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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카리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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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시카리강은 홋카이도 다이세쓰 산계에서 발원하여 이시카리 평야를 거쳐 이시카리만으로 흘러드는 강이다. 가미카와, 소라치, 이시카리 3개 진흥국 관할 구역을 지나며, 2000년 국세조사 기준 유역 내 인구는 약 308만 8천 명이다. 아이누어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추정되며, 소라치강, 지토세강 등 여러 지류를 포함한다. 근대 이후 하천 개발과 치수 사업이 진행되었으며, 수력 발전을 위한 댐 건설도 이루어졌다. 이시카리강 유역은 홍수 피해가 잦았으며, 치토세강 방수로 계획 중단 등 환경 문제와 공공 사업 재검토의 영향을 받았다. 현재는 댐 재개발 사업과 치수 대책이 진행 중이며, 홋카이도 개척 시대부터 연어가 중요한 어업 자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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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카리강
개요
이름이시카리강
원어 이름(Ishikari-gawa)
어원아이누어로 "굽이치는 (강)"
가무이 코탄의 이시카리강
아사히카와 근처 가무이 코탄의 이시카리강
지리
국가일본
지방홋카이도
발원지이시카리산
하구동해 (일본해)
하구 위치이시카리만
하구 고도0m
유역 면적14,330km2
길이268km
평균 유량468m3/s
수문학적 특징
특징미카즈키 호 (초승달 모양 호수)가 많음
지도 정보

2. 지리

하구 부근의 이시카리강(이시카리시)


이시카리강은 홋카이도 중앙부를 흐르는 강으로, 다이세쓰산계 이시카리다케에서 발원하여 이시카리 평야를 거쳐 이시카리만으로 유입된다. 유역은 가미카와, 소라치, 이시카리의 3개 지역에 걸쳐 있으며, 삿포로시, 아사히카와시 등 홋카이도의 주요 도시들이 이 강 유역에 위치하여 중요한 생활 기반을 이루고 있다. 유역 내에는 시코쓰호와 같은 자연 호수와 더불어, 강 흐름의 변화로 생긴 미카즈키코(三日月湖)가 중류 지역에 분포하는 특징을 보인다.

2. 1. 유로



홋카이도 상카와군 상카와정과 가토군 가미시호로정의 경계에 있는 다이세쓰산계 이시카리다케의 서쪽 사면에서 발원한다. 여기서 상카와 분지, 이시카리 평야를 거쳐 이시카리시에서 이시카리만으로 흘러든다. 이 사이에 상카와 지역(시오카리 고개 이남)・소라치 지역・이시카리 지역의 22개 시정촌을 통과한다. 소라치가와나 지토세가와 등의 지류를 포함한 유역 내 시정촌 수는 48개이며, 유역 내 시정촌 인구는 약 308만 8천 명이다(2000년 국세조사).

2. 2. 지명 유래

원래 아이누어에서의 의미가 불분명하여 어원을 정확히 특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다음 중 하나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2]

  • '이시카리': 막히다
  • '이시카라펫츠': 아름답게 만들다, 강
  • '이시카라아펫츠': 환류하천, 매우 구불구불한 강


또한, 속설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후리카무이와 라토시카무이의 싸움에서 후리가 꼬리깃털(이시)을 흔들었다(카리)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2. 3. 주요 지류와 유역 시정촌

연장
(km)유역
면적
(km²)주요
이차
지류주요
호소유역
진흥국유역
시군류벤시베강23.564.1카야카리베강가미카와 종합진흥국가미카와군아이베쓰강22.5186.06카리후강(카리후호)가미카와 종합진흥국가미카와군핏푸강18.657.6핏푸옷페강
란루강가미카와 종합진흥국아사히카와시·가미카와군우시슈베쓰강36.8481.4도마강
나가야마 신강
페판강가미카와 종합진흥국아사히카와시·가미카와군주베쓰강59.21,062.6폰강
비에이강(주베쓰호)가미카와 종합진흥국아사히카와시·가미카와군옷페강13.7____오호츠나이강가미카와 종합진흥국아사히카와시·가미카와군오사랏페강25.7195.5욘카슈페강
옷페강가미카와 종합진흥국아사히카와시·가미카와군우류강155.01,673.0호로카나이강
다도시강
호로신타도베쓰강
에타이베쓰강(슈마리나이호)
(우쓰나이호)
(호로피리호)가미카와 종합진흥국우류군소라치 종합진흥국후카가와시·다키카와시·우류군오시라리카강42.1157.3펜케페탄강
호로카오시라리카강(쇼칸호)소라치 종합진흥국가바토군·우류군도쿠토미강50.8319.2와카우엔베쓰강
루쿠슈베쓰강
소에베쓰강(돗푸호)
(와카 저수지)
(류큐 저수지)
(미나미호로카 저수지)소라치 종합진흥국가바토군소라치강194.52,618.0누푸리강
후라노강
노하나미나미강
아시베쓰강(가나야마호)
(다키사토호)
(노하나미나미호)
(아시베쓰호)가미카와 종합진흥국후라노시·소라치군소라치 종합진흥국아시베쓰시·아카비라시·스나가와시
다키카와시·가바토군도요누마나이에강18.849.7니마타자와강소라치 종합진흥국소라치군·스나가와시나이에강23.661.8사시나이강소라치 종합진흥국소라치군비바이강32.697.3산카미비바이강(비바이호)소라치 종합진흥국비바이시스베쓰강24.463.8아카강소라치 종합진흥국가바토군이쿠슌베쓰강70.0382.0혼베쓰강
미카사호로나이강
이치키시리강
구 비바이강(가쓰라자와호)소라치 종합진흥국미카사시·이와미자와시유바리강136.01,463.0시호로카베쓰강
유니강
야리키레나이강
호로무이강(슈파로호)소라치 종합진흥국유바리시·이와미자와시·소라치군이시카리 진흥국에베쓰시지토세강108.01,244.0우쓰나이강
마마치강
시마마쓰강
구 유바리강시코쓰호
오코탄페호
(에니와호)소라치 종합진흥국유바리시·소라치군이시카리 진흥국지토세시·에니와시·에베쓰시
기타히로시마시시노쓰강23178.9누마강이시카리 진흥국이시카리군·에베쓰시도요히라강72.5902.0마코마나이강
쇼진강
쓰키사무강
아쓰베쓰강(조잔호)
(삿포로호)이시카리 진흥국삿포로시·에베쓰시도베쓰강72.5309.5판케추베시나이강
자이모쿠강(아오야마 저수지)
(도베쓰후쿠로호)이시카리 진흥국삿포로시·이시카리군바라토강20.2160.5후시코강
이시카리 방수로
마쿤베쓰강페케렛토호
돈네우스늪이시카리 진흥국삿포로시·이시카리시지시카리강14.538.6지조사와강
고노사와강(다카토미 저수지)
(고노사와 연못)이시카리 진흥국이시카리시


3. 역사

근대 이전의 이시카리강(石狩川)은 매우 심하게 곡류하는 하천이었으며, 현대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이름의 유래로 추정되는 설 중 하나인 아이누어 「'''イ・シカラ・ペツ|이 시카라 페츠ain'''」(i-sikar-a-pet, 그것을・휘돌아 흐르는・강)는 강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여러 설이 있는 어원 모두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하여 명확하지는 않다.

이시카리강의 하천 개발은 1869년(메이지 2년) 홋카이도개척사가 설치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시카리강 주변은 넓은 이탄지였고 강이 자주 범람했기 때문에 개발은 쉽게 진행되지 않았다.[3] 제2차 세계 대전 후에는 식량 증산을 위해 당초 계획되었던 밭 대신 논으로 전환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3] 이시카리강 주변은 홋카이도 내 다른 지역보다 여름 기온이 높고 일조 시간도 긴 지역이며, 벼 품종 개량과 함께 벼농사의 북쪽 한계선이 확장되는 배경이 되었다.[3]

3. 1. 개발 여명기 - 자연주의와 첩수로주의

1869년 개척사 설치 이후 이시카리강 유역 개발이 시작되었으나, 강 주변의 넓은 이탄지와 잦은 홍수로 인해 개발은 순탄치 않았다.[3]

1898년 9월, 개척 사업 시작 이래 최악의 홍수(메이지 31년 홍수)가 발생하여 소라치가와 합류점부터 이시카리만까지 약 150000ha가 침수되고 112명이 사망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이에 당시 하천 관리 책임이 있던 내무성은 홋카이도 치수 조사회를 설치하고 이듬해인 1899년부터 '제1기 홋카이도 택지 개발 계획'에 따라 이시카리강 치수 사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치수 사업의 초기 방향을 제시한 인물은 '''오카자키 분키치'''였다. 그는 유럽과 미국의 하천 관리 사례를 시찰한 후, 자연을 최대한 보존하는 미국식 치수 방식을 이시카리강에 도입하고자 했다. 이는 "자연주의"로 불리며, 대규모 인공 구조물 대신 수방림 조성, 제방 정비, 호안 보강 등을 통해 치수를 진행하고, 방수로를 건설하여 홍수 시 수위를 조절하는 방식이었다.

1910년 이시카리강 치수 사무소가 설치되고 '''이시카리강 제1기 치수 공사 사업'''이 시작되자, 오카자키는 사무소장으로서 자연주의 방식에 따라 생부루(生振)와 시노로(篠路)를 잇는 방수로 공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예상보다 넓은 이탄지 지반 때문에 공사는 난항을 겪고 재정난에 부딪혔다.

지체되는 사업을 촉진하기 위해 1917년, 내무성에서 파견된 인물이 '''오키노 타다오'''였다. 오키노는 요도가와 개수 공사를 성공적으로 이끈 하천 공학의 권위자였으나, 그의 방식은 프랑스식 하천 공학에 기반한 "첩수로주의(捷水路主義)"였다. 이는 하천을 직선화하는 단축 공법(쇼수로)을 통해 물의 흐름을 빠르게 하는 방식으로, 오카자키의 자연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두 사람의 치수 방식은 정면으로 충돌했으나, 요도가와에서의 성공적인 실적을 가진 오키노의 주장이 힘을 얻었다. 결국 1918년 오카자키는 소장직에서 물러났고, 오키노가 후임으로 취임하면서 이시카리강 치수는 첩수로주의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오키노의 주도 하에 대대적인 하천 직선화 공사가 진행되었다. 1922년부터 1936년까지 유바리가와를 치토세가와 대신 이시카리강 본류에 직접 연결하는 신수로 공사가 이루어졌고, 심하게 곡류하던 강은 직선화되어 기존 물길은 구 유바리가와가 되었다. 이시카리강 본류 하류부(이시카리만~에베쓰시)와 삿포로시를 흐르던 토요히라가와 역시 첩수로 공사를 통해 직선화되었다. 1934년 시작된 '''이시카리강 제2기 치수 공사 사업'''에서는 이쿠슈베쓰가와를 호로무이가와 대신 본류에 직접 연결하는 신수로 공사가 추진되었으며, 이는 1921년부터 진행된 비바이가와 신수로 공사와 함께 미카사시이와미자와시 일대의 치수에 기여했다. 본류 상류부 공사는 태평양 전쟁 발발로 중단되었다.

이러한 첩수로 공사로 인해 이시카리강 본류의 길이는 기존 364km(시나노가와와 비슷한 길이)에서 약 100km나 짧아졌다. 하천 직선화는 홍수 물 흐름을 원활하게 하여 침수 피해를 크게 줄였고, 이탄 지대의 배수를 개선하여 이후 대규모 농지 개발의 토대를 마련했다.

3. 2. 전원 개발

이시카리강의 전원 개발은 1909년(메이지 42년) 豊平川|도요히라가와일본어에 정산계발전소가 건설된 것이 처음이다. 본격적인 수력발전 사업은 千歳川|치토세가와일본어에서 시작되었다. 정산계발전소 완공 다음 해인 1910년, 시코츠호 바로 아래에 '''치토세 제1댐·치토세 제1발전소'''가 건설되었다. 이는 당시 일본 본토의 수력발전 사업과 달리 전력회사가 아닌, 도마코마이시에 제지 공장을 건설하던 오지 제지가 주도한 사업이었다. 오지 제지는 공장 가동에 필요한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치토세가와에 4곳의 과 발전소를 건설할 계획을 세웠다. 치토세 제1발전소는 인가출력 25,400kW를 보유하여 당시 일본 최대급의 출력을 자랑했으며, 취수댐인 치토세 제1댐은 일본에서 유일한 "중력식 버트레스댐" 형식이다. 이후 치토세 제2·제3·제4·제5댐 및 발전소가 1941년(쇼와 16년)까지 순차적으로 건설되어 도마코마이시 발전의 기반을 마련했다. 현재 하천법상 댐으로 분류되는 것은 치토세 제3댐과 제4댐이지만, 제1부터 제4까지의 댐·발전소 군은 토목학회 추천 토목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오지 제지는 제지업 외에 전력 사업에도 진출했다. 치토세가와 개발 이후, 雨竜川|우류가와일본어의 풍부한 수량과 유역의 목재 자원에 주목하여 사업 확장을 꾀했다. 1928년(쇼와 3년), 오지 제지는 우류가와 발전 개발을 위해 자회사인 雨竜電力|우류 전력일본어을 설립하고, 홋카이도 제국대학 소유의 삼림을 매입하여 대규모 수력발전소 건설을 계획했다. 이것이 우류 제1댐과 우류 제2댐이며, 우류 발전소를 통해 치토세 발전소의 두 배에 달하는 인가출력 51,000kW의 전력을 생산하고자 했다. 당시 댐 건설 예정지는 교통이 불편한 원시림이었기 때문에, 후카가와에서 댐 현장을 거쳐 나요로를 잇는 후카나선 철도 정비가 우선 진행되었다.

그러나 댐 건설 착수 직후, 일본 정부의 전력 통제 정책에 따라 日本発送電|일본발송전일본어이 설립되면서 우류 전력은 강제로 해산·통합되었다. 이후 건설 사업은 일본발송전 삿포로 지사가 맡아 1943년(쇼와 18년)에 댐과 발전소를 완공했다. 우류 제1댐 건설로 형성된 인공호인 '''朱鞠内湖'''는 완공 후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일본 최대 저수 면적을 가진 인공호로 남아있다. 하지만 우류 제1댐 건설 과정에서는 강제노동과 다코야방 노동과 같은 비인도적인 노동 착취가 만연했으며, 이는 전시 체제하 일본 기업 활동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부정적인 역사로 기록되어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1951년(쇼와 26년) 일본발송전이 분할되면서 홋카이도 지역의 송배전 사업은 '''홋카이도전력'''이 승계했다. 홋카이도전력은 이시카리강 수계의 전력 개발을 지속하여, 1960년대 초반에는 이시카리강 본류 상류에 대규모 댐식 발전소 건설을 계획했다. 가미카와군 가미카와정에 높이 118.2m의 중공중력식 콘크리트댐을 건설하여 유효 저수량 1.41억ton의 거대한 인공호를 만들고 이를 발전에 활용하려는 계획이었다. 이 댐은 계획 초기(1960년)에는 "다이세츠댐"으로 불렸으나, 1964년에는 "'''이시카리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후 이시카리강 수계 종합 개발 계획에 따라 치수 및 농지 관개 목적으로 홋카이도 개발국이 사업에 참여하게 되면서, "이시카리댐 계획"은 1965년 이시카리강 수계 공사 실시 기본 계획에 의해 홋카이도 개발국이 사업 주체가 되는 '''다이세츠댐'''으로 최종 확정 및 계승되었다.

현재 이시카리강 수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발전소는 타키사토 발전소(인가출력 52,000kW)이다. 양수발전소나 출력이 10만 kW를 넘는 초대형 수력발전소는 건설되지 않았다. 하지만 개발은 계속되어 2007년(헤이세이 19년)에는 忠別ダム에 부속된 신츄베츠 발전소(인가출력 10,000kW)가 가동을 시작했다.

3. 3. 이시카리 강 수계 종합 개발 계획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이시카리강의 개발은 1949년 홋카이도 개발청과 그 집행 기관인 홋카이도 개발국의 설치로 본격화되었다. 이 기관들은 기존의 건설성, 운수성(현 국토교통성), 농림성(현 농림수산성)의 기능을 통합하여 효율적인 종합 개발을 목표로 설립되었다. 이듬해인 1950년에는 홋카이도 개발법이 제정되어 '홋카이도 종합 개발 계획' 아래 이시카리강 수계에서 하천 종합 개발 사업과 국영 농업 용수 사업이 추진되었다. 참고로, 홋카이도 개발국은 이후 중앙부처 개편에 따라 국토교통성 산하 기관이 되었다.

전쟁 이전에 시작된 제방 건설 등 치수 사업은 계속되었지만, 전후에는 하천 종합 개발 사업이 주류가 되었다. 이는 연합국군 최고사령관 총사령부(GHQ)의 영향과 테네시강 유역 개발 공사(TVA) 방식을 모델로 한 다목적댐 건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시카리강 수계에서도 다목적댐 건설을 통한 치수 대책이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1951년 이쿠슈베쓰강에서는 홋카이도 최초의 다목적댐인 게이자와 댐 건설이 시작되었다. 이 사업에는 전력개발 주식회사도 참여하여 아슈베쓰강 상류에 아슈베쓰 댐과 키무 댐을 건설하고, 발전 용수를 이쿠슈베쓰강으로 유도하여 인근 탄광 지대에 전력을 공급하고자 했다. 게이자와 댐은 1957년에 완공되었다.

1953년에는 '이시카리강 개수 전체 계획'이 수립되어 전쟁으로 중단되었던 쓰키가타 이북의 제방 정비와 함께, 이시카리강 최대 지류인 우칸치강에 가네야마 댐 건설이 계획되었다. 가네야마 댐은 1959년 착공하여 1967년 완공되었으며, 홋카이도 유일의 중공 중력식 콘크리트 댐이다. 그러나 계획 수립 후에도 1961년1962년 연이어 수해가 발생하자, 1964년 계획이 개정되었다. 이듬해인 1965년 새로운 하천법 시행으로 이시카리강 수계가 일급 수계로 지정되면서 계획은 다시 개정되었다. 이 '이시카리강 수계 공사 실시 기본 계획'에 따라 이시카리강 본류 유일의 다목적댐인 다이세쓰 댐, 마지막 제수로 사업인 사가와 제수로, 그리고 추베쓰 댐, 토요히라쿄 댐, 료가와 댐과 같은 특정 다목적댐 건설이 추진되었다. 홋카이도 역시 보조 다목적댐으로 비바이 댐을 1969년부터 착공하는 등 하천 정비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1975년1981년 이시카리강 유역에서는 대규모 홍수가 발생했다. 특히 1981년 홍수는 침수 면적 61400ha, 침수 가구 약 22,500가구에 달하는 사상 최악의 피해를 남겼으며, 다목적댐이 없던 우류강, 유바리강, 치토세강 유역의 피해가 특히 심각했다. 이에 홋카이도 개발국은 기본 계획을 전면 개정하여, 기존 계획의 2배에 달하는 피크 시 홍수 유량(18,000톤/초)을 새로운 기본 고수위 유량으로 설정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종합적인 치수 대책을 마련했다. 여기에는 다키사토 댐, 조요칸케이 댐과 같은 신규 댐 건설, 게이자와 댐과 오유바리 댐(농림수산성 관리)의 댐 재개발 사업, 유수지(사가와 유수지), 방수로(이시카리 방수로, 치토세강 방수로, 나가야마 신카와), 제수로(우류강 제수로), 제방 축조, 하천 준설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이 포함되었다.

2023년 현재, 오유바리 댐 재개발 사업으로 건설된 유바리 슈파로 댐은 2012년 완공되어 홋카이도 최대 규모의 다목적 댐이 되었다. 홋카이도가 추진한 보조 다목적 댐인 당별 댐과 도쿠토미 댐도 완공되었다. 또한, 치토세강 하천 정비 계획에 따라 조성된 치토세 강 유수지군이 2022년부터 운영을 시작했다.[4] 현재는 게이자와 댐 재개발 사업(신케이자와 댐, 미카사 폰베츠 댐 건설)이 진행 중이다.

3. 4. 시노쓰 지구 이탄지 개발 사업

이시카리강 유역에서 이뤄진 최대 규모의 농지 개발 사업은 '''시노쓰 지구 이탄지 개발 사업'''이다. 이 사업은 전후 식량난 해결을 위한 농지 면적 확대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된 국영농업수리사업 중 하나였다.[3]

사업의 계기는 1954년 8월, 세계은행 농업조사단이 이시카리강 유역을 시찰하면서 시작되었다. 조사단은 여러 후보 지역을 검토한 결과, 비용 대비 효과 측면에서 신시노쓰촌을 중심으로 한 이시카리강 이탄지가 가장 유망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1956년부터 세계은행의 융자를 받아 아이치 용수 사업 등과 함께 본격적으로 사업에 착수하게 되었다.

이탄지는 수분 함량이 높아 농지로 바로 활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장 먼저 이탄지의 물을 빼내는 '내수 배제' 작업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메이지 시대 중기에 시작되었으나 기술적 문제와 전쟁 등으로 중단되었던 '''시노쓰 운하''' 건설이 재개되었다. 단순히 물을 빼내는 것뿐만 아니라 농지 면적 확대를 위한 용수로 기능도 추가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이시카리강 본류의 쓰키가타정에 '''이시카리강 두수공'''을 건설하고, 이곳을 기점으로 시노쓰 운하로 물을 끌어들였다. 또한, 안정적인 용수 공급을 위해 1963년에는 지류인 아토베츠강 상류에 아오야마댐을 건설하여 시노쓰 원야에 관개 용수를 공급했다.

운하 준설 과정은 매우 어려웠으나, 새로운 토목 기술과 기계를 적극적으로 도입했으며 양수장을 설치하여 원활한 용수 공급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착수 후 15년 만인 1971년에 마침내 '시노쓰 지구 이탄지 개발 사업'이 완료됐다. 농업에 부적합했던 광대한 이탄지를 11000ha 규모의 논으로 성공적으로 전환시킨 이 사업은 당시 국내외적으로 선례가 드문 선구적인 농지 개량 사업으로 평가받았다. 현재 이곳은 '키라라 397' 품종 등을 재배하는 홋카이도의 대표적인 곡창지대로 변모하였다.

3. 5. 공공 사업 재검토 - 지토세 강 방수로 중단

이시카리강 수계에서는 메이지 시대부터 다양한 하천 정비가 이루어졌으나, 최근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 증가와 공공 사업 재검토 분위기는 하천 종합 개발 사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시카리강 수계 역시 예외는 아니었으며, 특히 "'''치토세가와 방수로 계획'''(千歳川放水路計画)"이 주목받았다.[3]

치토세가와(千歳川)는 수력 발전 개발이 우선되면서 치수 사업은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었다. 본류에는 댐 건설 적합지가 없었고, 강 주변 지대가 낮아 제방을 쌓아도 홍수 시 쉽게 수해를 입는 하천이었다. 특히 하류부는 경사가 완만하고 지형적으로 이시카리강 본류의 물이 역류하기 쉬워, 홍수 발생 시 장기간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2~3년에 한 번꼴로 침수 피해를 동반한 수해가 발생했으며, 1981년 수해 당시에는 치토세가와 유역의 피해가 가장 컸다.

이미 1980년 지류인 료가와(漁川)에 료가와 댐(漁川ダム)이 완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류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해 방수로 건설이 최선책으로 여겨졌다. 홋카이도 개발국(北海道開発局)은 1982년 『이시카리강 수계 공사 실시 기본 계획』(石狩川水系工事実施基本計画) 전면 개정 시 치토세가와 방수로 계획을 포함시켰다. 이 계획은 약 3만 년 전의 옛 이시카리강 수로를 활용하여 홍수 물을 태평양으로 방류하고, 이시카리강 본류의 물 유입은 수문으로 막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방수로 건설 예정지에 우토나이호(ウトナイ湖)를 포함한 습지가 있어 귀중한 동식물의 서식지였기 때문에, 자연 보호 단체와 치토세가와(千歳川) 어업 협동조합이 강력한 반대 운동을 펼쳤다. 이는 유역의 치수 안전도 향상을 원했던 치토세시(千歳市) 등 유역 지방자치단체와의 대립으로 이어졌다.

사업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홋카이도(北海道)는 1997년 "치토세가와 유역 치수 대책 검토 위원회"(千歳川流域治水対策検討委員会)를 설치하여 찬반 양측의 의견을 조율하고 대책을 검토했다. 그 결과 1999년 7월, 위원회는 사업 주체인 개발국에 방수로 계획 중지를 권고했고, 당시 하천 행정을 담당하던 건설성(建設省, 현 국토교통성)은 "치토세가와 방수로 계획"(千歳川放水路計画)의 중단을 공식 발표했다. 대신 유수지를 함께 설치하는 제방 증강 중심의 종합 치수 대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으며, 이는 2005년 『'''이시카리강 수계 치토세가와 하천 정비 계획'''』(石狩川水系千歳川河川整備計画)에 정식으로 반영되었다. 이러한 치수 방식은 유럽에서 시행되는 대책과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편, 하천에 대한 인위적 개입을 최소화하는 이 방식은 과거 오카자키 분키치(岡崎文吉)가 추구했던 "자연주의" 치수 사상과 맞닿아 있으며, 최근 환경 보호 의식의 고조에 따라 그의 사상이 재평가받고 있다. 국토교통성(国土交通省) 역시 향후 치수 대책의 일환으로 "자연화 공법"(自然化工法)을 검토하고 있어, 이 방식이 홋카이도 외 다른 일급 수계에서도 채택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4. 재해



높낮이 차이가 적은 이시카리 평야를 곡류하며 흐르기 때문에 이시카리강 유역은 만성적으로 홍수에 시달려 왔다. 메이지 시대 이후 하천 개수 공사와 치수 공사가 계속되었지만, 집중호우 등으로 인한 제방 파괴나 범람 피해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다만, 범람 면적은 점차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5]

주요 홍수 피해 사례는 다음과 같다.

연도원인주요 피해 내용
1898년 (메이지 31년) 9월태풍피해 가옥 18,600호, 범람 면적 150000ha, 사망자 112명
1904년 (메이지 37년) 7월태풍, 전선피해 가옥 16,000호, 범람 면적 130000ha
1922년 (다이쇼 11년) 8월태풍피해 가옥 9,200호, 사망자 7명 (범람 면적 불명)
1932년 (쇼와 7년) 8월장마15일간 지속된 장마로 범람 발생.[6] 전년도 흉작과 겹쳐 농촌 지역 피해 심각.
1961년 (쇼와 36년) 7월저기압, 전선피해 가옥 23,300호, 범람 면적 52300ha, 사망자 11명[7]
1962년 (쇼와 37년) 4월해빙유역 전체 침수 가옥 약 1,000호[8]
1962년 (쇼와 37년) 8월태풍 제9호, 전선피해 가옥 41,200호, 범람 면적 66100ha, 사망자 7명[9]
1975년 (쇼와 50년)전선피해 가옥 9,600호, 범람 면적 26000ha, 사망자 5명
1981년 (쇼와 56년)태풍, 전선피해 가옥 20,600호, 범람 면적 29200ha, 사망자 9명
1981년 (쇼와 56년) 8월 상순저기압, 전선, 태풍 제12호 (쇼와 56년 8월 홋카이도 호우)피해 가옥 22,500호, 범람 면적 61400ha, 사망자 2명
1988년 (쇼와 63년) 8월정체전선피해 가옥 2,000호, 범람 면적 6500ha
2001년 (헤이세이 13년) 9월전선, 태풍피해 가옥 70호, 범람 면적 380ha
2016년 (헤이세이 28년) 8월태풍 제7호, 제9호, 제10호, 제11호 (헤이세이 28년 8월 홋카이도 호우)피해 가옥 212호
2018년 (헤이세이 30년) 7월전선범람 발생 (상세 피해 규모 불명)


5. 하천 시설



이시카리강의 하천 시설 개발은 홋카이도 종합 개발 계획에 따라 홋카이도 개발국이 계획하고 시공하며, 크게 관개 사업과 치수 사업으로 구분된다.

관개 사업은 홋카이도 개척사 이래의 농지 개척과 연관된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농림성(현 농림수산성)은 1947년부터 전국적으로 '국영 관개 배수 사업'과 '국영 토지 개량 사업'을 시행했다. 이시카리강 수계에서도 홋카이도 개발국 농업수산부가 유바리, 시노즈 등 여러 지역에서 이 사업들을 추진했으며, 이 과정에서 농림수산성 관할의 다양한 규모의 관개용 댐이 건설되었다.

치수 사업은 건설성(현 국토교통성)의 '하천 종합 개발 계획'에 따라 진행되었다. 홋카이도 개발국 건설부는 이시카리강 수계의 홍수 조절 및 삿포로시, 오타루시, 치토세시, 아사히카와시 등 주요 도시에 상수도를 공급하기 위해 이시카리강 본류와 주요 지류에 특정다목적댐을 건설했다. 이 댐들은 특정다목적댐법에 따라 국토교통대신이 직접 관리하며, 홋카이도 개발청의 관리 대상이 아니다. 이 외에도 홋카이도 건설부가 보조 다목적댐을 건설하기도 했다.

수력 발전오지제지의 치토세강 수계 개발과 홋카이도전력의 이시카리강 소운쿄 부근 및 우류강 개발을 제외하면 소규모에 그치며, 양수 발전과 같은 대규모 개발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수도권이나 간사이 지역에 비해 전력 수요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2023년 현재, 오오유바리 댐 재개발 사업(유바리 슈파로 댐)이 진행 중이며, 홋카이도가 보조 다목적 댐으로 건설한 토베쓰 댐(도우베츠가와)과 토쿠토미 댐(도쿠토미가와)이 완공되었다. 특히 2012년 완공된 유바리 슈파로 댐은 홋카이도 최대 규모이자 일본 최고 수준의 다목적 댐이다. 또한, 치토세강 하천 정비 계획에 따른 치토세강 유수지군 정비가 완료되어 2022년부터 사용되고 있다.[4] 현재는 게이자와 댐 재개발(신게이자와 댐, 미카사 폰베츠 댐)이 진행 중이다.

아래는 이시카리강 수계의 주요 하천 시설 목록이다.

일차
지류명
(본류)
이차
지류명
삼차
지류명
댐 명칭제방 높이
(m)
총 저수
용량
(천 m3)
형식사업자비고
이시카리강다이세쓰 댐86.5m66000k m3록필댐홋카이도 개발국국토교통성 관리
이시카리강소운쿄 댐중력식홋카이도 전력소규모 보
이시카리강아이베쓰 취수보가동보홋카이도 개발국농림수산성 관리
이시카리강스나가와 유수지유수지홋카이도 개발국국토교통성 관리
이시카리강이시카리강 취수보고정보・가동보홋카이도 개발국농림수산성 관리
이시카리강이시카리 방수로방수로홋카이도 개발국국토교통성 관리
아이베쓰강카리누이강아이베쓰 댐39m9500k m3중력식홋카이도
우슈베쓰강오오사와 댐28.9m900k m3어스댐홋카이도
츄베쓰강츄베쓰 댐86m93000k m3복합댐홋카이도 개발국국토교통성 관리
우류강우류 제1 댐45.5m224653k m3중력식홋카이도 전력
우류강타카토마리 댐35m21518k m3중력식홋카이도 개발국, 홋카이도농림수산성 관리
우류강우츠나이강우류 제2 댐35.7m21589k m3중력식홋카이도 전력
우류강호로신타토베쓰강누마다 댐44.9m32900k m3록필댐홋카이도 개발국농림수산성 관리
오시라리카강오시라리카 댐31.8m10979k m3록필댐홋카이도 개발국농림수산성 관리
토쿠토미강토쿠토미 댐79.4m36000k m3중력식홋카이도
소치강가나야마 댐57.3m150450k m3중공중력댐홋카이도 개발국국토교통성 관리
소치강타키사토 댐50m108000k m3중력식홋카이도 개발국국토교통성 관리
소치강노하나미나미 댐30m4800k m3중력식홋카이도 전력
소치강아시베쓰 댐 (홋카이도 전력)16.5m6250k m3중력식홋카이도 전력
소치강아시베쓰강아시베쓰 댐22.8m1598k m3중력식홋카이도 개발국국토교통성 관리
소치강아카마노사와강엘름 댐53.7m3017k m3록필댐홋카이도 개발국농림수산성 관리
비바이강비바이 댐35.5m1500k m3중력식홋카이도
이쿠슈베쓰강게이자와 댐63.6m92700k m3중력식홋카이도 개발국국토교통성 관리, 재개발 중
이쿠슈베쓰강신게이자와 댐76m147300k m3중력식홋카이도 개발국국토교통성 시공, 건설 중
이쿠슈베쓰강혼베쓰강미카사 혼베쓰 댐53m8620k m3중력식홋카이도 개발국국토교통성 시공, 건설 중
유바리강오오유바리 댐67.5m87300k m3중력식홋카이도 개발국농림수산성 관리, 유바리 슈파로 댐 완성에 따라 슈파로 호에 수몰
유바리강유바리 슈파로 댐107m433000k m3중력식홋카이도 개발국, 홋카이도국토교통성, 농림수산성
유바리강시미즈사와 댐25.4m5576k m3중력식홋카이도구 북탄 시공
유바리강가와바타 댐21.4m6155k m3중력식홋카이도 개발국농림수산성 관리
치토세강치토세 제1 댐버트레스댐오지제지소규모 보, 토목유산
치토세강치토세 제2 댐중력식오지제지소규모 보, 토목유산
치토세강치토세 제3 댐23.6m3648k m3중력식오지제지토목유산
치토세강치토세 제4 댐21.9m2298k m3중력식오지제지토목유산
치토세강치토세강 취수보가동보치토세시 상하수도국
치토세강료강료강 댐45.5m15300k m3록필댐홋카이도 개발국국토교통성 관리
토베쓰강아오야마 댐35.5m15127k m3어스댐홋카이도 개발국농림수산성 관리
토베쓰강토베쓰 댐52.7m78400k m3사다리꼴 CSG 댐홋카이도
토요히라강토요히라쿄 댐102.5m47100k m3아치댐홋카이도 개발국국토교통성 관리
토요히라강이치노사와 댐20.3m중력식홋카이도 전력
토요히라강토야마 댐30m1370k m3중력식홋카이도 전력
토요히라강모이와 댐중력식홋카이도 전력소규모 보
토요히라강오타루우치강조산케이 댐117.5m82300k m3중력식홋카이도 개발국국토교통성 관리

5. 1. 주요 관측소

여기서는 4 기준 수위를 갖는 관측소를 기술하고 있다.[10]

하천명
(본류)
관측소명수방단
대기
기준수위
(m)
범람
주의
기준수위
(m)
피난
판단
기준수위
(m)
범람
위험
기준수위
(m)
소재지
이시카리강(石狩川)나카아이베쓰(中愛別)243.30244.50245.10245.40가미카와군 아이베쓰정 나카아이베쓰추오 3
이시카리강(石狩川)아사히바시(旭橋)105.70106.40106.90107.70아사히카와시 도키와도오리 3초메 아사히바시
이시카리강(石狩川)이나(伊納)90.8092.2093.9094.90아사히카와시 에단베쓰정 아자 이나
이시카리강(石狩川)노우우치(納内)57.5058.9060.2061.20후카가와시 노우우치정 8구 1
이시카리강(石狩川)하시모토마치(橋本町)23.2024.6026.5027.00카바토군 신토쓰카와정 추오 89번지
이시카리강(石狩川)나이에다이바시(奈井江大橋)14.0015.8019.7020.00카바토군 우라우스정 키우스나이
이시카리강(石狩川)쓰키가타(月形)10.4012.3015.3015.60이와미자와시 키타무라 토요마사 42-12
이시카리강(石狩川)이시카리오오하시(石狩大橋)4.305.107.808.10에베쓰시 미도리마치 558번지
이시카리강(石狩川)시노로(篠路)2.502.904.604.90삿포로시 기타구 시노로쵸 카미후쿠이

[11]

6. 다리



이시카리강 본류에 건설된 주요 교량 목록은 다음과 같다.

(이 부분은 원본 소스에 교량 목록 정보가 없어 작성할 수 없습니다. 추후 정보가 확인되면 추가될 예정입니다.)

7. 나룻배

8. 어업

개척기부터 이시카리강에서 가을에 돌아오는 연어는 귀중한 수산 자원으로 주목받았다. 메이지 시대 중반에는 연어 어획량이 150만 마리를 넘었으며, 칠성장어 등도 함께 어획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인 1954년에도 약 13만 5천 마리의 연어가 잡혔지만, 점차 공장 폐수에 의한 수질 오염이 심각해지면서 어획량이 급격히 감소했다. 1970년에는 강에서 잡힌 연어가 180마리에 불과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었고, 이로 인해 연어잡이로 생계를 유지하던 어부들 대부분은 다른 직업을 찾아야만 했다.[12]

1970년대 이후 수질 개선 노력이 진행되었고, 연어 자원을 회복하기 위해 치어를 방류하고 수두공 등에 어도를 정비하는 사업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다시 아사히카와 시내까지 연어가 돌아오는 모습이 관찰되고 있다.[13] 또한, 이시카리강의 지류인 센다이가와에는 연어의 고향 센다이 수족관 및 인디언 물레방아가 설치되어 있어, 가을부터 겨울에 걸쳐 돌아와 잡히는 연어를 직접 관찰할 수 있다.

9. 문학

홋카이도 당별정 출신 작가 본조 무쓰오는 장편소설 『'''이시카리가와'''』(いしかりがわ|이시카리가와일본어)를 썼다. 이 소설은 보신 전쟁에서 패배한 센다이 이와데야마 지번의 다테 쿠니나오 주종이 홋카이도로 건너가 이시카리 당별 지역의 개척에 힘쓰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본조 무쓰오는 폐결핵과 싸우면서 이 작품을 완성했으며, 발표 두 달 후에 세상을 떠났다.

참조

[1] 웹사이트 ja:石狩川 https://web.archive.[...] Ministry of Land,Infrastructure and Transport and Tourism Hokkaido Regional Development Bureau 2009-05-04
[2] 웹사이트 日本の川 - 北海道 - 石狩川 - 国土交通省水管理・国土保全局 https://www.mlit.go.[...] 2019-09-06
[3] 간행물 授業で使える当館所蔵地図 https://www.library.[...] 岐阜県立図書館 2021-04-09
[4] 웹사이트 令和2年度から千歳川遊水地群が供用開始 https://www.hkd.mlit[...] 国土交通省 2023-10-27
[5] 웹사이트 石狩川の主な災害 開拓当初から水害と戦ってきた北海道 https://www.mlit.go.[...] 国土交通省 2018-07-03
[6] 뉴스 二十日余降やまず、浸水一万戸 東京朝日新聞 1932-09-11
[7] 서적 日本災害史事典 1868-2009 日外アソシエーツ 2010-09-27
[8] 서적 日本災害史事典 1868-2009 日外アソシエーツ
[9] 서적 日本災害史事典 1868-2009 日外アソシエーツ
[10] 웹사이트 川の防災情報:河川の水位観測所一覧表 道央 http://www.river.go.[...] 国土交通省 2016-08-21
[11] 웹사이트 川の防災情報:河川の水位観測所一覧表 道北 http://www.river.go.[...] 国土交通省 2016-08-21
[12] 뉴스 石狩川にサケは戻らす 汚染進み漁師は転職 「豊漁年」の今年も不振 朝日新聞 1970-11-04
[13] 웹사이트 石狩川上流のサケ遡上の状況について https://www.hkd.mlit[...] 北海道開発局 旭川開発建設部 2018-12-03
[14] 백과사전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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