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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기사와 하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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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야나기사와 하쿠오는 시즈오카현 출신의 일본 정치인으로, 도쿄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1980년 중의원 의원으로 처음 당선되어 8번 당선되었다. 국토청 장관, 금융 재생 위원회 위원장, 후생노동대신 등을 역임했으며,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고치카이에 속했다. 2009년 정계 은퇴 후 조사이 국제 대학 총장직을 맡았다. 그는 과거 "여성은 출산 기계" 발언으로 논란이 되었으며, 저서로는 『적자 재정의 10년과 4명의 총리들』과 『헤이세이 금융 위기 초대 금융 재생 위원장의 회고』가 있다. 2010년 욱일대수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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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기사와 하쿠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공식 사진, 2001년
본명야나기사와 하쿠오
로마자 표기Yanagisawa Hakuo
출생일1935년 8월 18일
출생지후쿠로이시, 시즈오카현
소속 정당자유민주당
학력도쿄 대학
경력
중의원 의원구 시즈오카 3구 (1986년–1996년)
시즈오카 3구 (1996년–2009년)
정무 경력
후생노동대신수상: 아베 신조
임기 시작2006년 9월 26일
임기 종료2007년 8월 27일
전임가와사키 지로
후임마스조에 요이치
금융 담당 대신수상: 모리 요시로
임기 시작2001년 1월 6일
임기 종료2002년 9월 30일
전임사무실 설립
후임다케나카 헤이조
금융재생위원회 위원장수상: 모리 요시로
임기 시작2000년 12월 5일
임기 종료2001년 1월 6일
전임아이자와 히데요키
후임사무실 폐지
수상오부치 게이조
임기 시작1998년 12월 15일
임기 종료1999년 10월 5일
전임사무실 설립
후임오치 미치오
금융 재생 담당 대신수상: 오부치 게이조
임기 시작1998년 10월 23일
임기 종료1998년 12월 15일
전임사무실 설립
후임사무실 폐지
국토청 장관수상: 오부치 게이조
임기 시작1998년 7월 30일
임기 종료1998년 10월 23일
전임가메이 히사오키
후임이노우에 기치오
선거구구 시즈오카 3구 (1986년–1996년)
시즈오카 3구 (1996년–2009년)
임기 시작1986년 7월 6일
임기 종료2009년 7월 21일
전임다수 의원 선거구
후임고야마 노부히로
선거구시즈오카 3구
임기 시작1980년 6월 23일
임기 종료1983년 11월 28일
기타 정보
배우자야나기사와 노리코
자녀야나기사와 타미 (차녀)
최종 학력도쿄 대학 법학부 졸업
수상[[파일:JPN Kyokujitsu-sho 1Class BAR.svg|40px]] 욱일대수장
소속 파벌가토파 → 고가파 → 고가파
전직자유민주당 세제 조사회 회장

2. 생애 및 경력

다나카 로쿠스케내각 관방 장관의 비서관을 맡은 것을 계기로 정계에 진출했다.[10] 대장성 관료 출신으로, 1980년 일본 중의원 의원에 처음 당선되어 이후 8번 당선되었다.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고치카이 (코가 파벌)에 속해 있었다.

1994년부터 1995년까지 외무 정무 차관을 역임했고, 1998년에는 오부치 게이조 내각에서 국토청 장관과 금융 재생 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01년부터 2002년까지는 금융 서비스 담당 국무대신을 역임했으나, 다케나카 헤이조 경제 정책재정 정책 담당 장관과의 의견 불일치로 사임했다. 2006년에는 후생노동대신에 취임했다.

2009년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시즈오카 3구에 출마했으나 고야마 노부히로에게 패배하여 정계에서 은퇴했다.[11] 이후 2010년부터 조사이 국제 대학 총장을 역임했다.[12]

2011년 1월 31일, 민주당 칸 나오토 정권에 의해 사회 보장과 세금의 일체 개혁을 논의하는 '집중 검토 회의'의 유식자 멤버로 선임되었다.

학술 활동으로는 게이오기주쿠 대학 경제학부에서 금융 자산 시장론과 중소기업 금융론을 강의했고, 메이지 대학 대학원 글로벌 비즈니스 연구과에서 특별 초빙 교수로 교편을 잡았다.

도로 특정 재원을 자금원으로 하는 도로 운송 경영 연구회 (도로 특정 재원의 일반 재원화를 반대)로부터 헌금을 받고 있다.

2. 1. 초기 생애

시즈오카현 후쿠로이시 출신이다. 시즈오카현립 시즈오카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신문 배달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했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어머니가 사망하여, 2학기부터 야간 과정으로 옮겨 낮에도 일을 했다. 2학년 때부터는 지역에 가까운 시즈오카현립 가케가와니시 고등학교로 전학했다. 당시에는 가난을 소재로 한 이시카와 다쿠보쿠에게 격려를 받았다고 한다. 도쿄 대학 법학부에서는 마르크스 등의 사회주의에 심취했다. 그러나 대학 4학년 때, 이케다 하야토 내각이 내건 소득 배증 계획에 관한 강의를 듣고, 사회주의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빈곤의 극복이 경제 정책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감명을 받았다[6][7]

1961년, 도쿄 대학을 졸업하고 대장성(후에 재무성)에 2등으로 입성 (대신 관방 문서과 배속[8][9])했다.

2. 2. 관료 경력


  • 1960년 국가공무원 채용 상급 갑종 시험(법률) 합격.[8]
  • 1961년 도쿄 대학 법학부 제2류(공법 코스) 졸업, 대장성 입성(대신 관방 문서과 배속).[8]
  • 도카이 재무국, 내각 심의실, 은행국 특별 금융과 특별 은행 계장[28], 방위청 경리국 등을 역임.[29]
  • 1967년 요코스카 세무서장.
  • 1971년 외무성 출향(뉴욕 총영사관 영사).
  • 1975년 대장성 주세국 세제 제2과장 보좌(총괄·주세).[30]
  • 1976년 대장성 주세국 총무과장 보좌.
  • 1977년 대장성 대신 관방 기획관.
  • 1978년 대장성 대신 관방 참사관, 내각 관방 장관 비서관.

2. 3. 정치 경력

야나기사와 하쿠오는 시즈오카현 후쿠로이시 출신으로, 1961년 도쿄 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1980년 일본 중의원 의원으로 처음 당선된 후, 8번이나 당선되었다.

연도직책
1994년 7월 ~ 1995년 8월외무정무 차관
1998년 3월 ~ 1998년 7월중의원 후생 위원회 위원장
1998년 7월국토청 장관 (오부치 게이조 내각)
1998년 10월금융 재생 담당 국무대신
1998년 12월 ~ 1999년 10월금융 재생 위원회 위원장
2000년 12월 ~ 2001년 1월금융 재생 위원회 위원장 (재임)
2001년 1월 ~ 2002년 9월금융 서비스 담당 국무대신
2005년 11월 ~ 2006년 9월자유민주당 세제 조사회 회장
2006년 9월후생노동대신



2002년 경제 정책재정 정책 담당 장관인 다케나카 헤이조와의 의견 불일치로 금융 담당 대신에서 해임되었다.[8] 그는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특히 고치카이 (코가 파벌)에 속해 있었다.

2009년 8월, 시즈오카 3구의 중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고야마 노부히로에게 패배하여 정계에서 은퇴했다.[8] 이후 조사이 국제 대학 총장직을 맡았다.

야나기사와 하쿠오 중의원 선거 이력
선거명선거구정당명득표수득표율득표순당락후보자수연령
제3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구 시즈오카 3구무소속53,44311.50%5 / 7낙선744
제3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구 시즈오카 3구무소속89,45817.06%3 / 7당선744
제3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구 시즈오카 3구자유민주당78,97515.61%5 / 7낙선748
제3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구 시즈오카 3구자유민주당119,91522.09%2 / 6당선650
제3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구 시즈오카 3구자유민주당120,45520.27%3 / 6당선654
제4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구 시즈오카 3구자유민주당96,55317.16%4 / 6당선657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시즈오카 3구자유민주당116,61055.32%1 / 3당선361
제4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시즈오카 3구자유민주당140,24260.12%1 / 3당선364
제43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시즈오카 3구자유민주당138,50859.70%1 / 3당선368
제44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시즈오카 3구자유민주당153,50061.28%1 / 3당선370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시즈오카 3구자유민주당109,12040.65%2 / 3낙선374


2. 4. 학술 활동

야나기사와 하쿠오의 부인이자 판화가인 노리코 (무사시노 미술 대학 조형학부 교수)가 오타가와 호안에 벽화를 그리는 등 활동에 의문이 제기되어, 2002년 7월 9일 중의원 재무금융위원회에서 중의원 의원 이가라시 후미히코 등이 노리코의 작품에 대해 야나기사와 하쿠오에게 질문하는 등 국회 심의에서도 다루어졌다.[27]

정치인의 연금 미납 문제가 주목받았을 때 야나기사와 하쿠오의 연금 미납이 발각되었다.

『아시아 위크』지에서 "아시아의 파워풀한 정치인" 8위, 『비즈니스 위크』지에서 "아시아의 별"로 선정되었다.

도로 특정 재원을 자금원으로 하는 도로 운송 경영 연구회 (도로 특정 재원의 일반 재원화를 반대)로부터 헌금을 받고 있다.

3. 논란

야나기사와 하쿠오는 후생노동대신 재임 시절 여러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 "여성은 출산 기계" 발언: 2007년 1월 27일, 시마네현 마쓰에시에서 열린 자민당 현 의원 집회에서 저출산 대책에 관해 "15~50세 여성의 수는 정해져 있다. 낳는 기계, 장치의 수는 정해져 있으니, 나머지는 한 사람당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라고 발언하여 '여성을 기계에 비유했다'는 비판을 받았다.[20][17][13] 야나기사와는 발언 직후 취소했으나,[14] 야당은 사임을 요구하며 정쟁의 이유로 삼았다.[15][16][17] 일본 정부는 이 발언이 "여성들을 상처 입히는 부적절한 것"이라는 답변서를 결정했다.[19]

  • 젊은 층 여론 조사 관련 발언: 2007년 2월 6일 기자 회견에서 젊은 세대가 "자녀를 2명 이상 희망"하는 것이 다수라는 정부 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매우 건전한 상황"이라고 발언하여, 아사히 신문사로부터 "부적절하고 낡은 도덕관에서 비롯된 발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22][23]

  • 산부인과 의사 감소 관련 발언: 2007년 2월 7일, 국회 질문에서 산부인과 의사 감소에 대해 "출생아 수 감소로 의료 수요가 뚜렷하게 감소하고 있는 것을 반영"이라고 답변하여,[24] 소송 위험과 24시간 근무 체제 등을 언급하지 않아 산부인과 의사들의 반발을 샀다는 아사히 신문의 보도가 있었다.[24]

  • 공장 노동 관련 발언: 2007년 2월 15일 참의원 후생노동위원회에서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제도에 관한 답변 중 공장 노동에 대해 "컨베이어 벨트 작업, 이제 노동 시간만이 상품인 곳"이라고 발언했다가,[25] 민주당과 공산당의 비판을 받고 발언을 철회하고 의사록에서 삭제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26]

3. 1. "여성은 출산 기계" 발언

2007년 1월 27일, 시마네현 마쓰에시에서 열린 자민당 현 의원 집회에서 야나기사와는 '연금, 복지, 의료의 전망에 대해'를 주제로 강연하던 중 저출산 대책에 관해 "기계라고 말해서 죄송하지만, 15~50세 여성의 수는 정해져 있다. 낳는 기계, 장치의 수는 정해져 있으니, 나머지는 한 사람당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라고 발언했다[20][17]

이는 '여성을 기계에 비유한 발언'으로 보도되었다[13]。야나기사와는 교도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인구 통계학 이야기를 하면서, 이미지를 알기 쉽게 하기 위해 아이를 낳는 장치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설명하며, 발언 직후 취소했다고 밝혔다[14]

야당은 이를 말꼬투리 잡기라 비판하며 사임을 요구했고, 2007년 2월 1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불참하는 등 심의를 거부하며 정쟁의 이유로 삼았다[15][16][17]。 야나기사와는 사임하지 않고 아베 개조 내각이 발족한 2007년 8월까지 후생노동대신을 역임했지만, 교도 통신의 2007년 2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발언은 아베 정권에 대한 여성 지지율을 낮추는 요인이 되었다[18]。 일본 정부는 2007년 2월 13일 각의에서 쓰지모토 기요미 (사민당)의원 질의에 대한 답변으로, 야나기사와 발언에 대해 "여성들을 상처 입히는 부적절한 것이며, 그 발언이 후생노동상의 진의, 또는 정부의 방침인 듯한 오해를 국민에게 주었다고 생각한다"라는 답변서를 결정했다[19]

하시모토 도루 변호사는 야나기사와 발언[20][17]에 대해 "비유로서는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성이 아이를 낳는 기계'라고 그는 말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낳지 않는 사람, 낳을 수 없는 사람을 비판하는 말이 아닌데, 멋대로 역으로 이용해 '낳을 수 없는 사람은 결함인가!?'라니, 일본에는 국어 능력이 그렇게 없는 건가!"라며 언론 보도와 발언을 문제 삼는 정치인, 여론에 의문을 제기했다[21]마나베 카오리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는데, 이렇게 큰 문제가 되는 것에 깜짝 놀랐다. 문제 발언이긴 하지만, 그런 것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고 신경 쓰이지 않는다. 아니, 상대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라며 과잉 반응이라고 말했다. 니시카와 후미코도 "우리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라며 비판 일색의 언론 보도에 의문을 제기했다[21]

3. 2. 기타 발언 논란

2007년 1월 27일, 야나기사와 하쿠오는 시마네현 마쓰에시에서 열린 자민당 현 의원 집회에서 인구 통계학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저출산 대책에 관해 "15~50세 여성의 수는 정해져 있다. 낳는 기계, 장치의 수는 정해져 있으니, 나머지는 한 사람당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라고 발언했다.[20][17] 이는 '여성을 기계에 비유한 발언'으로 보도되었다.[13] 야나기사와는 교도통신의 취재에 "인구 통계학 이야기를 하면서, 이미지를 알기 쉽게 하기 위해 아이를 낳는 장치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설명하며, 발언 자체는 직후에 취소했다고 밝혔다.[14]

야당은 이를 말꼬투리 잡기라고 비판하며 사임을 요구했고, 2월 1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불참하는 등 심의 거부 전술을 시작하여 정쟁의 이유로 삼았다.[15][16][17] 야나기사와는 사임하지 않았지만, 교도통신의 2007년 2월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이 발언은 아베 정권에 대한 여성 지지율을 저하시키는 요인이 되었다.[18] 정부는 2월 13일 각의에서 야나기사와 발언에 대해 "여성들을 상처 입히는 부적절한 것이며, 그 발언이 후생노동상의 진의, 또는 정부의 방침인 듯한 오해를 국민에게 주었다고 생각한다"라는 답변서를 결정했다.[19]

하시모토 도루 변호사는 야나기사와 발언에 대해 "비유로서는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여성이 아이를 낳는 기계'라고 말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라며 언론 보도와 발언을 문제 삼는 정치인, 여론에 의문을 제기했다.[20][17][21] 마나베 카오리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는데, 이렇게 큰 문제가 되는 것에 깜짝 놀랐다"라며 과잉 반응이라고 말했다. 니시카와 후미코도 "우리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라며 비판 일색의 언론 보도에 의문을 제기했다.[21]

  • 젊은 층 여론 조사에 관한 발언: 2007년 2월 6일 기자 회견에서 정부 조사 결과 젊은 세대에서 "자녀는 2명 이상 희망"이 다수였다는 것을 언급하며 "젊은이들은 결혼하고 싶고 자녀를 2명 이상 갖고 싶어하는 매우 건전한 상황에 있다. 젊은이들의 건전한 희망에 맞는 정책을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발언했다.[22] 아사히 신문사는 "자녀는 2명 이상 희망"하는 것을 건전하다고 표현한 것에 대해 "부적절하고 낡은 도덕관에서 비롯된 발언" 등의 비판을 했다.[23]

  • 산부인과 의사 감소에 관한 발언: 2007년 2월 7일, 국회 질문에서 "의사 수가 줄어드는 것은 산부인과와 외과 의사뿐인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산부인과 의사는 출생아 수당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출생아 수 감소로 의료 수요가 뚜렷하게 감소하고 있는 것을 반영"이라고 답변했다.[24] 아사히 신문은 소송 위험과 24시간 체제의 근무 등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산부인과 의사들의 반발을 불렀다고 보도했다. 또한 "출생아 수 감소 이상으로 산부인과 의사와 출산 가능 시설이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비판도 했다.[24]

  • 공장 노동에 관한 발언: 2007년 2월 15일 참의원 후생노동위원회에서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제도에 관한 답변 중 공장 노동에 대해 "공장 노동이라고 할까 컨베이어 벨트 작업, 이제 노동 시간만이 상품인 곳"이라고 발언했다. 민주당 가와우치 히로시는 "현장의 노력이 제조업의 세계 진출의 원동력이다. 시간만이 상품이 아니다"라고 발언 철회를 요구했고, 공산당 이치다 타다요시도 "단순한 실언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야나기사와는 "'뿐'이라는 표현이 어떤 사람들을 상처 입힌다는 지적이 있어서 (의사록에서 삭제) 가능한지 상담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후 "노동 시간만이 상품입니다"라는 발언 부분을 "노동 시간으로 평가받는다"라는 문구로 정정하고 "상품"이라는 발언의 철회와 의사록에서 삭제하는 것을 검토하겠다는 생각을 표명했다.[25][26]

4. 가족

5. 소속 단체 및 의원 연맹


  • 음악 의원 연맹(음의련) 4대 회장, 문화 예술 진흥 의원 연맹
  • 일·우크라이나 친선 의원 연맹 회장
  • 일·루마니아 친선 의원 연맹 회장
  • 차업 진흥 의원 연맹 회장
  • 한일 의원 연맹

6. 수상

アジア일본어 위크지에서 "아시아의 파워풀한 정치인" 8위, 비즈니스 위크지에서 "아시아의 별"로 선정되었다.

2010년 4월 29일 욱일대수장을 수상했다.[35]

7. 저서


  • 『赤字財政の10年と4人の総理たち』|아카지 자이세노 주넨토 요닌노 소리타치일본어 (일본 생산성 본부, 1985년)
  • 『平成金融危機 初代金融再生委員長の回顧』|헤이세이 긴유키키 쇼다이 긴유사세이인초노 가이코일본어 (일본경제신문출판, 2021년)

참조

[1] 뉴스 Japanese minister wants 'birth-giving machines', aka women, to have more babies https://www.theguard[...] The Guardian 2007-01-29
[2] 뉴스 Japan women called child machines http://news.bbc.co.u[...] BBC News 2007-01-27
[3] 뉴스 Yanagisawa apologizes anew, adds gaffe http://www.japantime[...] Japan Times 2007-02-08
[4] 웹사이트 The Japan Times Online Cabinet Profiles - Hakuo Hanagisawa http://www.japantime[...] 2007-01-27
[5] 웹사이트 Minister of Health, Labour and Welfare http://www.kantei.go[...] 2007-01-27
[6] 뉴스 来歴ここまで 読売新聞 2007-02-09
[7] 웹사이트 第7回アジアの未来 http://www.nikkei.co[...]
[8] 서적 日本の官庁 国土政策研究会 1978
[9] 간행물 現代,第36巻、第3〜4号 2002
[10] 웹사이트 金融危機が問う政策決定 コロナ対策迷走に通底 https://www.nikkei.c[...] 2021-08-06
[11] 뉴스 衆院選勝利――選挙区8人に当選証書――静岡 http://sankei.jp.msn[...] 産経デジタル 2009-09-02
[12] 웹사이트 柳沢伯夫氏:城西国際大学学長に 政界引退、4月から https://web.archive.[...] 毎日.jp 2010-03-09
[13] 뉴스 女性は「産む機械、装置」 松江市で柳沢厚労相 https://web.archive.[...] 47NEWS 2007-01-27
[14] 뉴스 「失礼なので取り消した」 柳沢厚労相 https://web.archive.[...] 47NEWS 2007-01-27
[15] 뉴스 与党単独で衆院予算委 辞任求め野党欠席 https://web.archive.[...] 47NEWS 2007-02-01
[16] 웹사이트 菅の「産む生産性」発言 柳沢批判の資格あるのか https://www.j-cast.c[...] 2007-02-08
[17] 간행물 正論 産経新聞社 2007
[18] 뉴스 女性の「安倍離れ」後押し 電話世論調査、厚労相発言が影響 http://www.47news.jp[...] 47NEWS 2007-02-04
[19] 뉴스 「産む機械」発言は不適切 政府答弁書 https://web.archive.[...] 47NEWS 2007-02-13
[20] 문서 「今の女性が子供を一生の間に沢山、あの、大体、この人口統計学ではですね、女性は15歳から50歳までが、まあ出産をしてくださる年齢なんですが、15歳から50歳の人の数を勘定すると、もう大体分かるわけですね。それ以外産まれようがない。急激に男が産むことはできないわけですから。特に今度我々が考えている2030年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と、その2030年に、例えば、まあ20歳になる人を考えるとですね、今いくつ(何歳)、もう7、8歳になっていなきゃいけないということなんです。産まれちゃってるんですよ、もう。30年(2030年)のときに20歳で頑張って産むぞってやってくれる人は。そういうことで、後はじゃあ、産む機械っちゃあなんだけど、装置がもう数が決まっちゃったと。機械の数・装置の数っちゃあなんだかもしれないけれども、そういう決まっちゃったということになると、後は1つの、ま、装置って言ってごめんなさいね。別に、この産む役目の人が一人頭(ひとりあたま)で頑張ってもらうしかないんですよね、皆さん」
[21] 뉴스 橋下徹弁護士 「柳沢擁護」に熱弁 https://archive.is/5[...] ジェイ・キャスト 2007-02-05
[22] 뉴스 「子どもは2人以上という健全な希望」 柳沢厚労相が発言 2007-02-06
[23] 뉴스 「子どもは2人、健全」また厚労相、疑問や反発 2007-02-06
[24] 뉴스 産科医減少「少子化の反映」 柳沢氏答弁に医師反発 2007-02-16
[25] 뉴스 柳沢厚労相:議事録からの削除求める考え 工場労働発言 2007-02-19
[26] 웹사이트 第166回国会 予算委員会 第11号(平成19年2月19日(月曜日)) https://www.shugiin.[...]
[27] 웹사이트 第154回国会 財務金融委員会 第23号(平成14年7月9日(火曜日)) https://www.shugiin.[...] 衆議院 2002-07-09
[28] 서적 職員録 上巻 大蔵省印刷局 1966
[29] 간행물 月刊官界 1988-12
[30] 서적 職員録 上巻 大蔵省印刷局 1976
[31] 웹사이트 文化芸術推進フォーラム https://ac-forum.jp/[...]
[32] 웹사이트 在日ウクライナ大使館 - 政治関係 https://japan.mfa.go[...]
[33] 웹사이트 <衆議院所属委員会、主な党役職・参加議員連盟一覧> (平成 17 年 6 月現在) https://www.kamikawa[...] 上川陽子
[34] 웹사이트 大学倶楽部・城西国際大:柳沢学長がルーマニア名誉領事に https://mainichi.jp/[...]
[35] 웹사이트 春の叙勲、4021人 https://www.nikkei.c[...] 日本経済新聞 2010-04-29
[36] 뉴스 ‘애 낳는 기계’ 발언, 일 장관 사임 안할 듯 http://www.hani.co.k[...] 한겨레
[37] 뉴스 ‘애 낳는 기계’ 파문 http://news.kbs.co.k[...] KBS 2007-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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