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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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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는 1987년 6월 민주 항쟁 이후, 민주화 열망 속에 결성된 최초의 전국 단위 학생운동 조직이다. 자주적 민주 정부 수립, 평화 통일, 민중 연대 등을 목표로 반독재, 반미 투쟁, 학원 민주화 운동을 전개했다. 1989년 임종석이 3대 의장으로 취임하면서 친북 주체사상파 노선으로 기울었고, 1993년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으로 명칭을 변경하며 해체되었다. 전대협 출신 인사들은 정치 활동을 하였으며, 대중문화에서 패러디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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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기본 정보
명칭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한자 표기全國大學生代表者協議會
로마자 표기Jeon-guk Daehaksaeng Dae-pyoja Hyeobuihoe
약칭전대협
개요
종류학생운동단체
설립일1987년
해산일알 수 없음
목적자주적 민주 정부 수립
본부 위치대한민국
관련 정보
관련 단체알 수 없음
참고 자료
참고 자료【대통령으로부터 보는 한국(8)】ICBM 발사 후에도 웃음…친북 조선의 원 학생 운동가가, 요직에 속속
기타
다른 뜻신전대협

2. 역사적 배경 및 결성

1987년 6월 항쟁은 민주화를 향한 국민적 열망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이한열 열사의 장례 절차를 논의하기 위한 전국 대학생 대표자 회의가 1987년 7월 5일 연세대학교에서 열렸다. 이 회의는 전국적인 대학생 조직 결성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대협은 1987년 8월 19일 충남대학교에서 1기 출범식을 갖고 공식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전대협은 이전의 분산된 학생운동 조직들을 통합하여,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조국의 평화통일, 민중과의 연대, 학원 자주화, 그리고 백만 학도의 통일단결을 목표로 활동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박홍, 이도형, 윤치영 등은 전대협을 친북, 이적행위자, 주체사상파 집단으로 규정하여 비판하였다.[1] 1989년 전대협 3대 의장으로 임종석이 취임하면서 조직은 급속히 친북 주체사상파 노선으로 기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대협은 1993년 4월 발전적 해소를 통해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2004년 4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여당우리당이 과반수를 확보하여 승리했는데, 전대협의 초대 의장 (이인영), 2대 의장 (오영식), 3대 의장 (임종석)까지 모두 우리당에서 당선되었다. 그러나 2008년 2월 이명박 (한나라당)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직후 4월에 치러진 총선에서는 세 사람 모두 우리당의 후신인 통합민주당에서 출마했지만 모두 낙선했다.

2. 1. 6월 민주 항쟁과 학생운동의 통합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 열망이 높아진 가운데,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이한열의 장례 절차 논의를 위해 7월 5일 연세대학교에서 전국 대학 총학생회장들이 회의를 열었다. 이들은 전국적인 대학생 대중조직 건설을 결의했고, 8월 19일 충남대학교에서 이인영을 의장으로 하는 1기 전대협 출범식을 가졌다. 전대협은 기존 여러 학생운동단체를 통합하여 규모를 확대했다. 전대협은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조국의 평화통일, 민중연대, 학원자주화, 백만 학도의 통일단결을 활동 목표로 설정했다.[1]

1989년 3기 전대협은 민간 통일운동으로 임수경을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대협 대표로 파견했다. 임수경은 제3국을 통해 방북했고, 문규현 신부와 함께 군사분계선을 넘어왔으나 곧 구속되었다. 이 사건을 기획, 지원한 임종석 3기 의장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2]

전대협은 발족 선언문에서 "청년 학도의 전국적 대동 단결은 군사 독재 정권제국주의자를 한국에서 일소할 것이며, 그로 인해 역사의 거대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선언했다. 또한, 반독재, 반미 투쟁과 평화 통일 논의, 학원 민주화, 노동 문제를 비롯한 사회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88년에는 남북 학생 회담을 두 차례 시도했다.

2. 2. 이한열 열사 장례와 전대협 결성 결의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최고조에 이른 가운데, 시위 참여 중 최루탄을 맞고 사망한 이한열의 장례 절차를 논의하기 위해 1987년 7월 5일 연세대학교에서 전국 대학의 총학생회장들이 회의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전국적인 대학생 대중조직 건설을 결의하였다.[1] 8월 19일 충남대학교에서 서대협(서울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 이인영을 의장으로 하여 1기 전대협 출범식을 가졌다.[1]

3. 활동 및 주요 사건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최고조에 이른 가운데 결성된 최초의 전국 단위 학생운동 조직이었다. 연세대학교 학생 이한열이 시위 도중 최루탄을 맞고 사망하자, 1987년 7월 5일 연세대학교에서 그의 장례 절차를 논의하기 위해 전국 대학의 총학생회장들이 회의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전국적인 대학생 대중조직 건설을 결의하였고, 8월 19일 충남대학교에서 서대협(서울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 이인영을 의장으로 하여 1기 전대협 출범식을 가졌다. 전대협은 이전에 여러 개로 나뉘어 있던 학생운동단체를 통합하여 규모를 확대해 나갔다.[1]

전대협은 반독재, 반미 투쟁과 평화 통일 논의, 학원 민주화, 노동 문제를 비롯한 사회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박홍, 이도형, 윤치영 등은 전대협을 친북, 이적행위자, 주체사상파 집단으로 규정하여 비판하였다.[1]


  • 1987년 대통령 선거참여 투쟁

3. 1. 주요 활동 목표

전대협은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조국의 평화통일, 민중연대, 학원 자주화, 백만 학도의 통일단결을 활동 목표로 내걸었다.[1] 발족 선언문에서는 다음의 활동 방침을 밝혔다.[2]

  • 자율적인 민주 정부 수립을 위해 외세를 배격하고 독재를 종식할 것
  • 조국의 자율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에 기여할 것
  • 민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들과의 강력한 연대를 강화할 것
  • 학원의 자치와 자유를 되찾을 것
  • "전국 학생 총연합" 설립의 기초를 다질 것

3. 2. 1988년 남북 학생회담 추진

전대협은 1988년에 두 차례에 걸쳐 남북 학생 회담을 실행하려 했다.[1]

3. 3. 1989년 임수경 방북 사건

1989년 3기 전대협은 민간 통일운동으로 임수경을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대협 대표로 보냈다. 임수경은 제3국을 통해 방북하였으며 문규현 신부와 함께 군사분계선으로 내려왔으나 곧 구속되었다.[1] 이 사건을 기획, 지원한 임종석 3기 의장도 임수경과 함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고,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은 호외를 발행하여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1]

3. 4. 1991년 남북청년학생해외통일대축전 참가

1991년 남북청년학생해외통일대축전에 참가 후 방북하였다.

4. 조직 및 운영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는 1987년 8월 19일에 발족된 전국적인 학생운동 조직이다. 6월 민주 항쟁에 참여했다가 사망한 이한열 열사의 장례 논의를 위해 모인 학생 대표들이 전국적인 조직 결성의 필요성에 합의하면서 만들어졌다.[1]

전대협은 발족 선언문에서 군사 독재 정권과 제국주의를 한국에서 몰아내고 역사의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선언했다. 주요 활동 방침은 다음과 같다.[1]


  • 자율적인 민주 정부 수립을 위해 외세를 배격하고 독재를 종식한다.
  • 조국의 자율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에 기여한다.
  •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들과 연대 강화한다.
  • 학원의 자치와 자유를 되찾는다.
  • "전국 학생 총연합" 설립의 기초를 다진다.


전대협은 이러한 방침에 따라 반독재, 반미 투쟁, 평화 통일 논의, 학원 민주화, 노동 문제 등 사회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88년에는 남북 학생 회담을 두 차례 시도하기도 했다. 1989년 임종석이 3기 의장으로 취임하면서 조직은 급속히 친북 주체사상파 노선으로 기울었다.[1] 전대협은 1993년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발전적으로 해소되었다.[1]

4. 1. 역대 의장

기수이름출신 대학당시 직책
1이인영고려대학교총학생회장
2오영식고려대학교총학생회장
3임종석한양대학교총학생회장
4송갑석전남대학교총학생회장
5김종식한양대학교총학생회장
6태재준서울대학교총학생회장


4. 2. 전대협 진군가

일어섰다 우리 청년학생들 / 민족의 해방을 위해 / 뭉치었다 우리 어깨를 걸고 / 전대협의 깃발아래 / 강철같은 우리의 대오 / 총칼로 짓밟는 너 / 조금만 더 쳐다오 / 시퍼렇게 날이 설 때까지 / 아 전대협이여 / 우리의 자랑이여 / 나가자 투쟁이다 / 승리의 그 한 길로(전대협 진군가)

5. 비판과 논란

1980년대 후반부터 박홍, 이도형, 윤치영 등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를 친북, 이적행위자, 주체사상파 집단으로 규정하여 비판하였다.[1] 임종석이 3대 의장으로 취임하면서 조직이 급속히 친북 주체사상파 노선으로 기울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5. 1. 주체사상파 논란

1980년대 후반부터 박홍, 이도형, 윤치영 등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를 친북, 이적행위자, 주체사상파 집단으로 규정하여 비판하였다.[1] 1989년 임종석이 전대협 3대 의장으로 취임하면서 조직은 급속히 친북 주체사상파 노선으로 기울었다.

5. 2. 임수경 방북 사건 관련 논란

1989년 3기 전대협은 민간 통일운동으로 임수경을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대협 대표로 보냈다. 임수경은 제3국을 통해 방북하였으며 문규현 신부와 함께 군사분계선으로 내려왔으나 곧 구속되었다. 이 사건을 기획, 지원한 임종석 3기 의장도 임수경과 함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고,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은 호외를 발행하여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1]

6. 해체와 그 이후

전대협은 1993년 4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으로 명칭을 변경하며 발전적으로 해소되었다. 이후 전대협 출신 인사들은 정치 활동에 참여했는데, 2004년 총선에서 전대협 초대 의장 이인영, 2대 의장 오영식, 3대 의장 임종석이 모두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2008년 총선에서는 이들 모두 통합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6. 1.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으로의 전환

1987년 8월 19일 발족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는 1993년 4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으로 명칭을 변경했다.[1] 전대협은 발족 선언문에서 "청년 학도의 전국적 대동 단결은 군사 독재 정권제국주의자를 한국에서 일소할 것이며, 그로 인해 역사의 거대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선언했다.[1] 이후 전대협은 반독재, 반미 투쟁과 평화 통일 논의, 학원 민주화, 노동 문제를 비롯한 사회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1] 1989년 전대협 3대 의장으로 임종석이 취임하면서 조직은 급속히 친북 주체사상파 노선으로 기울었다.[1]

6. 2. 전대협 출신 인사들의 정치 활동

전대협은 1987년 8월 19일 발족 선언문에서 "청년 학도의 전국적 대동 단결은 군사 독재 정권과 제국주의자를 한국에서 일소할 것이며, 그로 인해 역사의 거대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선언했다. 전대협은 반독재, 반미 투쟁과 평화 통일 논의, 학원 민주화, 노동 문제를 비롯한 사회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1] 1989년 3대 의장으로 임종석이 취임하면서 조직은 급속히 친북 주체사상파 노선으로 기울었다.[1]

2004년 4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여당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확보하여 승리했는데, 전대협 초대 의장 (이인영), 2대 의장 (오영식), 3대 의장 (임종석)까지 모두 열린우리당에서 당선되었다.[1] 그러나 2008년 2월 이명박 (한나라당)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직후 4월에 치러진 총선에서는 세 사람 모두 열린우리당의 후신인 통합민주당에서 출마했지만 모두 낙선했다.[1]

7. 대중문화 속 전대협

청춘행진곡의 코너 중 하나인 '지하실의 멜로디'에서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속칭 전대협)를 패러디한 단체인 전국도둑대표자협의회(속칭 전도협)가 등장하며, 전도협 회장으로 서세원이 출연했다.

참조

[1] 웹사이트 【大統領からみる韓国(8)】ICBM発射後も笑み…親北朝鮮の元学生運動家が、要職に続々 https://www.sankei.c[...] 2020-07-04
[2] 웹사이트 文政権の太陽政策バージョンアップ人事 http://www.koreaii.c[...] 2020-07-04
[3] 웹사이트 民族時報 第1033号(04.4.21)短信 http://www.korea-htr[...]
[4] 웹사이트 太陽政策を否定した韓国の民意 http://www.koreaii.c[...] 2008-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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