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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종합경기장 야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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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주종합경기장 야구장은 전라북도 전주시에 위치했던 야구장으로, 해태 타이거즈와 쌍방울 레이더스의 제2 홈구장으로 사용되었다. 해태 타이거즈는 1982년부터 1989년까지 전주에서 6할 이상의 승률을 기록했으며, 1987년에는 이곳에서 플레이오프 경기를 치렀다. 쌍방울 레이더스는 1991년부터 1999년까지 홈구장으로 사용했으며, 1996년에는 김성근 감독의 지휘 아래 정규 시즌 2위를 기록하며 16연승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으나, IMF 외환 위기로 팀이 해체되었다. 현재는 사회인 야구 동호회와 청소년 야구 선수들이 주로 사용하지만, 시설 노후화로 인해 프로 야구 경기를 치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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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종합경기장 야구장 - [경기장/극장]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위치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1가 1220-1
좌표35.837807, 127.124679
개요
기공1963년 3월 18일
개장1963년 9월 25일
보수1987년
폐장2022년 12월
소유주전주시
표면천연잔디
건설 비용1억 225만원 (1963년 당시)
규모좌우 98m, 중앙 110m
펜스 높이2.1m (철망설치 후 5.8m)
수용 인원10,000명
사용
사용 팀해태 타이거즈 (1982년~1989년)
쌍방울 레이더스 (1990년~1999년)

2. 역사

1987년 조명탑이 설치되어 야간 경기가 가능해졌다.[1]

현재 전주야구장은 사회인 야구 동호회와 청소년 야구 선수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다. 특히 전주시에 사회인 야구단이 많지만 야구를 할 수 있는 구장은 별로 없어 사회인 야구단의 활용도가 높다. 그러나 쌍방울 레이더스 해체 후 체계적인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아 그라운드 상태 및 시설 등이 노후화되었다. 전광판, 외야 펜스, 화장실 등 전반적인 시설이 매우 낙후되어 프로 야구 경기를 치르기 힘든 상황이다. 2004년 전라북도KIA 타이거즈의 연고지로 다시 환원되었을 때, 해태 시절처럼 전주에서 홈 경기를 분산 개최하는 것을 검토했으나, 전주야구장의 낙후 문제로 군산야구장으로 방향을 틀었다.[1]

과거 KBS2 예능 프로그램 천하무적 야구단의 팔도 원정 중 전라북도 편 촬영 장소로 사용되었다.[1]

2. 1. 해태 타이거즈 시절 (1982년~1989년)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전라북도를 연고로 하던 해태 타이거즈1982년 창단 시절부터 광주무등경기장 야구장을 제1 홈구장으로, 전주야구장을 제2 홈구장으로 설정하여 홈경기를 분산 개최했다.

해태 타이거즈쌍방울 레이더스가 창단하기 전인 1989년까지 전주야구장을 제2 홈구장으로 쓰면서 좋은 성적을 거뒀는데, 전주에서 총 65경기를 치러 40승 1무 24패, 승률 6할 2푼 3리의 성적을 거뒀다. 특히 1987년에는 광주광역시에서 전국체육대회가 개최되는 관계로 이 곳에서 플레이오프가 열렸는데, 해태 타이거즈는 전주에서 OB 베어스를 물리치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1987년에 조명탑이 설치되어 야간 경기가 가능하게 되었다.

2. 2.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 (1990년~1999년)

1989년 (KBO)는 제8구단 창단을 추진하면서 쌍방울을 운영 기업으로 선정하고, 전북을 연고로 하는 신생 구단 창단 절차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전주 야구장 사용권은 해태 타이거즈에서 쌍방울로 넘어갔다.

쌍방울 레이더스1991년부터 1군 홈 경기를 치렀으나, 초기에는 성적 부진으로 관중 동원에 어려움을 겪었다. 해태 타이거즈가 전주에 원정 경기를 오면 오히려 해태를 응원하는 팬들이 더 많을 정도였다.

1991년부터 1995년까지 쌍방울의 팀 순위는 6(공동)-8-7-8-8로 하위권을 맴돌았다. 이는 1980년대 인천 팀들과 2000년대 롯데 자이언츠와 비슷한 암울한 시기였다. 1986년 1군에 오른 빙그레 이글스가 2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또한, 작은 구장 크기와 열악한 투수진 탓에 김성근 감독 부임 후 펜스를 5.8m로 높이기 전까지 5년 연속 피홈런 1위를 기록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1997년 IMF 외환 위기쌍방울 그룹이 부도를 맞으면서, 쌍방울 레이더스는 핵심 선수들을 팔아 팀을 운영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1998년 6위로 추락한 후, 1999년에는 백인천 감독이 이끈 롯데와 같은 97패를 기록하며 최하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1999년 10월 8일 LG 트윈스와의 마지막 홈경기를 끝으로 쌍방울은 해체되었다. 참고로 이날 경기는 쌍방울이 18연패를 끊은 경기였다.

2. 2. 1. 1996년 쌍방울 레이더스의 돌풍과 홈경기 16연승

1996년쌍방울 레이더스와 전주종합경기장 야구장의 최고의 전성기였다. 김성근 감독 부임 후 팀에 변화가 생겼고, 만년 약체 팀으로 놀림받던 쌍방울은 돌풍의 핵으로 자리매김하여 정규 시즌 2위를 기록하였다. 이 해 쌍방울은 전주종합경기장 야구장과 군산야구장에서 열린 홈 경기에서 16연승을 기록했는데, 이는 역대 KBO 리그 홈 경기 최다 연승 신기록으로 아직까지 남아 있다. 홈 관중 수도 크게 늘어, 전라북도 지역에 야구 붐을 일으켰다. 1997년에는 전년의 승수에 1승을 더해 정규시즌 3위(71승 2무 53패)를 기록하면서 1996년의 돌풍이 우연이 아님을 보여주었으나, 2년 연속 포스트 시즌 1회전에서 탈락하였다.

2. 2. 2. IMF 외환 위기와 쌍방울 레이더스의 해체

1989년 (KBO)는 프로야구 7개 구단 체제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제8구단 창단을 추진했다. 경상남도 마산시를 연고로 하는 한일합섬과 전라북도 전주시를 연고로 하는 쌍방울·미원 컨소시엄이 경쟁했고, KBO는 쌍방울을 제8구단 운영 기업으로 선정했다. 이에 따라 전주 야구장 사용권은 해태 타이거즈에서 쌍방울로 넘어갔다.[1]

쌍방울1991년부터 1군 홈 경기를 치렀으나, 초기에는 성적 부진으로 관중 동원에 어려움을 겪었다. 1991년부터 1995년까지 팀 순위는 6(공동)-8-7-8-8로 하위권을 맴돌았고, 작은 구장 크기와 열악한 투수진으로 인해 5년 연속 피홈런 1위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1]

1996년 김성근 감독 부임 후 쌍방울은 돌풍을 일으키며 정규 시즌 2위를 기록했다. 전주야구장과 군산야구장에서 열린 홈 경기에서 16연승을 거두며 KBO 리그 홈 경기 최다 연승 신기록을 세웠고, 전라북도 지역에 야구 붐을 일으켰다. 1997년에도 정규 시즌 3위를 기록하며 선전했지만, 2년 연속 포스트 시즌 1회전에서 탈락했다.[1]

그러나 1997년 12월 4일 IMF 외환 위기쌍방울 그룹이 부도를 맞으면서 쌍방울은 핵심 선수들을 팔아 팀을 운영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1998년 6위로 추락한 후, 1999년에는 97패를 기록하며 최하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1999년 10월 8일 LG 트윈스와의 마지막 홈경기를 끝으로 쌍방울은 해체되었다.[1]

3. 현재

현재 전주야구장은 사회인 야구 동호회와 청소년 야구 선수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다. 특히, 전주시에 사회인 야구단이 많지만 야구를 할 수 있는 구장은 별로 없어 사회인 야구단의 활용 폭이 높은 편이다. 그러나 쌍방울 레이더스 해체 후 체계적인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아 그라운드 상태 및 시설 등이 노후화되었다. 특히 전광판과 외야 펜스, 화장실 등 전반적인 시설이 매우 낙후되어 프로 야구 경기를 치르기는 힘든 상황이다. 2004년 전라북도가 KIA 타이거즈의 연고지로 다시 환원되었을 때, 예전 해태 시절처럼 전주에서 홈 경기를 분산 개최하는 것을 검토했으나, 전주야구장의 낙후한 시설 때문에 군산야구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예전 KBS2 예능 프로그램인 천하무적 야구단의 팔도 원정 중 전라북도 편 촬영장으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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