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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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응룡은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날개 달린 용으로, 용이 오랜 시간 수련하여 얻는 존재로 묘사된다. 응룡은 홍수를 다스리고 치우와 같은 적을 물리치는 등 다양한 신화적 역할을 수행하며, 때로는 가뭄을 다스리는 존재로 묘사되기도 한다. 또한, 응룡은 하늘의 신과 인간의 싸움에서 인간 편을 들어 지상으로 추방되기도 하며, 인류의 창조주인 여와와 대립하는 존재로 묘사되기도 한다. 응룡은 다양한 문헌에서 언급되며, 다른 용들과의 관계, 비를 부르는 의식에서의 상징성 등 다양한 측면에서 연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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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룡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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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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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름 | 황룡 (黃龍) |
로마자 표기 | Yinglong |
일본어 표기 | 오우류우 (おうりゅう) |
특징 | |
역할 | 물의 신 비를 내리게 하는 신 치우 토벌에 공헌 하우를 도와 황하를 다스림 |
외형 | 날개 달린 용 뿔 달린 용 |
능력 | 물을 다스리는 능력 |
신화 속 이야기 | |
등장 문헌 | 산해경 사기 |
주요 행적 | 황제를 도와 치우를 토벌 우를 도와 황하를 다스림 |
다른 용과의 관계 | 오랜 수행을 통해 용이 된 존재 |
문화적 의미 | |
상징 | 권력 힘 물 |
관련 문화 | 사해용왕 용왕 |
2. 명칭
'''응룡'''(鷹龍)은 중국의 신화에 나오는 날개 달린 용으로, 용이 오백 년 또는 천 년이 지나면 날개를 얻어 응룡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천 년이라는 긴 세월을 사는 것은 아무리 용이라 해도 쉬운 일이 아닌지라, 신화에서 응룡은 단 한 마리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응룡은 용 중에서도 특히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다.
응룡()은 중국 고전 문헌에 자주 등장하는 날개 달린 용이다.
응룡은 중국 대륙 남쪽 끝에 위치한 공구산(恭丘山)에 살고 있었다고 한다. 원래는 하늘의 신 가운데 하나였지만, 신과 인간이 싸울 때 인간 편을 드는 바람에 지상으로 추방되고 말았다. 하늘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응룡은 하는 수 없이 공구산에 머물러야 했다. 그리고 물이나 바람을 자유롭게 다루고 비바람을 주관하는 존재로서 사람들에게 은혜를 내려주었다.[25]
응룡의 양팔은 매의 날개로 되어 있어, 마치 용의 머리를 가진 맹금류처럼 보인다. 온몸은 깃털로 뒤덮여 있고 꼬리는 아름다운 꼬리털로 장식되어 있다. 발가락의 힘이 강하고 날카로운 발톱이 나 있다. 양팔의 날개는 매우 강력해서 제비보다도 빨리 날 수 있으며, 한순간에 천상의 신들이 있는 곳으로 날아올라갈 수 있다. 또한 응룡은 깃털이나 털이 있는 모든 동물의 조상이자 조류의 왕으로 추앙된다.[25]
전설에 따르면, 황제가 치우와 싸웠을 때는 폭풍을 일으켜서 치우군을 물리쳤다고 한다. 사기에 ‘황제가 응룡을 시켜 흉려곡에서 치우를 죽이게 했다(黃帝使鷹龍殺蚩尤於凶黎之谷)’라고 기록되어 있다.[25]
《산해경》 대황동경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25]
이 전설의 생물의 이름은 ''yìng'' "응답하다; 대응하다; 대답하다; 동의하다; 따르다; 동의하다; 약속하다; 적응하다; 적용하다"와 ''lóng'' "중국 용"을 결합한 것이다. 전자의 한자는 (다른 성조로) ''yīng'' "해야 한다; 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필요하다; 적절하다; 적합하다"로 발음되기도 하지만, ''yinglong'' 은 확실히 "응답하는 용; 반응하는 용"을 의미하며 "적절한 용"을 의미하지 않는다.[25]
3. 중국 고전 문헌
《산해경》에는 응룡이 황제에게 반역한 치우와 과부를 죽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기우제를 지낼 때 응룡의 형상을 만들어 사용하면 큰 비가 내렸다고 한다.[3]
베른하르트 칼그렌은 응룡과 관련된 여러 신화들이 한 시대의 지식일 뿐이며, 이전 자료에서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다만, 춘추 시대의 ''시경''에 나오는 여바와 전국 시대의 ''천문''에 나오는 "강과 바다의 흐름을 지시한" 응룡은 예외로 보았다.[7][8]
''광아''는 응룡을 날개 달린 용으로 정의하며 주요 용 중 하나로 꼽았다.[14] ''술이기''는 응룡을 1000년 된 용으로 묘사한다.[15]
3. 1. 초사(楚辭)
기원전 3세기에서 2세기 사이에 쓰인 초사(초나라의 노래)는 응룡이 전설적인 하나라의 창시자인 우를 도와 신화 속 대홍수를 다스렸다고 언급한다. 중국 신화에 따르면 요 임금은 우의 아버지 곤에게 대규모 홍수를 다스리는 임무를 맡겼는데, 곤은 실패했다. 요 임금의 뒤를 이은 순 임금은 곤을 처형하고 시신을 노출시켰지만, 곤의 시신이 썩지 않자 배를 갈라 우가 처녀생식으로 태어났다. 순 임금은 우에게 홍수를 다스리는 임무를 맡겼고, 우는 부지런히 운하를 건설하여 성공한 후 고대 중국을 구주로 나누었다.
천문 (3, ) 편에서는 응룡에 대해 촉룡(횃불 용)과 함께 질문한다. 호크스는 "우주론, 천문학, 신화, 역사에 관한 질문으로 구성된 무속적 문답서"라고 특징짓는 ''천문''은 "초나라 선집의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대 언어로 쓰였으며", 이소 편의 "한두 개의 짧은 구절"을 제외하고는 그렇다고 하였다.[1]
(서기 2세기 초) 왕일의 ''초사'' 주석에 따르면 응룡은 땅에 선을 그어 우에게 배수 및 관개 운하를 어디에 파야 할지 알려주었다.
3. 2. 산해경(山海經)
《산해경》 대황동경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응룡은 중국 대륙 남쪽 끝에 위치한 공구산(恭丘山)에 살고 있었다고 한다. 원래는 하늘의 신 가운데 하나였지만, 신과 인간이 싸울 때 인간 편을 드는 바람에 지상으로 추방되고 말았다. 하늘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응룡은 하는 수 없이 공구산에 머물러야 했다. 그리고 물이나 바람을 자유롭게 다루고 비바람을 주관하는 존재로서 사람들에게 은혜를 내려주었다.
곽박 (4세기 초)의 주석은 ''토룡'' "흙/점토 용"을 언급하며, "오늘날의 토룡은 여기서 유래되었다"라고 하였다.[4]
"대황경: 북" (17, )은 과부를 죽이는 것에 대한 두 가지 신화에서 ''응룡''을 언급한다. 첫 번째 버전은 응룡이 강물을 마시고 가뭄을 일으키며 태양을 쫓아다닌 벌로 그를 죽였다고 한다.
두 번째 신화 버전은 응룡이 실패한 후 황제의 딸인 발 "가뭄귀신"이 치우를 죽였다고 말한다. 발은 과부와 유사한 가뭄 악마이다.
3. 3. 회남자(淮南子)
기원전 2세기(세기)의 ''회남자''(Huainanzi)는 세 개의 장에서 응룡(應龍)을 사용한다. '응(應)'은 감응(ganying) (문자 그대로 "감각과 반응") 즉, "공명, 반응, 상호 작용, 영향, 유도"에도 나타나는데, 찰스 르 블랑은 이것을 ''회남자'' 텍스트의 중심적이고 핵심적인 아이디어로 여긴다.[9]
"땅의 형태"(4, 墬形訓)는 응룡을 사지 동물의 시조로 하여, 동물 진화가 용을 통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캐는 이 반응하는 용이 보통 네 개의 날개와 함께 묘사되는데, 아마도 네 다리와 병행될 것이라고 언급한다.[10]
羽嘉生飛龍,飛龍生鳳皇,鳳皇生鸞鳥,鸞鳥生庶鳥,凡羽者生於庶鳥。毛犢生應龍,應龍生建馬,建馬生麒麟,麒麟生庶獸,凡毛者生於庶獸。|우가생비룡,비룡생봉황,봉황생난조,난조생서조,범우자생어서조。모독생응룡,응룡생건마,건마생기린,기린생서수,범모자생어서수。중국어
> 날개 달린, 털이 많은, 비늘이 있는, 갑옷을 입은 모든 생물은 용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우가(羽嘉)는 비룡을 낳았고, 비룡은 봉황을 낳았으며, 그 후에는 난조(鸞鳥)와 모든 새들, 일반적으로 날개 달린 존재들이 차례로 태어났다. 모독(毛犢, "털이 많은 송아지")은 응룡(應龍)을 낳았고, 응룡은 건마(建馬)를 낳았으며, 그 후 기린(麒麟)과 모든 사지 동물들, 일반적으로 털이 많은 존재들이 차례로 태어났다. … [11]
볼프람 에버하르트는 이 "그렇지 않으면 알려지지 않은" 모독(毛犢) "털이 많은 송아지"가 "물소"를 암시한다고 제안한다.[12]
"어둠을 엿보다"(6, 覽冥訓)는 복희와 여와가 응룡(應龍)과 청구(青虯) "푸른 규-용"에 의해 운송되는 것을 묘사하며, 백치(白螭) "하얀 치-용"과 분사(奔蛇) "질주하는 뱀"이 동행한다.
> 그들은 천둥 수레를 타고, 날개 달린 용을 안쪽 쌍으로, 푸른 용을 바깥쪽 쌍으로 사용했다. 그들은 마법의 옥판을 움켜쥐고 그들의 차트를 보여주었다. 노란 구름이 얽혀 (수레 위에 덮개를 형성하기 위해) 걸려 있었고, 그들(전체 수행원)은 하얀 뱀에 앞서고 질주하는 뱀에 의해 뒤따랐다.[13]
고우(2세기 CE)의 ''회남자'' 주석은 응룡(應龍)을 "날개 달린 용"으로, 규(虯)를 "뿔 없는 용"으로 풀이한다.
"통치의 기술"(9, 主術訓)은 응룡을 등사(Teng (mythology)|tengshe) (騰蛇) "솟아오르는 뱀" 용과 대조한다. "등(t'eng) 뱀은 안개 속으로 솟아오르고, 나는 응(ying) 용은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민첩하고 물고기는 물에서 민첩하다." 에임스는 이 응룡과 등사의 은유를 법가 철학자 신도에게 귀속시키는 ''한비자''를 비교한다.
3. 4. 기타 문헌
중국 고전에서는 종종 "날개 달린 비룡"인 응룡()을 삼황오제에 관한 신화, 특히 황제와 그의 추정 후손인 우(禹王)에 관해 언급한다. 다음은 영어 번역본이 있는 책에 한정하여 대략적인 연대순으로 정리한 예시이며, 일부 이질적인 텍스트는 저술 시기가 불확실하다. 응룡(Yinglong)은 ''사기'', ''한서'', ''후한서'' 등 여러 다른 중국 텍스트에도 등장한다.
3세기 초에 편찬된 사전인 ''광아''는 "날개 달린 용"인 응룡(應龍)을 주요 용 중 하나로 정의한다. "만약 용에게 비늘이 있다면, 그는 ''교룡''(蛟龍)이라 불리고; 날개가 있다면, ''응룡''(應龍); 뿔이 있다면, ''규룡''(虯龍); 뿔이 없다면, ''치룡''(螭龍)이라 불린다."[14]
6세기 초에 편찬된 ''술이기''(述異記) "이상한 것들의 기록"은 응룡(應龍)을 1000년 된 용으로 묘사한다. "물뱀(水虺, ''수 회'')은 500년 후에 ''교''(蛟)로 변하고, ''교''는 1000년 후에 ''룡''(龍)으로 변하며, ''룡''은 500년 후에 ''교룡''(蛟龍, "뿔 달린 용")으로 변하고 1000년 후에 ''응룡''(應龍)이 된다."[15]
후한서에서 응룡은 신화 속에서 여바의 동료로 묘사된다. 그들은 동시에 치우의 군대와 싸웠다. 이러한 관계는 이후 몇 세기 동안 여바와 응룡의 신화적 로맨스로 이어졌다.
4. 신화 속 응룡
응룡은 중국 대륙 남쪽 끝에 위치한 공구산(恭丘山)에 살고 있었다고 한다. 원래는 하늘의 신 가운데 하나였지만, 신과 인간이 싸울 때 인간 편을 들어 지상으로 추방되었다. 하늘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응룡은 공구산에 머물렀다. 그리고 물이나 바람을 자유롭게 다루고 비바람을 주관하는 존재로서 사람들에게 은혜를 내려주었다.[25]
응룡의 양팔은 매의 날개로 되어 있어, 마치 용의 머리를 가진 맹금류처럼 보인다. 온몸은 깃털로 뒤덮여 있고 꼬리는 아름다운 꼬리털로 장식되어 있다. 발가락의 힘이 강하고 날카로운 발톱이 나 있다. 양팔의 날개는 매우 강력해서 제비보다도 빨리 날 수 있으며, 한순간에 천상의 신들이 있는 곳으로 날아올라갈 수 있다. 또한 응룡은 깃털이나 털이 있는 모든 동물의 조상이자 조류의 왕으로 추앙된다.[25]
응룡은 중국 신화 속에서 인류의 창조주인 여와의 강력한 적으로 등장한다. 그 시대에 지상은 화룡족이 지배하고 있었는데, 여와는 불을 관장하는 용족이었다. 비바람을 관장하는 응룡은 그들이 지배자라는 사실을 묵과할 수 없어, 지상을 평정하려는 여와에게 싸움을 걸었다.[25]
바람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번개 구름을 부르는 응룡과 여와의 싸움은 오랜 세월 동안 격렬하게 계속되었다. 그러나 여와는 우거(牛車)를 이용해 비바람으로부터 몸을 지키고 많은 술법을 구사하여 끝내 응룡을 굴복시키고 포로로 잡아 그의 자유를 빼앗았다. 응룡은 죽음을 당하지 않으려고 여와 일족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약속하고는 겨우 포로 신분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25]
전설의 영웅 황제와 치우의 싸움에도 응룡이 등장한다. 가장 강력했던 군신 치우와 싸우다가 열세에 몰린 황제는 자신의 일족인 여와의 조언에 따라 응룡을 불러내어 원군에 가담시켰다. 비바람의 신 응룡이 치우군 옆구리를 공격해 들어오자 눈 깜짝할 사이에 형세가 역전되었다. 응룡은 치우의 군대를 향해 폭풍우가 불어닥치게 하여 그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비바람을 주관하는 응룡과 불을 주관하는 용족의 공격을 받은 치우는 패해서 달아났고 결국에는 전사하고 말았다.[25]
그러나 응룡은 사람인 황제에게 가담하여 같은 신인 치우를 죽인 일 때문에 신들에 의해 하늘로 올라오는 것이 금지되었다.[25]
응룡은 또한 전설상의 현왕인 순왕의 치수 사업을 도와주려고 나선 적도 있다고 한다.[25]
몇 대에 걸쳐 중국 전체를 뒤덮은 홍수를 가라앉히도록 순왕은 부하인 우(禹)에게 명령했다. 우는 도술을 써서 산을 뚫고 제방을 만들어 강을 넘쳐 흐르는 물을 막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대지를 삼킨 채 줄어들 줄 모르는 물에 대해서는 방법이 없었다. 여와의 핏줄을 이어받은 우는 물을 다룰 수 있는 응룡을 불러내어 치수를 부탁했다. 응룡은 꼬리를 이용하여 땅에 바람을 뜻하는 글자를 썼다. 그러자 범람한 물이 그곳으로 흘러들었고 마침내 홍수는 수습되었다. 기우제를 할 때 땅바닥에 응룡의 그림을 그려 비를 부르는 것은 이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다.[25]
우의 치수 이후로 응룡은 더는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와의 핏줄을 이어받은 군주가 백성의 고난을 없애고자 바람이나 비의 수호를 필요로 할 때 응룡은 자신의 터전인 영산에서 날아오른다고 전해진다.[25]
5. 다른 용과의 관계
응룡은 천룡("천상의 용"), 비룡("나는 용"), 홍("무지개 용"), 교("홍수 용") 등 다른 중국 용들과 신화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도교의 열선전과 같은 문헌에서는 "신이나 성인의 수레를 끄는 비룡 또는 응룡"을 언급하기도 한다.[16] 회남자에서 복희와 여와의 수레를 끄는 한 쌍의 응룡을 언급한 것 외에도, 황제가 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전설(사기)과 우가 두 마리의 비룡이 끄는 수레를 타는 이야기(박물지)가 유사한 예시로 존재한다.[17]
카는 중국 청동기에 나타난 복희와 여와처럼 얽혀있는 두 개의 대칭적인 용의 문양과 한 쌍의 응룡을 비교한다.[18]
포터는 "꼬리를 사용하여 홍수가 배수될 수 있도록 채널과 같은 지형의 지도를 땅에 그린다"고 묘사하며, 이는 "은하수가 두 갈래로 갈라지는 정확한 위치"에 있는 천상의 용 전갈자리의 꼬리라고 해석한다.[19] (4세기) 십유기는 우의 치수 신화를 사상, 즉 황룡 또는 청룡과 현무의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우는 채널을 만들고, 물길을 바꾸고, 산을 세우는 데 힘을 쏟았는데, 황룡이 꼬리를 앞에서 끌었고, 검은 거북은 (채널을 건설하는 데 사용된) 푸른 검은 진흙을 뒤에서 운반했다."[20]
에버하드는 "응룡에 대한 모든 전설은 모호하다"고 썼다.[21] 전설적인 응룡은 우가 홍수를 제어하는 것을 도왔지만, "우는 종종 용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고 하며, 특히 홍수 신 공공의 신하 상류가 대표적이었다. 에버하드는 쑨자이가 상류를 뱀장어로 동일시한 것에 근거하여 응룡도 뱀장어라고 결론 내렸다.
에버하드는 응룡과 우에 관한 신화적 요소가 "우와 바 문화의 우 신화와 다른 남부 문화 간의 연결을 증명한다"고 결론 내렸다. 카는 상나라 갑골문 연구를 바탕으로 첸멍지아가 응룡이 원래 "미꾸라지"를 의미하는 ''니치우''와 관련이 있다는 가설을 제시했다고 언급했다.[22]
응룡의 상징은 고대부터 비를 부르는 의식에 사용되었으며, 에버하드는 "가장 중요한 동물은 항상 흙으로 만든 용이다"라고 말한다.[23] 응룡은 비와 가뭄을 조절하는 것 외에도 "꼬리로 땅에 선을 그어 강을 만들었다… 다시 말해, 용은 물길을 만들었는데, 이는 모든 벼농사 재배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라고 설명한다.
6. 현대적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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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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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天鳳堂資料室】瑞祥・瑞獣
http://www.tenhod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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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환수 드래곤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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