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스트 크레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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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른스트 크레네크는 1900년 오스트리아-헝가리 빈에서 태어난 작곡가로, 20세기 음악계에 다양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프란츠 슈레커에게 작곡을 배우고,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군 복무를 하면서도 음악 공부를 이어갔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는 지휘자로 활동하며, 구스타프 말러의 미망인 알마 말러와 결혼했으나 짧은 기간 만에 이혼했다. 나치 정권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여 여러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12음 기법, 재즈, 우연성 음악 등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했다. 그의 작품은 오페라, 관현악, 실내악 등 다방면에 걸쳐 있으며, 특히 오페라 《조니는 연주한다》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크레네크는 독일 연방 공화국 공로 훈장, 오스트리아 국가 대음악상 등을 수상했으며, 빈 시는 그의 업적을 기려 에른스트 크레네크 상을 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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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 크레네크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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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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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에른스트 하인리히 크셰네크 |
출생지 | 오스트리아-헝가리 빈 |
출생일 | 1900년 8월 23일 |
사망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팜스프링스 |
사망일 | 1991년 12월 22일 |
국적 | 오스트리아, 미국 |
직업 | 작곡가 |
교육 | 빈 국립 음악 아카데미 |
음악 경력 | |
장르 | 클래식 음악 |
영향 | 아르놀트 쇤베르크 알반 베르크 안톤 베베른 구스타프 말러 클로드 드뷔시 파울 힌데미트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
주요 작품 | |
오페라 | 《조니 슈필트 아우프》 (Jonny spielt auf, 1926) 《오렐리앙, 또는 불가결에 의한 개입》 (Orestie, oder die Agamemnon-Trilogie, 1930) 《카를 5세》 (Karl V, 1938) 《산타 크루즈의 코룸부스》 (Columbus, The Discovery of America, 1942) 《금지된 구역》 (Das Geheime Königreich, 1928) 《생명의 원》 (Der Kreidekreis, 1933) 《파푸아나》 (Paphnutius, 1930) 《8월 35일》 (8. August 35, 1934) 《타르튈》 (Tartuffe, 1944) 《피제아스》 (Pallas Athene weint, 1955) 《황제 티투스의 관대》 (The Triumph of Divine Love, 1971) 《저승 세계 오르페우스》 (Orpheus und Eurydike, 1923) 《아글라오페》 (Aglaja, 1928) |
발레 | 《마모르》 (Mamor, 1922) |
관현악 | 교향곡 1번 (1921) 교향곡 2번 (1922) 교향곡 3번 (1922) 교향곡 4번 (1947) 교향곡 5번 (1949) 교향곡 《펠리페 카마리요를 기리며》 (Symphonia in memoriam Philippi Camarillo, 1956) 《정령들의 춤》 (Gesänge des späten Jahres, 1931) 바이올린 협주곡 1번 (1924) 바이올린 협주곡 2번 (1933) 피아노 협주곡 1번 (1923) 피아노 협주곡 2번 (1937) 첼로 협주곡 (1953) |
실내악 | 현악 사중주 1번 (1921) 현악 사중주 2번 (1921) 현악 사중주 3번 (1923) 현악 사중주 4번 (1924) 현악 사중주 5번 (1930) 현악 사중주 6번 (1936) 현악 사중주 7번 (1944) 현악 사중주 8번 (1944) 12개의 악기를 위한 작은 심포니 (Kleine Symphonie für zwölf Soloinstrumente, 1928) |
기타 | 《여행의 시편》 (Reisebuch aus den österreichischen Alpen, 1929) 《사이버네티콘》 (Kiberneetikon, 1961) 《6개의 측정》 (Sechs Vermessungsstücke, 1956) |
참고 자료 | |
관련 인물 | 안나 말러 (결혼) |
2. 생애
에른스트 크레네크는 빈(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태어났다. 제1차 세계 대전 중 오스트리아 군대에 징집되었지만, 빈에 배치되어 음악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
프란츠 슈레커에게 작곡을 배웠고, 졸업 후 독일 각지의 가극장에서 지휘자로 활동했다. 1922년 구스타프 말러의 미망인 알마 말러와 그의 딸 안나 말러를 만나 교향곡 2번을 헌정하고 1924년 1월에 결혼했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아 이혼했다.
나치당 정권 발족 후, 크레네크의 작품은 독일에서 상연이 금지되었고, 오스트리아 공화국에서도 나치의 영향을 받았다. 크레네크는 엥겔베르트 돌푸스가 이끄는 조국 전선에 가입하여 돌푸스 정권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1938년, 미국으로 망명하여 바사 칼리지를 시작으로 여러 대학에서 음악을 가르쳤다. 1942년부터 1947년까지 미네소타주 세인트 폴에 있는 햄린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세 번째 부인이자 제자였던 작곡가 글래디스 노르덴스트롬과 결혼했다. 1945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이후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하여 1950년대에 로열 음악원에서 가르쳤다. 제자로는 밀턴 반스, 로언 베츠, 로크 코르데로, 사무엘 돌린, 로버트 에릭슨, 할림 엘-다브, 리차드 맥스필드, 윌 오그던, 조지 퍼를, 버지니아 세이, 슝-지 웡 등이 있다.
말년에 크레네크는 투정가를 거쳐 1966년 캘리포니아주 팜스프링스로 이주했다. 1991년, 91세의 나이로 팜스프링스에서 사망했지만, 빈 중앙 묘지에 안장되었다.
2. 1. 초기 생애 및 교육 (1900-1920년대 초)
빈(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태어난 에른스트 크레네크는 오스트리아-헝가리 군대 체코인 병사의 아들이었다.[16] 그는 프란츠 슈레커에게 배우고 독일 오페라 극장에서 지휘자로 활동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오스트리아 군대에 징집되었으나 빈에 배치되어 음악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 1922년 구스타프 말러의 미망인 알마 말러와 그의 딸 안나 말러를 만나 자신의 교향곡 2번을 헌정하고 1924년 1월에 결혼했지만, 이듬해 이혼했다.[1]
안나 말러와 결혼할 당시, 크레네크는 바이올린 협주곡 1번, 작품 29번을 완성하고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 바이올리니스트 알마 무디는 크레네크가 바이올린 파트 작곡을 하는 것이 아닌, 독일 초인플레이션 시기에 그녀의 스위스 후원자 베르너 라인하르트에게서 재정적 지원을 받도록 도왔다. 크레네크는 이에 대한 감사로 이 협주곡을 무디에게 헌정했고, 그녀는 1925년 1월 5일 데사우에서 초연했다. 안나 말러와는 초연 며칠 후 이혼이 확정되었다. 크레네크는 초연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무디와 짧고 복잡한 관계를 맺었다. 그는 그녀가 협주곡을 연주하는 것을 듣지 못했지만, 그의 오페라 ''조니는 연주한다(Jonny spielt auf)''의 등장인물 아니타에 그녀의 개성의 일부를 영원히 담아냈다. 1926년에 완성된 이 '재즈 오페라'는 유럽 전역에서 큰 성공을 거두어, 크레네크는 수년간 유명해졌다.
2. 2. 초기 경력과 결혼 (1920년대-1930년대)
프란츠 슈레커에게 작곡을 사사받고, 제1차 세계 대전 중 오스트리아 제국 군에 징병되었지만 빈에서 음악 연구를 계속했다.[17] 전후 슈레커가 베를린 고등 음악학교 교장으로 발탁되자, 알로이스 하바 등과 함께 바이마르 공화국으로 이주하여 페루치오 부소니와 헤르만 셰르헨의 신임을 얻었다. 졸업 후에는 독일 각지의 가극장에서 지휘자로 활약했다.[17]1922년 안나 말러를 만나 말러의 《교향곡 제10번》 제1악장과 제3악장을 교정·개정했다. 같은 해 친구 에두아르트 에르트만의 요청으로 슈베르트의 미완성 《피아노 소나타 제15번》을 보필했다.[17] 1924년 안나와 결혼했지만, 1년도 안 되어 이혼했다.
안나 말러와 결혼할 당시, 크레네크는 바이올린 협주곡 1번, 작품 29번을 완성하고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 바이올리니스트 알마 무디는 독일의 초인플레이션 시대에 스위스 후원자 베르너 라인하르트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도록 크레네크를 도왔다. 이에 감사하여 크레네크는 이 협주곡을 무디에게 헌정했고, 그녀는 1925년 1월 5일 데사우에서 초연했다. 안나 말러와 이혼은 초연 며칠 후에 확정되었다. 크레네크는 초연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무디와 짧고 복잡한 관계를 맺었다. 그는 그녀가 협주곡을 연주하는 것을 듣지 못했지만, 그의 오페라 ''조니는 연주한다(Jonny spielt auf)''의 등장인물 아니타에 그녀의 개성을 담아냈다.[1] 1926년에 완성된 이 '재즈 오페라'는 유럽 전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음악 동료들이 그의 음악의 상업화를 비판하여, 크레네크는 곧 작곡 방향을 급진적으로 바꾸었다.[1]
''조니는 연주한다''의 재즈적 영향과 흑인 재즈 음악가가 중심 인물이라는 점은 나치당의 비난을 받았다. 조니의 이미지는 1938년 '퇴폐' 음악의 ''퇴폐 음악(Entartete Musik)'' 전시회 포스터에 왜곡되어 사용되었다. 크레네크는 제3제국 시대에 유대인 작곡가로 자주 언급되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고 망명 전까지 정권에 의해 위협을 받았다. 1933년 3월 6일, 1933년 3월 선거 다음 날,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감수성의 승리''에 대한 크레네크의 부수 음악은 만하임에서 철수되었고,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은 ''카를 5세 (오페라)(Karl V)'' 의뢰 초연을 취소해야 했다.[1]
나치 정권 발족 후, 크레네크 작품은 독일에서 상연 금지되었고, 오스트리아 공화국에서도 나치의 영향을 받았다. 크레네크는 엥겔베르트 돌푸스가 이끄는 조국 전선에 가입하여 돌푸스 정권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17]
2. 3. 나치 시대와 망명 (1930년대-1945년)
나치당의 퇴폐 음악 딱지가 붙은 ''조니는 연주한다(Jonny spielt auf)''는 1926년에 완성된 '재즈 오페라'로, 유럽 전역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 크레네크를 수년간 유명하게 만들었다.[1] 그러나 흑인 재즈 음악가를 주인공(여성을 유혹하고 값비싼 바이올린을 훔치는)으로 설정하고 재즈의 영향을 받은 악보를 사용했기 때문에 나치당의 비난을 받았다.[1] 1938년에는 '퇴폐' 음악 전시회 포스터에 조니의 이미지가 왜곡되어 사용되기도 했다.[1]크레네크는 제3제국 시대에 유대인 작곡가로 자주 언급되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고 망명 전까지 정권에 의해 위협을 받았다.[1] 1933년 3월 6일, 1933년 3월 선거 다음 날,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감수성의 승리''에 대한 크레네크의 부수 음악은 만하임에서 철수되었고, 결국 빈 국립 오페라 극장에 압력이 가해져 ''카를 5세 (오페라)(Karl V)''의 의뢰 초연이 취소되었다.[1]
1938년 크레네크는 미국으로 망명하여 여러 대학에서 음악을 가르쳤다.[2] 바사 칼리지를 시작으로,[2] 1942년부터 1947년까지 미네소타주 세인트 폴에 있는 햄린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2] 햄린 대학교에서는 그의 세 번째 부인이자 당시 제자였던 작곡가 글래디스 노르덴스트롬을 만나 결혼했다.[5] 1945년에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3]
2. 4. 미국에서의 활동과 말년 (1945-1991)
크레네크는 1938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여러 대학에서 음악을 가르쳤다. 처음에는 바사 칼리지에서, 1942년부터 1947년까지는 미네소타주 세인트 폴에 있는 햄린 대학교에서 가르쳤다.[2] 햄린 대학교에서 그는 세 번째 부인이자 당시 그의 제자였던 작곡가 글래디스 노르덴스트롬을 만나 결혼했다. 1945년에는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16]이후 크레네크는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하여 1950년대에 로열 음악원에서 가르쳤다. 그의 제자로는 밀턴 반스, 로언 베츠, 로크 코르데로, 사무엘 돌린, 로버트 에릭슨, 할림 엘-다브, 리차드 맥스필드, 윌 오그던, 조지 퍼를, 버지니아 세이, 슝-지 웡 등이 있다.[2]
그는 투정가를 거쳐,[2] 1966년 캘리포니아주 팜스프링스로 이주했다.[3][4] 1991년 91세의 나이로 팜스프링스에서 사망했지만, 빈 중앙 묘지에 묻혔다.[5]
1998년 글래디스 노르덴스트롬은 에른스트 크레네크 연구소를 설립했고, 2004년 이 개인 재단은 빈에서 크렘스 안 데어 도나우로 이전했다.[5]
3. 주요 작품 및 음악적 스타일
크레네크의 음악은 20세기 주요 음악적 영향을 반영하며 다양한 스타일을 포괄한다. 초기에는 프란츠 슈레커의 영향을 받은 후기 낭만주의 음악 양식이었으나, 1920년경 무조성 음악으로 전환했다. 여기에는 에른스트 쿠르트, 페루치오 부소니, 아르투르 슈나벨, 에두아르트 에르트만, 헤르만 셰르헨 등의 영향이 있었다.[9]
1924년경 파리에서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 Les Six를 접하며 신고전주의 스타일을 채택했다.[9] 곧이어 신낭만주의로 전환, 오페라 『조니 슈필트 아우프(1926)』와 『슈베어게비히트(1928)』에 재즈를 도입했다. 이 시기에는 프란츠 슈베르트의 영향을 받은 작품도 있는데, 『오스트리아 알프스 여행기』(1929)가 대표적이다.
1920년대 후반,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을 수용했다.[9] 이는 오페라 『카를 5세』(1931–33)를 비롯한 후기 작품에 주로 사용되었다. 『예레미야 예언자의 애가』(1941–42)에서는 12음 기법과 르네상스 선법 대위법을 결합했다.
1955년 쾰른의 서독일 방송 전자 음악 스튜디오에서의 경험은 음렬주의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12] 1960년경부터는 우연성 음악의 원리를 도입, 『호라이즌 서클드』(1967) 등에 반영되었다.[12]
말년에는 작곡 스타일이 더 자유로워졌지만, 12음 기법과 총렬주의 요소는 계속 사용되었다.[12]
크레네크의 작풍은 생애 동안 변화가 풍부했다. 초기에는 후기 낭만주의를 따랐으나, 이후 무조 음악, 신고전주의 음악, 재즈 등 다양한 양식을 시도했다. 1926년 오페라 《조니는 연주한다》[20]는 유럽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1930년대에는 슈베르트의 영향을 받은 연작 가곡집 《오스트리아 알프스에서의 여행 일기》(1929)를 작곡했다. 망명 전후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으로 전향, 오페라 《카를 5세》(1930-1933)에서 이를 완전히 사용했다. 이후 전자 음악과 우연성 음악에도 참여했다. 힌데미트의 "실용 음악"에 공감했으나, 신 빈 악파로 전향하며 테오도어 아도르노와 함께 힌데미트를 비판하기도 했다.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는 크레네크에게 "청중이 당신을 잊은 것은 당신이 청중을 잊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크레네크의 작품은 새로운 기법을 사용한 후기에도 서정성과 유쾌함이 유지되었다. 무반주 혼성 합창곡집 《예언자 예레미야의 애가》(1941)와 글렌 굴드가 연주한 《피아노 소나타 3번》이 그 예이다. 크레네크는 굴드의 해석을 비판하며, 제프리 더글러스 매지에게 정통적인 해석을 맡겼다. 피아노 소나타 7번은 매지를 위해 쓴 곡이었다.
《조니는 연주한다》, 《카를 5세》 등 많은 오페라 대본과 《오스트리아 알프스에서의 여행 일기》, 총렬주의를 사용한 《세스티나》(1957) 등의 성악곡 가사는 직접 썼다.
3. 1. 오페라
크레네크는 매우 다양한 오페라 작품을 남겼다. 초기에는 프란츠 슈레커의 영향을 받아 후기 낭만주의 음악의 전통을 따랐으나, 이후 무조 음악을 거쳐 신고전주의 음악과 재즈의 영향을 받았다.1926년에 발표한 오페라 《'''조니는 연주한다''' ('''Jonny spielt auf''')》[20]는 재즈의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소련을 포함한 유럽 각지에서 연주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크레네크는 이 작품으로 1920년대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 작품은 나치에 의해 비난받기도 했다.
1930년대에는 슈베르트의 영향으로 낭만주의 전통으로 복귀하기도 했으며,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을 사용한 오페라 《'''카를 5세''' ('''Karl V''')》(1930-1933년, 출판 1938년)를 작곡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12음 기법이 পুরোপুরি 사용된 최초의 오페라이다.
크레네크는 《조니는 연주한다》, 《카를 5세》 등 많은 오페라의 대본을 직접 쓰기도 했다.
주요 오페라 작품
- 그림자를 넘어 ''Der Sprung über den Schatten'' 작품 17 (1923; 초연 1924)
-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Orpheus und Eurydike'' 작품 21 (1923; 초연 1926)
- 조니는 연주하기 시작한다 ''Jonny spielt auf'' 작품 45 (1925-26; 초연 1927)
- 독재자 ''Der Diktator'' 작품 49 (1926; 초연 1928)
- 비밀의 왕국 작품 50 ''Das geheime Königreich'' (1926-27; 초연 1928)
- 헤비급, 또는 국가의 영광 작품 55 ''Schwergewicht, oder Die Ehre der Nation'' (1926-27; 초연 1928)
- 오레스트의 생애 작품 60 ''Leben des Orest'' (1928-29; 초연 1930)
- 카를 5세 작품 73 ''Karl V'' (1930-33; 초연 1938)
- 케팔로와 프로크리스 작품 77 ''Cefalo e Procri'' (1933-34; 초연 1934)
- ''Tarquin'' op.90 (1940; 초연 1950)
- ''What Price Confidence?'' (Vertrauenssache) op.111 (1945-46; 초연 1960)
- 어두운 물줄기 Dark Waters (Dunkle Wasser) op.125 (1950; 초연 1950)
- 팔라스 아테네는 운다 Pallas Athene weint op.144 (1952-55; 초연 1955)
- 종탑 The Bell Tower (Der Glockenturm) op.153 (1955-56; 초연 1957)
- ''Ausgerechnet und verspielt'' op.179 (1961; 초연 1962)
- ''Der goldene Bock'' (Chrysomallos) op.186 (1963; 초연 1964)
- ''Der Zauberspiegel''. Fernsehoper op.192 (1966; 초연 1967)
- ''Sardakai oder Das kommt davon'' op.206 (1967-69; 초연 1970)
3. 2. 발레
- 맘몬 작품 37 (1925)
- 바뀐 큐피드 작품 38 (1925)
- 8 열 줄 작품 85 (1939)
3. 3. 관현악곡
- 교향곡 1번 작품 7 (1921)
- 교향곡 2번 작품 12 (1922)
- 교향곡 3번 작품 16 (1922)
- 관악기와 타악기를 위한 교향곡 작품 34 ''Symphonie pour instruments à vent et batterie프랑스어'' (1924-25)
- 소 교향곡 작품 58 (1928)
- 교향곡 4번 작품 113 (1947)
- 교향곡 5번 작품 119 (1949)
- 교향곡 《팔라스 아테네》 작품 137 (1954)
- 현악을 위한 신포니에타 "브라질풍" 작품 131 (1952)
- 실내 오케스트라를 위한 《콘체르티노》 작품 27 (1924)
- 바이올린 협주곡 1번 작품 29
- 쳄발로와 오르간, 실내 오케스트라를 위한 소 협주곡 작품 88
- 첼로 협주곡 1번 작품 113
- 바이올린과 피아노, 소 오케스트라를 위한 이중 협주곡 작품 124
- 하프와 실내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작품 126
- 바이올린 협주곡 2번 작품 140
- 첼로와 관현악을 위한 카프리치오 1번 작품 145
- 첼로 협주곡 1번 작품 236
- 오르간과 현악 합주를 위한 협주곡 작품 230
- 오르간 협주곡 작품 235
- 피아노 협주곡 (총 4곡)
- 관현악을 위한 포푸리 작품 54
- 관현악을 위한 11개의 투명화 작품 142 (1954)
- 교향적 스케치 "사슬, 원, 거울" 작품 160 (1957)
- 시간 문제 ''Quaestio Temporisla'' 작품 170 (1959)
3. 4. 취주악
- 세 개의 유쾌한 행진곡 ''Drei lustige Märsche'' (도나우에싱겐, 1926년 초연)
- 모음곡 「1955년」 ''Suite 1955''
- 꿈의 연속 작품 224 ''Dream Sequence'' (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