얌나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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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얌나야 문화는 기원전 3300년에서 2500년 사이에 폰토-카스피 스텝 지역에 존재했던 청동기 시대 문화이다. 볼가강 중류의 흐발린스크 문화와 드니프르강 중류의 스레드니 스토그 문화에서 기원했으며, 말과 수레를 이용한 이동성으로 인해 동쪽으로는 우랄산맥, 서쪽으로는 도나우강 하구 지역까지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얌나야 문화는 유목 생활을 했으며, 쿠르간(고분) 매장 방식을 특징으로 한다. 유전학적으로는 동유럽 수렵 채집민, 코카서스 수렵 채집민, 초기 유럽 농경민의 혼혈로 분석되며, 인도유럽어족의 확산과 관련하여 중요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얌나야 문화는 유럽으로의 확장과 더불어 중앙아시아 및 남아시아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끈을 새긴 토기 문화, 구상 앰포라 문화 등과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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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나야 문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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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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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름 | 핏 그레이브 문화(Pit Grave culture) 얌나 문화(Yamna culture) 오커 그레이브 문화(Ochre Grave culture) 얌나야 호라이즌(Yamnaya Horizon) |
지역 | 폰토스-카스피 해 연안 유럽 |
시대 | 청동기 시대 |
연대 | 기원전 3300년경–2600년 |
정의 | 바실리 고로드초프 |
이전 문화 | |
이후 문화 | |
북쪽 | 매듭무늬토기 문화 |
서쪽 | 카타콤 문화, 부체돌 문화 |
동쪽 | 폴타프카 문화 |
2. 기원
얌나야 문화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논쟁이 있어왔다. 얌나야 문화는 바실리 고로드초프에 의해 카타콤 문화와 스루브나야 문화와 구별하기 위해 정의되었으나, 시간 간격과 고고학적 발견에 대한 의존성 때문에 그 기원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58]
1996년, 파벨 돌루하노프는 구덩이-무덤 문화의 출현이 다양한 지역 청동기 문화의 사회적 발전이며, "사회 계층화와 족장형 유목 사회 구조의 출현"을 의미한다고 제안했다. 이는 이질적인 사회 집단 간의 접촉을 강화시켰다.[58]
얌나야 문화는 폰토-카스피 스텝 전역에 걸쳐 후기 원시 인도유럽어의 확산의 물질적 표현이며, 고도의 이동성에 대한 사회적 적응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이다. 즉, 스텝 지역에서 이동식 주택을 기반으로 더 큰 가축 무리를 관리하기 위한 정치적 인프라를 발명한 것이다.[58]
2. 1. 흐발린스크 문화와의 관계
얌나야 문화의 기원은 볼가강 중류의 흐발린스크 문화와 드네프르 강 중류 지역의 스레드니 스토그 문화에 있다고 여겨진다.[58] 얌나야 문화는 말을 이용한 승마와 소가 끄는 우차(수레)를 통해 이동이 매우 용이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얌나야 문화가 광대한 지역으로 퍼져나간 주요 원인으로 생각된다.[58]앤소니(2007)는 얌나야 문화(기원전 3300–2600년)가 돈강–볼가강 지역에서 기원했으며, 중부 볼가를 기반으로 한 흐발린스크 문화와 돈을 기반으로 한 레핀 문화 (기원전 3950–3300년경)에 의해 선행되었다고 주장했다.[58] 그는 이 두 문화의 후기 도기는 초기 얌나야 도기와 거의 구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58]
파르폴라(2015)는 끈을 새긴 토기 문화와 얌나야 문화를 모두 후기 트리폴리 (트리폴리예) 문화와 관련시킨다.[58] 그는 "기원전 4000년경에 트리폴리 문화가 PIE(원시 인도유럽어) 사용자에 의해 점령되었다"고 가설을 세웠으며, 최종 단계에서 트리폴리 문화는 스텝으로 확장되어 다양한 지역 문화로 변모하여 후기 스레드니 스토그 (세레드니 시흐) 유목 문화와 융합되었으며, 이것이 얌나야 문화를 낳았다고 제안했다.[58]
2. 2. 스레드니 스토크 문화와의 관계
볼가강 중상류의 흐발린스크 문화와 드네프르강 중상류 지역의 스레드니 스토크 문화가 얌나야 문화의 기원으로 여겨진다.[58] 얌나야 문화는 말을 이용한 승마와 소가 끄는 우차(牛車)를 통해 매우 용이한 이동이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얌나야 문화가 광대한 지역으로 퍼져나간 이유로 생각된다. 얌나야 문화 양식의 묘지는 동쪽으로는 우랄산맥 동쪽 기슭, 서쪽으로는 불가리아, 세르비아, 헝가리에 걸친 도나우강 하구(河口) 지대 일대에서 발견된다.[58] 이를 통해 알타이산맥과 예니세이강 지역에 존재했던 아파나시에보 문화가 얌나야 문화 또는 그 주변의 유럽 스텝 지대 문화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을 추정할 수 있다.드미트로 텔레긴은 스레드니 스토크 문화를 얌나야 문화의 유전적 기초로 간주하여, 두 문화를 하나의 연속체로 보았다.[12]
3. 특징
얌나야 문화는 2륜 마차와 4륜 마차를 사용했으며, 당시에는 소가 끄는 것으로 여겨진다.[15][16] 얌나야 유골 일부는 장기간 승마로 인해 발생했을 수 있는 특정 골격 형태학적 특징을 보인다.[15] 그러나 고고동물학자 윌리엄 T. 테일러는 이 증거에 이의를 제기하며 말의 가축화는 얌나야 문화보다 훨씬 늦은 시기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17]
드니프로 계곡에서 발견된 얌나야인들의 안정 동위원소 비율은 이들의 식단이 담수나 수생 자원의 기여가 미미한 육지 단백질 기반이었음을 시사한다.[18] 앤서니는 얌나야인이 고기, 우유, 요구르트, 치즈, 씨앗과 야생 채소로 만든 수프를 먹었으며, 아마도 미드를 섭취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19]
야금 기술자와 기타 장인은 얌나야 사회에서 특별한 지위를 부여받았으며, 금속 물건이 때때로 지배층의 무덤에서 대량으로 발견되었다. 새로운 금속 가공 기술과 무기 디자인이 사용되었다.[14]
3. 1. 주거
유목민들의 야영지 흔적과 돌로 쌓은 성채가 매우 많이 발견되었다. 어떤 장소는 2m 높이의 돌로 쌓은 성벽이 삼각형 모양의 마을을 지키는 모양의 유적이 있다.목축이 성행했으며, 가축은 지방에 따라 소가 주를 이루거나, 양이나 염소가 주를 이루었다. 말을 사육하는 것이 정착된 것도 얌나야 문화의 큰 특징이며, 말의 뼈는 주거지와 묘지에서 모두 발견되었다. 후자의 경우 말은 장례 의식의 제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북부의 산림 지대나 계곡에서는 목축보다는 농업이 성행했으며, 묘지에서는 쟁기도 발견되었다. 승마용 말, 가족을 운반하기 위한 우차, 열린 초원에서 사육에 적합한 종류의 가축, 낙타와 사이카를 비롯한 스텝 지대 심부에 서식하는 동물의 뼈, 스텝 지대 심부에서 자주 보이는 종류의 가족 묘지 등의 발견물에서 얌나야 문화가 반유목식 목축의 최초기 문화 중 하나라는 주장이 있다. 오록스, 붉은사슴, 사이카, 오나거, 멧돼지, 오소리, 수달, 늑대, 여우, 코사크여우, 멧토끼, 비버를 사냥하고, 물고기와 거북이를 잡았다.
3. 2. 목축과 농업
목축이 성행했으며, 가축은 지방에 따라 소가 주를 이루거나, 양이나 염소가 주를 이루었다.[57] 말을 사육하는 것이 정착된 것도 얌나야 문화의 특징이며, 말의 뼈는 주거지와 묘지에서 발견되었으며, 묘지에서 발견된 말은 장례 의식의 제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57] 북부의 산림 지대나 계곡에서는 목축보다는 농업이 성행했으며, 묘지에서는 쟁기도 발견되었다.[57]승마용 말, 가족을 운반하기 위한 우차, 열린 초원에서 사육에 적합한 종류의 가축, 낙타와 사이카를 비롯한 스텝 지대 심부에 서식하는 동물의 뼈, 스텝 지대 심부에서 자주 보이는 종류의 가족 묘지 등의 발견물에서, 얌나야 문화가 반유목식 목축의 최초기 문화 중 하나라는 주장이 있다.[57] 이들은 오록스, 붉은사슴, 사이카, 오나거, 멧돼지, 오소리, 수달, 늑대, 여우, 코사크여우, 멧토끼, 비버를 사냥하고, 물고기와 거북이를 잡았다.
3. 3. 매장 풍습
얌나야 문화의 특징은 쿠르간(고분)을 쌓아올린 구덩이 무덤에 동물 부장품과 함께 매장하는 방식이다.[57] 시신은 무릎을 구부린 채 앙와위 자세로 묻혔고, 황토로 덮었다. 일부 쿠르간에는 "층상으로 된 무덤 배열"이 포함되어 있었다.[13]
몇몇 무덤에서는 조각된 사람 머리, 팔, 손, 허리띠, 무기가 있는 큰 인간형 석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14]
쿠르간 매장은 특별한 성인만을 위해 사용되었을 수 있으며[13], 지배층은 완전한 나무 마차와 함께 매장되기도 하였다.[14] 부장품은 동부 얌나야 매장에서 더 흔하게 발견되며, 서부 지역보다 남성 매장의 비율이 높고 남성 중심 의례가 더 많다는 특징을 보인다.[14]
말의 뼈는 주거지와 묘지 모두에서 발견되며, 묘지에서 발견된 말은 장례식을 할 때 희생된 것으로 보인다.
수만 개의 묘소가 발견되었는데, 수직 갱과 같은 구덩이를 파서 묘를 만들고 나무나 돌로 만든 두꺼운 덮개로 덮었다. 사람을 본뜬 묘비가 덮개 대용으로 사용된 것으로 생각되는 지방도 있다. 유해는 무릎을 세운 상태로 눕혀져 있으며, 천장을 보는 자세("얌나야 자세")가 일반적이지만, 옆으로 눕혀진 경우도 있다. 머리는 동쪽이나 북동쪽으로 향해 있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이 문화 초창기에 이 경향이 두드러졌다. 유해는 황토로 덮여 있으며, 황토로 완전히 "젖은" 상태가 되어 있는 것도 있다. 따라서 이 문화는 종종 "황토 묘 문화"라고도 불린다.
묘소에는 쿠르간이 축조되어 묘의 첫 번째 주인이 매장되지만, 거기에 다른 유해를 더 매장하거나, 그 쿠르간을 증축함으로써 큰 쿠르간으로 만들어 그곳에 새로운 유해를 매장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57] 도자기, 석기, 전부, 창의 촉, 단검, 녹각제 타봉, 구리 제품 등의 부장품이 발견되었다. 소, 양, 염소 등 동물의 뼈도 묘소에서 발견되었다.
3. 4. 사회 구조
얌나야 문화는 유목 생활을 하였으며,[3] 강 근처에서 일부 농업을 행했고, 소수의 요새화된 유적지가 있었다.[57]이 문화의 특징은 동물 부장품과 함께 구덩이 무덤에 쿠르간 (고분)을 쌓아올린 매장 방식이다. 시신은 무릎을 구부린 채 앙와위 자세로 묻혔고, 황토로 덮였다. 일부 쿠르간에는 "층상으로 된 무덤 배열"이 포함되어 있었다.[57] 쿠르간 매장은 드물었을 수 있으며, 주로 남성이었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닌 특별한 성인만을 위해 사용되었을 수 있다.[13] 신분과 성별은 부장품과 시신 위치로 표시되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지배층이 완전한 나무 마차와 함께 매장되었다.[14]
얌나야 문화는 2륜 마차와 4륜 마차를 사용했으며, 당시에는 소가 끄는 것으로 여겨지며, 말을 탔다는 증거가 있다.[15][16] 야금 기술자와 기타 장인은 얌나야 사회에서 특별한 지위를 부여받았으며, 금속 물건이 때때로 지배층의 무덤에서 대량으로 발견된다. 새로운 금속 가공 기술과 무기 디자인이 사용되었다.[14]
얌나야 사회가 세 개의 분화된 사회 계층으로 구성된 삼분 구조를 가졌을 수 있다고 제안되지만, 현재 사용 가능한 증거는 사제, 전사, 농부와 같은 특정 계층의 존재를 입증하지 못한다.[19]
목축이 성행했으며, 가축은 지방에 따라 소가 주를 이루거나, 양이나 염소가 주를 이루었다. 말을 사육하는 것이 정착된 것도 얌나야 문화의 특징이며, 말의 뼈는 집락에서도 묘지에서도 발견되었으며, 후자에서는 말이 장례 의식의 제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북부의 산림 지대나 계곡에서는 목축보다는 농경이 성행했으며, 묘지에서는 쟁기도 발견되었다. 승마용 말, 가족을 운반하기 위한 우차, 열린 초원에서 사육에 적합한 종류의 가축, 낙타와 사이카를 비롯한 스텝 지대 심부에 서식하는 동물의 뼈, 스텝 지대 심부에서 자주 보이는 종류의 가족 묘지 등에서 얌나야 문화가 반유목식 목축의 최초기 문화 중 하나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수만 개의 묘소가 발견되었다. 수직 갱과 같은 구덩이를 파서 묘를 만들고, 나무나 돌로 만든 두꺼운 덮개로 덮었다. 유해는 무릎을 세운 채 눕혀졌으며, 천장을 보는 자세는 "얌나야 자세"라고 불리지만, 옆으로 눕혀진 것도 있다. 머리는 동쪽이나 북동쪽으로 향해 있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이 문화의 초창기에는 이 경향이 두드러졌다. 유해는 황토로 덮여 있지만, 황토로 완전히 "젖은" 상태가 되어 있는 것도 있다. 따라서 이 문화는 종종 "황토 묘 문화"라고도 불린다. 묘소에는 쿠르간이 축조되어 묘의 첫 번째 주인이 매장되지만, 거기에 다른 유해를 더 매장하거나, 그 쿠르간을 증축하여 큰 쿠르간으로 만들어, 그곳에 새로운 유해를 매장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57]
4. 유전학
상염색체 분석 연구에 따르면, 얌나야 문화를 이루던 사람들은 동유럽 수렵채집민(EHG)과 캅카스 수렵채집민(CHG) 집단이 비슷한 비율로 혼혈된 "서부 스텝 유목민" 집단에 일부 초기 유럽 농경민(EEF) 집단이 섞여 성립되었다.[60][56] EHG와 CHG 집단 간의 혼혈은 폰토스-카스피 스텝 서부쯤에서 약 기원전 5천년 경에 일어났고, 그 후 스텝 남부 지역에서 EEF 집단과의 혼혈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유전 연구에 따르면, 얌나야인은 EHG, CHG, 그리고 약간의 아나톨리아 농부 및 레반트 농부의 혼합이었지만, WHG DNA가 부족했기 때문에 유럽의 EEF는 아니었다. 이는 서아시아에서 폰토스-카스피 스텝으로의 두 번의 뚜렷한 혼합 사건에서 발생했다.[22][23]
얌나야인에게서 발견되는 Y-DNA 하플로그룹 중 R1b는 서유럽에서는 드물고 오늘날 주로 남동유럽에 존재한다. 소수는 I2 하플로그룹에 속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U, T를 포함하여 서유라시아의 다양한 mtDNA 하플로그룹과 코카서스 수렵 채집인 및 초기 유럽 농부와 관련된 하플로그룹에 속하는 것으로 밝혀졌다.[25] 북부 우크라이나에서 발견된 얌나야 쿠르간 표본의 소수이지만 상당수는 동아시아의 mtDNA 하플로그룹 C4를 가지고 있었다.[26][27]
유전학자 데이비드 라이히는 유전적 데이터가 얌나야 문화의 사람들이 많은 인도유럽어족을 퍼뜨린 "단일하고 유전적으로 일관된 집단"이었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했다.[37] 라이히의 연구팀은 최근 아나톨리아어와 인도유럽어족의 조상이 원시 인도유럽어(원시 인도유럽어 (PIE)) 언어의 서아시아에 있었을 수 있으며, 얌나야가 후자의 전파를 담당했다고 제안했다.[38] 라이히는 또한 유전적 증거가 얌나야 사회가 소수의 엘리트 남성이 지배하는 과두정치였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39]
인도유럽어 확산에서 얌나야 문화의 역할에 대한 유전적 증거는 러시아 고고학자 레오 클라인[40]과 Balanovsky 등에 의해 의문이 제기되었으며,[41] 얌나야 문화 사람들과 유럽 현대 인구 사이의 남성 하플로그룹 연속성이 부족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클라인은 또한 상염색체 증거가 얌나야 이주를 뒷받침하지 않는다고 제안했으며, 현대 및 청동기 시대 표본 모두에서 서부 스텝 유목민 조상이 얌나야 문화의 서쪽 한계 근처인 헝가리의 다뉴브 강 주변에서 가장 낮고, 유전학자의 가설이 옳다면 예상되는 것과는 반대로 북유럽에서 가장 높다고 주장한다.[42]
4. 1. Y-DNA 하플로그룹
Y-DNA 하플로그룹 중 R1b는 얌나야인에게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며, 오늘날 서유럽인에게서도 가장 흔하게 나타난다.[60][56] 얌나야 문화의 인골에서는 인구어족 계통 민족에게 고빈도로 나타나는 하플로그룹 R1b (Y염색체)가 91.5%의 고빈도로 검출되고 있다.[55]4. 2. mtDNA 하플로그룹
Y-DNA 하플로그룹 가운데 얌나야인에게서 가장 흔히 발견되는 것은 R1b이며, 이는 오늘날 서유럽인에게서도 가장 흔하게 나타난다.[60][56]4. 3. 신체적 특징
상염색체 분석 연구에 따르면 얌나야인을 이루던 사람들은 동유럽 수렵채집민(EHG)과 캅카스 수렵채집민(CHG) 집단이 혼혈된 서부 스텝 유목민 집단에 초기 유럽 농경민(EEF) 집단이 섞여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인다.[60][56] EHG와 CHG 집단의 혼혈은 폰토스-카스피 스텝 서부에서 기원전 5천년 경에 일어났고, 이후 스텝 남부 지역에서 EEF 집단과의 혼혈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얌나야인에게 가장 흔히 발견되는 Y-DNA 하플로그룹은 R1b이며, 오늘날 서유럽인에게서도 가장 흔하게 나타난다. 얌나야인은 대부분 갈색 눈, 중간에서 밝은 피부,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28][29] 일부는 금발과 관련된 KITLG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30]
2015년 연구에 따르면 얌나야인은 검사된 고대 인구 중 신장에 대해 가장 높은 유전자 선택을 가지고 있었다.[31][32] 성인이 되어서도 젖당을 분해할 수 있는 능력과 관련된 젖당 분해 효소 유지 대립 유전자가 얌나야 관련 이주와 함께 스텝 지역에서 유럽으로 유입되었다는 가설이 있다.[33][34][35][36]
5. 인도유럽어족과의 관계
얌나야 문화는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있었고 주변 지역의 변동이 심했으며, 말과 우차(牛車) 같은 생활 문화 양식을 통해 인도유럽인 초기의 매우 중요한 문화 중 하나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59] 중앙아시아의 스텝 지역에서 정치적인 힘을 얻은 인도유럽인 집단들이 유럽 쪽으로 진출하면서 동유럽의 스텝 지대에 널리 발전한 스텝 문화이다. 얌나야 문화의 인골에서는 인구어족 계통 민족에게 자주 나타나는 하플로그룹 R1b (Y염색체)가 91.5%로 매우 높은 빈도로 검출되었다.[55]
5. 1. 쿠르간 가설
마리야 김부타스는 그녀의 쿠르간 가설에서 얌나야 문화를 후기 원시 인도유럽어 (PIE)와 동일시했다. 데이비드 앤소니는 폰토-카스피해 스텝이 원시 인도유럽어의 ''Urheimat''(원래 고향)의 가장 유력한 후보이며, 얌나야 문화가 아나톨리아어를 제외한 인도유럽어의 고향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44][45] 반면에 콜린 르프루는 최초의 인도유럽어 사용자의 근동 기원을 주장했다.[46]데이비드 W. 앤소니에 따르면, 유전적 증거는 얌나야의 주요 씨족이 EHG (동유럽 수렵 채집인) 및 WHG (서유럽 수렵 채집인) 부계 기원을 가졌음을 시사하며, 인도유럽어가 "음운론, 형태론 및 어휘에서 코카서스 유사 요소를 흡수한 EHG가 사용하는 지배적인 언어"의 결과였음을 암시한다. 또한 원시 인도유럽어가 기원전 4천년기에 북폰토 스텝에서 얌나야의 전신에 의해 중개된 폰토 주변 지역의 무역 상호 작용을 통해 진화했다는 제안도 있다.[47]


구스 크로넨 외 (2022년)는 "기저 인도유럽어 단계" (인도-아나톨리아어 또는 Pre-원시 인도유럽어)에 농업 관련 어휘가 대부분, 그러나 완전히 부족했으며, 나중의 "핵심 인도유럽어"에서만 농업 관련 단어가 증가했음을 발견했다. 그들에 따르면, 이는 초기 핵심 인도유럽어의 고향이 드네프르강 주변 및 서쪽에 있는 가장 서쪽의 얌나야 수평선 내에 위치하는 것과 일치하며, 반면에 그 기저 단계인 인도-아나톨리아어는 동부 얌나야 수평선과는 반대로 스레드니 스토그 문화에서 기원했을 수 있다. 끌 문화는 인도-이란어를 포함한 후기 인도유럽어의 확산에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으며, 토하라인은 카타콤 문화를 통해 중개되었을 수 있다. 또한 이 새로운 데이터가 코카서스 남부의 농업 사회에서 원시 인도유럽어 이전 언어가 더 일찍 기원했을 가능성과 모순된다고 주장하며, 오히려 "이는 하부 드네프르 지역의 현지 비이동 목축업자들의 언어적 연속성과 그들의 연속적이고 확장적인 얌나야 수평선으로 통합된 후의 유전적 지속 시나리오를 뒷받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저자들은 이 시나리오가 유사한 상염색체 DNA 조상을 공유하면서도 얌나야와 끌 문화 사이의 부계 하플로그룹 빈도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48]
이처럼 광대한 범위에 걸쳐 있고, 주변부가 항상 크게 변동하며, 말이나 수레와 같은 생활 문화 양식으로 볼 때, 얌나야 문화야말로 인도유럽어족의 초기 핵심 문화 중 하나였다는 추측이 널리 인정받고 있다. 인도유럽어족의 기원을 다룰 때, 전제가 되는 시대나 지리적 범위가 사람마다 크게 다르기 때문에, 인도유럽어족의 정의 자체에 대한 논의가 있다. 일단 쿠르간 가설에서 다루는 시대와 지리적 범위를 기준으로 하면, 얌나야 문화는 인도유럽조어 제Ⅳ기 문화로 간주될 수 있으므로, 이 문화는 유럽을 포함한 인도유럽어족의 많은 문화의 기원이지만, 인도유럽어족의 모든 문화의 기원이라고는 할 수 없다.
쿠르간 가설에 부정적인 연구자들은 얌나야 문화를 인도이란어파의 기원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얌나야 문화는 서쪽으로는 Catacomb culture|카타콤 문화영어, 동쪽으로는 Poltavka culture|폴타프카 문화영어 및 그 다음 Srubna culture|스루브나 문화영어로 계승되었으며, 이들 문화는 아마도 동쪽의 Sintashta culture|신타슈타 문화영어나 Abashevo culture|아바셰보 문화영어 등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으면서 서쪽의 카타콤 문화를 대체하고, 끈무늬 토기 문화와 구상 앰포라 문화와의 접촉 지대에서, 그 지역의 이 두 문화의 담당자에게 문화적, 언어적 영향을 미치고, 그 부근에서 Белогрудовская_культура|벨로그루도프 문화ru가 발생, 트시니에츠 문화를 거쳐, 소위 농경 스키타이로 유명한 체르노레스 문화로 발전해 간다.
이것은, 본래 켄툼어이며, 끈무늬 토기 문화와 구상 앰포라 문화를 기층[52]으로 하고 있었다고 추측되는 슬라브어파와 발트어파의 조어[53]가 동쪽의 인도이란어파의 언어적 영향을 받아 사템어로 변화해 간 경위를 시사한다. 여기에서 얌나야 문화는 인도이란어파의 문화이지만 그 어파의 기원이라는 것이 아니라, 중앙아시아의 스텝 지대에서 정치적 힘을 얻은 인도이란어파의 담당자 집단이 잇따라 서쪽으로 진출하여 정착한 동유럽의 스텝 지대에 널리 발전한 스텝 문화라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쿠르간 가설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던 것이 해소되고, 구상 앰포라 문화와 함께 얌나야 문화가 후기 인도유럽조어 시대의, 유럽에서의 핵심 문화[54]였다는 널리 정착된 인식에 모순이 생기지 않는다.
얌나야 문화의 인골에서는 인구어족 계통 민족에게 고빈도로 나타나는 하플로그룹 R1b (Y염색체)가 91.5%의 고빈도로 검출되고 있다.[55]
5. 2. 언어학적 증거
마리야 김부타스는 얌나야 문화를 그녀의 쿠르간 가설에서 후기 원시 인도유럽어 (PIE)와 동일시했다. 데이비드 앤소니는 폰토-카스피해 스텝이 원시 인도유럽어의 ''Urheimat''(원래 고향)의 가장 유력한 후보이며, 얌나야 문화가 아나톨리아어를 제외한 인도유럽어의 고향일 수 있음을 제시한다.[43][44][45] 반면에 콜린 르프루는 최초의 인도유럽어 사용자의 근동 기원을 주장했다.[46]데이비드 W. 앤소니에 따르면, 유전적 증거는 얌나야의 주요 씨족이 EHG (동유럽 수렵 채집인) 및 WHG (서유럽 수렵 채집인) 부계 기원을 가졌음을 보여주며, 인도유럽어가 "음운론, 형태론 및 어휘에서 코카서스 유사 요소를 흡수한 EHG가 사용하는 지배적인 언어"의 결과였음을 암시한다. 또한 원시 인도유럽어가 기원전 4천년기에 북폰토 스텝에서 얌나야의 전신에 의해 중개된 폰토 주변 지역의 무역 상호 작용을 통해 진화했다는 제안도 있다.[47]
구스 크로넨 외 2022년에는 "기저 인도유럽어 단계" (인도-아나톨리아어 또는 Pre-원시 인도유럽어)에 농업 관련 어휘가 대부분, 그러나 완전히 부족했으며, 나중의 "핵심 인도유럽어"에서만 농업 관련 단어가 증가했음을 발견했다. 그들에 따르면, 이는 초기 핵심 인도유럽어의 고향이 드네프르강 주변 및 서쪽에 있는 가장 서쪽의 얌나야 수평선 내에 위치하는 것과 일치하며, 반면에 그 기저 단계인 인도-아나톨리아어는 동부 얌나야 수평선과는 반대로 스레드니 스토그 문화에서 기원했을 수 있다. 끌 문화는 인도-이란어를 포함한 후기 인도유럽어의 확산에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으며, 토하라인은 카타콤 문화를 통해 중개되었을 수 있다. 또한 이 새로운 데이터가 코카서스 남부의 농업 사회에서 원시 인도유럽어 이전 언어가 더 일찍 기원했을 가능성과 모순된다고 주장하며, 오히려 "이는 하부 드네프르 지역의 현지 비이동 목축업자들의 언어적 연속성과 그들의 연속적이고 확장적인 얌나야 수평선으로 통합된 후의 유전적 지속 시나리오를 뒷받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저자들은 이 시나리오가 유사한 상염색체 DNA 조상을 공유하면서도 얌나야와 끌 문화 사이의 부계 하플로그룹 빈도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48]
이처럼 광대한 범위에 걸쳐 있고, 주변부가 항상 크게 변동하며, 말이나 수레와 같은 생활 문화 양식으로 볼 때, 얌나야 문화야말로 인도유럽어족의 초기 핵심 문화 중 하나였다는 추측이 널리 인정받고 있다. 인도유럽어족의 기원을 다룰 때, 전제가 되는 시대나 지리적 범위가 사람마다 크게 다르기 때문에, 인도유럽어족의 정의 자체에 대한 논의가 있다. 일단 쿠르간 가설에서 다루는 시대와 지리적 범위를 기준으로 하면, 얌나야 문화는 인도유럽조어 제Ⅳ기 문화로 간주될 수 있으므로, 이 문화는 유럽을 포함한 인도유럽어족의 많은 문화의 기원이지만, 인도유럽어족의 모든 문화의 기원이라고는 할 수 없다.
쿠르간 가설에 부정적인 연구자들은 얌나야 문화를 인도이란어파의 기원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얌나야 문화는 서쪽으로는 카타콤 문화, 동쪽으로는 폴타프카 문화 및 그 다음 스루브나 문화로 계승되었으며, 이들 문화는 아마도 동쪽의 신타슈타 문화나 아바셰보 문화 등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으면서 서쪽의 카타콤 문화를 대체하고, 끈무늬 토기 문화와 구상 앰포라 문화와의 접촉 지대에서, 그 지역의 이 두 문화의 담당자에게 문화적, 언어적 영향을 미치고, 그 부근에서 벨로그루도프 문화가 발생, 트시니에츠 문화를 거쳐, 소위 농경 스키타이로 유명한 체르노레스 문화로 발전해 간다.
이것은, 본래 켄툼어이며, 끈무늬 토기 문화와 구상 앰포라 문화를 기층[52]으로 하고 있었다고 추측되는 슬라브어파와 발트어파의 조어[53]가 동쪽의 인도이란어파의 언어적 영향을 받아 사템어로 변화해 간 경위를 시사한다. 여기에서 얌나야 문화는 인도이란어파의 문화이기는 하지만 그 어파의 기원이라는 것이 아니라, 중앙아시아의 스텝 지대에서 정치적 힘을 얻은 인도이란어파의 담당자 집단이 잇따라 서쪽으로 진출하여 정착한 동유럽의 스텝 지대에 널리 발전한 스텝 문화라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쿠르간 가설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던 것이 해소되고, 구상 앰포라 문화와 함께 얌나야 문화가 후기 인도유럽조어 시대의, 유럽에서의 핵심 문화[54]였다는 널리 정착된 인식에 모순이 생기지 않는다.
6. 이주와 확장
얌나야 문화와 관련된 이주는 인도유럽인의 확장과 연관성을 보인다. Haak et al. (2015)의 연구에 따르면, 매듭무늬토기 문화와 연관된 독일 지역의 고대 유골을 분석한 결과, 상염색체 유전자의 73%가 얌나야인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연구에서 얌나야인 조상은 현대 중유럽, 북유럽인 DNA의 38.8–50.4%, 남유럽인 DNA의 18.5–32.6%(사르데냐인과 시칠리아인에게서는 크게 낮음)에 기여했을 것으로 추정했다.[56] 또한 동유럽 수렵채집민(EHG)을 통해 "고대 북유라시아인" 계통(말타-부레트 문화 연관 인구)과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이며, 이 유전적 구성은 현대 유럽인에게는 존재하나 청동기 이전의 유럽에는 존재하지 않던 것이다.[56]
6. 1. 유럽으로의 확장
얌나야 문화의 기원은 볼가강 중상류의 흐발린스크 문화와 드네프르 강 중상류 지역의 스레드니 스토크 문화에 있다고 보고 있다. 승마용 말과 가족 이동용 소달구지(牛車)에서 보이듯이 이동은 매우 용이하게 가능했다고 추측되며 광대한 지역에 얌나야 문화가 펼쳐진 것은 이런 이동이 가능했던 이유로 생각된다. 얌나야 문화 양식의 묘지는 동쪽에서는 우랄산맥 동쪽 기슭에서도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알타이산맥과 예니세이강 지역에 존재했던 아파나시에보 문화의 유래가 얌나야 문화와 그 주변의 유럽 스텝 지대에서부터 기원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또한 서쪽에서는 불가리아, 세르비아, 헝가리에 걸친 도나우강 하구(河口) 지대 일대에 펼쳐져 있다.[58]얌나야 문화와 관련된 이주는 인도유럽인의 확장과 연관성을 보인다. Haak et al. (2015)에서 매듭무늬토기 문화와 연관된 독일 지역의 고대 유골을 분석한 결과, 상염색체 유전자의 73%가 얌나야인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계측되었다. 같은 연구에 의하면 얌나야인 조상은 현대 중유럽, 북유럽인 DNA의 38.8–50.4%, 남유럽인 DNA의 18.5–32.6%(사르데냐인과 시칠리아인에게서는 크게 낮음)에 기여했을 것으로 보인다.[56] 또한 동유럽 수렵채집민(EHG)을 통해 "고대 북유라시아인" 계통(말타-부레트 문화 연관 인구)과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 유전적 구성은 현대 유럽인에는 존재하나 청동기 이전의 유럽에는 존재하지 않던 것이다.[56]
얌나야 문화의 기원은 볼가강 중류 유역의 크발린스크 문화와 드니프르강 중류 유역의 스레드니 스토그 문화에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말을 타는 데 사용된 말과 가족 이동용 수레가 있어 이동이 매우 쉬웠을 것으로 추정되며, 광대한 지역으로 얌나야 문화가 확산된 것은 이 때문으로 생각된다. 얌나야 문화 양식의 묘지는 동쪽으로는 우랄산맥 동쪽 기슭에서도 발견되므로 알타이산맥과 예니세이강 지역에 존재했던 아파나시에보 문화의 유래가 얌나야 문화나 그 주변의 유럽 스텝 지대의 여러 문화에 있을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 또한 서쪽으로는 루마니아, 불가리아, 세르비아, 헝가리에 걸쳐 있는 도나우강 하구 지역 일대에 퍼져 있다.
6. 2.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로의 확장
얌나야인의 유전적 계통은 동쪽으로의 역이주(back-migration)를 통해 신타시타 문화를 거쳐 안드로노보 문화 인구에 영향을 끼쳤으며, 이것은 현대 남아시아인에게서도 그 흔적이 발견되는 경위라고 추정되고 있다.[61]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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