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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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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잠비아는 아프리카 남부에 위치한 내륙 국가로, 10만 년 전부터 인류가 거주한 흔적이 발견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000년경부터 스와힐리-아랍 노예 무역상들이 잠비아 지역으로 들어왔으며, 1800년대에는 유럽인들이 탐험을 시작했다. 1888년 영국 남아프리카 회사가 광물 채굴권을 얻어 식민 지배가 시작되었고, 1953년 로디지아 니아살랜드 연방에 편입되었다가 1964년 케네스 카운다의 지도하에 잠비아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독립 이후 카운다는 일당제를 수립했으나, 1991년 다당제 민주주의로 전환되었고, 이후 여러 차례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정치 체제는 대통령 중심의 다당제 공화국이며, 10개의 주로 행정 구역이 나뉘어져 있다. 주요 민족은 반투족이며, 영어가 공용어로 사용된다. 기독교가 국교이며, 다양한 종교가 공존한다.

잠비아의 경제는 구리 수출에 크게 의존하며, 농업과 관광도 중요한 산업이다. 1970년대 구리 가격 하락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으며, 현재도 빈곤과 채무 불이행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2020년 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졌으며, 2021년 대통령 선거에서 하카인데 히치레마가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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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비아 - [지명]에 관한 문서
지도 정보
잠비아 (정사영)
잠비아 지도
기본 정보
공식 국명잠비아 공화국
일반 이름잠비아
잠비아 국기
국기
잠비아 국장
국장
국가 표어하나의 잠비아, 하나의 국가
국가Stand And Sing For Zambia Proud and Free
공용어영어
지역 언어벰바어 (28.5%)
니안자어 (13.8%)
통가어 (잠비아와 짐바브웨) (11.4%)
툼부카어 (10.6%)
로지어 (5.5%)
체와어 (4.5%)
센가어 (3.0%)
룬다어 (1.9%)
카오데어 (1.9%)
랄라-비사어 (1.8%)
람바어 (1.8%)
영어 (1.7%)
루발레어 (1.5%)
맘브웨어 (1.3%)
렌제어 (1.2%)
남왕가어 (1.2%)
비사 (1.0%)
우시어 (0.9%)
일라어 (0.7%)
음분다어 (0.7%)
응고니어 (0.7%)
툼부카-센가어 (0.7%)
룽구어 (0.6%)
토카-레야어 (0.5%)
기타 (4.7%)
민족 구성벰바족 (19.0%)
통가족 (잠비아와 짐바브웨) (13.6%)
툼부카족 (7.5%)
체와족 (6.0%)
로지족 (5.7%)
센가족 (5.3%)
응고니족 (3.0%)
랄라족 (3.1%)
카온데족 (3.9%)
남왕가족 (2.8%)
룬다족 (북부) (2.6%)
맘브웨족 (2.5%)
루발레족 (2.2%)
람바족 (2.4%)
우시족 (1.9%)
비사족 (1.6%)
렌제족 (1.6%)
음분다족 (1.2%)
룬다족 (루아풀라) (0.9%)
센가족 (0.9%)
일라족 (0.8%)
룽구족 (0.8%)
타브와족 (0.7%)
솔리족 (0.7%)
쿤다족 (0.7%)
응굼보족 (0.6%)
치싱가족 (0.5%)
초크웨족 (0.5%)
응코야족 (0.5%)
기타 민족 (5.4%)
주요 인종 (0.8%)
분류되지 않은 인종 (0.4%)
민족 구성 연도2010년
종교기독교 (국교)
수도루사카
최대 도시루사카
면적752,617 km²
면적 순위38위
수역 비율1%
인구 추정20,216,029 명
인구 추정 연도2023년
인구 순위64위
인구 밀도17.2 명/km²
인구 밀도 순위191위
시간대CAT
UTC 오프셋+2
통화잠비아 콰차
통화 코드ZMW
국제 전화 코드+260
국가 도메인.zm
차량 통행 방향좌측 통행
날짜 형식dd/mm/yyyy
정치
정부 형태단일 국가 대통령제 공화국
대통령하카인데 히칠레마
부통령무탈레 날루망고
국회의장넬리 무티
대법원장뭄바 말릴라
입법부잠비아 국회
경제
GDP (PPP)$836억 8700만 (증가)
GDP (PPP) 순위100위
GDP (PPP) 연도2023년
1인당 GDP (PPP)$4,068 (증가)
1인당 GDP (PPP) 순위155위
명목 GDP$295억 3600만 (감소)
명목 GDP 순위113위
명목 GDP 연도2023년
1인당 명목 GDP$1,435 (감소)
1인당 명목 GDP 순위159위
지니 계수51.5 (감소)
지니 계수 연도2022년
사회
인간 개발 지수 (HDI)0.569 (감소)
HDI 순위153위
HDI 연도2022년
역사
독립영국으로부터 독립
북서 로디지아1890년 6월 27일
바로칠랜드-북서 로디지아1899년 11월 28일
북동 로디지아1900년 1월 29일
북부 로디지아 합병1911년 8월 17일
로디지아 및 니아살랜드 연방1953년 8월 1일
잠비아 공화국1964년 10월 24일
현행 헌법2016년 1월 5일

2. 역사

잠비아의 역사는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10만 년 전부터 시작된다. 루사카 북부 카브웨에서는 인간 거주 증거가 발견되었다. 1000년경 스와힐리인-아랍 노예무역상들이 동아프리카 해안에서 잠비아로 침투했다.

1798년 포르투갈인이 처음으로 이 지역을 횡단했다. 1850년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이 지역을 바로첼란드라고 불렀다. 1880년대 영국세실 로즈영국 남아프리카 회사를 통해 통치권을 확립, 1890년 포르투갈군을 철수시켰다.

1898년 최초의 유럽인 이민 후, 1900년 바로체랜드 북서 로디지아 입법 의회가 열리고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1924년 영국은 북로디지아 보호령으로 직할 식민지화했다. 1925년 구리 광맥 발견으로 개발이 가속화, 1930년 아프리카인 구리 광산 노동자는 23,000명에 달했다.

1953년 북로디지아는 남로디지아(짐바브웨), 니아살랜드(말라위)와 로디지아 니아살랜드 연방으로 개편되었으나, 케네스 카운다 중심의 흑인 민족주의자들의 반발로 1963년 붕괴되었다.

1964년 10월 24일, 북로디지아는 영국에서 독립, 잠비아 공화국이 되었고, 케네스 카운다가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1972년 UNIP 외 정당 금지로 일당제 국가가 되었다. 카운다는 1973년 3선에 성공, 독재적 지위를 확립했다.

1990년 카운다 반대 폭동[61][62]과 쿠데타 시도 후, 1991년 다당제 민주주의가 복원되었으나, 프레더릭 칠루바의 다당제 민주주의 운동(MMD)에 패배, 실각했다.

2000년대 경제는 안정화, 2006년-2007년 한 자릿수 인플레이션, GDP 성장, 금리 하락, 무역량 증가를 보였다. 이는 광산업 투자와 구리 가격 상승 덕분이었다.

2021년 하카인데 히치레마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193]

2. 1. 선사 시대

잠비아의 역사는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10만 년 전부터 인간이 거주했다는 증거가 루사카 북부 지역인 카브웨에서 발견되었다.[15] 잠베지 계곡과 칼람보 폭포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 작업은 인류 문화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칼람보 폭포 근처의 고대 야영지 유적에서 발견된 도구들은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3만 6천 년 이상 전의 것으로 밝혀졌다.

브로큰 힐 인(Broken Hill Man, 또는 카브웨 인(Kabwe Man)으로도 알려짐)의 화석 두개골 유적은 기원전 30만 년에서 12만 5천 년 사이의 것으로 추정되며, 이 지역에 초기 인류가 거주했음을 보여준다.[15] 브로큰 힐 인은 잠비아의 카브웨 지구에서 발견되었다.

2. 2. 코이산족과 바트와족

현대 잠비아에는 서기 300년경까지 코이산족과 바트와족이 거주했으나, 그 이후 반투족의 이동으로 반투족이 이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16] 코이산족은 동아프리카에서 기원하여 약 15만 년 전에 남쪽으로 퍼져 나간 것으로 여겨집니다. 트와족은 카푸에 습지 주변에 살았던 카프웨 트와족과 루칸가 습지 주변에 살았던 루칸가 트와족의 두 그룹으로 나뉘었습니다.[17] 므웰라 암벽화, 뭄브와 동굴, 나치쿠푸 동굴과 같이 잠비아에 있는 많은 고대 암벽화 예술 작품들은 이러한 초기 수렵 채집인들에게 기인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18] 코이산족, 특히 트와족은 중앙 및 남부 아프리카 전역의 농업을 하는 반투족과 후원-의뢰인 관계를 형성했지만, 결국 반투족에 의해 쫓겨나거나 흡수되었습니다.

2. 3. 반투족의 정착

반투족 (아반투(Abantu), 사람이라는 뜻)은 동아프리카, 남아프리카, 중앙아프리카 대부분 지역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매우 크고 다양한 민족언어 집단이다. 잠비아는 중앙아프리카, 남아프리카, 그리고 아프리카 대호수 지방의 교차로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현대 잠비아인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역사는 이 세 지역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세 지역의 많은 역사적 사건들은 동시에 일어났다. 따라서 잠비아의 역사는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완벽하게 연대순으로 제시될 수 없다. 현대 잠비아 사람들의 초기 역사는 구전 기록, 고고학, 그리고 주로 아프리카인이 아닌 사람들이 남긴 기록에서 추론된다.[19]

최초의 반투족은 아프리카 대호수를 경유하는 동쪽 루트를 통해 잠비아에 왔다. 서기 1천년경에 도착한 이들 중에는 바일라족, 남망와족 등과 관련된 통가족(Ba-Tonga, "Ba-"는 "남자들"을 의미함)이 있었는데, 이들은 짐바브웨 근처 잠비아 남부에 정착했다. 바통가족의 구전에 따르면 그들은 "큰 바다" 근처 동쪽에서 왔다고 한다.[23] 그 후 바툼부카족이 잠비아 동부와 말라위에 정착하면서 그들과 합류했다.

초기 반투족은 큰 마을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길렀다. 특히 화전 농업으로 인해 토양이 고갈되면 자주 이동해야 했다. [23] 잠비아 남부에 정착한 초기 유럽 선교사들은 이들의 자급자족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한 선교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24]

“[만약] 전쟁, 사냥, 가정용 무기가 필요하다면, [통가] 사람은 언덕으로 가서 철광석을 찾을 때까지 판다. 그는 그것을 제련하여 얻은 철로 도끼, 괭이, 기타 유용한 도구를 만든다. 그는 나무를 태워 자기 대장간을 위한 숯을 만든다. 그의 풀무는 동물의 가죽으로 만들어지고 파이프는 점토 타일이며, 모루와 망치도 그가 얻은 철 조각이다. 그는 주조, 용접, 성형을 하고 일반 대장장이의 모든 작업을 수행한다.”[24]

이들은 잠비아 남부의 인곰베 일레데 유적지에서 짐바브웨 대유적 출신의 칼랑가족/쇼나족 상인, 동아프리카 스와힐리 해안 출신의 스와힐리족 상인들과 무역을 했다. 인곰베 일레데는 짐바브웨 대유적 지배자들에게 소팔라와 같은 스와힐리 항구 도시들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무역 기지 중 하나였다.

인곰베 일레데에서는 직물, 구슬, 금, 팔찌 등이 거래되었다. 이 품목들 중 일부는 오늘날 콩고민주공화국 남부와 킬와 키시와니에서, 다른 것들은 인도, 중국 및 아랍 세계에서 왔다.[25] 16세기에는 포르투갈인들이 아프리카 상인들과 합류했다.[26] 카미와 무타파 등 다른 칼랑가족/쇼나족 왕국들과의 무역 경쟁이 심화되면서 짐바브웨 대유적은 쇠퇴했고, 이는 인곰베 일레데의 종말로 이어졌다.

두 번째 대규모 반투족 정착은 콩고 분지를 통과하는 서쪽 경로를 따라 이동한 여러 부족 집단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들은 오늘날 콩고민주공화국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으며, 현대 잠비아인 대다수의 조상이다.[27]

2. 3. 1. 반투족의 기원

잠비아와 짐바브웨의 바톤가 여성 어부들. 여성들은 많은 아프리카 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고 계속해서 하고 있다.


반투족은 원래 오늘날 카메룬나이지리아 부근의 서아프리카중앙아프리카에 살았다.[20] 약 5000년 전, 반투족은 수천 년에 걸쳐 아프리카 대륙 대부분으로 확장을 시작했다. 이 사건은 반투 확산으로 불린다.[21] 이것은 역사상 가장 큰 인류 이동 중 하나였다. 반투족은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에 철기 기술을 처음으로 가져온 것으로 여겨진다. 반투 확산은 주로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일어났다. 하나는 콩고 분지[22]를 통한 서쪽 경로이고, 다른 하나는 아프리카 대호수 지방을 통한 동쪽 경로이다.[22]

2. 3. 2. 최초의 반투족 정착

최초의 반투족은 아프리카 대호수를 경유하는 동쪽 루트를 통해 잠비아에 왔다. 서기 1천년경에 도착한 이들 중에는 바일라족, 남망와족 등과 관련된 통가족(Ba-Tonga, "Ba-"는 "남자들"을 의미함)이 있었는데, 이들은 짐바브웨 근처 잠비아 남부에 정착했다. 바통가족의 구전에 따르면 그들은 "큰 바다" 근처 동쪽에서 왔다고 한다.[23] 그 후 바툼부카족이 잠비아 동부와 말라위에 정착하면서 그들과 합류했다.

이 초기 반투족은 큰 마을에 살았다. 족장이나 지도자 밑에 조직된 단위가 없었고, 공동체로 일하며 농작물 경작을 위한 준비 기간에 서로 도왔다. 화전 농업 기술로 인해 토양이 고갈됨에 따라 마을은 자주 이동했다. 사람들은 또한 많은 소떼를 길렀는데, 이는 그들의 사회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23]

짐바브웨 대유적의 유적. 이 왕국의 칼랑가족/쇼나족 지배자들은 인곰베 일레데에서 무역을 장악했다.


잠비아의 초기 반투 공동체는 매우 자급자족적이었다. 잠비아 남부에 정착한 초기 유럽 선교사들은 이 반투 사회의 독립성을 주목했다. 한 선교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24]

“[만약] 전쟁, 사냥, 가정용 무기가 필요하다면, [통가] 사람은 언덕으로 가서 철광석을 찾을 때까지 판다. 그는 그것을 제련하여 얻은 철로 도끼, 괭이, 기타 유용한 도구를 만든다. 그는 나무를 태워 자기 대장간을 위한 숯을 만든다. 그의 풀무는 동물의 가죽으로 만들어지고 파이프는 점토 타일이며, 모루와 망치도 그가 얻은 철 조각이다. 그는 주조, 용접, 성형을 하고 일반 대장장이의 모든 작업을 수행한다.”[24]

이 초기 반투 정착민들은 잠비아 남부의 인곰베 일레데(치통가어로 "잠자는 소"를 의미하는데, 쓰러진 바오밥 나무가 소를 닮았기 때문이다) 유적지에서 무역에 참여했다. 이 무역 현장에서 그들은 짐바브웨 대유적 출신의 많은 칼랑가족/쇼나족 상인들과 동아프리카 스와힐리 해안 출신의 스와힐리족 상인들을 만났다. 인곰베 일레데는 짐바브웨 대유적 지배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무역 기지 중 하나였으며, 다른 곳으로는 소팔라와 같은 스와힐리 항구 도시들이 있었다.

인곰베 일레데에서 거래된 상품에는 직물, 구슬, 금, 팔찌가 포함되었다. 이러한 품목 중 일부는 오늘날 콩고민주공화국 남부와 킬와 키시와니에서 온 것이었고, 다른 것들은 인도, 중국 및 아랍 세계에서 온 것이었다.[25] 아프리카 상인들에게는 16세기에 포르투갈인들이 합류했다.[26]

카미와 무타파와 같은 다른 칼랑가족/쇼나족 왕국들과의 무역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짐바브웨 대유적의 쇠퇴는 인곰베 일레데의 종말을 의미했다.

2. 3. 3. 두 번째 반투족 정착

두 번째 잠비아로의 대규모 반투족 정착은 콩고 분지를 통과하는 반투족 이동의 서쪽 경로를 따라 이동한 것으로 여겨지는 여러 부족 집단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들 반투족은 오늘날 콩고민주공화국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으며, 현대 잠비아인 대다수의 조상이다.[27]

엠바족(Bemba people) 또는 아바엠바(AbaBemba)가 콩고 왕국의 바콩고(BaKongo) 통치자 므웨네 콩고 8세 엠바(Mwene Kongo VIII Mvemba)를 통해 고대부터 강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일부 있지만, 이는 잘 문서화되어 있지 않다.

2. 4. 식민지 시대

잠비아 지역에는 10만 년 전부터 인간이 거주했다는 증거가 발견되었으며, 1000년경부터 스와힐리-아랍 노예무역상들이 잠비아 지역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1798년 포르투갈인이 처음으로 이 지방을 횡단하였다.

1850년 이 지역을 탐험한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이 지방을 바로첼란드라고 불렀다. 1880년대 유럽 열강에 의한 아프리카 분할이 진행되면서 영국세실 로즈 주도로 영국 남아프리카 회사를 통해 이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확립했다. 1890년 영국포르투갈에 최후통첩을 보내 현재 잠비아, 짐바브웨, 말라위에 해당하는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포르투갈군을 철수시켰다.

1898년 최초의 유럽인 이민자가 온 후, 1900년에 바로체랜드 북서 로디지아 입법 의회가 열렸고, 이 지역은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1924년 영국은 이 지역을 북로디지아 보호령으로 직할 식민지화했다. 1925년 구리의 대광맥이 발견되면서 개발이 가속화되었고, 1930년에는 아프리카인 구리 광산 노동자 수가 23,000명에 달했다.

북로디지아는 1953년 남로디지아(현재의 짐바브웨), 니아살랜드(현재의 말라위)와 함께 로디지아 니아살랜드 연방으로 개편되었으나, 케네스 카운다를 중심으로 하는 흑인 민족주의자들의 반발로 1963년에 붕괴되었다.

2. 4. 1. 유럽인의 도래

1864년 촬영된 스코틀랜드 탐험가이자 선교사인 데이비드 리빙스턴


이 지역을 방문한 초기 유럽인 중 한 명은 18세기 후반 포르투갈 탐험가 프란시스쿠 드 라세르다였다. 라세르다는 포르투갈령 모잠비크에서 잠비아 카젬베 지역으로 탐험대를 이끌었으며(남아프리카를 해안에서 해안까지 처음으로 횡단하는 것을 목표로),[44] 1798년 탐험 중 사망했다. 그 후 탐험대는 그의 친구 프란시스쿠 핀토가 이끌었다.[45]

19세기에 다른 유럽 방문객들이 뒤따랐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데이비드 리빙스턴으로, 그는 "기독교, 상업, 문명"을 통해 노예 무역을 종식시키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855년 잠베지 강의 장엄한 폭포를 처음 본 유럽인이었으며, 이를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따서 빅토리아 폭포라고 명명했다. 그는 "이토록 아름다운 광경은 천사들이 비행 중에 바라보았을 것이다."라고 묘사했다.[46] 현지에서는 이 폭포를 로지 또는 코롤로 방언으로 ""모시-오아-투냐""(천둥 소리 나는 연기)라고 부른다. 폭포 근처에 있는 리빙스턴 마을은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그의 여정에 대한 대대적인 보도는 1873년 그의 사망 후 유럽 방문객, 선교사 및 상인들의 물결을 불러일으켰다.[47]

1888년, 세실 로즈가 이끄는 영국 남아프리카 회사(BSA 회사)는 로지족의 최고 족장인 로지(바-로트세)의 리퉁가로부터 나중에 바로트실랜드-노스웨스턴 로디지아가 된 지역의 광물 채굴 권리를 획득했다.[48] 동쪽에서는 1897년 12월 앙고니 또는 응고니(원래 줄루랜드 출신)의 일부가 엠페제니 왕의 아들인 찐코의 지휘하에 반란을 일으켰지만, 진압되었고,[49] 엠페제니는 팍스 브리타니카를 받아들였다.

그 지역은 그 후 노스이스턴 로디지아로 알려지게 되었다. 1895년 로즈는 그의 미국 정찰대 프레드릭 러셀 번햄에게 광물을 찾고 지역의 강 항해를 개선할 방법을 찾도록 요청했고, 번햄은 이 여정 중 카푸에 강을 따라 주요 구리 매장량을 발견했다.[50] 노스이스턴 로디지아와 바로트실랜드-노스웨스턴 로디지아는 1911년까지 별도의 단위로 관리되다가 영국의 보호령인 북로디지아를 형성하기 위해 합병되었다. 1923년 영국 정부가 회사의 차터를 갱신하지 않기로 결정한 후 BSA 회사는 북로디지아에 대한 통제권을 영국 정부에 양도했다.

2. 4. 2. 영국 남아프리카 회사

1850년 이 지역을 탐험한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이 지방을 바로첼란드라고 불렀다. 알루이족은 그 후 1864년 코롤로족을 격파한 뒤 로지족이라 자칭하고 왕국을 마로지라고 칭하며 재건하였다. 그 때 추장(국왕)인 레와니카는 S. 로즈의 영국 남아프리카 회사와 협정을 맺고 광업권 등을 주었다. 영국 남아프리카 회사는 그 광대한 지배 지역을 로즈의 이름을 따 로디지아라 불렀으나, 1911년 남·북 로디지아의 통치를 분리, 북로디지아는 1953년에 영국 보호령이 되었다.

2. 4. 3. 영국의 식민 통치

1850년 이 지방을 탐험한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이 지방을 바로첼란드라고 불렀다. 알루이족은 그 후 1864년 코롤로족을 격파한 뒤 로지족이라 자칭하고 왕국을 마로지라고 칭하여 재흥(再興)하였다. 그 때 추장(국왕)인 레와니카는 세실 로즈영국 남아프리카 회사와 협정을 맺고 광업권 등을 주었다. 영국 남아프리카 회사는 그 광대한 지배지역을 로즈의 이름을 따 로디지아라 불렀으나, 1911년 남·북로디지아의 통치를 분리, 북로디지아는 1953년에 영국 보호령이 되었다.

그 후 남로디지아(현재의 짐바브웨), 니아살랜드(현재의 말라위) 사이에 연방화 움직임이 일어나 1945년에 성립된 중앙 아프리카 심의회를 거쳐 1953년 8월 로디지아 니아살랜드 연방이 성립하였다. 남·북 로디지아는 통화를 비롯하여 철도·항공사업·카리바댐 건설 등 많은 공동사업으로 결합을 굳혀 갔으나, 케네스 카운다가 지도하는 ‘잠비아 아프리카민족회의(ZANC)’는 남로디지아의 백인정권을 위한 연방에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1959년 ZANC는 탄압에 의해 해산되었으나 그 대신 ‘통일민족독립당(UNIP)’이 성립되어, 그 범아프리카적 저항운동을 계속한 결과 1964년 말에 연방은 해체되고, 북로디지아는 1965년 1월 내정 자치권을 획득하였다. 영국 남아프리카 회사의 광업권을 북로디지아 정부에 이양하는 교섭을 거쳐 총리 카운다가 이끄는 통합민주독립당(UNIP) 정권은 1964년 10월 24일 잠비아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하였다.[52]

1962년 10월과 12월에 실시된 2단계 선거 결과, 입법평의회에 아프리카계 다수가 진출하였고, 두 아프리카 민족주의 정당 간 불안정한 연정이 구성되었다. 평의회는 북부 로디지아의 연방 탈퇴와 새로운 헌법에 따른 완전한 내부 자치, 그리고 더욱 광범위하고 민주적인 선거권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국민의회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1963년 12월 31일 연방이 해체되었고, 1964년 1월 카운다는 북부 로디지아 총리직을 위한 유일한 선거에서 승리했다. 식민지 주지사인 에벌린 혼(Sir Evelyn Hone) 경은 카운다와 매우 가까운 사이였으며 그에게 총리직에 출마할 것을 촉구했다. 곧이어 룸파 봉기로 알려진, 앨리스 렌시나가 주도한 북부 지역 봉기가 발생했는데, 이는 카운다가 국가 지도자가 된 후 처음 겪은 내부 갈등이었다.

2. 4. 4. 로디지아 니아살랜드 연방

남로디지아(현재의 짐바브웨)와 니아살랜드(현재의 말라위)에서 연방 결성 움직임이 일어나, 1945년 중앙아프리카 심의회가 성립되었다. 이를 거쳐 1953년 8월 로디지아 니아살랜드 연방이 성립하였다.[184] 남·북 로디지아는 통화, 철도, 항공 사업, 카리바 댐 건설 등 여러 공동 사업을 통해 결속을 다져갔다. 그러나 케네스 카운다가 이끄는 '잠비아 아프리카민족회의(ZANC)'는 남로디지아의 백인 정권을 위한 연방에 강력히 반대하였다.[184]

1959년 ZANC는 탄압으로 해산되었으나, '통일민족독립당(UNIP)'이 대신 결성되어 범아프리카적 저항 운동을 이어갔다. 그 결과 1964년 말 연방은 해체되었고, 북로디지아는 1965년 1월 내정 자치권을 얻었다.[184]

2. 5. 독립

1850년 이 지방을 탐험한 D.리빙스턴은 이 지방을 바로첼란드라고 불렀다. 알루이족은 그 후 1864년 코롤로족을 격파한 뒤 로지족이라 자칭하고 왕국을 마로지라고 칭하여 재흥(再興)하였다. 그 때 추장(국왕)인 레와니카는 S.로즈의 영국 남아프리카 회사와 협정을 맺고 광업권 등을 주었다. 영국 남아프리카 회사는 그 광대한 지배지역을 로즈에 연유하여 로디지아라 불렀으나 1911년 남·북로디지아의 통치를 분리, 북로디지아1953년에 영국 보호령이 되었다.[184]

그 후 남로디지아(현재의 짐바브웨), 니아살랜드(현재의 말라위) 사이에 연방화(聯邦化)의 움직임이 일어나 1945년에 성립된 중앙 아프리카 심의회(審議會)를 거쳐 1953년 8월 로디지아 니아살랜드 연방이 성립하였다. 남·북 로디지아는 통화를 비롯하여 철도·항공사업·카리바댐 건설 등 많은 공동사업으로 결합을 굳혀 갔으나 케네스 카운다가 지도하는 ‘잠비아 아프리카민족회의(ZANC)’는 남로디지아의 백인정권을 위한 연방에 강력하게 반대하였다.[184]

1959년 ZANC는 탄압에 의해 해산되었으나 그 대신 ‘통일민족독립당(UNIP)’이 성립되어, 그 범(汎)아프리카적 저항운동을 계속한 결과 1964년 말에 연방은 해체되고, 북로디지아는 1965년 1월 내정 자치권을 획득하였다. 영국 남아프리카 회사의 광업권을 북로디지아 정부에 이양하는 교섭을 거쳐 총리 카운다가 이끄는 통합민주독립당(UNIP) 정권은 1964년 10월 24일 잠비아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하였다.[184]

2. 6. 독립 이후

1964년 10월 24일, 북로디지아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잠비아 공화국이 되었고, 통합민주독립당(UNIP)의 케네스 카운다가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1972년 신헌법 제정으로 UNIP 외의 정당이 금지되어 일당제 국가가 되었다. 카운다는 1973년 대통령 선거에서 3선에 성공하며 독재적 지위를 확립했다.

카운다는 짐바브웨 애국전선 게릴라의 (남부) 로디지아 침입을 지지하여 1973년 국경이 폐쇄되기도 했다.[55] 그러나 카리바 수력발전소는 국가의 전력 수요를 충족할 만한 충분한 용량을 제공했다.

1965년 로디지아 부시 전쟁 당시 지정학적 상황 – 민족주의자에게 우호적인 국가는 주황색으로 표시됨.


1978년 에어 로디지아 825편이 짐바브웨 인민혁명군(ZIPRA)에 의해 격추되자, 로디지아는 개틀링 작전으로 보복, 잠비아 내 조슈아 므코모의 게릴라 기지를 공격했다.[56]

1975년 중국의 지원으로 탄자니아 잠비아 철도(타자라)가 완공되어 남아프리카와 포르투갈령 앙골라를 통과하는 철도에 대한 의존도를 줄였다. 탄잠 도로와 타자마 석유 파이프라인도 건설되었다.

1970년대 후반, 모잠비크와 앙골라가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하고, 로디지아는 랭커스터 하우스 협정에 따라 다수 통치를 수용했다.[57] 그러나 나미비아 독립 전쟁과 난민 유입,[58] 벵겔라 철도 폐쇄, 남아프리카 국방군의 공격[59] 등으로 어려움은 계속되었다.

1989년 모시-오아-투냐 국립공원과 빅토리아 폭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되었다.

1990년 카운다에 반대하는 폭동(1990년 잠비아 폭동)이 격화되어 많은 시위대가 사망했다.[61][62] 쿠데타 시도 이후, 카운다는 1991년 다당제 민주주의를 복원하고, 다당제 선거에서 프레더릭 칠루바가 이끄는 다당제 민주주의 운동(MMD)에 패배하여 실각했다.

2000년대 경제는 안정을 되찾았고, 2006년에서 2007년 사이 한 자릿수 인플레이션, 실질 GDP 성장률 증가, 금리 하락, 무역량 증가를 보였다. 이는 광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와 세계 구리 가격 상승 덕분이었다.

독립 직후 잠비아는 국제연합에 가입하여 남아프리카 공화국과의 경제 관계를 단절하고 로드지아에 대한 경제 봉쇄에 참여했다. 1969년 카운다 정권은 외자계 구리 기업의 국유화 정책을 추진했고, 1970년에는 탄잠 철도 건설이 조인되었다. 같은 해, 카운다는 통일민족독립당(UNIP)에 의한 일당제를 수립했다.

1973년 카운다는 로디지아와의 국경을 완전히 봉쇄하고, 구리 기업 국유화를 더욱 추진했다. 1974년 카네이션 혁명 이후 루사카 협정을 중재했다. 1976년 앙골라 인민해방운동(MPLA) 정권을 승인했다. 1979년에는 수도 루사카에서 영국 연방 정상회의가 개최되었다.[185]

1970년대 후반 구리 가격 하락은 잠비아 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고, 1980년대 잠비아 경제는 계속 어려웠다.[187] 1986년 폭동이 발생했고, 1989년에는 다당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으며, 1990년 폭동을 거쳐 다당제 민주주의 운동(MMD)이 결성되었다. 1991년 다당제 도입 선거에서 여당 UNIP는 MMD에 패배하고 카운다 정권은 막을 내렸다.[188]

칠루바 대통령은 경제 자유화를 추진했지만 경제는 호전되지 않았고, 부정부패가 만연했으며 쿠데타가 시도되는 등 정치는 불안정해졌다.

2002년 MMD에서 레비 무와나와사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무와나와사 대통령은 2006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189] 이후 2008년에 사망했고, MMD의 루피야 밴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당선되었다.[190] 2011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마이클 사타 후보가 당선되어 정권 교체가 일어났지만, 사타 대통령 또한 2014년 런던에서 사망했다. 가이 스콧이 임시 대통령에 취임한[191] 후, 에드가 루응이 2015년 제6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2020년 잠비아 정부는 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졌다.[192]

2021년 대통령 선거에서 루응은 패배했고, 국가 개발 통일당의 하카인데 히치레마가 당선되었다.[193]

3. 정치

잠비아의 정치는 대통령이 국가 원수이자 정부 수반을 겸하는 다원적 다당제 대의민주주의 대통령제 체제이다. 정부는 행정권을 행사하고, 입법권은 정부와 의회 모두에게 있다.

루사카에 있는 잠비아 국회의사당 건물


잠비아는 1964년 10월 독립과 동시에 공화국이 되었다. 1991년부터 다당제가 허용되었다. 2018년 기준 여당은 애국전선(PF)이며, 최대 야당은 국가개발통일당(UPND)이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잠비아의 대통령은 마이클 사타였으나, 2014년 10월 28일에 사망했다.[63] 사타 사망 후, 부통령 가이 스콧이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다. 2015년 1월 22일에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고, 에드가 차그와 룬구가 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64] 2016년 8월 2016년 잠비아 총선에서 에드가 룬구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했지만, 야당은 부정행위 의혹을 제기했다.[65]

2021년 총선에서는 하카인데 히칠레마가 59%의 득표율로 승리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2021년 8월 24일에 취임했다.[66][69]

잠비아는 공화제, 대통령제를 채택한 헌법 국가이며, 현행 헌법은 1991년 8월 24일에 공포(1996년 개정)되었다. 국가원수대통령은 국민의 직접 선거로 선출되며 임기는 5년이고, 3선 금지 조항이 있다. 총리직은 1991년 8월 31일에 폐지되었다.

입법부는 일원제이며, 국민의회라고 불린다. 의석 수는 158석이며, 그중 150석은 국민의 직접 선거로 선출되고 8석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의원의 임기는 5년이다.

3. 1. 외교

잠비아는 비동맹 중립 노선을 표방했지만, 한때 친공산주의적인 외교 노선을 펼치기도 했다. 이후 서방 국가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1964년 독립 직후 국제연합에 가입한 잠비아는 아파르트헤이트를 시행하던 남아프리카 공화국과의 경제 관계를 단절하고, 1965년 로드지아의 일방적 독립 선언 후 경제 봉쇄에 참여했다.[217] 이로 인해 잠비아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고, 로드지아 철도를 통한 구리 수출 길이 막혔다.

1969년 8월, 카운다 정권은 구리 기업 국유화 정책을 추진했고, 1970년 7월 탄자니아, 중화인민공화국의 지원으로 탄잠 철도 건설이 조인되었다.[217] 1970년 2월, 카운다는 통일민족독립당(UNIP)에 의한 일당제를 수립했다.

1973년, 카운다는 로드지아와의 국경을 봉쇄하고 구리 기업 국유화를 추진했다. 모잠비크 해방전선(FRELIMO)과 앙골라 국민해방전선(FNLA)을 지원했고, 1974년 카네이션 혁명 이후 FRELIMO와 포르투갈 신정부를 중재했다. 1976년에는 앙골라 인민해방운동(MPLA) 정권을 승인했다.[217] 1979년에는 루사카에서 영국 연방 정상회의가 개최되었다.[185]

1991년 프레데릭 칠루바의 다당제 민주주의 운동(MMD)이 승리하며 카운다 정권이 막을 내렸다.[188] 칠루바는 경제 자유화를 추진했지만 실패했고, 2002년 레비 무와나와사가 대통령에 취임했다.[189] 2006년 선거에서 무와나와사는 마이클 사타를 누르고 재선되었으나 임기 중 사망했고, 루피야 밴다가 뒤를 이었다.[190] 2011년에는 사타가 당선되었지만 역시 임기 중 사망했고, 2015년 에드가 루응이 대통령이 되었다.

2020년 잠비아는 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졌고[192], 2021년 하카인데 히치레마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193]

2018년 7월 26일, 에드가르 렁구 잠비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일본은 잠비아에 연간 52억달러 (약 57억 엔, 2001년) 규모의 경제 협력을 제공하며, 이는 일본의 대아프리카 원조액 중 세 번째로 많다.

  • 일본인 잠비아 체류 인구 - 146명 (2022년 10월 기준)[195]
  • 잠비아인 일본 체류 인구 - 155명 (2022년 6월 기준)

3. 1. 1. 대한민국과의 관계

대한민국은 1990년 9월 4일 잠비아와 수교하였다.[217] 주 짐바브웨 대한민국 대사관이 잠비아를 겸임하고 있다. 잠비아는 2014년 6월 23일 대한민국 주재 대사관을 개설하였다.

3. 1.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관계

잠비아는 1969년 4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단독 수교하였다.[217]

3. 1. 3.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관계

잠비아는 1964년 독립 이후 중화인민공화국과 경제적, 군사적으로 우호 관계를 유지해 왔다. 잠비아 중부에서 탄자니아다르에스살람까지 이어지는 탄잠철도 건설도 중국이 담당하였다.[194]

그러나 1998년에 발생한 중국인에 의한 구리 광산 인수 및 노동조합 설립 탄압 사건, 2006년 중국인의 임금 체불로 인한 노동자 시위에서 중국인 감독관이 노동자들에게 발포한 사건 등으로 잠비아 국민들의 중국에 대한 감정이 악화되고 있다. 2006년 가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야당 애국전선마이클 사타 당수는 중국 축출론을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패배했지만 28%의 지지를 얻었다. 수도 루사카에서는 선거에서 경쟁한 전 대통령 레비 무와나와사의 3배에 달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194]

하지만 중국은 그 이후로도 일대일로 정책을 배경으로 잠비아에 대한 기업 진출과 대출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교 집계에 따르면, 중국의 대출에 따른 공공 사업은 2002년 이후 72건, 99억달러에 달한다. 대부분 중국 기업의 수주를 조건으로 하는 "묶음형"이다. 잠비아 정부가 2020년 말 발표한 127억달러 규모의 대외 채무 중 중국 관련 채무는 약 30억달러로 추정되지만, 비공개 건을 포함하면 더 많을 가능성이 있으며, 잠비아는 "채무의 덫"에 빠져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194]

4. 행정 구역



잠비아는 10개의 주로 구성되어 있다.



잠비아는 행정적으로 117개의 구로 세분화된 10개의 주와 선거적으로 156개의 선거구와 1,281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5. 지리

아프리카 남부의 내륙국인 잠비아는 국토 대부분이 고원 지대이며, 여러 강이 계곡을 깎아놓았다. 남부에는 잠베지 분지가 있으며, 국명의 유래가 되는 잠베지 강은 잠비아 북부에서 발원하여 서부 주를 북에서 남으로 가로지른다. 국토 남단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이후 잠비아 남단을 따라 동쪽으로 흘러 나미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와의 국경을 형성하며 모잠비크로 빠져나간다.[196]

잠비아의 지리. 콩고 민주 공화국이 뻗어 들어온 부분은 이라고 불린다.


빅토리아 폭포(낙차 108m)는 짐바브웨와의 국경에 위치하며, 리빙스턴은 이 폭포 근처의 관광 거점이다.[196] 카푸에 강 등 국토 중부를 흐르는 강과 동부를 흐르는 루앙와 강 등 잠비아 국내의 수계 대부분은 잠베지 강으로 흘러들어가지만, 북부의 일부 하천은 콩고 강으로 흘러드는 것도 있다.[196] 최북단의 탕가니카 호는 탄자니아와의 국경에 있으며, 남동쪽 끝에 칼람보 강이 유입되고, 칼람보 폭포는 아프리카 제2위의 낙차(235m)를 자랑한다.[196]

잠비아는 두 개의 주요 강 유역으로 나뉜다. 하나는 중앙, 서부 및 남부를 덮고 있는 잠베지/카푸에 유역(전체 면적의 약 4분의 3)이고, 다른 하나는 북부를 덮고 있는 콩고 유역(전체 면적의 약 4분의 1)이다. 북동쪽의 매우 작은 지역은 탄자니아의 루쿠와 호 내륙 유역의 일부를 형성한다.

잠베지 유역에는 카봄포 강, 룽웨붕구 강, 카푸에 강, 루앙와 강과 잠베지 강 자체가 잠비아를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흐른다. 잠베지 강의 발원지는 잠비아에 있지만 앙골라로 흘러 들어가며, 많은 지류가 앙골라 중앙 고원에서 발원한다.

잠베지 강의 가장 길고 큰 두 지류인 카푸에 강과 루앙와 강은 주로 잠비아에서 흐른다. 이 강들은 각각 치룬두와 루앙와에서 잠베지 강과 합류하는데, 이 지점들은 짐바브웨와의 국경에 있다.

잠비아 동부에서 잠베지 강과 탕가니카 호 계곡 사이에 뻗어 있는 고원은 북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며, 세계자연기금에 의해 중앙 잠베지 밀림 생태지역의 큰 부분으로 분류되었다.[78] 잠비아 동부는 다양성이 뛰어나며, 잠비아 최고봉인 마핑가 중앙(2339m)을 포함한다.[79]

빅토리아 폭포

6. 기후

잠비아는 해발 1000m 에서 1600m 사이의 중앙 아프리카 고원 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해발 평균 고도 1200m는 땅에 전반적으로 온화한 기후를 제공한다. 잠비아의 기후는 고도에 따라 변형된 열대 기후이다. 쾨펜의 기후 구분에서 잠비아의 대부분은 습윤 아열대 기후 또는 열대 습윤 및 건조 기후로 분류되며, 남서부와 잠베지 강 계곡을 따라 소규모의 반건조 스텝 기후 지역이 있다.[80]

두 가지 주요 계절이 있으며, 우기(11월~4월)는 여름에, 건기(5월/6월~10월/11월)는 겨울에 해당한다. 건기는 서늘한 건기(5월/6월~8월)와 더운 건기(9월~10월/11월)로 세분된다. 고도의 변화는 5월부터 8월까지의 서늘한 계절 동안 열대 조건보다는 쾌적한 아열대 날씨를 제공한다.[80] 그러나 연간 8개월 이상 대부분 지역에서 월 평균 기온은 20°C를 웃돈다.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 국토의 대부분이 온대 하우 기후(Cw)로, 살기 좋은 기후이다. 연 강수량은 500~1,500mm이다. 수도 루사카(표고 약 1,200m)의 경우 1월 평균 기온은 21℃, 7월 평균 기온은 16℃이다. 건기는 5월~8월이며, 12월~4월은 우기이다. 국토 남단부는 강수량이 적어 스텝 기후를 나타내고 있으며, 서부와 동부 일부는 사바나 기후를 나타낸다.

잠비아의 쾨펜 기후도. 황록색과 녹색은 온대 하우 기후, 주황색은 스텝 기후, 하늘색은 사바나 기후이다.

7. 인구 및 주민

잠비아의 주민은 대부분 반투족 계열 민족(통가족, 냐냐족 등)으로 구성되며, 그 외에 1%의 유럽인이 있다. 잠비아의 평균 수명은 32세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편에 속하며, '죽음의 땅'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87]

2022년 잠비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잠비아의 인구는 19,610,769명이다. 1911년부터 1963년까지 영국의 식민 통치 기간 동안 유럽과 인도 아대륙에서 이민자들이 유입되었으며, 이 중 인도 아대륙 출신 이민자들은 계약 노동자로 왔다. 백인 소수 정권 붕괴 이후 대부분의 유럽인들이 떠났지만, 많은 아시아인들이 남았다. 잠비아에는 인도계와 중국계가 대다수인 성장하는 아시아계 커뮤니티가 있다.

최초의 인구 조사(1911년 5월 7일 실시)에서는 유럽인 1,497명, 아시아인 39명, 흑인 아프리카인 약 820,000명이었다. 독립 이전 6차례의 인구 조사(1911년, 1921년, 1931년, 1946년, 1951년, 1956년)에서는 흑인 아프리카인이 계수되지 않고 추정되었다. 1956년에는 유럽인 65,277명, 아시아인 5,450명, 혼혈인 5,450명, 흑인 아프리카인 약 2,100,000명이 있었다.[88]

201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99.2%가 흑인 아프리카인이고, 0.8%가 다른 인종 집단으로 구성되었다. 잠비아는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 가장 도시화된 국가 중 하나이며, 인구의 44%가 주요 교통로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농촌 지역은 인구 밀도가 낮다.

1961년부터 2003년까지의 인구 동태 그래프


잠비아 부족 및 언어 지도


잠비아에는 약 73개의 민족 집단이 있지만,[91][92] 실제로는 그보다 적은 수의 별개 집단이 존재한다.[92] 대부분의 잠비아인은 반투어를 사용한다.[91] 주요 민족 집단으로는 벰바족, 냐냐족(체와족이라고도 함), 통가족이 있으며,[92] 201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벰바족이 21%, 통가족이 13.6%, 체와족이 7.4%를 차지한다.[91] 그 외에도 카온데족, 로지족, 룬다족, 루발레족 등이 있다.[92] 벰바족은 북부, 루아푸라, 구리벨트 주에서 우세하며, 냐냐족은 동부와 중부 주, 통가족은 남부와 서부 주, 로지족은 서부 주에서 우세하다.[91]

언어적 측면 외에도, 잠비아에서는 부족 정체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92] 이러한 부족 정체성은 종종 가족 충성심 또는 전통적인 권위자와 관련이 있으며, 주요 언어 집단 내에 중첩되어 있다.[94]

주로 영국 또는 남아프리카 출신의 이민자들과 영국계 잠비아 백인 시민들 일부는 루사카와 잠비아 북부의 구리벨트에 주로 거주한다. 1964년에는 잠비아에 7만 명의 유럽인이 있었지만, 그 이후 많은 사람들이 잠비아를 떠났다.[54] 잠비아에는 소규모이지만 경제적으로 중요한 아시아 인구가 있으며, 대부분 인도인과 중국인이다. 잠비아에는 약 8만 명의 중국인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95]

미국 난민 및 이민 위원회가 발표한 ''2009년 세계 난민 조사''에 따르면, 잠비아에는 약 88,900명의 난민과 망명 신청자가 있었다. 잠비아의 난민 대부분은 콩고민주공화국, 앙골라, 짐바브웨, 르완다 출신이었다.[99]

8. 언어

1991년 헌법에 따라 영어공용어이며, 그 외에 각 민족의 언어(냔자어 등)가 사용된다.[113] 잠비아에는 73개의 언어 및/또는 방언이 있다고 알려져 있으나, 언어와 방언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아 실제로는 20~30개 정도의 언어가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114]

잠비아의 공용어는 영어이며, 공식 업무, 교육 및 법률 분야에서 사용된다.[91] 특히 루사카에서는 냔자어(체와어)가 주요 지역어이며, 그 다음으로 벰바어가 사용된다. 구리벨트에서는 벰바어가 주요 언어이고 냐냐자어가 두 번째이다. 벰바어와 냐냐자어는 도시 지역에서 사용되며, 그 외에도 로지어, 툼부카어, 카온데어, 통가어, 룬다어, 루발레어 등 잠비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다른 토착어들이 있다.[91][114][115] 이 언어들은 잠비아 국영방송공사(ZNBC)의 지역 언어 방송 부문에서 사용되었다.[91][114][115]

도시화는 일부 토착어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다른 언어의 단어가 흡수되는 동화 현상도 포함된다. 도시 거주자들은 때때로 동일한 언어의 도시 방언과 농촌 방언을 구분하기 위해 농촌 방언 앞에 '심오한(deep)'이라는 접두사를 붙이기도 한다.

구리벨트에서는 대부분 벰바어와 냐냐자어를 사용하며, 냐냐자어는 루사카와 잠비아 동부에서 주로 사용된다. 영어는 공식적인 의사소통에 사용되며, 이종족 간의 결혼이 흔해짐에 따라 이제는 가정에서도 선호하는 언어가 되었다. 이러한 언어의 진화는 루사카와 다른 주요 도시 전역에서 들을 수 있는 잠비아 속어를 만들어냈다. 대부분의 잠비아인들은 보통 두 개 이상의 언어를 사용한다. 즉, 공용어인 영어와 자신이 거주하는 마을이나 지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이다.



많은 포르투갈어 사용 인구를 가진 앙골라 공동체의 존재로 인해 포르투갈어가 학교 교육 과정의 제2언어로 도입되었다.[116] 프랑스어는 사립학교에서 일반적으로 배우며, 일부 중등학교에서는 선택 과목으로 제공된다. 잠비아 대학교(UNZA)에서는 독일어 강좌가 개설되었다.

각 민족어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는 주로 북부의 카퍼벨트 지역에서 사용되는 벤바어(33.4%, 2010년 추계)이며, 그 다음으로 수도 루사카 주변에서 사용되는 냐냐자어(14.7%), 남부에서 사용되는 통가어(11.4%), 서부에서 사용되는 로지어(5.5%), 동부에서 사용되는 체와어(4.5%) 순이다.[210] 북서부에서는 룬다어도 강세를 보인다. 참고로 냐냐자어와 체와어는 거의 동일한 언어이며, 상호 의사소통이 가능하다.[211]

9. 종교

기독교(주로 가톨릭) 비율이 반 이상이고, 그 외에 이슬람교, 힌두교, 전통 종교 등이 있다. 국민의 약 2/3가 기독교도이지만 대부분이 전통적인 애니미즘과 결합되어 있다.

1996년 헌법에 따라 잠비아는 공식적으로 "기독교 국가"이지만,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보호한다.[100] 잠비아는 기독교를 국교로 지정한 유일한 아프리카 국가이다.[101] 잠비아 통계청에 따르면 잠비아 인구의 95.5%가 기독교인이며, 그중 75.3%가 프로테스탄트, 20.2%가 로마 가톨릭 신자이다.[102] 많은 잠비아 기독교인들은 토착 종교적 신앙과 기독교를 결합하는 혼합 종교 신앙을 가지고 있다.[102] 가장 큰 프로테스탄트 교파는 앵글리칸교, 복음주의, 그리고 오순절 교회이다.[102]

기독교는 유럽 식민주의를 통해 잠비아에 전파되었으며, 다양한 종파와 운동은 선교 활동의 변화하는 양상을 반영한다. 예를 들어 가톨릭은 동쪽의 포르투갈 모잠비크에서 유래했고, 앵글리칸교는 남쪽의 영국 영향을 반영한다. 1964년 독립 후 잠비아는 특히 북미와 독일에서 전 세계의 다른 교회 선교사들의 유입이 증가했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서구 선교사들의 역할은 (의사와 같은 일부 기술직을 제외하고) 토착 신자들이 맡게 되었다. 오순절 기독교인인 프레드릭 칠루바가 1991년 대통령이 된 후 오순절 교회는 전국적으로 상당히 확장되었다.[103]

잠비아 종교 분포[104][105]
종교비율 (%)
프로테스탄트75.3
로마 가톨릭20.2
애니미즘2.5
무신론1.8
이슬람교2.7



전 세계적으로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기독교 종파 중 일부는 잠비아에서 인기가 있다. 잠비아는 1인당 제칠일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신자 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이며, 잠비아 인구의 약 1/18을 차지한다.[106] 중앙아프리카 루터교회는 잠비아에 11,000명이 넘는 신자를 보유하고 있다.[107] 1911년부터 잠비아에 존재해 온 여호와의 증인은 활동적인 전도자만 계산해도 20만 명이 넘는 신자를 보유하고 있으며,[108] 2018년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연례 행사에는 9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석했다.[109] 잠비아 인구의 약 12%는 신사도교회 신자이다.[110] 120만 명이 넘는 신자를 보유한 잠비아는 전 세계 900만 명이 넘는 신도 중 아프리카에서 세 번째로 큰 신자 수를 가지고 있다.[111]

잠비아 인구의 약 2.7%는 이슬람교 신자이며, 주로 수니파 이슬람이고 소수의 이스마일파와 십이이맘파가 있다.[102] 한 추산에 따르면 10만 명에 달하는 이슬람 공동체에는 콩고와 소말리아 난민뿐만 아니라 남아시아와 중동 출신의 이민자들도 포함되어 있으며, 그들은 잠비아 시민권을 취득했다.[102] 2019년 기준으로 주로 남아시아계인 힌두교 신자는 약 1만 명이다.[102] 1960년대에 정점을 찍었던 소규모 잠비아 유대인 공동체는 약 1,000명으로 대부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그리고 독일 출신이었다. 오늘날에는 50명 미만의 잠비아 유대인들이 있으며,[112] 대부분 루사카와 북부 주에 거주한다.[102] 소수의 바하이교도, 불교도, 그리고 시크교도들이 있다.[102]

10. 문화

잠비아에서는 가족 역사를 소재로 한 문학 작품이 나왔으며, 주민 대부분은 축구를 즐겨한다.[160]

잠비아에는 약 35개의 부족이 있으며, 각 부족은 고유 언어를 사용한다. 부족과 언어는 대부분 북부와 중부의 벰바(Bemba), 남부의 통가(Tonga), 동부의 니얀자(Nyanja), 서부의 로지(Lozi)족에 포함된다. 영어는 현재 국어로 널리 사용되며, 외딴 지역에서도 사용된다.

잠비아의 전통 음악은 리드미컬하며, 대개 북, 휘파람, 손가락 피아노로 연주되고 춤과 함께 연주된다. 가장 대중적인 형태 중 하나는 콩고 민주 공화국에서 들어온 룸바(rumba)이다. 포리지(오트밀에 우유나 물을 넣어 만든 죽)는 잠비아의 주요 음식으로, 대개 옥수수(은시마(nshima))나 사탕수수로 만든다. 포리지는 공용 단지에 담아 오른손으로 동그랗게 만든 후 고기나 야채 소스에 찍어 먹는다. 생선 또한 현지 특별 요리이며, 브림(잉어과의 민물고기), 민물연어, 나일농어 등이 인기있다.

''시마''(오른쪽 상단)와 세 가지 종류의 반찬.


현대 잠비아가 건립되기 전, 주민들은 각자 생활 방식을 가진 독립적인 부족으로 살았다. 식민지 시대의 결과 중 하나는 도시화의 성장이었다. 서로 다른 민족 집단이 도시에서 함께 살면서 서로의 생활 방식, 특히 의복과 태도에 영향을 주며 세계적 또는 보편적인 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160] 잠비아의 원래 문화는 기독교 등 외부 영향을 받았지만, 주로 시골 지역에서 살아남았다. 잠비아 내 특정 민족 집단에 특유한 문화는 '잠비아 문화들'로, 민족 집단 간 공통적인 생활 방식은 "잠비아 문화"로 분류된다.[160] 도시에서는 이러한 문화가 통합되고 진화하여 "잠비아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욤베 조각, 19세기.


잠비아는 국가적으로 인정받는 전통 의식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중요한 의식까지 다양한 의식과 의례를 행한다. 의식과 의례는 업적, 기념일, 시간의 흐름, 대관식 및 대통령 행사, 속죄와 정화, 졸업, 헌정, 충성 맹세, 입회, 결혼, 장례, 출생 의식 등을 기념하거나 표시하기 위해 특별한 경우에 행해진다.[160]

잠비아는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와 마찬가지로 공개 및 비공개 의식과 의례를 모두 행한다. 공개 의식에는 역법 또는 계절적인 것, 우발적인 것, 고난, 점복, 입회 및 정기적/매일 의식이 포함된다.[160] 비공개 의식에는 나우와 나키샤 무용수와 같은 영적 집단과 알랑기지 여성과 같은 전통 결혼 상담가 등이 비밀리에 행하는 의식이 포함된다.[160] 2016년 12월 기준, 잠비아는 정부가 인정하는 77가지의 역법 또는 계절적 전통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이 수는 가까운 미래에 증가할 것이다.[160] 연례 의식으로는 Nc'wala, Kulonga, Kuomboka, Malaila, Nsengele, Chibwela kumushi, Dantho, Ntongo, Makundu, Lwiindi, Chuungu, Lyenya 등이 있으며, 잠비아 전통 의식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 의식으로는 쿠옴보카와 카탕가(서부 주), 무톰보코(루아풀라 주), 쿨람바와 엔찰라(동부 주), 루윈디와 시무넨가(남부 주), 룬다 루반자(북서부 주), 리쿰비 랴미제(북서부 주),[161] 문다 루크와크와(북서부 주), 치브웰라 쿠무시(중부 주), 빙카카님바(무칭가 주), 우쿠세피야 파 엔궤나(북부 주) 등이 있다.

인기 있는 전통 예술에는 도자기, 바구니(예: 통가 바구니), 의자, 직물, 매트, 목각, 상아 조각, 와이어 공예 및 구리 공예가 있다. 잠비아 전통 음악은 주로 드럼(및 기타 타악기)을 기반으로 하며, 노래와 춤이 많다. 도시 지역에서는 콩고의 룸바, 흑인 미국 음악, 자메이카 레게 등 외국 음악 장르가 인기 있다. 잠비아 문화는 독립 이후 문화 마을과 사립 박물관 부상 등 잠비아 발전에 필수적이었다. 춤을 선보이는 음악은 문화적 표현의 일부이며, 말하는 북의 복잡함부터 '말라이라'(Malaila) 전통 의식 시작을 알리는 '카망구'(Kamangu) 북에 이르기까지 잠비아 삶의 아름다움과 장관을 구현한다. 춤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통합 요소 역할을 한다.[174]

잠록(Zamrock)은 1970년대 등장한 음악 장르로, 서구권에서 열렬한 팬층을 형성하고 있다. 잠록은 전통 잠비아 음악에 지미 헨드릭스, 제임스 브라운, 블랙 사바스, 롤링 스톤즈, 딥 퍼플, 크림 등과 유사한 강렬하고 반복적인 리프를 혼합한 것이다.[175][176] 이 장르의 주목할 만한 그룹으로는 리키 일롱가와 그의 밴드 무시오투냐, 위치, 크리시 "제비" 템보, 폴 엔고지와 그의 엔고지 패밀리가 있다.[177][178]

잠비아 음악은 전통 음악, 대중 음악, 기독교 음악의 세 가지 범주로 크게 분류된다.

잠비아 공화국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된 자연유산이 1건 있다.

11. 경제

1970년대 중반, 잠비아의 주요 수출품인 구리 가격이 전 세계적으로 급격히 하락하면서 잠비아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다. 구리를 시장까지 운반하는 데 드는 높은 비용도 잠비아에게는 추가적인 부담이었다. 잠비아는 외채에 의존했지만, 구리 가격 하락이 지속되면서 빚은 더욱 늘어났다. 1990년대 중반, 잠비아의 1인당 외채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60]

2022년 잠비아의 연간 수출액은 75억 달러에서 80억 달러 사이였다.[122][123] 2018년에는 총 91억 달러에 달했다.[124] 2015년 기준 잠비아 인구의 약 54.4%가 국가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하고 있었으며, 이는 2010년 60.5%에서 개선된 수치이다.[125] 농촌 빈곤율은 약 76.6%, 도시 빈곤율은 약 23.4%였다.[126] 국제연합 개발 계획의 2018년 추정치에 따르면, 인구의 47.9%가 여전히 다차원적 빈곤의 영향을 받고 있다. 도시 지역의 실업과 불완전 고용은 심각한 문제이며, 대부분의 잠비아 농촌 주민들은 자급자족 농업에 종사한다.[128]

2007년 세계 경쟁력 지수에서 잠비아는 128개국 중 117위를 기록했다.[130] 2024년 세계 혁신 지수에서는 116위를 기록했다.[131]

1970년대 국제 구리 가격 하락 이후 잠비아는 빈곤에 빠졌다. 사회주의 정권은 국제통화기금의 여러 차례 실패한 구조 조정 프로그램(SAPs)으로 감소하는 수익을 메웠다. 카운다 정권 이후(1991년부터) 후임 정부들은 제한적인 개혁을 시작했지만, 1990년대 후반까지 경제는 침체되었다. 2007년 잠비아는 9년 연속 경제 성장을 기록했고, 인플레이션은 2000년 30%에서 8.9%로 감소했다.[134]

잠비아는 공공 부문 규모, 사회 부문 서비스 전달 시스템 개선과 같은 경제 개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134] 경제 규제와 관료주의는 광범위하며, 부패가 만연하다. 2000년 잠비아는 고부채빈곤국 구상(HIPC) 채무 감면 자격을 얻었지만, 총 외채는 60억 달러를 넘었다.



2003년 1월 잠비아 정부는 세계은행에 국영 기업 민영화 요구를 재협상하고자 한다는 뜻을 전했다. 이후 공무원 임금 과다 지출로 인해 잠비아의 최종 HIPC 채무 탕감이 연기되었다. 2004년 긴축 예산으로 공무원 급여가 동결되고 세금이 인상되자, 2004년 2월 전국적인 파업이 발생했다.[136]

잠비아 정부는 구리 산업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경제 다각화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계획은 농업, 관광, 보석 광업 및 수력 발전을 촉진한다. 2018년 7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에드가 룽구 잠비아 대통령은 12건의 협정에 서명했다.[137][138]

주요 Nkana 구리 광산, 킷웨(Kitwe)


광업과 채석업은 잠비아 GDP의 약 13.2%를 차지한다.[139] 잠비아 경제는 역사적으로 구리 광업 산업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1973년 국유화되었으나 생산량이 크게 감소했다.[141] 1996년부터 2000년까지 민영화 이후 구리 부문의 투자, 생산 및 일자리가 증가했다.[141]

2019년 기준 구리 수출은 잠비아 수출 상품 가치의 약 69%를 차지한다.[139] 2023년 잠비아는 698000ton의 구리를 생산했다.[142]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큰 구리 생산국이자[142] 세계 7위의 구리 생산국이며, 세계 생산량의 4%를 차지한다.[139] 잠비아의 구리벨트 주(Copperbelt Province)는 잠비아 GDP의 4분의 1, 구리 생산량의 3분의 1을 차지한다.[143] 국영 ZCCM 투자 지주회사(ZCCM Investments Holdings)는 여러 광산 사업을 소유하고 있다.[142] 잠비아 경제가 구리 산업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환율은 구리 가격에 따라 변동한다.[144]

중국 정부는 국영 기업을 통해, 일대일로 구상(Belt and Road Initiative)의 일환으로 잠비아 구리에 상당한 외국인 직접 투자(foreign direct investment)를 해왔다.[145] 중국 기업 JCHX 마이닝은 잠비아 루밤베 구리 광산의 80%를 소유하고 있다.[146] 중국이 운영하는 콜럼 석탄 광산(Collum Coal Mine)의 위험한 작업 환경, 저임금 및 노동 착취는 잠비아에서 정치적 논쟁의 원인이 되어 왔다.[147][148]

구리 외에도 잠비아에서 채굴되는 주요 광물에는 금, 망간(manganese), 니켈, 보석(gemstone)이 있다.[139]

농업은 잠비아 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광업보다 훨씬 많은 일자리를 제공한다. 짐바브웨에서 추방된 짐바브웨 백인 농민들이 잠비아로 이주하여 농업 기술을 전수, 잠비아의 농업 호황을 이끌었다.

2009년 잠비아는 10.3TWh의 전력을 생산했으며 태양광 발전과 수력 발전 모두에서 높은 이용률을 기록했다.[157] 그러나 2015년 초 잠비아는 심각한 에너지 부족을 겪기 시작했다.[158]

1994년에는 루사카 증권거래소가 개설되었다.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했기 때문에, 현재도 국내총생산(GDP)에서 정부와 공공사업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대외채무 증가와 부정부패가 경제 성장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2020년 11월 13일, 잠비아 정부는 달러화 표시 국채의 이자 지급을 하지 못해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졌다.[197] 대외채무는 128억 달러에 달하며, 2023년까지 프랑스 등 채권국들은 63억 달러에 달하는 채무에 대해 상환 조건 재검토에 동의했다.[198]

잠비아 경제의 주력은 광업이며, 세계 7위의 생산량을 자랑하는 구리 수출에 의존하는 전형적인 단일 수출 경제이다. 20세기 초 영국의 북부 로데시아 시대에 북부에서 구리 광산이 발견된 이후, 구리 광업은 이 지역의 주력 산업으로 남아 있었다. 민주화 이후 구리 가격 상승에 따라 다시 경제가 성장하고 있지만, 구리 수출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제 구조에는 변화가 없다. 세계 6위의 생산량을 가진 코발트도 중요하다.[199]

전력은 카리바 댐수력 발전에 의해 공급되고 있다.[200]

1차 산업 종사 인구가 55.8%(2012년)[199]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과거에는 식량을 자주 수입에 의존했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식량 생산이 급증하여 식량 자급률이 150%를 넘는 아프리카에서는 보기 드문 농업 강국이 되었다.

11. 1. 기아 문제

잠비아의 기아 문제는 매우 심각한 상태이다. 매년 아일랜드의 NGO인 컨선월드와이드, 독일의 NGO인 세계기아원조(Welthungerhilfe) 그리고 미국의 연구기관인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가 협력하여 발표하는 세계 기아 지수(GHI)에 따르면, 2016년 잠비아의 기아 지수는 100점 만점 중 39.0점으로 가장 심각한 기아 점수를 기록한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46.1점과 비교해 봐도 큰 차이가 없다. 이는 조사 대상이었던 118개의 개발도상국 중 116위에 해당하는 수치로, 상당한 기아 수준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218]

12. 교육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고 적절한 교육을 받을 권리는 잠비아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117] 2011년 교육법은 평등하고 질 높은 교육을 규정한다.[118] 2018년 기준 영어 읽고 쓰기 능력은 86.7%이다.[4]

정부의 연간 교육 지출은 상당히 변동이 있었다. 정부 예산의 비율로 2006년에는 19.6%, 2011년에는 15.3%, 2015년에는 20.2%였다.[119] 2020년 기준 교육 지출은 GDP의 3.7%를 차지했다.[4] 2015년 추계에 따르면, 15세 이상 국민의 읽기 쓰기 능력은 63.4%(남성: 70.9%, 여성: 56%)이다.[210] 2008년에는 GDP의 1.1%가 교육에 지출되었다.[210]

주요 고등교육기관으로는 잠비아대학교(1966년 설립), 커퍼벨트대학교(1987년 설립)가 있다.

치파타(동부주)에 있는 세인트 모니카 여자고등학교 학생들

13. 보건

잠비아는 성인의 HIV/AIDS 유병률이 12.10%에 달하는 전국적인 유행을 겪고 있다.[120]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다. 15~49세 성인의 HIV/AIDS 유병률은 약 10년 전 16%에서 2013/14년 13%로 감소했다.[121] 세계 표준에 비해 여전히 열악하지만 다른 건강 지표도 상당히 개선되었다. 2014년 모성 사망률은 10만 명당 398명이었던 반면 2007년에는 591명이었다. 같은 기간 5세 미만 아동 사망률은 1,000명당 119명에서 75명으로 감소했다.

2017년 잠비아의 HIV 감염자 수는 약 110만 명으로 추산되며[210], 감염률은 11.5%이다.[210] 잠비아인의 평균수명은 53세(남성: 51.4세, 여성: 54.7세)이다.[210] 잠비아 내에서 첨단 의료를 제공하는 종합병원으로는 루사카 시에 있는 잠비아대학교 부속교육병원이 유명하다.[21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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