가장 오래된 기록은 중국의 역사서 《삼국지》 위지 왜인전(魏志倭人傳)으로, 3세기 경 왜인들이 사는 모습을 묘사하며 "물고기와 전복 잡기를 좋아하여, 물의 깊고 얕음을 가리지 않고 모두 잠수하여 이것을 잡는다"고 기술했다.[15] 이는 현재 사가현 마쓰우라 연안의 사람들을 묘사한 것으로 추정된다.[15] 고고학적으로는 가나가와현 미우라시의 비샤몬 동혈 유적(毘沙門洞穴遺跡)에서 야요이 시대 토기와 함께 1세기 전후의 것으로 보이는 사슴뿔로 만든 전복 따개(アワビオコシ|아와비오코시일본어) 유물이 발견되어[39][12], 고대부터 잠수 어업이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여성 잠수부, 즉 아마(海女)에 대한 기록은 일본의 헤이안 시대인 서기 927년 문헌에도 등장한다. 초기 아마들은 해산물을 채취했으며, 신사나 천황을 위해 전복을 수집하는 임무를 맡아 존경받았다. 아마들은 전통적으로 흰색 옷을 입었는데, 이는 순수함을 상징하고 상어를 쫓는 효과도 있다고 여겨졌다.[3][4] 노래집 《만요슈》(万葉集) 등에서도 여러 지역에서 활동하던 아마들에 대한 기술이 확인된다.
에도 시대에는 청나라로 수출되던 전복내장(이리코)이나 말린 전복(호시아와비) 등 해산물(효물, 俵物) 채취가 중요한 외화벌이 수단이 되면서 아마들의 역할이 중요해졌다.[17] 19세기 말 미키모토 고키치가 양식 진주 개발에 성공하면서 진주 채취 아마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나기도 했다.[5]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잠수 장비 보급과 해산물 수요 증가로 아마의 수가 1956년에는 약 1만 7천 명까지 일시적으로 증가했으나,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10년에는 2,174명까지 줄어들었다. 이러한 감소 추세 속에서 아마 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2009년 미에현 도바시에서는 일본 각지의 아마 대표들과 한국 제주도의 해녀를 초청하여 제1회 「해녀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양국의 해녀 문화를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하기 위한 노력을 다짐하는 선언을 채택했다.[20][21]
현대적인 잠수 장비 없이 맨몸으로 잠수하여 해산물을 채취하는 전통적인 방식의 해녀(아마) 조업은 전 세계적으로 한국과 일본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문화이다.[24]
2. 1. 한국의 해녀
(내용 없음)2. 1. 1. 제주 해녀
일본의 일부 지역에서는 잠수하는 행위를 もぐる|모구루jpn, むぐる|무구루jpn 등으로 부르는데, 이는 제주 해녀처럼 물속에 잠수해 조업하는 남자를 '머구리'라고 부르거나, 한국어에서 민간 잠수사 선박을 '머구리선'이라고 부르는 것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39]2009년 10월 3일 일본 미에현 도바시에서 열린 「해녀 심포지엄 제1회 도바 대회」에서는 일본 10개 지역과 한국의 제주도가 함께 각국의 잠녀(해녀) 문화를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공동 선언을 채택했다. 이후 일본에서는 2014년 미에현과 이시카와현에서 각각 아마 조업을 현 지정 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했으며, 한국에서는 2017년 5월 1일 제주 해녀 문화를 대한민국의 국가무형문화재 제132호로 지정하였다.
현대적인 잠수 장비 없이 맨몸으로 잠수하여 해산물을 채취하는 전통적인 방식의 조업은 전 세계적으로 한국과 일본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2. 2. 일본의 해녀
일본에서 해녀(海女, あま|아마일본어)의 역사는 2,000년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지 위지 왜인전(魏志倭人傳)으로, 당시 왜인들이 사는 곳을 묘사하며 "물고기와 전복 잡기를 좋아하여, 물의 깊고 얕음을 가리지 않고 모두 잠수하여 이것을 잡는다"고 기술했다.[15] 이는 사가현 마쓰우라군 연안의 사람들을 묘사한 것으로 추정된다.[15] 고고학적으로는 가나가와현 미우라시의 비샤몬 동혈 유적(毘沙門洞穴遺跡)에서 야요이 시대 토기와 함께 1세기 전후의 것으로 보이는 사슴뿔로 만든 전복 따개(アワビオコシ|아와비오코시일본어) 유물이 발견되었으며[39][12], 지바현 다테야마시의 나타키리 동굴 유적[13], 나가사키현 이키섬의 야요이 시대 유적(카라카미 조개무덤, 하라노쓰지 유적)에서도 유사한 도구가 출토되었다.[14]문헌상으로는 서기 927년 헤이안 시대의 기록에 여성 잠수부, 즉 아마(海女)가 등장한다. 초기 아마들은 해산물을 채취했으며, 신사나 천황을 위해 전복을 채취하는 역할을 맡아 존경받았다. 노래집 《만요슈》(万葉集) 등에서는 사누키국, 이세국, 히젠국, 쓰쿠시국, 시마국 등 여러 지역에서 잠수하는 아마들에 대한 기술이 확인된다. 《만요슈》에서는 진주, 전복 등을 채취하기 위해 잠수하는 행위를 かずく|가즈쿠일본어, かづく|가즈쿠일본어, かずき|가즈키일본어 등으로 불렀다. 오쿠라 백인일수에도 인부몬인노 다이후(殷富門院大輔)가 지은 와카에 오지마(雄島)의 아마가 등장한다.
에도 시대에는 청나라로 수출되던 전복내장(이리코)이나 말린 전복(호시아와비) 등 해산물(효물, 俵物) 채취가 중요한 외화벌이 수단이었으며, 히라도 번, 난부 번, 이즈국 등의 남성 해인(海人) 집단이 막부의 관리하에 타 지역 어장에서 조업하기도 했다.[17] 1880년대 후반에는 일부 일본인 잠수부들이 오스트레일리아 토레스 해협 제도의 진주조개 채취에 고용되기도 했다.[18]
초기에는 진주를 채취하는 아마는 드물었으나, 1893년 미키모토 고키치가 양식 진주 개발에 성공하면서 진주 채취 아마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었다. 미키모토는 미키모토 진주 섬을 설립하고 아마들을 활용해 사업을 확장했다.[5] 오늘날 미키모토 진주 섬의 아마들은 관광객을 위한 시연을 하고 있다.[6]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잠수복 등 장비 보급과 중화요리 유행으로 인한 전복 수요 증가로 아마의 수가 일시적으로 늘어나 1956년에는 약 1만 7천 명에 달했으나,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10년에는 2,174명까지 줄어들었다. 젊은 세대의 무관심과 수요 감소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2. 2. 1. 지역별 해녀 문화
일본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해녀를 부르는 명칭이나 잠수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 달랐다. 규슈(九州) 지역 일부에서는 '''시라스로'''(白水郎)라고 기록했으며, 주고쿠·시코쿠 지방과 그 동쪽에서는 잠수하는 아마들을 '''아마'''(海人), 규슈 지방에서는 '''시라스로'''(白水郎)라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노토국이나 사도국의 남녀 아마는 지쿠시국의 무네카타(宗像) 지역에서 쓰시마 해류를 타고 이동해 조업하였다는 전승이 남아 있고(헤구라섬舳倉島 등), 그 흔적으로써 일본측 동해 방면을 따라 무나카타 신사가 점점이 존재하고 있다. 무나카타시 가네자키(鐘崎)에는 해당 지역을 「해녀의 발상지」로 기념하는 비석이 세워졌다.잠수 행위를 가리키는 말도 지역별로 차이가 있었다. 《만요슈》(万葉集)에는 진주, 전복 등을 채취하러 잠수하는 행위를 かずく|가즈쿠일본어, かづく|가즈쿠일본어, かずき|가즈키일본어 등으로 부르고 있으며 이즈, 시마 및 시코쿠의 도쿠시마 일부 지역에 이 표현이 남아 있다. 반면 호소(房総)에서는 もぐる|모구루일본어[16], 시코쿠에서는 むぐる|무구루일본어, 규슈에서는 すむ|스무일본어라고 불렀다. 이는 제주도 해녀처럼 물속에 잠수해 조업을 하는 남자를 '머구리'라고 부르는 사례나 한국어에서 민간 잠수사 선박을 가리켜 '머구리선'이라고 부르는 것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타큐슈시의 메카리 신사(和布刈神社) 등에도 아마(海女)의 전승이 남아 있으며 이는 예능 노의 메카리(和布刈)로도 구연된다.
미에현의 시마반도는 일본에서 해녀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25] 이 지역에서는 조몬 시대 유적에서 전복을 바위에서 떼어내는 도구인 아와비오코시가 출토되어, 고대부터 잠수 어업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25] 다만 문헌상 '해녀'가 등장하는 것은 8세기부터이다.[25] 다이쇼 시대부터 쇼와 시대 초기에 걸쳐 관광 자원으로도 주목받아 그림엽서 등에 해녀의 모습이 담기기도 했다.[25] 2017년에는 "토바시・시마시의 해녀 어업 기술"이 국가 중요 무형 민속 문화재로 지정되었다.[31] 2018년 조사 기준으로 도바시와 시마시를 합쳐 647명의 해녀가 활동하고 있다.[31]
이시카와현에서는 외해 연안 각지에서 잠수 어업이 이루어졌으며, 특히 와지마시의 노토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32] 와지마 해녀의 기원은 후쿠오카현 무나카타시 가네자키 출신으로 여겨지며[32], 1569년 가네자키에서 13명의 남녀가 노토로 이주했다는 전승이 있다.[33] 노토 지역의 잠수 어업은 특히 와지마시 헤구라 섬 아마마치(海士町) 주민들에 의해 행해지고 있다.[32][33] 와지마시 아마마치 지구는 단일 집락으로는 일본에서 가장 많은 해녀 수를 보유하고 있다.[33] 아마마치 자치회는 지선 어장인 헤구라 섬 및 나나츠 섬의 공동 소유자로서 어업권과 어장을 관리하며, 해녀는 이소이리(磯入り) 감찰을 구입하여 조업한다.[32] 헤구라 섬에서 조업하는 해녀는 섬에 거주하는 정주 해녀와 와지마에서 통근하는 카요이아마(通い海女|카요이아마일본어)로 나뉜다.[32] 2014년 6월, 이시카와현은 와지마 지방의 아마 조업을 현 지정 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했다.[23]
이와테현 구지시에는 "'''북쪽 한계의 해녀'''"라 불리는 해녀들이 있으며, 이들은 '''絣半纏|카스리 한텐일본어'''(무늬가 있는 짧은 웃옷)[35]을 착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차가운 수온과 암반에서의 찰과상을 막기 위해 '''무지 스타킹'''을 신기도 한다. 최근에는 속옷 라인이 비치는 것을 막기 위해 검은색 스패츠를 착용하는 경우도 있다.
나가사키현 이키시 아시베초의 하치만(八幡) 지역에서는 '''레오타드 어업'''이라는 독특한 방식이 행해진다. 해녀들은 살색 타이츠 위에 무지 스타킹이나 댄스 타이츠(베이지, 검정, 보라 등)를 신고, 상반신에는 스웨터 위에 체조용 긴 소매 레오타드를 입는다. 머리에는 전통적인 흰색 磯頭巾|이소즈킨일본어 대신 수영 모자 후드를 쓰고 수영 마스크를 착용하고 잠수한다.
전통적으로 ama|아마일본어(해녀)는 흰색 옷을 입었는데, 이는 순수함을 상징하고 상어를 쫓기 위한 것으로도 추정된다. 1960년대까지는 샅바만 착용하고 잠수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20세기 들어서는 전신을 덮는 흰색 잠수복을 채택하기도 했다.[3][4] 잠수복이 보급된 이후에도 잠수복 위에 전통적인 조업 복장을 껴입는 경우도 많다. 현대에도 ama|아마일본어(해녀)는 대부분 스쿠버 장비나 공기통 없이 자유 잠수 방식으로 조업하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1956년에는 약 1만 7천 명까지 늘어났던 일본 아마의 수는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10년에는 2,174명까지 줄어들었다. 이러한 감소 추세 속에서 해녀 문화 보존을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2009년 10월 3일 미에현 도바시에서 처음으로 「해녀 심포지엄 제1회 도바 대회」(海女フォーラム・第1回鳥羽大会)가 개최되었으며, 이 자리에는 대한민국 제주도의 해녀도 초청되었다. 심포지엄에서는 일본 10개 지역과 한국 제주도가 공동으로 자국의 잠녀, 아마 문화를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대회 어필이 채택되었다.[20][21] 이 회합은 "해녀 서미트"로 불리며 매년 개최되고 있다(단, 코로나19 범유행 시기인 2020년 제외).[20] 유네스코 등재 노력의 일환으로 미에현은 2014년 1월 도바 시마 지방의 아마 조업을 현의 무형 민속 문화재로 지정했고[22], 2017년 3월에는 국가 중요 무형 민속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한편 한국에서는 이보다 앞선 2016년 11월 30일, 제주 해녀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2017년 5월 1일에는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제132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다이빙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순수하게 자맥질만으로 조업하는 전통적인 해녀 어업이 이루어지는 곳은 전 세계에서 한국과 일본 두 나라뿐이다.[24]
3. 용어
"아마"라고 발음되는 여러 해상 직업과 관련된 단어들이 있다.
표기 | 발음 | 의미 |
---|---|---|
海女|아마일본어 | 아마 (ama) | 해녀 (여성 잠수 어업인) |
海士|아마일본어 | 아마 (ama) | 해남 (남성 잠수 어업인) |
海人|아마 또는 가이진일본어 | 아마 (ama), 가이진 (kaijin) | 해인 (성별 무관 잠수 어업인) |
海人|우민츄ryu | 우민츄 (uminchu) | 오키나와어로, 성별 무관 잠수 어업인 |
"아마"는 특정 잠수부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넓게는 어업 종사자 전체를 지칭하기도 한다. 남성 해녀를 '해남(海士|아마일본어)', 여성 해녀를 '해녀(海女|아마일본어)'로 구분하여 표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모두 "아마"라고 불린다.[10] 해남을 한 글자로 줄인 "塰"라는 일본식 한자(고쿠지)가 있으며, 가고시마현 다네가섬의 아마도마리(塰泊, あまどまり)라는 지명에 사용되고 있다.
미나모토노 시타고의 『와묘루이쥬쇼』(10세기경 편찬된 사전)에 "아만(阿萬)"이라고 기재된 것으로 보아, 10세기 이전부터 "아마"라는 호칭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11] 과거에는 "아마"를 표기하기 위해 백수랑(白水郎), 어인(漁人), 해인(海人) 등의 한자가 사용되었다.[11] "백수랑" 표기에 대해 타니가와 시세이는 백수(白水)는 중국의 지명이며, 랑(郎)은 어랑(漁郎, 어부)을 뜻한다고 설명했다.[11] 또한 "해인"은 어민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11] "해인(海人)"이라고 쓰고 우민츄(ウミンチュ, 오키나와 방언)나 카이토(カイト, 시즈오카현 이즈 지방 등)라고 읽는 경우도 있다. 반면 "해남(海士)"이나 "해녀(海女)"라는 표기는 고대 문헌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며, "사(士)" 자가 남성을 높여 부르는 말로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 무사 사회가 성립된 이후이므로, 가마쿠라 시대 이후에 등장한 것으로 여겨진다.[11]
"아마"의 어원에 대해 카이바라 에키켄은 『일본석명』(日本釈名)에서 "아(あ)"는 "아오우미(青海, 푸른 바다)", "마(ま)"는 "스마이(すまい, 거처 또는 잠수)"의 약자라고 설명했다.[11]
중국의 수상 생활자를 의미하는 담( 蜑|탄중국어), 담가(蜑家), 담녀(蜑女)라는 표기를 사용하여 "아마"라고 읽는 예가 근세의 문서에서 보인다. 예를 들어, 『난소 사토미 팔견전』에는 "담가선(蜑家船)"이라고 쓰고 "아마부네(あまぶね, 아마의 배)"라고 읽는 단어가 등장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제주도 등에 "해녀"라고 불리는, 주로 여성으로 이루어진 잠수 어업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4. 활동 및 기술
일본에서 ama|아마일본어로 불리는 잠수부의 활동에 대한 가장 오래된 문헌 기록은 3세기 중국 역사서 『삼국지』의 「위지왜인전」으로 여겨진다. 여기에는 현재의 사가현 마쓰우라 연안으로 추정되는 지역 주민들이 물고기와 전복을 잡기 위해 잠수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15] 이후 8세기경 편찬된 『만엽집』 등에서도 사누키국, 이세국, 히젠국, 쓰쿠시국, 시마국 등 여러 지역에서 활동했던 해인들의 기술을 엿볼 수 있다. 『만엽집』에서는 아마를 '白水郎|시라스로일본어'라고 표기한 예가 많다. 규슈 일부 지역에서는 '시라스로'라는 명칭이 사용되었으며, 이를 통해 주고쿠·시코쿠 지방 동쪽에서는 '아마', 규슈 지방에서는 '시라스로'라고 불렀음을 알 수 있다.
노토국이나 사도국의 해녀는 쓰쿠시국 무나카타 지역에서 쓰시마 해류를 타고 이동하여 어업을 했다는 전승이 있으며, 그 흔적으로 일본해 연안에는 무나카타 신사가 곳곳에 남아있다. 후쿠오카현 무나카타시 가네자키에는 "해녀 발상지" 비석이 세워져 있다.
잠수하여 진주, 전복 등을 채취하는 행위를 『만엽집』에서는 '潜く|카즈쿠일본어', 'かずく|카즈쿠일본어', 'かずき|카즈키일본어' 등으로 표현했다. 현재 이러한 표현은 이즈, 시마, 도쿠시마 일부 지역 해녀들이 사용하며, 보소에서는 'もぐる|모구루일본어'[16], 시코쿠에서는 'むぐる|무구루일본어', 규슈에서는 'すむ|스무일본어'라고 부른다.
에도 시대에는 청나라로 수출되던 전복내장(이리나마코)이나 말린 전복(호시아와비) 등 해산물(효물)이 중요한 외화 획득 수단이었다.[17] 특정 지역의 남성 해인 집단은 높은 효율성으로 막부의 관리하에 다른 지역에서 조업하기도 했다.[17]
1880년대 후반에는 오스트레일리아 토레스 해협 제도에서 진주조개 채취에 일본인 잠수부(해인)들이 고용되면서, 일본인 노동자들이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18]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잠수 장비 발달과 전복 수요 증가로 해인 인구가 1956년 약 1만 7천 명까지 늘었으나, 이후 감소하여 2010년에는 2,174명까지 줄었다. 이러한 감소 추세 속에서 해녀 문화 보존과 계승을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2009년부터 대한민국 제주도 해녀와 교류하는 '해녀 서미트'가 매년 개최되고 있으며[19][20][21], 미에현과 이시카와현 등 지자체에서는 해녀 어업 기술을 무형 민속 문화재로 지정하고[22][23], 국가 중요 무형 민속 문화재 지정[22] 및 유네스코 세계 무형 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다이빙 기기를 사용하지 않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잠수 어업을 하는 해녀는 전 세계적으로 일본과 한국에만 남아 있다.[24]
4. 1. 잠수 기술

ama|아마일본어는 보통 12세나 13세의 어린 나이에 잠수를 시작하며, 경험 많은 선배 ama|아마일본어에게 기술을 배운다. 일찍 활동을 시작하지만, 꾸준한 훈련과 생활 방식 덕분에 70대까지 활동하는 경우도 흔하며, 이들이 더 오래 산다는 속설도 있다.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여성의 신체적 특징(지방 분포, 숨 참기 능력)이 잠수에 더 유리하다고 여겨졌다.[6] ama|아마일본어의 복장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는데, 초기에는 간단한 샅바 형태였으나 점차 흰색의 단순한 옷을 거쳐 현대적인 잠수복으로 발전했다.
오랜 전통 중 하나는 머리에 쓰는 스카프이다. 이 스카프에는 seiman|세이만일본어이나 douman|도우만일본어 같은 상징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잠수 중 행운을 가져다주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준다고 믿어진다. 또한 ama|아마일본어는 작업 장소 근처에 작은 신사를 마련하고, 잠수를 마친 뒤 무사히 돌아온 것에 대해 신에게 감사 기도를 드리는 풍습이 있다.[4]
ama|아마일본어는 차가운 바닷물과 깊은 수심의 압력 같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작업해야 한다. 강도 높은 잠수 활동으로 인해 잠수 시즌 동안 체중이 줄어드는 경우도 많다. 물 밖으로 나올 때는 길게 휘파람 소리를 내며 숨을 내쉬는 독특한 호흡법을 사용하는데, 이 소리는 ama|아마일본어를 상징하는 특징 중 하나가 되었다.[4]
이시카와현 노토 지역의 ama|아마일본어 어업 방식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32]
- '''카치카라''' 또는 '''오카다치''': 육지에서 직접 헤엄쳐 나가 조업하는 방식.
- '''이소부네''' 또는 '''이소노리''': 조력자와 함께 배를 타고 나가 조업하는 방식. 이 방식은 2008년 이후 종사자가 없어졌다.
- '''노리아이''': 친척이나 친구들과 함께 배를 타고 나가 공동으로 조업하는 방식.
한 번 잠수하는 것을 '히토카시라'라고 부르며, 잠수 시간은 보통 45초 정도이다.[32] 와지마시에서는 '아이보우'라는 독특한 방식이 있는데, 두 명의 ama|아마일본어가 하나의 다라이(대야)나 튜브에 연결되어 교대로 잠수하며 서로의 휴식 시간을 보장하고 물속에서의 안전을 확보한다.[32]
지속 가능한 어업을 위해 자원 보호 노력도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에는 정해진 휴어일(7월~9월의 둘째, 넷째 토요일) 준수, 하루 조업 시간 제한(1일 4시간), 특정 구역에서의 조업 금지(금어구 설정), 어린 해산물 방류(종묘 방류), 해조류 서식지 보전 활동 등이 포함된다.[33]
4. 2. 복장 및 도구
아마의 의복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다. 초기에는 훈도시(샅바) 형태였으나, 이후 흰색의 이소기를 거쳐 현대에는 잠수복을 주로 착용한다.[29]오랜 전통을 가진 복장 요소로는 머리 스카프가 있다. 이 스카프에는 행운을 가져다주고 악을 물리친다고 여겨지는 세이만 도만과 같은 상징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4] thumb]]
흰색 이소기는 메이지 시대 중반에 등장했으며[29], 다이쇼 시대에 풍기상의 이유 등으로 정착되었다.[29] 이소기는 이소 셔츠와 이소 나카네(허리 감개)로 구성된다.[29] 미에현 도바시의 미키모토 진주섬에서는 관광객을 위해 전통적인 흰색 이소기를 입은 해녀의 조업 시연을 하기도 한다.[28]
1960년대 무렵부터는 보온성이 높은 잠수복 착용이 일반화되었다.[25][32] 잠수복은 부력이 크기 때문에 5kg에서 8kg 정도의 납 추 벨트를 허리에 착용해야 한다.[25][32] 다만, 잠수복 사용이 전복 남획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일부 지역에서는 사용을 금지하거나[29], 가구당 잠수복 수나 두께에 제한을 두기도 한다.[29]
잠수 시 시야 확보를 위해 물안경(이소메가네, 磯メガネ일본어)을 착용한다.[25] 미에현에서는 1878년(메이지 10년)경부터 사용되었으나, 남획 우려로 한때 사용이 금지되기도 했다.[30] 초기에는 양쪽 눈이 분리된 형태(고글)였으나 점차 코까지 덮는 일체형으로 발전했다.[30] 이시카와현 노토 지방에서는 두 눈 형태의 물안경이 주로 사용된다.[32]
전복 등을 바위에서 떼어내기 위해 노미(ノミ일본어) 또는 오비가네(オビガネ일본어)라고 불리는 도구를 사용한다.[25][31][32] 이 도구는 주로 금속(과거에는 쇠, 현재는 스테인리스)으로 만들어지며, 헤라 형태나 갈고리가 달린 형태 등 다양하다.[31][32]
채취한 해산물을 담는 도구로는 과거에는 이소오케(磯桶일본어, 나무통)를 사용했으나, 점차 그물 주머니(스카리)를 매단 부유환(탄포, タンポ일본어)으로 대체되었다.[25] 탄포는 해녀가 물 위에 떠 있도록 돕는 부표 역할도 한다.[25]
지역별로 독특한 복장과 도구도 존재한다.
- 이시카와현 노토 지방에서는 1960년대 전반까지 '사이(サイ일본어)'라는 독특한 훈도시 형태의 속옷을 입었다.[34]
- 이와테현 구지시의 북쪽 한계의 해녀는 카스리 무늬의 한텐을 입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35] 차가운 수온과 암반에서의 찰과상을 막기 위해 스타킹을 신기도 하며, 최근에는 스패츠를 착용하는 경우도 있다.
- 나가사키현 이키시 하치만 지역에서는 레오타드를 입고 조업하는 독특한 '레오타드 어업'이 행해진다. 이때 해녀는 타이츠와 스타킹, 스웨터 위에 긴 소매 레오타드를 겹쳐 입고, 수영모 형태의 두건과 수경을 착용한다.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야요이 시대의 유적에서 사슴 뿔이나 고래 뼈로 만든 전복 따개로 추정되는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다.[12][13][14] 이는 고대부터 잠수 어업 도구가 사용되었음을 시사한다.
5. 문화
삼국지 위지 왜인전(魏志倭人傳)에는 일본 사람들이 바닷속에 자주 들어가 물고기와 고래를 잡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는 아마에 대한 가장 오래된 문헌 기록으로 여겨진다.[15] 고고학적으로는 가나가와현 미우라시의 비샤몬 동혈 유적(毘沙門洞穴遺跡)에서 1세기 전후의 것으로 보이는 사슴뿔로 만든 전복 따개 'アワビオコシ|아와비오코시일본어'[39]가 발견되었고[12], 지바현 다테야마시의 나타키리 동굴[13], 나가사키현 이키섬의 야요이 시대 유적에서도 유사한 도구가 출토되었다.[14]
노래집 《만요슈》(万葉集) 등에서는 사누키국, 이세국, 히젠국, 쓰쿠시국, 시마국 등 여러 지역에서 잠수하는 아마들에 대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지역에 따라 명칭이 달랐는데, 주고쿠·시코쿠 지방 동쪽에서는 '海人|아마일본어', 규슈 지방에서는 '白水郎|시라스로일본어'라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만요슈》에서는 진주, 전복 등을 채취하러 잠수하는 행위를 'かずく|가즈쿠일본어' 또는 'かずき|가즈키일본어' 등으로 불렀으며, 이 표현은 이즈, 시마 및 도쿠시마 일부 지역에 남아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호소(房総)에서 'もぐる|모구루일본어'[16], 시코쿠에서 'むぐる|무구루일본어', 규슈에서는 'すむ|스무일본어'라고 불렀다. 이는 제주도 해녀처럼 잠수 조업을 하는 남자를 '머구리'라고 부르거나, 한국에서 민간 잠수사 선박을 '머구리선'이라 부르는 것과 연관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노토국이나 사도국의 아마는 지쿠시국 무네카타 지역에서 쓰시마 해류를 타고 이동해 조업했다는 전승이 있으며(헤구라섬 등), 그 흔적으로 일본 동해 방면을 따라 무나카타 신사가 분포하고 있다. 무나카타시 가네자키에는 "해녀 발상지"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오쿠라 백인일수에도 인부몬인노 다이후가 지은 와카에 오지마 아마의 소매가 등장하며, 기타큐슈시의 메카리 신사(和布刈神社) 등에도 아마(海女) 전승이 남아 있어 전통 예능 노의 '和布刈|메카리일본어'로도 공연된다.
에도 시대에는 전복내장이나 말린 전복 등 청나라에 수출하는 해산물(효물)이 중요한 외화 획득 수단이었고,[17] 히라도 번, 난부 번, 이즈국 등의 남성 해인 집단은 막부 관리인에게 청부를 받아 다른 지역 어장에서 조업하기도 했다.[17] 1880년대 후반에는 오스트레일리아 토레스 해협 제도의 진주조개 채취에 일본인 잠수부들이 고용되면서, 일본 노동자들이 호주로 이주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18]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후에는 잠수복 등 장비가 보급되고 중화요리의 인기로 전복 수요가 늘면서 아마의 수가 일시적으로 증가하여 1956년에는 약 1만 7천 명에 달했으나,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10년에는 2,174명까지 줄어들었다.
2009년 10월 3일, 미에현 도바시에서 한국 제주도의 해녀를 초청하여 제1회 해녀 심포지엄이 열렸으며,[20][21] 이 자리에서 일본 10개 지역[19]과 한국 제주도가 공동으로 잠녀·아마 문화를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대회 선언이 채택되었다.[20][21] 이후 일본에서는 2014년 미에현 도바·시마 지역과 이시카와현 와지마 지역의 아마 조업을 현 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했고,[22][23] 2017년에는 "도바·시마의 해녀 어업 기술"을 국가 중요 무형 민속 문화재로 지정했다. 한편 한국에서는 이보다 앞선 2016년 11월 30일, 제주 해녀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2017년 5월 1일에는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제132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잠수 장비 없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조업하는 해녀(아마) 문화는 전 세계에서 한국과 일본에만 남아있다.[24]
아마는 여러 대중문화 작품에서도 등장한다.
- 소설: 이언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 ''두 번 산다''에는 일본 아마 Kissy Suzuki|키시 스즈키일본어가 등장한다.
- 영화:
- ''두 번 산다'' (1967년):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 ''아마 걸스'' (Ama Girls, 1958년): 다큐멘터리 영화.
- ''Ama-San일본어'' (2016년): 포르투갈 감독 클라우디아 바레장의 다큐멘터리 영화. 시마 반도의 작은 어촌에서 30년간 함께 잠수한 세 아마의 일상을 다룬다.
- ''Ama: Women of the Sea영어'' (2019년): 영국-일본 영화 제작자 조지 유키코 도노반의 다큐멘터리 영화.
- ''단포포'' (1985년): 이타미 주조 감독의 영화 속 단편 에피소드에 등장.
- ''침해된 낙원'' (1963년): 마리온 게링 감독의 영화.
- TV 드라마: NHK 아침 드라마 ''아마짱'' (2013년)은 아마가 되려는 도호쿠 지역 여고생의 이야기를 다룬다.
- 만화: ''아만추!''는 여성 잠수부를 소재로 한 만화 시리즈이다. 제목은 '海人|아마일본어'의 다른 발음에서 따왔다.
- 미술: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1814년 목판화 ''어부의 아내의 꿈''은 젊은 아마와 한 쌍의 문어가 성적으로 얽혀 있는 모습을 묘사한다.
5. 1. 공동체 문화
어린 소녀들은 보통 12세나 13세부터 연장자 ama|아마일본어에게 배우며 활동을 시작한다. 일찍 시작함에도 불구하고, 아마는 70대까지도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잠수 훈련과 생활 방식 덕분에 장수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여성들이 남성보다 지방 분포와 숨을 참는 능력 면에서 더 뛰어나다고 여겨져 왔다.[6] 아마의 복장은 시대에 따라 변화했는데, 초기에는 간단한 샅바 형태였으나 이후 흰색의 단순한 옷을 거쳐 현대적인 잠수복으로 발전했다.아마의 세계에는 여러 의무와 미신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오랫동안 변치 않고 이어진 전통 중 하나는 머리 스카프 착용이다. 이 스카프에는 seiman|세이만일본어이나 douman|도만일본어과 같은 상징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잠수부에게 행운을 가져다주고 악한 기운을 물리친다고 믿어진다. 또한 아마는 잠수 지점 근처에 작은 신사를 만들어두고, 잠수를 마친 뒤 무사히 돌아온 것에 대해 신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4]
아마는 차가운 수온과 깊은 바닷속 수압 등 혹독한 환경을 견뎌내야 했다. 잠수 시즌 동안 강도 높은 활동으로 인해 체중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 아마는 잠수 후 수면으로 올라올 때 길게 휘파람 소리를 내며 숨을 내쉬는 독특한 호흡법을 사용하는데, 이 소리는 '이소부에'(磯笛)라고 불리며 아마를 상징하는 특징 중 하나가 되었다.[4] 이소부에는 일본의 소리 100선에도 선정되었다.[28]
지역별 문화
미에현의 시마반도는 일본에서 해녀가 가장 많이 활동하는 지역이다.[25] 이 지역의 조몬 시대 유적에서는 전복을 바위에서 떼는 도구인 '아와비오코시'가 발견되어, 고대부터 잠수 어업이 이루어졌음을 짐작하게 한다.[25] 문헌상 '해녀' 기록은 8세기에 처음 등장한다.[25] 다이쇼 시대부터 쇼와 초기에는 관광 자원으로도 주목받아 해녀 어업 모습이 그림엽서 등에 담기기도 했다.[25] 2017년에는 "토바시・시마시의 해녀 어업 기술"이 국가 중요 무형 민속 문화재로 지정되었다.[31] 2018년 조사 기준, 토바시와 시마시를 합쳐 647명의 해녀가 활동하고 있다.[31]
시마 지역의 어업 형태는 크게 '후나도'(船人)와 '카치도'(徒人)로 나뉜다.[25] 후나도는 부부(또는 부모와 자식)가 배를 타고 나가 아내가 잠수하고 남편이 배를 조종하며 생명줄을 잡는 방식이며,[26][31] 카치도는 갯바위 근처에서 혼자 작업하는 형태이다.[26][31] 카치도 해녀는 갯바위에서 통을 부유물 삼아 작업했기 때문에 '통 해녀'라고도 불린다.[27] 이 외에도 여러 해녀가 한 배를 타고 함께 작업하는 '노리아이'(乗合) 방식도 있다.[31]
잠수 깊이는 보통 3m에서 4m 정도지만, 숙련된 해녀는 20m까지 잠수하기도 한다.[25] 한 번 잠수하는 시간은 길어도 50초 정도이다.[25]
해녀들은 '가마도'(火場) 또는 '화장'(化粧)이라 불리는 해변의 휴식 공간에서 불을 쬐며 몸을 녹인다.[25][26] 가마도는 조별로 나뉘어 있으며, 어느 조에 속할지는 대대로 집안에 따라 정해진다.[26] 여성이 시집을 가면 남편의 어머니가 속한 가마도에 합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26] 가마도 내에서는 가입 순서에 따라 바다 쪽에 가까운 자리에 앉고, 새로 들어온 사람은 '연기 배출'이라 불리며 육지 쪽에 앉는 풍습이 있었다.[26] 도우시마에는 해녀 오두막 체험 시설도 마련되어 있다.[28]
자원 보호를 위해 지역별로 어획물의 크기 제한, 조업 가능 시기 및 일수 제한, 시간 제한, 금어구역 설정 등을 시행하고 있다.[25]
이시카와현에서는 외해 연안 여러 곳에서 잠수 어업이 이루어졌지만, 특히 와지마시가 위치한 노토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다.[32] 와지마 해녀의 기원은 후쿠오카현 무나카타시 카네자키 출신 이주민으로 여겨지며, 1569년에 카네자키에서 13명의 남녀가 노토로 건너왔다는 기록이 전해진다.[32][33]
노토 지역의 잠수 어업은 특히 와지마시 헤구라 섬의 아마마치(海士町) 사람들이 주도하고 있다.[32][33] 아마마치 지구는 단일 마을로는 일본에서 가장 많은 해녀 수를 보유하고 있다.[33] 아마마치 자치회는 인근 어장인 헤구라 섬과 나나츠 섬의 공동 소유자로서 어업권과 어장을 관리하며, 해녀들은 '이소이리 감찰'을 구입하여 조업에 나선다.[32] 헤구라 섬에서 조업하는 해녀는 섬에 거주하는 정주 해녀와 와지마에서 통근하는 '카요이아마'로 나뉜다.[32]
노토 지역의 어업 형태로는 육지에서 헤엄쳐 나가는 '카치카라' 또는 '오카다치', 조력자와 함께 배를 타는 '이소부네' 또는 '이소노리', 친척이나 친구들과 함께 배를 타고 나가는 '노리아이'가 있다.[32] 이 중 '이소부네'는 2008년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32] 또한, 와지마시에서는 두 사람이 하나의 통이나 튜브에 연결되어 교대로 잠수하는 '아이보우'(相棒)라는 독특한 방식이 있는데, 이는 휴식과 안전 확보를 위한 협업 형태이다.[32]
한 번의 잠수를 '히토카시라'라고 부르며, 잠수 시간은 약 45초 정도이다.[32]
노토 지역에서는 메이지 시대 중기부터 물안경을 사용했으며, 주로 두 눈 형태의 것을 쓴다.[32] 전복을 따는 도구는 '오비가네'라고 불리며, 과거에는 쇠로 만들었으나 현재는 주로 스테인리스 스틸로 제작된다.[32]
자원 보호를 위해 휴어일 설정(7월~9월 둘째, 넷째 토요일), 하루 조업 시간 제한(4시간), 금어구 설정, 종묘 방류, 해조류 서식지 보전 활동 등을 실시하고 있다.[33]
5. 2. 신앙
아마의 세계는 의무와 미신으로 특징지어진다. 오랜 세월 동안 변치 않고 이어져 온 전통적인 요소 중 하나는 머리 스카프이다. 이 스카프는 セーマン|세이만일본어과 ドーマン|도만일본어과 같은 상징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는 잠수부에게 행운을 가져다주고 악을 물리치는 기능을 한다고 믿어진다. 아마는 또한 잠수 지점 근처에 작은 신사를 만들어 잠수 후 그곳을 방문하여 무사 귀환에 대해 신에게 감사를 드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4]풍어와 조업의 안전을 기원하는 축제가 각지에 있으며, 대표적인 것으로는 시마시 布施田|후세다일본어의 浜祭|하마마츠리일본어, 토바시 菅島|스가시마일본어의 しろんご祭|시론고 마츠리일본어, 시마시 和具大島|와구 오시마일본어의 潮かけ祭り|시오카케 마츠리일본어 등이 있다.[25] 또한 시마 반도에서는 어업 시 외에는 "츠이야, 츠이야"라고 외는 주문 풍습[31], 아마가 액막이로서 세이만 도만 문양이 들어간 것을 몸에 걸치고 해녀 어업을 하는 풍습이 보인다.[25] 토바시 相差町|아이사쓰초일본어의 신메이 신사(神明神社) 참도에는 해녀들이 신앙하는 "石神さん|이시가미상일본어"이 있다.[28] 또한 시마 지방에서는 배를 탈 때나 바다에 들어갈 때 반드시 뱃머리를 왼쪽(取舵|토리카지일본어, 좌현)에서 들어가는 등 징크스도 보인다.[31]
이시카와현 와지마시에서는 정초의 起舟祭|기주제일본어에서 물안경이나 허리에 차는 추(おびがね|오비가네일본어)를 신단에 바치는 풍습이 있다.[32] 또한 어기(漁期) 이외의 기간에도 오비가네를 신단에 바치는 집도 있다.[32]
6. 현대의 해녀
현대 일본의 해녀(海女|아마일본어)는 스쿠버 장비나 공기통 없이 맨몸으로 잠수하는 전통적인 자유 잠수 방식을 이어가고 있다.[3][4] 이들의 활동 기록은 헤이안 시대인 서기 927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초기에는 해산물 채취와 전복 공납 등의 역할을 맡았다.[2]
전통적으로 해녀는 순수함을 상징하고 상어를 쫓는다는 속설에 따라 海人着|아마키세일본어라 불리는 흰 옷을 입었으며,[3][4] 잠수복이 보급된 현대에도 이 전통 복장을 덧입는 경우가 있다. 1893년 미키모토 고키치의 양식 진주 개발 이후 진주 채취 아마도 등장했으나, 오늘날에는 주로 관광 시연 형태로 활동한다.[5][6]
현대적인 잠수 장비 없이 전통 방식으로 조업하는 해녀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의 해녀와 일본의 아마뿐인 독특한 문화 유산으로 평가받는다.[24]
6. 1. 현황
현대에도 일본의 해녀(海女|아마일본어)는 스쿠버 장비나 공기통 없이 맨몸으로 잠수하는 전통적인 자유 잠수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미키모토 고키치가 양식 진주를 개발한 이후 진주 채취 ama|아마일본어에 대한 수요가 늘었으나, 오늘날 진주 잠수 ama|아마일본어는 주로 미키모토 진주 섬과 같은 곳에서 관광객을 위한 시연 형태로 그 명맥을 잇고 있다.[5][6]그러나 해녀의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이다. 1940년대 일본 전역에 6,000명 이상,[6] 1956년에는 약 1만 7천 명에 달했던 해녀는[36] 2010년 조사에서 2,174명으로 급감했다.[37] 특히 고치현, 니가타현, 도쿄도 등 일부 지역에서는 과거 100명 이상 존재했던 해녀가 현재는 한 명도 남지 않은 것으로 보고되었다.[37] 이러한 감소의 주요 원인으로는 젊은 세대의 무관심과 다른 직업으로의 이탈, 해녀 일에 대한 수요 감소, 해조류 군락지(바닷말밭)의 황폐화, 그리고 전복이나 소라와 같은 주요 어획 자원의 감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6][37]
전통적으로 해녀는 12~13세 정도의 어린 나이에 선배 해녀로부터 잠수 기술과 지식을 배우기 시작하며, 70대까지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수압을 견디기 위해 磯笛|이소부에일본어라 불리는 독특한 호흡법(숨비소리)을 사용하는데, 이는 해녀를 상징하는 특징 중 하나로 여겨진다.[4]
해녀 문화의 소멸 위기에 대응하여 보존과 계승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2009년 미에현 도바시에서는 대한민국 제주도의 해녀를 초청하여 제1회 '해녀 포럼'(이후 '해녀 서미트'로 명칭 변경)을 개최했다. 이 행사에는 일본 내 8개 현 10개 지역[19]의 해녀 대표들이 참가하여 교류하고, 해녀 문화 보존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위한 결의를 다졌다.[20][21] 이 서미트는 코로나19 범유행 시기를 제외하고 매년 개최되며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20] 또한, 미에현은 2014년 1월 도바·시마 지역의 해녀 어업과 문화를 현 지정 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했으며,[22] 같은 해 6월 이시카와현도 와지마 지역 해녀 어업을 현 지정 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했다.[23] 2017년 3월에는 '도바·시마의 해녀 어업 기술'이 국가 지정 중요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36] 향후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후계자 양성을 위한 노력도 있는데, 이와테현 쿠지시에서는 2005년부터 지역 여고생들을 대상으로 '해녀 클럽'을 운영하며 젊은 세대의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38]
잠수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잠수하여 해산물을 채취하는 해녀 어업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일본과 한국에만 남아 있는 독특한 문화이다.[24]
6. 2. 보존 노력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후 잠수복 등 잠수 장비 보급과 중화 요리 확산으로 전복 수요가 늘면서 아마의 수가 일시적으로 증가했다. 1956년에는 약 1만 7천 명까지 늘어났으나, 이후 감소세로 돌아서 2010년에는 2,174명까지 줄었다.[36][37] 1940년대 일본 해안에서 6,000명의 아마가 활동했지만, 오늘날에는 한 세대에 60~70명 정도만 활동하고 있다. 고치현, 니가타현, 도쿄도 등에서는 한때 100명 이상 존재했던 해녀가 현재는 전무한 상태이다.이러한 감소 추세 속에서 아마 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2009년 10월 3일, 일본 미에현 도바시에서 처음으로 「해녀 심포지엄 제1회 도바 대회」가 개최되었다. 이 심포지엄에는 일본 8현 10지역[19]과 함께 대한민국의 제주도 해녀가 초청되어 참여했으며, 참가자들은 자국의 잠녀(해녀) 문화를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대회 선언문을 채택했다.[20][21] 이 회의는 "해녀 서미트"로 불리며 매년 개최되고 있다(단, 코로나19 범유행으로 2020년은 제외).[20]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는 해당 국가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일본 미에현은 2014년 1월, 도바·시마 지역의 아마 조업을 현 지정 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했고,[22] 같은 해 6월에는 이시카와현이 와지마 지역의 아마 조업을 현 지정 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했다.[23] 이후 2017년 3월 3일에는 "도바·시마의 해녀 어업 기술"이 일본 국가 중요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한편, 대한민국에서는 2016년 11월 30일, 제주도의 해녀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먼저 등재되었으며, 2017년 5월 1일에는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제132호로 지정되었다.
현대적인 잠수 장비 없이 전통적인 자유 잠수 방식으로 조업하는 해녀(아마)는 전 세계적으로 대한민국과 일본에만 남아 있다.[24] 이들의 급격한 감소 요인으로는 해조류 군락지 황폐화와 전복, 소라 등 주요 어획 자원의 감소가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된다.[37]
후계자 양성을 위한 노력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테현 쿠지시 관광 협회는 2005년 지역 여고생을 대상으로 해녀 클럽을 설립하여 젊은 세대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38]
7. 대중문화 속 해녀
- 제임스 본드는 소설 ''두 번 산다''에서 일본을 여행하며 ama|아마일본어 키시 스즈키를 만나 관계를 맺는다. 이 인물은 영화에서도 등장한다.
- NHK의 아침 드라마 아마짱은 도호쿠 지역 여고생이 ama|아마일본어가 되려는 과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 일본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1814년 목판화 ''어부의 아내의 꿈''은 젊은 ama|아마일본어가 한 쌍의 문어와 성적으로 얽혀 있는 모습을 묘사한다.
- ''아마 걸스''(Ama Girls)는 1958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 아만추!는 일본 만화 시리즈로, 이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 제목 '아만추'는 ama|아마일본어를 길게 늘인 말이며, 여성 잠수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 Ama-San은 포르투갈 감독 클라우디아 바레장의 2016년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시마 반도의 작은 어촌에서 30년간 함께 잠수해 온 세 명의 일본 여성 아마의 일상을 담았다.
- [https://www.georgieyukikodonovan.com/ama ''Ama: Women of the Sea'']는 영국-일본 영화 제작자 조지 유키코 도노반의 2019년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일본의 마지막 아마들과 3,000년 된 그들의 생활 방식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을 탐구한다. 도노반은 영화 산업 내 성 불균형 해소를 위한 이니셔티브인 여성 영화 포스(Female Film Force)의 지원을 받아 영화 제작비 2만파운드를 지원받은 5명의 제작자 중 한 명이다.
- 이타미 주조 감독의 1985년 드라마 코미디 영화 ''단포포''에는 흰색 정장을 입은 갱스터와 그의 연인의 에로틱한 단편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중 하나는 해변에서 아마 소녀가 갓 잡은 굴을 먹었던 기억에 관한 것이다.
- 마리온 게링 감독의 1963년 영화 ''침해된 낙원''은 문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시된다. 연예계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일본을 여행하는 현대적인 게이샤가 아마로서 사랑과 직업을 찾는 이야기를 다룬다.
다음은 아마(해녀)가 등장하는 주요 작품과 해당 역할을 맡은 배우 목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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