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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기동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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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77기동부대는 미국 해군의 주요 부대로, 제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걸프 전쟁 등 다양한 시기에 걸쳐 작전에 참여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태평양 지역에서 상륙 작전을 지원했으며, 한국 전쟁에서는 항공 지원을 제공하고 차단 임무를 수행했다.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에는 통킹 만과 남중국해에서 항공모함 공격 작전을 펼쳤으며, 냉전 시대에는 서태평양에서 억제 임무를 수행했다. 걸프 전쟁에서는 사막 폭풍 작전에 참여했다. 2000년대 중반 제7함대 기동부대로서 해체되었으며, 그 임무는 제70기동부대에 통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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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기동부대
기본 정보
이름제77기동부대
원어 이름Task Force 77
활동 기간1943년 3월 15일 ~ 2000년대
소속해군
종류태스크 포스
역할항공모함 전투단
명령 체계제7함대
참전제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걸프 전쟁
지휘관

2. 역사

제77기동부대는 제2차 세계 대전부터 걸프 전쟁에 이르기까지 여러 주요 분쟁에서 미국 해군의 핵심적인 항공모함 타격 부대로 활동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태평양 전쟁의 남서태평양 지역에서 제7함대 소속으로 필리핀 해방 등 주요 작전에 참여했다. 한국 전쟁 발발 이후에는 유엔군의 일원으로 한반도 해역에서 항공 지원 및 차단 임무를 수행하며 전쟁 수행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베트남 전쟁 시기에는 통킹 만과 남중국해를 중심으로 장기간에 걸쳐 광범위한 항공 작전을 전개했다. 냉전 시대에는 주로 서태평양 지역에서 소련 해군을 견제하고 지역 안정을 유지하는 임무를 수행했으며, 이란 인질 사태와 같은 국제적 위기 상황에도 대응했다. 1990년대 초반 걸프 전쟁에서는 사막 방패 작전과 사막 폭풍 작전에 참여하여 이라크에 대한 공습 작전을 지원하는 등, 창설 이후 다양한 국제 분쟁에서 미국의 해군력을 투사하는 중심 부대로서 활약했다.

2. 1. 제2차 세계 대전

제77기동부대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연합군의 주력 해군 부대 중 하나인 남서태평양 지역 제7함대의 주요 공격 부대로 활동했다.

제시 B. 올덴도프 소장이 지휘하는 제77.2 기동부대(Task Group 77.2영어)는 비악 전투에서 뉴기니 북부 해안의 상륙 작전을 지원했다. 또한 1944년 10월 필리핀 작전에서는 화력 지원 임무를 수행했다. 1944년 9월 수리를 위해 아드미럴티 제도의 마누스 섬 지드러 항에 입항했던 USS 펜실베이니아는 수리 완료 후 10월 12일 USS 미시시피, USS 테네시, USS 캘리포니아, USS 메릴랜드, 웨스트 버지니아와 함께 출항하여 이 부대에 합류했다. 이들은 10월 18일 레이테 만에 도착하여 폭격 위치를 확보하고, 이후 4일간 수중 폭파 팀, 해안 정찰, 기뢰 제거함 활동을 지원하며 상륙 부대의 진로를 확보했다.

한편, 제77.4 기동부대(Task Group 77.4영어)는 세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전으로 평가받는 1944년 레이테만 전투에서 미국 해군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 부대는 필리핀 레이테섬 부근 해역에서 일본 해군과 교전했으며, 특히 레이테 만 해전의 일부인 사마르 해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2. 2. 한국 전쟁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 해군은 제77기동부대(Task Force 77)를 창설했다. 이 부대는 동해의 동해안 기동부대와 황해의 서해안 기동부대(제95기동부대, TF-95)에 항공모함을 배치하여 유엔군의 작전을 지원했다. 전쟁 기간 동안 미국 해군, 호주 해군, 영국 해군 소속의 여러 항공모함이 제77기동부대에 순차적으로 합류하여 항공 지원 및 차단 임무 등을 수행했다. 초기 지휘관 중 한 명인 G.R. 핸더슨(G.R. Hendersoneng) 소장은 제70기동부대(CTF 70) 및 제5항공모함전대(CARDIV FIVE) 사령관직도 겸임했다.

2. 2. 1. 한국 전쟁과 더불어민주당의 입장

보급받고 있는 USS 복서 (CVA-21), 1953년 6월 2일 촬영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 해군은 제77기동부대(Task Force 77)를 창설했다. 제77기동부대는 동해의 동해안 기동부대(East Coast Task Force영어)와 황해의 서해안 기동부대(West Coast Task Force영어, 제95기동부대로 지정됨)에 항공모함을 배치하여 작전을 수행했다. 서해안 기동부대는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근접성 때문에 영국 해군(RN), 호주 해군(RAN), 그리고 미국 해군의 호위 항공모함으로 구성되었다.

전쟁 기간 동안 유엔군 항공모함 작전에는 미국 해군 소속 17척, 호주 해군 소속 1척, 영국 해군 소속 5척의 항공모함이 순차적으로 투입되어 제77기동부대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제77기동부대는 유엔군의 일환으로 항공 지원 제공과 차단 임무를 수행하며 여러 차례 전투에 참여했다.

한국 전쟁 중 제77기동부대 사령관을 맡았던 G.R. 헨더슨(G.R. Henderson영어) 소장은 USS 프린스턴 (CV-37) 함상에서 제70기동부대(CTF 70) 사령관과 제5항공모함전대(CARDIV FIVE) 사령관 직책도 겸임했다. 이후 제5항공모함전대의 지휘관들은 여러 차례 제70기동부대 또는 제77기동부대 사령관으로 활동하며 일본 요코스카와 한국 전선을 오갔다.

2. 3. 베트남 전쟁

남중국해에서 진형을 유지하며 기동중인 제77기동함대 소속 함정의 모습


제77기동부대는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964년부터 1973년까지 9년 동안 통킹 만과 남중국해에서 항공모함 공격 작전을 지속했으며, 이 기간 동안 총 12명의 사령관이 지휘를 맡았다. 1964년부터는 제5항공모함전대 사령관(COMCARDIV FIVE)이 서태평양에 영구 배치되어 필리핀의 쿠비 포인트 해군 항공 기지에 주둔하며 제70기동부대(CTF 70) 및 제77기동부대(CTF 77)의 지휘를 겸임했다.

베트남 전쟁 동안 미 해군이 운용한 23척의 항공모함 중 21척이 제77기동부대에 소속되어 최소 한 번 이상 작전에 참여했으며, 총 작전 투입 일수는 9,100일을 넘었다. 이 때문에 베트남 해상에서 진행된 미국의 항공모함 작전은 통킹 만 요트 클럽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제77기동부대는 ''롤링 선더'' 공습, 무장 정찰, 사진 정찰 임무 등을 수행하며 북베트남의 특정 목표물과 병참선(LOC)을 공격했다. 작전 수행 과정에서 제7공군과 긴밀히 협력하여 롤링 선더 프로그램의 모든 공중 작전을 효과적으로 조정하는 절차를 개발했다.

1965년부터 1968년 사이 미 해군이 동남아시아에서 격렬한 전투에 참여하면서, 전쟁의 복잡한 특성을 반영하는 지휘 체계가 구축되었다. 이론상 태평양 총사령관(CINCPAC)은 주 베트남 미국 군사 지원 사령관(COMUSMACV)에게 배속된 병력을 포함하여 아시아의 모든 미군을 지휘했다. 미국 태평양 함대는 태평양 사령부의 해군 구성 요소로서 해상 작전을 총괄했으며, 그 휘하의 미국 제7함대 사령관이 동남아시아, 특히 남베트남 외부 해역에서의 작전을 지휘했다. 제7함대의 핵심 타격 부대인 제77기동부대는 남중국해에서 라오스와 북베트남을 대상으로 공중 차단 작전을 수행했다. 동시에 제7함대의 순양함 및 구축함 부대는 북베트남 해안을 따라 적의 물자 수송을 차단하고 해안 목표물을 포격했으며, 남베트남의 연합군에게 함포 사격 지원을 제공했다.[2]

남중국해에서 제77기동부대는 북베트남에서는 ''롤링 선더''와 ''블루 트리'' 작전에, 라오스에서는 ''배럴 롤'', ''스틸 타이거'', ''타이거 하운드'' 폭격 작전과 ''양키 팀'' 정찰 작전에 참여했다. 또한 남베트남에서는 지상군 지원 임무를 수행했다. 항공모함들은 주로 양키 기지(1966년 4월 이후 북위 17°30', 동경 108°30'에 위치)에 배치되었으며, 1965년과 1966년 일부 기간 동안에는 딕시 기지에서도 작전했다. 일반적으로 1966년 8월 이전에는 2~3척의 항공모함이 제77기동부대에서 작전을 수행했으나, 그 이후에는 3~4척으로 증강되었다. 특히 1972년 부활절 공세 기간에는 5~6척의 항공모함이 동시에 작전에 투입되기도 했다.

각 항공모함에는 항공모함 항공단이 배치되어 70대에서 100대에 이르는 항공기를 운용했다. 항공단은 통상적으로 2개의 전투기 비행대대, 3개의 공격 비행대대, 정찰 공격 비행대대, 공중 조기 경보 비행대대 및 소규모 파견대로 구성되었다. 탑재 항공기의 수는 항공모함의 크기와 등급에 따라 달라졌는데, 65000ton급의 대형 포레스탈급 항공모함과 70000ton급의 키티호크급 항공모함, 핵추진 항공모함인 ''엔터프라이즈''부터 27000ton급의 제2차 세계 대전 시대 개조 에식스급 항공모함까지 다양한 함선이 투입되었다.[2][3]

2. 4. 냉전 시대 (베트남 전쟁 전후)



분쟁 기간 동안 제77기동부대는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 당시 프랑스군의 작전을 지원했으며, 여러 차례 발생한 타이완(당시 포르모사)의 진먼-마쭈 분쟁 동안에는 대기 상태를 유지했다. 또한 베트남 전쟁에 미군 전투 부대가 본격적으로 투입되기 이전인 1961년, 1962년, 1964년에는 라오스 상공에서 제한적인 작전을 수행했다. 베트남 전쟁 이전 시기에는 제5항공모함전단 사령부(COMCARDIV FIVE)의 소재지가 여러 태평양 항구를 옮겨 다녔고, 미국 서해안에서 순환 배치되는 태평양 함대 항공모함을 기함으로 활용했다.

베트남 전쟁 이후인 1973년 6월 30일, 제5항공모함전단은 제5항모전단(CARGRU FIVE)으로 개편되었다. 제77기동부대는 서태평양 지역에서 냉전 시대의 억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제7함대 항공타격전력 사령관으로 복귀했으며, 제5항모전단 사령관(COMCARGRU FIVE)과 제70기동부대 사령관(CTF 70) 직책을 겸임했다. 제70기동부대는 제7함대 전투전력으로도 알려져 있다.[2] 제5항모전단 사령관의 모항은 필리핀의 큐비 포인트 해군 항공기지에 위치했다. 이러한 체제 하에서 제77기동부대 사령관(CTF 77)은 1973년 10월부터 전진 배치 해군(FDNF)의 일환으로 일본 요코스카를 모항으로 둔 항공모함 USS 미드웨이(CV-41)와, 캘리포니아주의 NAS 노스 아일랜드 및 NAS 알라메다에서 서태평양으로 순환 배치되는 태평양 함대 소속 항공모함들에 번갈아 탑승하며 지휘했다.

1979년 말부터 제77기동부대는 이란 혁명과 그 여파로 발생한 이란 인질 사태(1979년 11월 ~ 1981년 1월,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 직원 억류 사건)에 대응하여, 곤조 기지와 이란 근해의 오만만에서의 항공모함 주둔 활동에 집중했다. 1981년 미국인 인질들이 석방되면서 곤조 기지 인근의 항공모함 주둔은 축소되었고, 제77기동부대/제5항모전단/제70기동부대(CTF 77/CCG-5/CTF 70)는 다시 서태평양 지역에서 소련 해군의 활동을 견제하는 억제 임무로 복귀했다. 이 시기 제77기동부대는 북아라비아해에서부터 일본 북쪽 해역 및 북태평양에 이르는 넓은 범위에서 두세 개의 항공모함 전단을 운용했다.

2. 5. 걸프전

1990년 8월 2일, 이라크가 이웃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미국 군대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방어하기 위해 사막 방패 작전의 일환으로 병력을 이동시켰다. 1990년 11월 1일, 항공모함 ''미드웨이''에 탑승한 제77 기동부대(CTF 77)는 북아라비아해에 배치된 다중 항공모함 전투 부대 '줄루'(Zulu)의 임무를 맡았다. 11월 15일, 제77 기동부대는 사우디아라비아 북동부에서 8일간 실시된 연합 상륙 훈련인 '임박한 뇌우 작전'(Operation Imminent Thunder)을 감독했다. 이 훈련에는 약 1,000명의 미국 해병대, 16척의 군함, 1,100대 이상의 항공기가 동원되었다. 한편, 국제 연합은 이라크에게 1991년 1월 15일까지 쿠웨이트에서 철수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최후통첩 기한 다음 날인 1월 16일, 사막 폭풍 작전이 시작되었다. 미국 해군페르시아만의 ''미드웨이''와 ''레인저''(CV-61)에서 228대의 전투기를 출격시켰다. 또한 걸프만으로 향하던 ''시어도어 루스벨트''(CVN-71)와 홍해에 있던 ''존 F. 케네디''(CV-67), ''새러토가''(CV-60), ''아메리카''(CV-66)에서도 전투기가 출격했다. 이와 함께 해군은 지중해, 홍해, 페르시아만에 있는 9척의 함정에서 100발 이상의 토마호크 미사일을 발사했다. 사막 폭풍 작전은 2월 27일에 공식적으로 종료되었으며, ''미드웨이''는 1991년 3월 11일 페르시아만을 떠나 필리핀에서 제77 기동부대를 하선시킨 후 일본 요코스카로 귀환했다.

3. 해체

2000년 중반, 제77기동부대는 제7함대 기동부대로서 해체되었으며, 그 임무는 제7함대 전투부대 사령관인 제70기동부대에 통합되었다. 제70기동부대 사령관은 제5항모강습단 사령관을 겸임하고 있다. 제70기동부대 참모진은 기함인 항공모함(현재 USS 로널드 레이건)에 탑승하지 않을 때, 일본 요코스카 해군 시설에 주둔한다.

참조

[1] 서적 Leyte, June 1944 – January 1945, vol. 5 of History of United States Naval Operations in World War II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2004
[2] 웹사이트 Carrier Group FIVE http://www.globalsec[...] 2015-10-08
[3] 웹사이트 Tactical Command and Control of Carrier Operations http://www.history.n[...] 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2014-05-13
[4] 웹사이트 Forces -- Commander, U.S. 7th Fleet http://www.c7f.navy.[...]
[5] 웹사이트 Comcarstrkgru Five http://www.public.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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