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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쓰 사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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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마쓰 사쿄는 1931년에 태어나 2011년에 사망한 일본의 소설가이다. 그는 SF 작가로 명성을 얻었으며, 《일본 침몰》, 《안녕히 쥬피터》와 같은 작품으로 유명하다. 고마쓰는 다양한 직업을 거쳐 작가가 되었으며, 일본 SF 작가 클럽의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여러 차례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일본 SF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에도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메시지를 전달하려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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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쓰 사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S-Fマガジン 1963년 1월호 (하야카와 쇼보) 사진
『S-Fマガジン』 1963년 1월호 (하야카와 쇼보)
출생1931년 1월 28일
출생지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시 니시구
사망2011년 7월 26일
사망 장소일본 오사카부 미노오시
묘지미노오시 다키안지
직업소설가, SF 작가
국적일본
학력문학사 (교토 대학, 1954년)
모교교토 대학 대학원 문학 연구과・문학부, 교토 대학 문학부 이탈리아 문학과 졸업
활동 기간1961년 - 2011년
장르SF, 평론, 수필
주제생명, 인류, 미래, 미래학
배우자고마쓰 가쓰미 (1958년 결혼)
데뷔 작품"역선도리키" (易仙逃里記) (1962년)
웹사이트고마쓰 사쿄 사무소
작품 활동
주요 작품『부활의 날』 (1964년)
『끝없는 흐름의 끝에』 (1966년)
일본 침몰』 (1973년)
『안녕 주피터』 (1982년)
『수도 소실』 (1985년)
『허무 회랑』 (1987년)
수상 내역
수상세이운상 일본 장편 부문 (1971년, 1974년, 1983년)
세이운상 일본 단편 부문 (1973년, 1976년, 1978년)
일본 추리 작가 협회상 (1974년)
일본 SF 대상 (1985년)
세이운상 특별상 (2011년)
일본 SF 대상 특별 공로상 (2011년)

2. 경력

고마쓰 사쿄는 교토 대학에서 이탈리아 문학을 전공하고 졸업한 후, 잡지 기자와 스탠드업 코미디 작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다.[4] 1960년대부터 작가 경력을 시작했으며, 아베 코보와 이탈리아 고전을 읽으며 현대 문학과 SF가 같다고 느꼈다.[5]

1961년 제1회 과학 소설 콘테스트에 "땅에는 평화를"을 출품하여 가작을 받았고,[5] 이듬해 "괴짜 시간 여행자의 회고록"으로 우승했다. SF 매거진 창간호를 접하고 로버트 셰클리의 「위험의 보상」에 충격을 받아 미국식 과학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했다. 「땅에는 평화를」은 『SF 매거진』에 게재되지 않고, SF 동인지 『우주진』에 게재되었으나,[29] 후쿠시마 마사미 편집장에게 이미 평가를 받고 있었고, 『SF 매거진』 (1962년 10월호)에 게재된 『역선도리기』로 데뷔하여, 단골이 되었다.[30]

1963년 『올 讀物』에 「종이인가 머리카락인가」가 게재되어 중간 소설지에 데뷔, 요시다 겐이치와 센타니 쇼조에게 극찬을 받았다. 같은 해, 단편집 『땅에는 평화를』을 간행하여 나오키상 후보가 되었다.[31] 1964년, 고분샤에서 처녀 장편 『일본 아파치족』을 간행하였으며, 2년 후 출판되어 5만 부가 판매되었다.

1963년


호시 신이치, 쓰쓰이 야스타카와 함께 "'SF 3인방'"[13]이라고 불리며, 일본 SF계를 대표하는 SF 작가이자,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였다. 1963년, 일본 SF 작가 클럽 창설에 참여 (1980년-1983년에 호시 신이치, 야노 테츠에 이어 세 번째 회장)했다.

서양에서는 소설 ''일본 침몰''(1973)과 ''안녕히 쥬피터''(1982)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두 작품 모두 영화로 각색되었다.[5] 최대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1973년 고분샤에서 간행된 『일본침몰』로, 사회 현상으로까지 번졌다. 3월에 발매하자 놀라운 판매량을 보이며, 그해 연말까지 상하권 누계 340만 부가 간행되었다.[49] 후쿠다 다케오와 당시 수상이었던 다나카 가쿠에이도 이 책을 읽었다고 한다.[50]

1964년에 세상에 등장한 계산기를 바로 도입하여 13만짜리 계산기[51] 혹은 캐논의 캐노라 1200(12.6만)을 사용해서 『일본침몰』을 썼다고 한다. 야스다 토시아키에 따르면, 37만 정도의 표준품을 사서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비쌌지만, 저것을 마구 사용한 덕분에 『일본침몰』을 쓸 수 있었다"라고 고마쓰는 말했다고 한다.[51] 1979년에 발매된 최초의 국산 워드 프로세서인 도시바의 JW-10 (630만)도, 제일 먼저 1호기를 고마쓰 사쿄 사무소에서 사용했지만, 그 후 휴대할 수 없는 것 등을 이유로 손으로 쓰는 것으로 돌아갔다.[52]

『일본침몰』은 "제1부 완"으로 발매되었으며, 제2부는 "세계로 유랑한 일본인들의 운명"을 그릴 예정이었지만, 후에 고령을 이유로 집필은 포기되었고, 2003년 11월부터 속편 제작 프로젝트 팀이 만들어졌다. 집필은 타니 코슈가 담당하여, 2006년 7월에 『일본침몰 제2부』가 간행되었다.[53]

1986년, 자신을 투영한 늙은 과학자가 우주로 날아가 끝없는 여행을 계속하는 『허무 회랑』을 집필했지만 미완성으로 끝났다.

2000년부터 카도카와 하루키 사무소가 주최로 고마쓰 사쿄 상이 설립되어, 선고 위원을 맡고 있다 (2009년의 제10회를 끝으로 휴지). 2001년부터 동인지 『고마쓰 사쿄 매거진』을 주재했다.

1970년 오사카 부 엑스포 '70 조직에 참여했고,[4] 1984년,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개최한 토미타 이사오의 라이브 콘서트의 기술 고문으로 활동했다. 1985년 일본 SF 대상을 수상했다.[6] 2007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65회 세계 SF 컨벤션인 니폰 2007의 두 명의 명예 작가 중 한 명이었다.

1964년에는 가토 히데토시, 우메사오 타다오 등과 함께 『「만국 박람회」를 생각하는 회』를 결성하여[32], 오사카 만박의 테마와 이념을 검토했다.

1965년에는 베이렌 창립 당시의 "호소인"이 되었다.[34] 1966년에는, 도쿄 12 채널에 근무하던 바바 코이치가 주최하여, 「베트남 전쟁에 대한 티치 인」을 개최했을 때, 오다 마코토와 카이코 켄 등과 함께 참여하여, 베트남 전쟁 반대론을 논했다.[35]

1970년에는 「국제 SF 심포지엄」을 주최. 미·영·소 등의 SF 작가를 일본에 초청하여, 아서 C. 클라크, 주디스 메릴, 프레데릭 폴, 브라이언 올디스 등이 참여했다. 같은 해 일본 만국 박람회에서는 서브 테마 위원, 테마관 서브 프로듀서 (치프 프로듀서는 오카모토 타로)를 맡았다.

1980년, 일본 SF 작가 클럽 회장으로, 도쿠마 서점을 스폰서로 한 「일본 SF 대상」의 창설에 노력했다. 같은 해 전후, 도호로부터의 오리지널 SF 영화 기획 의뢰에 응하여, 다수의 SF 작가를 초빙하여 브레인스토밍을 거듭한 후, 소설을 선행시켜 『안녕, 쥬피터』를 발표했다. 영화화에 즈음해서는 신회사를 설립하여 스스로 총감독 겸 각본을 맡았다.

1990년 국제 꽃과 녹색 박람회에서는 박람회의 종합 프로듀서 (이즈미 신야, 이사자키 신과 공동)로서 활약. 또한, 5회에 걸쳐 「오사카 피어나라」 심포지엄의 프로듀스를 담당하는 등 집필 외의 활동도 다방면에 걸쳐 있다.[37]

1993년에 고바야시 타카오에 의해 발견되었던 소행성 (6983)이, 2002년에 "Komatsusakyo"로 명명되었다.

2006년부터 『고마쓰 사쿄 전집 완전판』 (조세이 국제대학 출판회 간행)의 간행이 시작되었다. 2008년에는, 『고마쓰 사쿄 자전 실존을 찾아서』가 간행되었다. 2019년에는 세타가야 문학관에서 전시회 『고마쓰 사쿄전 ―D 계획―』이 개최되었다.[42][43]

한신 대지진 때에도 활동했는데,[44] 1995년 1월에 발생하여, 고마쓰 본인도 피해를 입은 한신·아와지 대지진 당시, 방송국 인터뷰에서 시청자의 요청과 헬리콥터 등의 현장 취재를 연계한 라이브로 안부 정보를 발신하는 것을 제안했다.

고마쓰는 『고마쓰 사쿄의 대지진 '95』를 1996년 6월에 간행하여, 지진의 교훈으로 방재 정보 공유화와 따뜻한 복구의 중요성을 적었다. 그 후, 우울증을 앓았으나 2000년 무렵 회복[45]했으며, 지진 복구 활동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2011년 3월 11일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에서는 "유일한 피폭국의 국민으로서, SF 작가가 된 인간으로서, 사실의 검증과 상상력을 최대한 가동시켜, 다음 세대에 새로운 메시지를 주고 싶다"라는 말을 남겼다.[46]

고마쓰는 2011년 7월 26일, 오사카에서 폐렴 합병증으로 8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7]

2. 1. 생애 초기

교토 대학에서 이탈리아 문학을 전공하고 졸업했다.[3] 졸업 후, 잡지 기자와 스탠드업 코미디 작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다.[4]

선조는 아와(도쿠시마현)의 고마쓰에서 지바 외방으로 간 어부의 일족이다. 아버지는 메이지 약학 전문학교(현 메이지 약과대학) 야간부에 재학 중 도쿄의 한약방 딸과 약혼한 뒤 결혼했다. 아버지가 약학을 버리고 전기 기계 사업을 시작하여 오사카에서 금속 가공 공장을 세웠기 때문에, 오사카부오사카시니시구에서 5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4살 때 효고현니시노미야시로 이사했고, 아마가사키와 니시노미야에서 자랐다. 교토 대학에서 야금 공학을 전공하고 산요 전기 기술자가 된 형은, 전쟁 중에도 과학 서적을 읽으며 고마쓰에게 과학 지식을 가르쳤다.[14] 형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신형 폭탄이 원자 폭탄임을 알려주기도 했다.[15]

소년 시절에는 병약하여 스포츠에 흥미가 없었고, 노래, 만화, 영화와 독서에 열중했다. 외가 친척이 있는 도쿄에서 가부키를 보기도 했고, 오사카에서 분라쿠를 보며 고전 연예에 대한 지식도 익혔다.[16] 1941년(초등학교 5학년)에는 NHK 오사카 방송국의 어린이 뉴스 프로그램 "어린이 방송국" 캐스터로 기용되었다.[17]

1943년, 제1 고베 중학교에 입학했다. 고마쓰는 간사이 지방에서 말하는 "잇치비리"한 성격으로, 웃음과 유머 가요를 좋아해 "우카레"라는 별명이 붙었고, 전시 중에는 교사에게 미움을 받았다. 몸이 튼튼하지 않았지만 유도부에 들어갔다.[18] 종전 당시 14세였는데, 징병 연령이 점점 내려가고 있어 "이대로 전쟁이 계속되면 자신도 죽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예상과 달리 살아남았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자신과 동갑인 중학생들이 총을 들고 다수 죽어가는 것을 보고 '살아남은 자의 책임'을 생각하여 문학을 쓰게 되었고, 장래 SF를 쓰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19]

2. 2. 작가 경력

고마쓰 사쿄는 아베 코보와 이탈리아 고전을 읽으며 현대 문학과 SF가 같다고 느꼈고, 1960년대부터 작가 경력을 시작했다.[5] 1961년, 하야카와 SF 매거진의 제1회 과학 소설 콘테스트에 "지구의 평화"라는 단편 소설을 출품하여 가작으로 5000JPY을 받았다.[5] 이 소설은 제2차 세계 대전이 1945년에 끝나지 않고 한 젊은이가 연합군의 일본 침공에 대비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듬해 "괴짜 시간 여행자의 회고록"으로 같은 콘테스트에서 우승했다. 그의 첫 소설인 ''일본 아파치''는 2년 후 출판되어 5만 부가 판매되었다.

서양에서는 소설 ''일본 침몰''(1973)과 ''안녕히 쥬피터''(1982)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두 작품 모두 영화로 각색되었는데, 각각 ''일본 침몰''(1973)과 ''안녕히 쥬피터''(1984)이다.

출판 당시, 지리적 스트레스로 인한 변동으로 일본이 침몰한다는 그의 종말론적 비전[5]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력 참사로 고통받던 일본을 걱정하게 했다. 그는 민족주의적인 일본인들이 그들의 땅을 잃으면 어떻게 될지 생각하며 영감을 얻어 이 소설을 썼다.[5]

고마쓰는 호시 신이치, 쓰쓰이 야스타카와 함께 일본 SF의 거장 중 한 명으로 여겨졌다.[5] 호시 신이치쓰쓰이 야스타카와 함께 "'SF 3인방'"[13]이라고 불리며, 일본 SF계를 대표하는 SF 작가이자,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이기도 했다.

1963년, 일본 SF 작가 클럽 창설에 참여 (1980년-1983년에 호시 신이치, 야노 테츠에 이어 세 번째 회장)했다.

1980년에는, 일본 SF 작가 클럽 회장으로, 도쿠마 서점을 스폰서로 한 「일본 SF 대상」의 창설에 노력했다.

1986년, 자신을 투영한 늙은 과학자가 우주로 날아가 끝없는 여행을 계속하는 『허무 회랑』을 집필했지만 미완성으로 끝났다.

2000년부터 카도카와 하루키 사무소가 주최로 고마쓰 사쿄 상이 설립되어, 선고 위원을 맡고 있다 (2009년의 제10회를 끝으로 휴지).

2001년부터 동인지 『고마쓰 사쿄 매거진』을 주재했다.

2007년에 일본에서 개최된 월드콘 제65회 월드콘/제46회 일본 SF 대회 Nippon 2007에는 데이비드 브린과 함께 작가게스트 오브 아너로 초대되었다.

2. 3. 주요 작품 및 활동

고마쓰 사쿄는 1960년대부터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아베 코보와 이탈리아 고전을 읽으며 현대 문학과 SF가 같다고 느꼈다.[5]

1961년, 제1회 과학 소설 콘테스트에 "지구의 평화"를 출품하여 가작으로 5000JPY을 받았다.[5] 이듬해 "괴짜 시간 여행자의 회고록"으로 우승했다. 첫 소설 ''일본 아파치''는 2년 후 출판되어 5만 부가 판매되었다.

SF 매거진 창간호를 접하고 로버트 셰클리의 「위험의 보상」에 충격을 받아 자신도 미국식 과학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한다.[28] 1961년 제1회 공상 과학 소설 콩쿠르에 "고마쓰 사쿄"라는 필명으로 응모한 「땅에는 평화를」이 노력상을 수상했다. 「땅에는 평화를」은 『SF 매거진』에 게재되지 않고, SF 동인지 『우주진』에 게재되었다.[29] 이듬해 제2회 SF 콩쿠르에서 『차즈케 맛』이 3등을 하였다. 후쿠시마 마사미 편집장에게 이미 평가를 받고 있었고, 『SF 매거진』 (1962년 10월호)에 게재된 『역선도리기』로 데뷔하여, 단골이 되었다.[30]

1963년, 일본 SF 작가 클럽 창설에 참여 (1980년-1983년에 호시 신이치, 야노 테츠에 이어 세 번째 회장).

1963년 『올 讀物』에 「종이인가 머리카락인가」가 게재되어, 중간 소설지 데뷔. 요시다 겐이치와 센타니 쇼조에게 극찬을 받았다. 같은 해, 단편집 『땅에는 평화를』을 간행하여, 1963년 하반기 나오키상 후보가 되었다.[31] 1964년, 고분샤에서 처녀 장편 『일본 아파치족』을 간행하였다.

서양에서는 소설 ''일본 침몰''(1973)과 ''안녕히 쥬피터''(1982)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두 작품 모두 영화로 각색되었는데, 각각 ''일본 침몰''(1973)과 ''안녕히 쥬피터''(1984)이다.

출판 당시, 지리적 스트레스로 인한 변동으로 일본이 침몰한다는 그의 종말론적 비전[5]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력 참사로 고통받던 일본을 걱정하게 했다. 그는 민족주의적인 일본인들이 그들의 땅을 잃으면 어떻게 될지 생각하며 영감을 얻어 이 소설을 썼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그로 인한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예견했는데, 그는 이 재앙 이후 "일본이 어떻게 진화할지 보고 싶어"했다.[5]

최대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1973년 고분샤에서 간행된 『일본침몰』로, 사회 현상으로까지 번졌다. 간행 전에는 "너무 길어서 팔리지 않는다"고 출판사 측에서 말했지만, 3월에 발매하자 놀라운 판매량을 보이며, 그해 연말까지 상하권 누계 340만 부가 간행되었다.[49] 후쿠다 다케오와 당시 수상이었던 다나카 가쿠에이도 이 책을 읽었다고 한다.[50]

처음에는 제목을 『일본 멸망』으로 할 생각이었지만 편집자가 『침몰』을 제안했다.

1964년에 세상에 등장한 계산기인데, 고마쓰는 이것을 바로 도입하여 "마구 사용해서" 『일본침몰』을 썼다고 한다. 2011년 7월 29일 마이니치 신문 「여록」에는 13만짜리 계산기라고 하며, 같은 해 11월 24일 NHK 『클로즈업 현대』에서는 고마쓰의 계산기로 캐논의 캐노라 1200(12.6만)이 소개되었다. 야스다 토시아키에 따르면, 37만 정도의 표준품을 사서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비쌌지만, 저것을 마구 사용한 덕분에 『일본침몰』을 쓸 수 있었다"라고 고마쓰는 말했다고 한다.[51] 또한, 1979년에 발매된 최초의 국산 워드 프로세서인 도시바의 JW-10 (630만)도, 제일 먼저 1호기를 고마쓰 사쿄 사무소에서 사용했지만, 그 후 휴대할 수 없는 것 등을 이유로 손으로 쓰는 것으로 돌아갔다.[52]

『일본침몰』은 "제1부 완"으로 발매되었으며, 제2부는 "세계로 유랑한 일본인들의 운명"을 그릴 예정이었지만, "일본인"으로서의 고유성을 지켜야 할지, "국토를 잃은 민족으로서 코스모폴리타니즘에 기여"해야 할지 고마쓰가 망설여져서 집필되지 않았다. 후에 고령을 이유로 고마쓰 본인에 의한 집필은 포기되었고, 2003년 11월부터 속편을 제작하는 프로젝트 팀이 만들어졌다. 집필은 타니 코슈가 담당하여, 2006년 7월에 『일본침몰 제2부』가 간행되었다.[53]

고마쓰는 1970년 오사카 부 엑스포 '70 조직에 참여했다.[4] 1984년,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개최한 토미타 이사오의 라이브 콘서트의 기술 고문으로 활동했다. 1985년 일본 SF 대상을 수상했다.[6] 2007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65회 세계 SF 컨벤션인 니폰 2007의 두 명의 명예 작가 중 한 명이었다.

민족학자 우메사오 타다오는 1963년, 「정보산업론」을 발표하여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고마쓰는 함께 『방송 아사히』에 집필하고 있던 인연으로 우메사오와 알게 되었고, 1963년 말, 우메사오를 중심으로 결성된 사적인 연구회에 기꺼이 참여했다. 이 멤버들을 주축으로 젊은 연구회에 의한 사적인 연구회 「'''만국박을 생각하는 회'''」가 결성된다. 고마쓰는 처음에는 지적 호기심에 의한 개인적인 모임의 연구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고, 국가 프로젝트로서의 만박에 관여할 생각은 없었다.

1964년에는 가토 히데토시, 우메사오 타다오 등과 함께 『「만국 박람회」를 생각하는 회』를 결성하여[32], 오사카 만박의 테마와 이념을 검토했다. 1967년에는 몬트리올에서 열리고 있던 세계 박람회를 시찰.

또한, 이 멤버들로 미래학도 화제가 되어, 1968년의 「일본 미래 학회」의 창설에, 우메사오 타다오, 가토 히데토시, 하야시 유지로, 가와조에 노보루와 참여한다.[33]

1965년에는 베이렌 창립 당시의 "호소인"이 되었다.[34] 1966년에는, 도쿄 12 채널에 근무하던 바바 코이치가 주최하여, 「베트남 전쟁에 대한 티치 인」을 개최했을 때, 고마쓰는 오다 마코토와 카이코 켄 등과 함께 참여하여, 베트남 전쟁 반대론을 논했다. 이 이벤트는, 너무 많은 반전론자가 있었기 때문에 방송되지 않고, 바바는, 도쿄 12 채널을 퇴사했다.[35]

1970년에는 「국제 SF 심포지엄」을 주최. 미·영·소 등의 SF 작가를 일본에 초청하여, 아서 C. 클라크, 주디스 메릴, 프레데릭 폴, 브라이언 올디스 등이 참여했다. 또한, 같은 해 일본 만국 박람회에서는 서브 테마 위원, 테마관 서브 프로듀서 (치프 프로듀서는 오카모토 타로)를 맡았다. 「태양의 탑」 내의 전시를, 오카모토 타로와 생각하여, DNA의 거대한 모형을 만들고, 생물의 진화를 나타내도록 했다. 또한, 지하 공간에, 이시게 나오미치 등이 수집한 세계 각국의 신상이나 가면을 전시. 그 컬렉션이, 1977년 오픈한 국립 민족학 박물관의 기원이 되었다.[36]

1980년에는, 일본 SF 작가 클럽 회장으로, 도쿠마 서점을 스폰서로 한 「일본 SF 대상」의 창설에 노력. 1981년 1월 발표된 제1회 수상작에는, 과학을 주제로 한, 본격적인 하드 SF 단편집인 호리 아키라의 『태양풍 교점』 (하야카와 쇼보, 1979년)를 강력히 추천하여, 수상시켰다.

1980년 전후, 도호로부터의 오리지널 SF 영화의 기획 의뢰에 응하여, 다수의 SF 작가를 초빙하여 브레인스토밍을 거듭한 후, 소설을 선행시켜 『안녕, 쥬피터』를 발표했다. 영화화에 즈음해서는 신회사를 설립하여 스스로 총감독 겸 각본을 맡아, 명목상 뿐만 아니라 완전한 진두 지휘를 했다.

1986년, 자신을 투영한 늙은 과학자가 우주로 날아가 끝없는 여행을 계속하는 『허무 회랑』을 집필. 이 작품은 결국 미완성으로 끝난다.

1990년의 국제 꽃과 녹색 박람회에서는 박람회의 종합 프로듀서 (이즈미 신야, 이사자키 신과 공동)로서 활약. 또한, 5회에 걸쳐 「오사카 피어나라」 심포지엄의 프로듀스를 담당하는 등 집필 외의 활동도 다방면에 걸쳐 있다. 이러한 프로젝트의 경험은, 후에, 저서 『거대 프로젝트 움직이다』에 정리했다.[37]

2000년부터 카도카와 하루키 사무소가 주최로 고마쓰 사쿄 상이 설립되어, 선고 위원을 맡고 있다 (2009년의 제10회를 끝으로 휴지).

2001년부터 동인지 『고마쓰 사쿄 매거진』을 주재. 매호 권두에는 편집장 인터뷰로 고마쓰와 저명인과의 대담이 게재되었다.

1993년에 고바야시 타카오에 의해 발견되었던 소행성 (6983)이, 2002년에 "Komatsusakyo"로 명명되었다.

2006년 7월부터 『고마쓰 사쿄 전집 완전판』 (조세이 국제대학 출판회 간행)의 간행도 시작되었다.

2007년에 일본에서 개최된 월드콘 제65회 월드콘/제46회 일본 SF 대회 Nippon 2007에는 데이비드 브린과 함께 작가 게스트 오브 아너로 초대되었다.

2008년에는, 『고마쓰 사쿄 자전 실존을 찾아서』가 간행되었다.

2019년 10월 12일부터 12월 22일까지, 세타가야 문학관에서, 전시회 『고마쓰 사쿄전 ―D 계획―』이 개최되었다. D 계획은 『일본 침몰』의 작중에서 수행되는 프로젝트명에서 유래했다.[42][43]

고마쓰는 호시 신이치, 쓰쓰이 야스타카와 함께 일본 SF의 거장 중 한 명으로 여겨졌다.[5] 호시 신이치쓰쓰이 야스타카와 함께 "'SF 3인방'"[13]이라고 불리며, 일본 SF계를 대표하는 SF 작가이자,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이기도 했다.

2. 4. 사회 참여 및 말년

고마쓰는 1970년 오사카 부 엑스포 '70 조직에 참여했다.[4] 1984년에는 일본의 전자 음악 작곡가 토미타 이사오오스트리아 린츠에서 개최한 라이브 콘서트의 기술 고문으로 활동했다. 1985년 일본 SF 대상을 수상했다.[6] 호시 신이치, 쓰쓰이 야스타카와 함께 일본 SF의 거장 중 한 명으로 여겨졌다.[5]

1970년 일본만국박람회에서는 테마관 서브 프로듀서, 1990년 국제 화와 녹색의 박람회에서는 종합 프로듀서로도 알려져 있다. 우주 개발 진흥을 위한 계몽 활동에도 힘썼으며, 우주 작가 클럽의 제창자이자 고문도 맡았다.

광범위하고 깊은 교양을 갖춘 지식인으로, 데뷔 직후부터 통상적인 작가의 틀을 넘어 저널리스트로서 국내 각지를 돌아다니고, 미디어 출연을 적극적으로 하는 등 팔방미인으로 활동했다. 미래학 연구회나 메타볼리스트 등, 많은 학자나 크리에이터와 교류했다. 1970년 오사카 만박에서는 30대의 젊은 나이로 주요 스태프에 이름을 올렸으며, 간사이 재계와의 밀접한 교류는 만년까지 이어졌다.

미래를 쓰는 SF 작가로서 데뷔했고, 호기심이 왕성했던 고마쓰는, 단순한 엔터테인먼트 작가가 아닌,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신세대 지식인으로서, 독특한 기대를 받았다. 그는 소설 집필과 함께 다양한 언론인·건축가와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여러 연구회, 학회 설립에 참여하고, 학자나 재계인을 상대로 문명론, 일본론을 논하는 등 정력적인 활동을 펼쳤다.

한편 고마쓰는 스스로 제작 회사를 설립하여 젊은 작가들을 모아 대형 SF 영화 제작에도 나섰다. 고마쓰가 원작, 각본, 총감독, 제작 모두에 이름을 올렸으나,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라이트 노벨 작가나 애니메이터 등 차세대 크리에이터 육성에 큰 역할을 했다.

간사이 출신의 지식인으로서 교토-오사카 지역에 대한 애착이 강하여, 다양한 자리에서 브레인 역할을 맡았다. 그 외에도 에세이나 대담, 미디어 출연은 수없이 많았다.

한신 대지진 때에도 활동했는데,[44] 1995년 1월에 발생하여, 고마쓰 본인도 피해를 입은 한신·아와지 대지진 당시, 방송국 인터뷰에서 시청자의 요청과 헬리콥터 등의 현장 취재를 연계한 라이브로 안부 정보를 발신하는 것을 제안했다. 몇몇 방송국이 실제로 시도했지만, 피해 범위가 너무 넓고 요청의 신빙성을 검증할 수 없다는 지적을 받아 중단되었다.

고마쓰는 저명한 학자에게 고속도로 붕괴 원인 공동 검증을 제안했지만, 학자는 "지진이 예측을 훨씬 넘어섰을 뿐, 우리에게 책임은 없다"라고 말해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고마쓰는 『고마쓰 사쿄의 대지진 '95』를 1996년 6월에 간행하여, 지진의 교훈으로 방재 정보 공유화와 따뜻한 복구의 중요성을 적었다. 그 후, 우울증을 앓았으나 2000년 무렵 회복[45]했으며, 지진 복구 활동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2011년 3월 11일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에서는 "유일한 피폭국의 국민으로서, SF 작가가 된 인간으로서, 사실의 검증과 상상력을 최대한 가동시켜, 다음 세대에 새로운 메시지를 주고 싶다"라는 말을 남겼다.[46] 복구를 바라며, "앞으로 일본이 어떻게 될지, 조금 더 오래 살아서, 보고 싶다는 마음이 지금 들고 있소"라고 적었다.[47] 또한, 『3.11의 미래 일본·SF·창조력』의 서문을 기고했다.[48]

고마쓰는 2011년 7월 26일, 오사카에서 폐렴 합병증으로 8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7] 사망 5일 전, 그의 분기 간행물인 《고마쓰 사쿄 매거진》에 2011년 쓰나미에 대한 생각을 담은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에서 고마쓰는 조국이 재앙 이후 발전하기를 희망하며,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조금 더 오래 살면서 일본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보고 싶어졌다"라고 썼다.[5][8]

3. 작풍 및 평가

고마쓰 사쿄는 SF 매거진에서 데뷔한 후, 장·단편, 숏 숏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발표하며 일본 SF를 이끌었다. 그의 작풍은 인류의 운명을 다루는 본격 SF부터 정치 소설, 시간 여행물, 역사 개변 소설, 평행 세계물, 슬랩스틱, 액션, SF 미스터리, 호러, 에로, 우화, 판타지까지 폭넓다.[5]

그의 작풍은 매우 다양하여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첨단 과학이나 정치·경제 지식을 활용하고 짜임새 있는 플롯을 가진 『일본 침몰』, 『수도 소실』, 도심을 배경으로 한 『한 잔의 컵의 전쟁』, 일본 및 বিভিন্ন 신화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 비SF인 역사 소설, 중간 소설 등 사이버펑크 이전의 거의 모든 장르를 다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SF 작품에서도 "SF 작가로서의 시점"에서 작품을 구상했다는 점은 『고마쓰 사쿄 자전』의 「자작 해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마쓰 작품의 주인공은 순수하고 정의감 넘치는 청년인 경우가 많다. 이는 호시 신이치, 쓰쓰이 야스타카에게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며, 인정, 정서, 관능 등을 풍부하게 묘사하는 경향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점이 고마쓰 작품 특유의 뜨거움과 매력을 부여한다.

이반 예프레모프의 사회주의적 SF론에 반박하며 쓴 「이반 예프레모프 님께」 등 다수의 SF론에서 "과학 기술이 인간 사회와 인간 존재 자체를 바꾸는 시대의 '본류 문학'으로서의 SF"를 일관되게 주장했다. 그러나 고마쓰가 이상으로 삼은 SF는 고마쓰처럼 박학다식한 작가만이 쓸 수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는 일본 각지와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쓴 문명론, 일본 문화론, 과학 에세이 등 다수의 논픽션도 집필했는데, 이들 역시 "SF 작가로서의 시점"에서 웅대한 시각으로 쓰였다.

정력적인 집필 활동으로 알려졌으나, 건강 문제로 50대 후반 이후에는 창작이 매우 적다. 54세에 집필을 시작한 마지막 장편 소설 『허무 회랑』도 미완으로 끝났다. 그는 원자력 발전소, 양자역학, 판 구조론부터 길가 양식집 점심 메뉴까지 모든 것에 동등한 호기심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58]

고마쓰는 "SF"라는 장르에 자부심을 가졌다. 그는 SF라면 모든 표현이 가능하며, 앞으로 모든 표현이 SF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필력이 빨라 마작을 하다가도 1시간에 원고지 20매 정도를 쓰고 돌아올 정도였다.

간사이 지방의 관료, 재계 인사들과 브레인 역할을 하며 교류했고, "만 해안 도로 건설", "간사이 신공항 정비(현 간사이 국제공항)", "연구 학원 도시 창설(현 게이한나 학연 도시)" 등을 제안했다.[59] 기온 등 하나마치 체험은 "예도 소설" 시리즈에 영향을 주었다.[60]

고마쓰는 간사이 지방에 애착을 갖고 간사이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했다. 칸베 무사시, 호리 아키라 등 간사이 출신 후배 SF 작가들을 지원하기도 했다.

마작 실력은 업계 기자 시절의 경험 덕분에 매우 뛰어났다. 애연가여서 담배를 든 사진이 많이 남아 있다.[62][63]

카도카와 쇼텐 편집 국장 시절 교류했던 카도카와 하루키는 고마쓰가 "머리 회전이 빠르고 교양도 깊었지만, 말년에는 그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며, "가장 큰 원인은 প্রচুর 술이다. 낮부터 위스키 잔을 들고 다닐 정도의 술고래였고, 술로 작가 생명을 단축시킨 것이 유감이다"라고 증언했다.[64]

4. 수상 내역

연도상 이름작품비고
1971년성운상 (일본 장편 부문)누가 잇는가?[65]
1973년성운상 (일본 단편 부문)결정 성단[65]
1974년일본 추리 작가 협회상, 성운상 (일본 장편 부문)일본 침몰[65]
1976년성운상 (일본 단편 부문)보미사[65]
1978년성운상 (일본 단편 부문)고르디우스의 매듭[65]
1983년성운상 (일본 장편 부문)안녕 쥬피터[65]
1985년일본 SF 대상수도 소실[65]
1990년오사카 문화상[65]
2007년명예 박사 학위조사이 국제 대학
2011년성운상 특별상
2011년일본 SF 대상 특별 공로상


5. 작품 목록

고마쓰 사쿄는 소설, 단편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주요 작품으로는 일본 침몰, 부활의 날 등이 있으며,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로 각색되기도 했다.

조사이 국제 대학교 출판회는 주문형 인쇄 형식으로 고마쓰 사쿄 전집을 출판하고 있다.[11][12]

쓰쓰이 야스타카는 고마쓰 사쿄를 '테마 확장형 작가'라고 평가하며, 방대한 지식과 독특한 작품 세계를 언급했다.[54] 오카다 토시오, 카라사와 슌이치 등은 그의 왕성한 활동력을 높이 평가했다.[55] 평론가 히가시 코키는 고마쓰 사쿄를 단순한 오락 작가가 아닌, 지식인이자 사색가로 평가하며, SF적 표현 형식을 언급했다.[56]

대표작으로는 끝없는 흐름의 끝에(1997년 '일본 SF 올타임 베스트' 장편 부문 1위), 단편 고르디우스의 매듭( '일본 SF 올타임 베스트' 단편 부문 1위)이 있다.

류츠신 작가는 고마쓰 사쿄 작품을 애독한다고 밝혔다.[57]

굿바이 주피터는 고마쓰 사쿄가 직접 총감독을 맡아 CG를 활용한 특수 촬영에 심혈을 기울인 영화이다.


  • 고마쓰 사쿄 컬렉션 전 5권 (저스트 시스템, 1995년 - 1996년)
  • 고마쓰 사쿄 전집 전 50권 (조사이 국제대학 출판회, 2006년 - 2018년)[66]

5. 1. 장편 소설

고마쓰 사쿄의 장편 소설 목록
제목출판 연도출판사비고
일본 아파치족1964고분샤이후 카도카와 문고, 고분샤 문고에서 출간
부활의 날1964하야카와 쇼보영어 번역: 바이러스: 부활의 날(2012). 이후 문고, 카도카와 문고, 하루키 문고에서 출간. 아라이 류지에 의한 주니어용 리라이트판이 2009년 포플러사에서 출간.
내일 도둑1965고단샤이후 카도카와 문고, 하루키 문고에서 출간
에스파이1965하야카와 쇼보이후 문고, 카도카와 문고, 하루키 문고에서 출간
끝없는 흐름의 끝에1966하야카와 쇼보이후 문고, 카도카와 문고, 도쿠마 문고, 하루키 문고에서 출간. 1997년 『SF 매거진』 500호 기념호 일본 SF 올타임 베스트 장편 부문 1위.
고에몬의 일본 일기1966고단샤이후 문고, 하루키 문고에서 출간
낯선 내일1969분게이슌주이후 카도카와 문고, 하루키 문고에서 출간
누가 계승할 것인가?1972하야카와 쇼보이후 단행본, 문고, 카도카와 문고, 하루키 문고에서 출간. 초기 장편으로 오락성과 사색성을 양립시킨 SF 미스터리로 평가. 야마다 마사키는 청춘 소설로 평가.[56]
일본 침몰1973고분샤영어 번역 (요약): 일본 침몰(1976). 이후 분슌 문고, 도쿠마 문고, 고분샤 문고, 후타바 문고, 쇼가쿠칸 문고, 하루키 문고에서 출간. 최대 베스트셀러로, 사회 현상으로 번짐. 3월 발매 후 그해 연말까지 상하권 누계 340만 부 간행.[49] 후쿠다 다케오와 당시 수상 다나카 가쿠에이도 이 책을 읽었다고 함.[50]
제목 미정1977지츠교노니혼샤이후 분슌 문고, 케이분샤 문고, 하루키 문고에서 출간
여기는 일본…1977아사히 신문사이후 카도카와 문고, 하루키 문고에서 출간
시공 도중 무릎 굽는 여행1977분게이슌주이후 문고, 케이분샤 문고에서 출간
하늘에서 떨어진 역사1981신초샤이후 문고에서 출간
안녕 주피터1982산케이 출판이후 도쿠마 문고, 하루키 문고에서 출간
수도 소실1985도쿠마 서점이후 문고, 하루키 문고에서 출간
허무 회랑1987, 2000도쿠마 서점, 카도카와 하루키 사무소미완. 이후 도쿠마 문고, 하루키 문고에서 출간
일본 침몰 제2부2006쇼가쿠칸타니 코슈와 공동 집필. 이후 문고에서 출간


5. 2. 단편집


  • 야만의 입일본어
  • 최고의 일본 SF 소설집|The Best Japanese Science Fiction Stories|영어 (뎀브너 북스, 1989 / 배리케이드 북스, 1997)
  • 추측의 일본|Speculative Japan|영어, 쿠로다한 프레스, 2007[9]
  • 선택하세요일본어 (최고의 일본 SF 소설집|The Best Japanese Science Fiction Stories|영어, 뎀브너 북스, 1989 / 배리케이드 북스, 1997)
  • 구단의 어머니일본어 (괴기: 일본의 기이한 이야기, 2권: 시골의 즐거움|Kaiki: Uncanny Tales from Japan, Volume 2: Country Delights|영어, 쿠로다한 프레스, 2010)[10]
  • 지에는 평화를|Chi ni wa heiwa o일본어 (1963)
  • 그림자가 겹쳐질 때|Kage ga kasanaru toki일본어 (1964)
  • 일본 팝니다|Nihon urimasu일본어 (1965)
  • 살아있는 구멍|Ikiteiru ana일본어 (1967)
  • 신에게 가는 긴 길|Kami e no nagai michi일본어 (1967)
  • 모형의 시대|Mokei no jidai일본어 (1968)
  • 굶주린 우주|Ueta uchū일본어 (1968)
  • 결정 성단|Kesshō seidan일본어 (1973)
  • 어떤 생물의 기록 쇼트 쇼트집 (하야카와 서방(하야카와 SF 시리즈) 1966년 6월, 이후 문고, 슈에이샤 문고)
  • 거울 속의 세계 (하야카와 문고 1974년, 이후 카도카와 문고) - 어떤 생물의 기록일본어을 2분책으로 나눈 것 중 1권.
  • 일생에 한 번의 달 (슈에이샤 문고, 1979년 5월)
  • 환상의 21세기 (슈에이샤 문고, 1979년 11월)
  • 어느 우주인이 본 태평양 전쟁 (단편 쇼트 쇼트집, 슈에이샤 문고, 1981년 1월)
  • 컵 한 잔의 전쟁 (슈에이샤 문고, 1981년)
  • 이쪽 "바보 과" (케이분샤 문고, 1986년)
  • 고마쓰 사쿄 쇼트 쇼트 전집 (케이분샤, 1995년, 이후 문고)
  • 지구에 평화를 (하야카와 쇼보(하야카와 SF 시리즈), 1963년, 이후 카도카와 문고)
  • 그림자가 겹쳐질 때 (하야카와 쇼보(하야카와 SF 시리즈), 1964년)
  • 일본 팝니다 (하야카와 쇼보(하야카와 SF 시리즈), 1965년, 이후 하루키 문고)
  • 윙크, 이야기 특집 편집실, 1967년
  • 살아있는 구멍 (하야카와 쇼보(하야카와 SF 시리즈), 1967년)
  • 신에게 가는 긴 길 (하야카와 쇼보(하야카와 SF 시리즈), 1967년, 이후 문고, 카도카와 문고, 토쿠마 문고)
  • 모형의 시대 (토쿠마 서점, 1968년, 이후 카도카와 문고)
  • 굶주린 우주 (하야카와 쇼보(하야카와 SF 시리즈), 1968년)
  • 별 죽이기 (스타 킬러) (하야카와 쇼보(하야카와 SF 시리즈), 1970년)
  • 어둠 속의 아이 (신초샤, 1970년, 이후 문고)
  • 장수의 비결 - 옛날 이야기 "야오비쿠니(800비구니)" "인어"를 연상시키는 불로불사를 테마로 한 SF 작품.
  • 제2일본국 탄생
  • 세 팔 달린 남자 (릿풍쇼보, 1970년, 이후 카도카와 문고)
  • 푸른 수염과 귀신 (토쿠마 서점, 1971년, 이후 카도카와 문고)
  • 마지막 은밀 (릿풍쇼보, 1971년, 이후 카도카와 문고)
  • 지구가 된 남자 (신초 문고, 1971년)
  • 원령의 나라 (카도카와 서점, 1972년, 이후 문고)
  • 기다리는 여자 (신초샤, 1972년)
  • 내일의 내일의 꿈의 끝 (카도카와 서점, 1972년, 이후 문고)
  • 이빨의 시대 (하야카와 쇼보(일본 SF 노벨즈), 1972년, 이후 카도카와 문고)
  • 윙크 (카도카와 문고, 1972년)
  • 아담의 후예 (신초 문고, 1973년)
  • 시간의 얼굴 (하야카와 문고, 1973년, 이후 카도카와 문고, 하루키 문고)
  • 선조 만세 (하야카와 문고, 1973년, 이후 카도카와 문고)
  • 여행하는 여자 (카와데 쇼보 신샤, 1973년)
  • 결정 성단 (하야카와 쇼보, 1973년, 이후 문고, 카도카와 문고, 하루키 문고)
  • 봄의 군대 (신초샤, 1974년, 이후 문고)
  • 안녕 유령 (자선 단편집, 코단샤 문고, 1974년)
  • 전쟁은 없었다 (신초 문고, 1974년)
  • 밤이 밝으면 (지츠교노니혼샤, 1974년, 이후 분슌 문고, 케이분샤 문고, 하루키 문고)
  • 개미의 정원 (하야카와 문고, 1974년, 이후 카도카와 문고)
  • 본방 동서 아침 연기 각서 (하야카와 문고, 1974년, 이후 토쿠마 문고) - 표제작은 후남조의 자천왕이 시공을 초월하여 현대의 일본에 돌연 출현하는 역사 SF.
  • 말 없는 여자 (신초샤, 1975년)
  • 수다스러운 방문자 (가공 인터뷰, 치쿠마 쇼보, 1975년, 이후 신초 문고)
  • 시간 에이전트 ("HEIBON PUNCH DELUXE" 1965년 9월호 - 1966년 7월호, "빅 코믹" 1968년 1월 1일호 - 8일호, 신초 문고, 1975년)
  • 꿈으로부터의 탈주 (신초 문고, 1976년)
  • 남자를 찾아라 (신초샤, 1976년)
  • 하늘을 나는 창 (분슌 문고, 1976년)
  • 허공의 발자취 (분게이슌주, 1976년, 이후 문고)
  • 굶주리지 않은 남자 (토쿠마 서점, 1977년, 이후 문고)
  • 고르디우스의 매듭 (카도카와 서점, 1977년, 이후 문고, 토쿠마 문고, 하루키 문고)
  • 뼈 (슈에이샤 문고, 1977년)
  • 물체 O (신초 문고, 1977년, 이후 하루키 문고)
  • 새틀라이트 오퍼레이션 (슈에이샤 문고, 1977년)
  • 5월의 맑은 날에 (하야카와 문고, 1977년, 이후 슈에이샤 문고)
  • 위대한 존재 (하야카와 문고, 1978년, 이후 슈에이샤 문고)
  • 아메리카의 벽 (분게이슌주, 1977년, 이후 문고)
  • 밤의 목소리 (슈에이샤 문고, 1978년)
  • 흐르는 여자 (분슌 문고, 1979년)
  • 화려한 병기 (분게이슌주, 1980년, 이후 문고)
  • 고양이의 목 (슈에이샤 문고, 1980년)
  • 단소 우라시마 (카도카와 문고, 1980년)
  • 얼음 밑의 어두운 얼굴 (카도카와 서점, 1980년, 이후 문고)
  • 천도 (슈에이샤 문고, 1981년)
  • 조종하는 마음 (토쿠마 서점, 1981년, 이후 문고)
  • 호반의 여자 (토쿠마 문고, 1983년)
  • 하이넥의 여자 (토쿠마 문고, 1983년)
  • 오사카 꿈의 진 (토쿠마 문고, 1983년)
  • 내 시체를 찾아라 (토쿠마 문고, 1983년)
  • 기계의 신부 (케이분샤 문고, 1983년)
  • 노란 샘 (토쿠마 문고, 1984년)
  • 훔쳐진 맛 (케이분샤 문고, 1987년)
  • 노란 샘 (케이분샤 문고, 1987년)
  • 보호조 (케이분샤 문고, 1988년)
  • 골라주세요 (케이분샤 문고, 1989년)
  • 지구에 평화를 (아베 출판, 1991년)
  • 아메리카의 벽 (케이분샤 문고, 1992년)
  • 돌 (출판 예술사, 1993년)
  • 안개가 걷힐 때 (카도카와 호러 문고, 1993년)
  • 여행하는 여자 (케이분샤, 1993년)
  • 예능 도예무 사랑담 (코사이드 출판, 1995년)
  • 예능 아야니시키 몽담 (코사이드 출판, 1995년)
  • 예능 몽환 기담 (코사이드 출판, 1995년)
  • 소집 영장 (카도카와 문고, 1995년)
  • BS6005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아스키, 1996년)
  • 결정 성단 (하루키 문고, 1998년)
  • 시간의 얼굴 (하루키 문고, 1998년)
  • 물체 O (하루키 문고, 1999년)
  • 일본 팝니다 (하루키 문고, 1999년)
  • 남자를 찾아라 (하루키 문고, 1999년)
  • 구단의 어머니 (하루키 문고, 1999년)
  • 다카사고 환희 (하루키 문고, 1999년)
  • 밤이 밝으면 (하루키 문고, 1999년)
  • 호쿠사이의 세계 (하루키 문고, 2002년)
  • 달이여, 안녕 (하루키 문고, 2002년)
  • 쓸모 있는 파리 (하루키 문고, 2002년)
  • 깊은 정 (하루키 문고, 2002년)
  • 오후의 브릿지 (하루키 문고, 2002년)
  • 여행하는 여자 (코분샤 문고, 2004년)
  • 명랑한 까마귀 (슈에이샤 문고, 2009년)
  • 스페르무 사피엔스의 모험 (복음관 서점, 2009년)
  • 고마츠 사쿄 셀렉션 1 (포플러 문고, 2010년)
  • 고마츠 사쿄 셀렉션 2 (포플러 문고, 2010년)
  • 고마츠 사쿄 셀렉션 1 (카와데 문고, 2011년)
  • 고마츠 사쿄 셀렉션 2 (카와데 문고, 2011년)
  • 고마츠 사쿄 21세기 셀렉션 #1 아메리카의 벽 / 모르는 내일 [글로벌화·혼미하는 세계편] (토쿠마 문고(토쿠마의 특선!) 2020년 10월)
  • 고마츠 사쿄 21세기 셀렉션 #2 어둠 속의 아이 / 고르디우스의 매듭 [분단과 사회 규범·심리 변화편] (토쿠마 문고(토쿠마의 특선!) 2021년 1월)

5. 3. 각색


  • 《여우와 우주인》 - 희곡집 (도쿠마 서점, 1990년)에 실린 SF 교겐으로, 모시마 센노조의 의뢰로 집필되었다.[67]

5. 3. 1. 영화

5. 3. 2. 텔레비전


  • 우주인 피피(1965, NHK)
  • 공중 도시 008(1969, NHK) - SF 마리오네트 드라마
  • 원숭이 군단(1974, 도쿄 방송) - SF 특촬 드라마
  • 일본 침몰(1974, TBS) - 영화의 텔레비전 버전
  • 고마쓰 사쿄 애니메이션 극장(1989)
  • 일본 침몰: 2020 -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각색 (2020)
  • 우주인 피피(1965년, NHK, 실사+애니메이션 합성 작품, 히라이 카즈마사와의 합작)
  • SF 인형 애니메이션 (1965년, 오사카 TV 필름, 5분 편성 프로그램 미제작)
  • 공중도시 008(1969년-1970년, NHK, 다케다 인형좌에 의한 인형극)
  • 원숭이 군단(1974년, TBS)
  • 일본침몰 (1974-1975년, TBS, 토호 영상)
  • 나와 마리의 시간 여행(1980년, NHK 소년 드라마 시리즈, "시간 에이전트"가 원작)
  • 고마쓰 사쿄 애니메이션 극장(1989년, MBS)
  • 기묘한 이야기 가을 특별편 「전쟁은 없었다」, 「사토루의 괴물」, 「그림자가 겹쳐질 때」 (1991년, 2000년, 2003년, 후지 TV)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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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웹사이트 Hayakawa's SF Magazine's All-Time Best SF http://www.locusmag.[...] 2006-03-10
[3] 웹사이트 Archived copy https://web.archive.[...] 2007-03-10
[4] 뉴스 Sci-fi pioneer Komatsu dies at age 80 http://search.japant[...] The Japan Times 2011-07-29
[5] 뉴스 Sci-fi writer got the continental drift https://www.smh.com.[...] The New York Times 2011-08-22
[6] 웹사이트 Nihon SF Taisho Award Winners List https://web.archive.[...] Science Fiction Writers of Japan 2010-01-28
[7] 뉴스 Sakyo Komatsu, 80, Science Fiction Writer, Dies at 80 https://www.nytimes.[...] 2011-08-10
[8] 웹사이트 Komatsu Sakyō: Japan's Apocalyptic Sci-Fi Author in the Spotlight in 2020 https://www.nippon.c[...] 2020-10-16
[9] 웹사이트 Speculative Japan | Kurodahan Press https://www.kurodaha[...]
[10] 웹사이트 Kaiki: Uncanny Tales from Japan, Volume 2: Country Delights | Kurodahan Press https://www.kurodaha[...]
[11] 웹사이트 https://web.archive.[...] Josai International University 201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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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서적 いまこそ「小松左京」を読み直す NHK出版新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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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서적 教養 徳間書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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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웹사이트 【巨匠・森谷司郎が描く 日本の光と影】大映・永田社長が勇み足…映画化権は「トンビに油揚げ」的に東宝へ 「日本沈没」 https://www.zakzak.c[...] 2019-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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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웹사이트 太陽の塔に込められたメッセージとは?NHKドキュメンタリー『開拓者たちの決断「太陽の塔のメッセージ」』再放送決定 https://amass.jp/102[...] 2018-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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