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 로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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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니퍼 로페즈는 미국의 배우, 가수, 댄서, 프로듀서, 사업가이다. 1969년 뉴욕 브롱크스에서 푸에르토리코 출신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1986년 영화 《마이 리틀 걸: 빛나는 여름》으로 데뷔했으며, 1990년에는 뮤지컬 《싱크로니시티》로 무대 데뷔를 했다. 1997년 영화 《셀레나》로 골든글로브상 후보에 올랐고, 1999년 가수로 데뷔하여 앨범 《On the 6》를 발매했다. 이후 영화와 음악 분야에서 모두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으며, 2000년대 초반에는 《웨딩 플래너》, 《러브 인 맨하탄》 등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 출연하며 인기를 얻었다. 2010년대에는 《아메리칸 아이돌》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였고, 영화 《허슬러》에서 라모나 역을 맡아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2022년에는 벤 애플렉과 재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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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로페즈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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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제니퍼 로페즈 |
다른 이름 | J.Lo 제니퍼 애플렉 |
출생 이름 | 제니퍼 린 로페즈 |
출생일 | 1969년 7월 24일 |
출생지 | 미국 뉴욕 뉴욕시 |
직업 | 가수 배우 댄서 작곡가 사업가 |
활동 기간 | 1989년–현재 |
작품 | 음반 목록 녹음된 노래 목록 비디오그래피 필모그래피 공연 목록 |
배우자 | |
자녀 | 2명 |
친척 | 린다 로페즈 (여동생) |
수상 | 전체 목록 |
웹사이트 | jenniferlopez.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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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 정보 | |
장르 | R&B 팝 레게톤 힙합 댄스 |
악기 | 보컬 |
레이블 | 워크 그룹 에픽 아일랜드 캐피톨 히트코 BM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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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배우 정보 | |
예명 | 제니퍼 로페스 |
후리가나 | Jennifer Lopez |
본명 | Jennifer "Jen" Lynn Affleck |
다른 이름 | J. Lo |
출생지 | 미국 뉴욕시브롱크스구 |
국적 | 미국 |
신장 | 164cm |
생년 | 1969 |
생월 | 7 |
생일 | 24 |
직업 | 여배우, 가수, 프로듀서 |
활동 기간 | 1986년 - 현재 |
활동 내용 | 1986년: 영화 《마이 리틀 걸 반짝이는 여름》으로 데뷔 1990년: EXPO '90 뮤지컬 《싱크로니시티》로 무대 데뷔 1997년: 《셀레나》 1999년: 가수 데뷔 |
공식 웹사이트 | JENNNIFERLOPEZ.com |
주요 작품 | 영화: 《머니 트레인》, 《잭》, 《셀레나》, 《아나콘다》, 《유턴》, 《아웃 오브 사이트》, 《앤트》, 《더 셀》, 《웨딩 플래너》, 《엔젤 아이즈》, 《이너프》, 《메이드 인 맨해튼》, 《세계에서 가장 아빠를 좋아해!》, 《Shall we Dance?》, 《웨딩 선언》, 《언피니시드 라이프》, 《엘 칸탄테》, 《그에게 말할 수 없는 나의 계획》, 《연애만으로는 안 될까?》, 《파커/파커》, 《세컨드 액트》, 《허슬러스》 텔레비전 드라마: 《셰이즈 오브 블루 브루클린 경찰》 |
골든 라즈베리 상 | 최악의 여우주연상 최악의 스크린 커플상 |
로스앤젤레스 영화 비평가 협회상 | 여우조연상 |
한국 배우 정보 | |
이름 | 제니퍼 로페즈 |
예명 | 제이로 (J.Lo) |
본명 | 제니퍼 린 로페즈 |
출생일 | 1969년 7월 24일 |
출생지 | 미국 뉴욕 브롱크스 |
형제자매 | 린다 로페즈 (여동생) |
배우자 | |
동거자 | 캐스퍼 스마트 (2011–2016) 알렉스 로드리게스 (2017–2021) |
자녀 | 2명 |
장르 | 댄스 라틴팝 R&B |
직업 | 배우, 댄서, 음악가, 음악 프로듀서 |
악기 | 보컬 |
활동 시기 | 1995년-현재 |
레이블 | 에픽 캐피톨 아일랜드 워크 그룹 |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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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린 시절
제니퍼 린 로페즈는 1969년 7월 24일 뉴욕 브롱크스의 캐슬힐에서 태어나 자랐다.[7][8][9] 푸에르토리코 출신인 부모 과달루페 로드리게스와 데이비드 로페즈 사이에서 태어났다.[10][11] 아버지는 가디언 보험회사에서 컴퓨터 기술자로 일했고,[12] 어머니는 터퍼웨어 판매원[13], 유치원 및 체육 교사로 일했다.[14]
로페즈는 1986년 영화 《마이 리틀 걸》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댄서와 배우로 활동하며 경력을 쌓았다. 1997년 영화 《셀레나》에서 주연을 맡아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 오르며 스타덤에 올랐고, 1999년 데뷔 앨범 ''On the 6''를 발매하며 가수로도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 2000년대 초, 앨범 ''J.Lo''와 영화 《웨딩 플래너》를 동시에 1위에 올리며 전성기를 맞았다.
로페즈는 세 자매 중 둘째로, 언니 레슬리와 여동생 린다가 있다.[15] 로마 가톨릭 가정에서 자랐으며, 홀리 패밀리 스쿨과 프레스턴 고등학교를 다녔다.[18] 학교에서는 육상, 체조, 소프트볼 팀에서 활동했다.[19]
어린 시절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보고 연예인의 꿈을 키웠으며,[18] 키프스 베이 소년 소녀 클럽에서 플라멩코, 재즈, 발레를 배웠다.[18] 고등학교 졸업 후 법률 회사에서 일하며 바루크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25][26] 18세에 댄스 스튜디오에 등록하여 본격적으로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17][16][18]
3. 경력
2003년 영화 《기글리》의 흥행 실패와 벤 애플렉과의 관계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경력 침체기를 겪었지만, 2010년 《백업 플랜》으로 복귀하고, 2011년 《아메리칸 아이돌》 심사위원으로 합류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이후 가수와 배우 활동을 병행하며 꾸준히 활동을 이어갔다.
2019년 영화 《허슬러스》에서 뛰어난 연기를 선보이며 다시 한번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졌고, 2020년 슈퍼볼 LIV 하프타임 쇼 공연은 큰 화제를 모았다. 2022년 이후 영화 제작에도 참여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고, 2024년에는 9번째 정규 앨범 ''This Is Me… Now''를 발매했다.
3. 1. 1989–1996: 댄서 및 초기 연기 활동
로페즈는 1986년 영화 《마이 리틀 걸: 빛나는 여름》(My Little Girl)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18] 1989년에는 뮤지컬 리뷰 쇼 ''골든 뮤지컬스 오브 브로드웨이(Golden Musicals of Broadway)''와 함께 5개월 동안 유럽을 순회 공연했다.[28][62] 1990년에는 ''요! MTV 랩스(Yo! MTV Raps)''의 한 에피소드에서 MC 해머(MC Hammer)와 함께 춤을 추었고,[29] ''싱크로니시티(Synchronicity)'' 합창단원으로 4개월 동안 일본을 여행했다.[18]
미국으로 돌아온 후, 뉴 키즈 온 더 블록(New Kids on the Block)의 "게임즈(Games)" 공연에서 백업 댄서로 1991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 참여했다.[30] 또한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Jesus Christ Superstar)''와 ''오클라호마!(Oklahoma!)'' 지역 공연에도 참여했다.[31] 이 시기 로페즈는 여러 뮤직비디오에서 댄서로 활동했다.[32][33]
1991년 말, 로페즈는 스케치 코미디 텔레비전 시리즈 ''인 리빙 컬러(In Living Color)''에서 플라이 걸 댄서로 활동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35] ''인 리빙 컬러(In Living Color)'' 3, 4시즌에 출연한 후, 재닛 잭슨(Janet Jackson)의 백업 댄서로 활동하기도 했다.[62]
1994년, 텔레비전 쇼 ''사우스 센트럴(South Central)''에서 작은 역할로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18] 이후 ''세컨드 찬시스(Second Chances)'', ''호텔 말리부(Hotel Malibu)'', 텔레비전 영화 ''로스트 인 더 와일드(Lost in the Wild)''(1993)에 출연했다.[38][39]
1995년, 그레고리 나바(Gregory Nava) 감독의 드라마 ''미 파밀리아(Mi Familia)''에서 마리아 산체스 역을 맡아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40] 같은 해, 액션 코미디 ''머니 트레인(Money Train)''에 출연하여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할리우드에서 주목받는 배우로 성장했다.[41][42]
1996년에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 감독의 코미디 ''잭(Jack)''에서 로빈 윌리엄스(Robin Williams)와 함께 출연했고,[41] 네오 누아르 스릴러 ''블러드 앤 와인(Blood and Wine)''(1996)에서는 잭 니콜슨(Jack Nicholson)과 호흡을 맞췄다.[43]
3. 2. 1997–1999: 《셀레나》와 ''On the 6''
셀레나(1997)에서 가수 셀레나 역을 맡아 로페즈는 100만 달러를 받은 최초의 라틴계 여성 배우가 되었다.[44] 이 영화 출연료를 "세상을 향한 선언"이라고 표현했지만,[45] 다른 라틴계 배우들이 같은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에 실망감을 표했다.[45] 이전에 영화 감독인 그레고리 나바와 마이 패밀리에서 함께 작업했음에도 불구하고, 로페즈는 치열한 오디션 과정을 거쳤고,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고인이 된 가수의 가족과 텍사스주 코퍼스크리스티에서 시간을 보냈다.[46][47] 셀레나는 흥행에 성공했고, 로페즈의 연기는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았다.[48][49] 시카고 선타임스의 로저 이버트는 이를 "스타를 만드는 연기"라고 묘사하며, "10만 명의 팬 앞에서 설득력 있게 보일 수 있는 스타성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50] 로페즈는 이 연기로 첫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 올랐다.[51] 1997년 후반, 로페즈는 공포 영화 아나콘다에서 아이스 큐브와 함께 주연을 맡았는데, 이 영화는 비평가들의 혹평을 받았지만 흥행에는 성공했다.[52] 범죄 영화 유 턴(1997)에서[54] 로페즈는 감독 올리버 스톤이 촬영 중에 추가한 베드신에서 상반신 노출 연기를 했다.[18]
로페즈는 범죄 코미디 영화 아웃 오브 사이트(1998)에서 조지 클루니와 함께 주연을 맡았는데, 이 영화는 엘모어 레너드의 1996년 소설을 스티븐 소더버그가 각색한 작품이다.[55] 매력적인 범죄자에게 반하는 연방 보안관 부관으로 출연하여, 그녀의 연기는 극찬을 받았다.[56][410] 뉴욕 타임스의 재닛 매슬린은 이를 "지금까지 그녀의 최고의 영화 역할"이라고 묘사했다.[57] 1998년, 로페즈는 애니메이션 영화 개미에서 아즈테카의 목소리를 연기했다.[56]
로페즈는 셀레나 작업 후 "무대의 흥분"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깨닫고 음악 경력을 쌓기로 결심했다.[62] 그녀의 새로운 매니저 베니 메디나는 그녀를 "모든 미디어를 아우르는 브랜드 네임"으로 만들려고 했다.[62] 자신의 "라틴계 뿌리에 대해 정말로 느끼고 있던"[63] 로페즈는 스페인어 데모를 녹음했다. 소니 뮤직의 워크 그룹 책임자인 토미 모톨라는 그녀와 계약을 맺었지만, 대신 영어로 노래할 것을 제안했다.[65]
브롱크스에 있는 그녀의 어린 시절 집을 맨해튼과 연결하는 6호선 지하철을 따서 명명된 그녀의 데뷔 앨범 On the 6(1999)[67]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그녀의 대중적 인지도를 더욱 높였다.[68][69] 이 앨범은 성공을 거두었고, 로페즈의 데뷔 싱글 "If You Had My Love"는 미국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했으며,[69] 또 다른 싱글 "Waiting for Tonight"은 8위에 올랐고, 새 천년을 축하하는 앤썸이 되었다.[486] 이 앨범의 다른 싱글로는 로페즈의 시그니처 송 중 하나가 된 "Let's Get Loud"와, 미래의 남편인 마크 앤서니와의 듀엣곡 "No Me Ames"가 있다.[69] 1999년 7월, 그녀는 1999 FIFA 여자 월드컵 폐막식에서 "If You Had My Love"와 "Let's Get Loud"를 공연했다. 이 공연은 전 세계 10억 명 이상의 시청자들이 시청했고, 로페즈의 음악 경력을 더욱 넓은 국제 무대로 알렸다.[70]
3. 3. 2000–2002: 국제적인 성공
2000년 2월, 로페즈는 당시 남자친구였던 션 컴즈와 함께 제42회 그래미상 시상식에 참석했는데, 이때 그녀는 깊게 파인 초록색 베르사체 실크 시폰 드레스를 입었다.[71] 이 드레스는 전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구글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검색어가 되어 구글 이미지의 탄생으로 이어졌으며,[72] 로페즈의 앨범 및 영화 티켓 판매량을 증가시켰다.[73] 같은 해 후반, 로페즈는 심리 스릴러 영화 셀에 출연했는데, 이 영화에서 그녀는 400만달러의 출연료를 받았다.[68] 급진적인 실험 치료를 사용하여 살인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심리학자 역할을 맡은 이 영화는 엇갈린 평가를 받았지만 흥행에 성공했다.[74]
2001년 1월, 로페즈는 두 번째 앨범 J.Lo와 매튜 맥커너히가 공동 주연으로 출연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 웨딩 플래너의 발매와 함께 영화와 앨범을 동시에 1위에 올린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77] 웨딩 플래너는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흥행에 성공했다.[417] 로페즈는 팬과 언론이 점점 그녀를 부르는 별명을 따서 앨범 제목을 ''J.Lo''로 지었고, 자신의 무대 이름으로도 채택했다.[428] ''J.Lo''는 그녀 경력에서 가장 성공적인 앨범이 되어 전 세계적으로 1200만 장이 팔렸다.[79] 이 앨범에는 여러 국가에서 1위를 차지한 "Love Don't Cost a Thing", 빌보드 핫 100 정상에 오른 자 룰이 피처링한 "I'm Real",[80] "Ain't It Funny", "Play"가 수록되어 있다. 이 앨범을 홍보하기 위해 로페즈는 푸에르토리코에서 두 차례의 콘서트를 열었고, 이는 2001년 11월 NBC 특별 방송인 ''제니퍼 로페즈 인 콘서트''로 방영되었다. 이는 미국에서 가장 시청률이 높은 콘서트 특집 프로그램 중 하나였으며, 시청자 수는 거의 1200만 명에 달했다.[81]
2001년, 로페즈는 첫 번째 사업인 의류 라인 J.Lo by Jennifer Lopez를 런칭했다. 이 라인은 모든 사이즈의 여성을 대상으로 했는데, 로페즈는 패션 업계에서 "볼륨감 있는 여성이 거의 무시당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428] 그녀는 또한 매니저 베니 메디나와 함께 자신의 제작사 뉴요리칸 프로덕션스를 설립했다. 그녀의 다음 영화는 짐 커비즐과 함께 주연한 로맨틱 드라마 엔젤 아이즈였다.[82] 로페즈의 연기는 호평을 받았지만,[83][84] 영화는 비평과 상업적으로 모두 실패했다.[85]
2002년에 로페즈는 두 개의 앨범을 발매했다. 첫 번째는 J to tha L–O! The Remixes였는데, 이는 빌보드 200에서 1위로 데뷔한 최초의 리믹스 앨범이 되었다.[87] 이 앨범의 싱글에는 빌보드 핫 100에서 각각 1위와 10위를 차지한 "Ain't It Funny (Murder Remix)"와 "I'm Gonna Be Alright"이 포함되어 있다.[6] 로페즈의 세 번째 스튜디오 앨범 This Is Me... Then은 2002년 후반에 발매되었으며, 당시 약혼자였던 벤 애플렉과의 관계에 큰 영향을 받았다. 이 앨범은 상업적으로 성공하여 그녀 경력에서 가장 높은 첫 주 판매량을 기록했다.
2002년, 로페즈는 영화 이너프에서 학대받는 아내가 맞서 싸우는 역할을 맡았는데, 이 역할을 위해 크라브 마가를 배워야 했다.[85][89] 과로한 로페즈는 2001년 이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신경 쇠약을 겪었다.[90] 이 영화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85] 그녀의 다음 영화는 브롱크스 출신의 가정부이자 싱글맘으로 랠프 파인스와 함께 출연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 메이드 인 맨해튼(2002)이었다.[92] 이 영화는 그녀 경력에서 최고 흥행 수익을 기록했다.[106] 2002년 사업 활동으로 로페즈는 라틴 요리를 제공하는 로스앤젤레스 레스토랑 마드레스를 열었고,[94] 그녀의 첫 향수인 Glow by JLo를 출시했다. 이 향수는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향수가 되었다.[95]
3. 4. 2003–2009: 언론의 집중 조명과 경력 침체
2003년, 로페즈는 벤 애플렉과의 공개적인 관계로 인해 언론의 집중적인 비판을 받았다. 타블로이드 매체들은 그녀를 까다로운 디바로 묘사했다.[96] 같은 해 중반, 그녀는 개인 매니저 베니 메디나와 홍보 담당자를 모두 해고했다. ''뉴욕 타임스''는 영화 관계자들이 로페즈와의 소통이 메디나를 통해 "대부분 걸러지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었다고 보도했다.[97] 그 해, 로페즈는 벤 애플렉과 함께 로맨틱 코미디 영화 ''기글리''에 출연했으나, 이 영화는 흥행참패를 기록하며 역대 최악의 영화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106][98][99] ''옵저버''의 렉스 리드는 주연 배우들의 "기술과 재능 모두에서 한심할 정도로 무능하다"고 비판했다.[100] 로저 에버트는 영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동의했지만, 로페즈와 애플렉의 "연기는 매력적"이었다며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를 언급했다.[101] 2003년 후반, 그녀는 두 번째 향수 스틸 제니퍼 로페즈를 출시하고 루이뷔통의 가을 광고 캠페인 모델이 되었다.[102]
2004년, 로페즈는 영화 ''저지 걸''에서 애플렉과 함께 조연으로 출연했다. 시험 상영 관객들의 부정적인 반응으로 인해 그녀의 출연 시간은 절반으로 줄었다.[103] 로페즈는 훗날 이 시기를 자신의 경력에서 가장 낮은 시점으로 묘사하며,[104] ''기글리''를 둘러싼 언론 보도에 "내장이 파헤쳐지는"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나는 자아를 잃고, 내가 이 사업에 속해 있는지 의심했고, 아마 모든 일에 서툴렀던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내 관계는 전 세계 앞에서 자멸했습니다. 다시 일어설 때까지 2년이나 걸렸습니다."[105] 몇 달 후, 그녀는 리처드 기어와 함께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쉘 위 댄스?''에 출연하여 흥행에 성공했다.[106] 2004년, 로페즈의 의류 라인과 두 가지 향수는 3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77]
2005년, 로페즈는 제인 폰다와 함께 출연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 ''몬스터 인 로''의 마케팅에서 그녀의 "''기글리''와 타블로이드로 얼룩진 이미지"를 부각시켜 흥행에 성공했다.[106][107] 같은 해 초, 그녀는 네 번째 정규 앨범 ''리버스''를 발매했다. 이 앨범의 제목은 "새로운 직업적 시작"에 대한 로페즈의 희망을 상징했다.[108] 앨범은 로페즈가 "새로운 삶에서 발판을 찾으려고 조금 길을 잃은" 시기에 녹음되었다. "나는 방금 마크 앤써니와 결혼했고... 베니(메디나)와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411] ''리버스''에 대한 리뷰에서 기자 알렉시스 페트리디스는 제목이 "로페즈조차 자신의 경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하이라이트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여전히 질문을 곱씹게 된다: 제니퍼 로페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라고 말했다.[109] 앨범은 ''빌보드'' 200에서 2위에 올랐지만, 이전 앨범들의 판매량을 따라잡지는 못했다.[419] 그러나 앨범의 첫 번째 싱글 "겟 라이트"는 ''빌보드'' 핫 100에서 12위에 오르며 그녀의 가장 성공적인 노래 중 하나가 되었다.[6] 또한, 2005년 로페즈는 킬 빌에서 영감을 받은 펩시 광고에 비욘세, 데이비드 베컴과 함께 출연했고,[111] 이전 브랜드보다 "하이 패션"을 지향하는 두 번째 패션 브랜드 스윗페이스를 출시했다.[110]
이후 로페즈가 출연한 세 편의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다. 2005년 드라마 ''미완성된 삶''에서 로버트 레드포드, 모건 프리먼과 함께 출연했다. ''시카고 선-타임스''의 에버트는 "그녀는 지금 아무도 그녀가 하는 어떤 일에도 만족하지 않는 시기를 겪고 있기 때문에 제니퍼 로페즈를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로페즈가 다시 잘 해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녀는 우리가 그녀를 새롭고 훌륭하다고 생각했을 때와 같은 배우입니다."라며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다.[113] 2006년, 그녀는 그레고리 나바 감독과 다시 만나 멕시코 시우다드 후아레스의 여성 살인 사건을 조사하는 기자로 출연하는 범죄 드라마 ''보더타운''에 출연했다.[114] 이 영화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비디오 직접 배포 방식으로 출시되었다.[106] ''스크린 데일리''의 데이비드 다시는 로페즈가 기자로서 "설득력이 없다"고 평가했다.[115] 2007년, 그녀는 당시 남편이었던 마크 앤써니와 함께 푸에르토리코 살사 가수 엑토르 라보에와 그의 아내 푸치의 이야기를 그린 음악 전기 영화 ''엘 칸탄테''에 출연했다.[116] 이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고, 영화 평론가들로부터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로페즈는 자신의 연기에 자부심을 표했지만,[374] 칭찬과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108][117]
2007년, 로페즈는 두 개의 정규 앨범을 발매했다. 다섯 번째 앨범 ''코모 아마 우나 무헤르''는 그녀의 첫 스페인어 앨범이었다.[364]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크리스 윌먼은 이 앨범이 로페즈의 가창력을 "매우 설득력 있게 증명한다"고 인정했지만, "흐물흐물한 토치송"에는 감명받지 못했다고 평했다.[118] 이 앨범은 ''빌보드'' 200에서 톱 10에 데뷔한 다섯 번째 스페인어 앨범이 되었고, 당시 아티스트의 데뷔 스페인어 앨범 중 가장 높은 첫 주 판매량을 기록했다.[171] 첫 번째 싱글 "케 히시스테"는 ''빌보드'' 핫 100에서 86위에 올랐지만, 두 번째 싱글 "메 아세스 팔타"는 차트에 오르지 못했다. 같은 해 후반에 발매된 로페즈의 여섯 번째 정규 앨범 ''브레이브''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차트 순위를 기록한 앨범이었다.[130]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조나단 번스타인은 로페즈가 "댄스 플로어로 돌아온 앨범"에 "활기 없는 보컬"로 돌아온 것에 실망했다.[119] 이 앨범은 ''빌보드'' 200에서 12위로 데뷔했으며,[120] "두 잇 웰"과 "홀드 잇 돈트 드롭 잇" 두 싱글을 발매했다. "두 잇 웰"은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31위에 올랐고, "홀드 잇 돈트 드롭 잇"은 차트에 오르지 못했다. 쌍둥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로페즈는 2007년 9월 앤써니와 함께 공동 헤드라이너로 첫 콘서트 투어 제니퍼 로페즈와 마크 앤써니 엔 콘시에르토를 시작했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108][121] 그녀는 또한 자신이 "열정 프로젝트"라고 묘사한 MTV 쇼 ''댄스라이프''를 기획, 제작 및 출연했다.[108]
2008년 2월, 쌍둥이를 출산한 후 로페즈는 경력에 휴식을 취했다.[122] 그녀의 레스토랑 마드레는 영업을 종료했고,[94] 두 개의 패션 라인도 문을 닫았다.[128] 전 매니저 메디나를 다시 고용한 후,[123] 2009년 말 "루부탱"과 "프레시 아웃 오브 더 오븐" 두 곡을 발표했다. 이 노래들은 그녀의 일곱 번째 정규 앨범을 위한 곡이었지만 ''빌보드'' 차트에 오르지 못했고, 그녀는 소니 뮤직과 에픽 레코드를 떠나게 되었다.[124]
3. 5. 2010–2015: 《아메리칸 아이돌》과 경력 부활
로페즈는 3년간의 공백을 깨고 로맨틱 코미디 영화 《백업 플랜》(2010)으로 연기 활동을 재개했다.[122] 그러나 《뉴욕 타임스》의 마놀라 달기스는 이 영화에 대해 혹평하며, 로페즈를 "실망스러운 스크린 기록을 가진 매력적인 스크린 존재"라고 묘사했다. 그는 여성 로맨틱 역할이 평범하거나 금발인 배우들에게 주로 돌아가는 현실을 지적하며, 이것이 전적으로 로페즈의 잘못은 아니라고 덧붙였다.[125]
로페즈 경력에 "중대한 전환점"이 된 것은 노래 경연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 심사위원 합류였다.[126] 시즌 10에서 사이먼 코웰의 후임으로 합류한 그녀는 "엄청난 도박"이라는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126] "많은 영화 제안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 기회를 잡았다.[127] 2011년 아메리칸 아이돌 출연은 로페즈에게 대중의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켰다.[127] 포브스의 한나 엘리엇은 이를 "놀라운 복귀"라고 평가하며, "아이돌은 그녀를 인간적으로 만들었다. 주목받는 매혹적인 여인으로만 알았던 시청자들은 열심히 일하고 자수성가한 공감 능력이 뛰어난 싱글맘을 만났다. 그녀는 참가자들이 잘 해낼 때나 실패할 때 감정을 드러냈다"고 분석했다.[128]
이후 로페즈는 빌보드가 "가장 인상적인 리얼리티 TV 기반 음악 경력 부활"이라고 칭한 성공 가도를 달렸다.[129] 아일랜드 레코드와 새 음반 계약을 맺고 2011년 초에 발매한 일곱 번째 정규 앨범 러브?는[130]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130] 싱글 "온 더 플로어"는 그 해 여성 아티스트 중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이 되었다.[131]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3위를 기록하며 "올 아이 해브" 이후 리드 아티스트로서 가장 높은 순위에 올랐다.[132] 이 앨범에서는 "임 인투 유"와 "파피"라는 두 싱글이 더 발매되었지만, "온 더 플로어"만큼의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129] 이 시기에 로페즈는 로레알, 질레트 비너스, 투스, 피아트 등 여러 브랜드의 홍보대사로 활동했다.[128] 또한 콜스를 통해 토미 힐피거와 함께 의류 및 홈웨어 라인인 제니퍼 로페즈 컬렉션을 출시하여 첫 해에 약 30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126]
2012년, 로페즈는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 11 심사위원으로 복귀하여 2000만달러의 출연료를 받았다.[128] 같은 해, 이전 레이블인 에픽 레코드와의 계약 이행을 위해 베스트 앨범 댄스 어게인... 더 히츠를 발매했다.[133] 앤서니와의 이혼으로 "가족 해체"를 겪고 있던 로페즈는 이 앨범의 유일한 싱글인 "댄스 어게인"이 "완벽한 순간"에 찾아왔다고 느꼈다.[134] "댄스 어게인"은 미국 빌보드 핫 100에서 17위를 기록했다. 2012년 중반, 로페즈는 첫 번째 헤드라이닝 콘서트 투어인 댄스 어게인 월드 투어를 시작하여 공연당 100만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135] 또한 그 해에 고급 티셔츠 브랜드 티올로지를 론칭했다.[136]
로페즈는 2012년 영화 《맘마는 어떻게 낳았을까?》에 출연하고, 애니메이션 영화 아이스 에이지: 컨티넨탈 드리프트에서 검치호 스미라의 목소리를 연기했다.[137][138][139] 또한 로페즈, 앤서니, 감독 겸 안무가 제이미 킹이 라틴 아메리카 21개국을 여행하며 라스베이거스 쇼를 위한 새로운 인재를 찾는 오디션 프로그램 《¡Q'Viva! The Chosen》이 방영되었다.[140] 2013년에는 제이슨 스타뎀과 함께 범죄 스릴러 영화 《파커》에 출연하여 레슬리 역을 맡았다. 그녀의 연기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며, 《시카고 트리뷴》은 이 역할이 로페즈에게 "극적이고, 로맨틱하고, 유머러스하고, 우울하고, 행복하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줄 기회를 주었다. 관객은 그녀와 끝까지 함께한다"고 호평했다.[141] 같은 해, 로페즈는 싱글 "라이브 잇 업"을 발매하고, 휴대전화 소매 브랜드 비바 모빌을 설립했으며,[142] 누보TV의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로 임명되었다.[143][144] 또한 레즈비언 커플이 가족을 꾸리는 이야기를 다룬 TV 시리즈 《포스터스》(2013-2018)의 제작 총괄을 맡았다. 로페즈는 동성애자였던 돌아가신 이모를 기리기 위해 이 시리즈에 참여하게 되었다.[145]
한 시즌 휴식 후, 로페즈는 1750만달러의 출연료를 받고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 13에 복귀했다.[146] 2014년 중반, 캐피톨 레코드를 통해 발매된 여덟 번째 정규 앨범 《에이케이에이》는 부진한 판매량을 기록하며 미국에서 가장 적게 팔린 앨범이 되었다.[147] 이 앨범에서는 프렌치 몬타나가 참여한 "아이 루 야 파피", "퍼스트 러브", 이기 아잘레아가 참여한 "부티" 등 세 싱글이 발매되었고, 빌보드 핫 100에서 각각 77위, 87위, 18위를 기록했다. 같은 해, 로페즈는 핏불, 클라우디아 레이테와 함께 2014년 FIFA 월드컵 공식 주제가인 "위 아 원 (올레 올라)"를 발매했다. 로페즈는 엔들리스 쥬얼리와 협력하여 주얼리 제품군을 출시했고,[148]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된 책 《트루 러브》를 출판했다.[149]
2015년, 로페즈는 공동 제작 및 주연을 맡은 에로틱 스릴러 영화 《나쁜 이웃》을 통해 고등학생과 위험한 관계를 맺는 고등학교 교사 역을 맡았다.[150] 이 영화는 비평가들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151] 《퍼펙트 웨딩》 이후 실사 영화 중 가장 성공적인 박스오피스 오프닝을 기록했다.[152][153] 로페즈는 애니메이션 영화 《홈》에서 목소리 연기를 맡았고, 이 영화의 공식 사운드트랙에 "필 더 라이트" 싱글을 기여했다.[154][155] 또한 비올라 데이비스와 함께 출연한 독립 드라마 영화 《릴라 & 이브》에서 주연을 맡았다.[156]
3. 6. 2016–2021: 텔레비전 활동, 《허슬러》, 슈퍼볼 하프타임 쇼
2016년 1월, 로페즈는 라스베이거스 플래닛 할리우드의 자포스 극장에서 올 아이 해브라는 콘서트 레지던시 공연을 시작했다.[157] 3년간 총 120회 공연으로 1억달러 이상의 티켓 판매액을 기록했다.[158][159] 레지던시 공연과 함께 로페즈는 전 소속사인 에픽 레코드와 멀티 앨범 계약을 체결하고,[160] 2010년대 가장 성공적인 싱글 중 하나인 "에인트 유어 마마"를 발매했다.[161] 같은 해, NBC 범죄 드라마 시리즈 쉐이즈 오브 블루에서 주연 및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다. FBI 비밀 요원으로 자신의 경찰대를 수사하는 싱글맘이자 경찰 형사인 할리 산토스 역을 연기했다.[162] 이 시리즈의 첫 방송은 NBC에서 7년 만에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목요일 데뷔작이었다.[163] 레이 리오타와 함께 출연한 로페즈의 연기는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164][165] 같은 해, 애니메이션 영화 아이스 에이지: 지구 대충돌에서 시라 역으로 목소리 출연을 재개했고,[166] 주세페 자노티와 협업하여 신발과 보석류 캡슐 컬렉션을 디자인했다.[167]
로페즈는 NBC 댄스 경연 시리즈 월드 오브 댄스의 총괄 프로듀서이자 심사위원을 맡았다.[168] 이 프로그램은 2017년 5월 첫 방송 이후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169][170] 같은 해, 두 번째 스페인어 앨범 ''Por Primera Vez''에 수록될 예정이었던 싱글 "니 투 니 요"와 "아모르 아모르 아모르"를 발매했으나,[171][172] 앨범은 결국 출시되지 않았다. 2017년 말, 의류 회사 게스의 새로운 얼굴로 발탁되어 회사 역사상 최고령 대변인이 되었다.[173]
2018년, 로페즈는 "세 아카보 엘 아모르", "엘 아닐로", DJ 칼리드와 카디 비가 참여한 "디네로", 배드 버니와 함께한 "테 구스테" 등 스페인어 및 스팽글리시 싱글을 발표했다. ''포브스''는 이 노래들이 "크로스오버, 주류 수준에서 완전히 연결되지 못했다"고 지적했지만, 미국 라틴 차트에서는 더 성공적이었으며, 거의 모든 노래가 ''빌보드'' 라틴 에어플레이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354] 잉글롯 코스메틱스와 협력하여 한정판 메이크업 컬렉션을 출시했다.[174] 이후 피터 시걸 감독의 코미디 영화 세컨드 액트(2018)에서 주연 및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고,[175] 영화 사운드트랙을 위해 "리미트리스" 싱글을 녹음했다.[176] ''세컨드 액트''는 비평가들로부터 엇갈린 평가를 받았지만,[177] 극장 상영 기간 동안 7230만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흥행에 성공했다.[178]
2019년 상반기, 로페즈는 50번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잇츠 마이 파티라는 국제 콘서트 투어를 시작했다. 이 투어는 38회 공연으로 약 5470만달러의 수익을 올렸으며, ''버라이어티''는 대부분의 공연이 매진되었다고 보도했다.[179] 또한 새로운 레이블인 히트코 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맺고 프렌치 몬타나가 참여한 싱글 "메디신"을 발매했다.[180] 2019년, 코치 브랜드의 글로벌 모델이 되었고,[181] 퀘이 오스트레일리아 브랜드와 함께 선글라스 컬렉션을 출시했으며,[182] 밀라노 패션 위크에서 초록색 베르사체 드레스의 업데이트 버전을 선보였다. ''굿 트러블''과 ''땡크스 어 밀리언'' TV 시리즈의 총괄 프로듀서도 맡았다.[183]
로페즈는 범죄 드라마 영화 허슬러스(2019)의 총괄 프로듀서이자 주연을 맡았다. 로린 스카파리아 감독의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부유한 월가 남성 고객들을 속이는 맨해튼 스트리퍼 그룹을 따라간다.[184] ''허슬러스''에서 베테랑 스트리퍼를 연기한 로페즈의 연기는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으며, 일각에서는 그녀의 연기 경력 중 최고라고 평가했다.[185][186][187] 이 영화는 로페즈에게 실사 영화 사상 최고의 개봉 주말 흥행 기록(3320.0000000000005만달러)을 안겨주었다.[188] 골든 글로브상, 스크린 액터스 길드 어워드, 크리틱스 초이스 무비 어워드,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189] ''허슬러스''의 성공은 여러 언론 매체에서 로페즈의 배우로서의 귀환으로 여겨졌다.[190][191][192]
2020년 2월, 로페즈는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샤키라와 함께 슈퍼볼 LIV 하프타임 쇼의 공동 헤드라이너를 맡았으며, 딸 에메 무니스도 함께 출연했다.[193] 이 공연은 극찬을 받았으며, 현재까지 가장 많이 시청된 슈퍼볼 하프타임 쇼가 되었다.[416] 같은 해 후반, 말루마와 함께한 "파티"와 "인 더 모닝" 싱글을 발매(2017년 이후 가장 성공적인 노래)한 후, 2021년 라이언 시크레스트와 함께하는 딕 클라크의 뉴 이어스 로킹 이브 특집 방송의 헤드라이너를 맡았다. 타임스 스퀘어에서 ABC를 통해 생방송으로 진행되었다.[194][195]
2021년 1월, 워싱턴 D.C.에서 열린 조 바이든 대통령 2021년 취임식에서 공연했다.[196] 사업 측면에서는 투자와 자체 브랜드 구축에 집중했다. 스킨케어 라인 JLo Beauty를 출시했고,[197] DSW와 파트너십을 맺고 신발 컬렉션을 출시했으며, 힘스 앤 허스 헬스, 바디아머 슈퍼드링크, 굴리 영양 보충제, 식사 배달 서비스 원더를 포함한 여러 회사에 투자했다.[198] 2021년 중반, 누요리칸 프로덕션을 통해 다양한 영화와 TV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넷플릭스와 다년 계약을 체결했고,[199] 라우 알레한드로와 함께 레게톤 스페인어 싱글 "캄비아 엘 파소"를 발매했다.[374]
3. 7. 2022–현재: 영화 중심 활동과 ''This Is Me... Now''
2022년 샷건 웨딩에서 조시 더하멜(Josh Duhamel)과 제니퍼 쿨리지(Jennifer Coolidge)와 함께 공동 제작 및 주연을 맡았다. 이 영화는 그 해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서 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영화 중 하나가 되었다.[212] 2023년 5월에는 니키 카로(Niki Caro)가 감독하고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액션 스릴러 영화 내 이름은 마더에 주연 및 공동 제작으로 참여했다.[213] 이 영화는 엇갈린 평가를 받았지만,[214] 2023년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시청된 영화가 되었고,[212][215] 넷플릭스 역대 최다 시청 오리지널 영화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216]
2024년 2월 16일, 로페즈의 9번째 스튜디오 앨범 This Is Me… Now가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2002년 앨범 'This Is Me... Then'의 후속작으로, 누요리칸과 BMG를 통해 발매되었다.[221] 이 앨범은 데이브 마이어스(Dave Meyers) 감독의 뮤지컬 영화 디스 이즈 미... 나우: 어 러브 스토리와 다큐멘터리 가장 위대한 러브 스토리 네버 톨드를 포함하는 "3부작 멀티미디어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두 작품 모두 프라임 비디오에서 공개되었다.[212][222] 로페즈는 '어 러브 스토리'에서 허구의 자신을 연기했으며, 이 영화는 "자전적 뮤지컬 로맨틱 코미디 액션 공상과학 영화"로 묘사되었다.[223] 가디언(The Guardian)의 팀 존스(Tim Jonze)는 로페즈가 "치료 뮤지컬 전기 영화" 장르를 발명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224] 제작 파트너들이 철회한 후, 로페즈는 2천만 달러를 투자하여 영화를 자체 제작했고, 이후 아마존이 구매했다.[212] 앨범의 첫 싱글은 "캔트 겟 이너프"이며,[225] 래퍼 아누엘 AA가 참여한 "Rebound"가 뒤이어 발매되었다.[226]
2024년 5월, 로페즈는 넷플릭스와의 계약에 따른 세 번째 프로젝트인 공상과학 스릴러 영화 아틀라스에 공동 제작 및 주연으로 참여했다.[233][234] '아틀라스'는 비평가들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나,[235] 넷플릭스에서 개봉 첫날 71개국에서 가장 많이 시청된 영화가 되었다.[236]
4. 기타 활동
제니퍼 로페즈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폭넓은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 사생활: 로페즈는 1990년대 중반까지 고등학교 시절 남자친구였던 데이비드 크루즈와 10년 가까이 교제했다.[249] 1997년부터 1998년까지는 쿠바 출신 웨이터 오자니 노아와 결혼했다.[252] 1999년부터 2001년 초까지는 래퍼 션 콤스와 교제했으나,[256][257] 1999년 12월 타임스퀘어 나이트클럽 총격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기도 했다.[258] 이후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백업 댄서 크리스 저드와 결혼했다.[261] 2002년 중반부터 2004년 초까지는 배우 벤 애플렉과 약혼했으나 파혼했다.[268][269][272] 2004년부터 2014년까지는 가수 마크 앤써니와 결혼하여 쌍둥이를 낳았다.[277][278][281] 2011년부터 2016년까지는 백업 댄서 카스퍼 스마트와 교제했고,[288][289]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야구 선수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약혼했으나 파혼했다.[290][291][292][294] 2021년, 벤 애플렉과 재결합하여 2022년에 결혼했으나,[295][298] 2024년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300]
- 자선 활동: 9·11 테러 이후, 로페즈는 자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302][303] 2007년에는 영화 ''보더타운''으로 국제앰네스티로부터 앰네스티 아티스트 상을 받았다.[304]

- 기타: 로페즈는 까다로운 성격으로도 유명하다.[566] 2001년 BBC 인터뷰 당시 90명의 수행원과 9개의 드레스룸을 요구하기도 했다.[566] 아프리카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문제 기부 촬영에서는 딥티크(Diptyque) 캔들, 노란색 장미, 애플파이 등을 요구했다.[566] 이러한 요구로 인해 인도 크리켓 프리미어리그 개막식 참석이 취소되기도 했다.[566] 초고급 스포츠카 부가티 베이론(Bugatti Veyron)을 소유하고 있으며, 재닛 잭슨(Janet Jackson)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연예계 진출을 결심했다.[569] 1993년 재닛 잭슨의 곡에 백댄서로 출연하기도 했다.[569]
4. 1. 정치적 견해 및 사회 운동
로페즈는 오랫동안 로스앤젤레스 아동병원(Children's Hospital Los Angeles)을 후원해왔다.[308] 2009년에는 여동생 린다와 함께 로페즈 패밀리 재단(Lopez Family Foundation)을 설립하여 저소득층 여성과 아동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활동을 하고 있다.[310] 이 재단은 파나마와 푸에르토리코의 의료 시설 확장을 지원했고, 브롱크스에 있는 몬테피오레 메디컬 센터에 건강한 아동 센터를 설립했다.[310][311]2012년에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세 개의 자선 단체인 글로리아 와이즈 소년 소녀 클럽, 로스앤젤레스 아동병원, 미국 적십자사에 기부금을 모금하는 자선 운동을 벌였다.[312] 2015년에는 아동 기적 네트워크 병원과 BC 아동병원 재단의 첫 번째 유명인 대변인이 되었고,[313] 같은 해 유엔재단의 최초의 여성 및 소녀를 위한 글로벌 대변인이 되었다.[314]
2017년 허리케인 어마와 허리케인 마리아 이후, 로페즈는 라스베이거스 레지던시 수익에서 100만달러를 푸에르토리코 인도적 지원에 기부했다.[316][317] 마크 안토니와 함께 허리케인 마리아 피해 지역에 물품을 신속하게 전달하기 위한 인도주의 구호 캠페인인 Somos Una Voz를 시작했다.[318] 또한, 푸에르토리코를 돕는 린-매뉴얼 미란다의 자선 싱글 "올모스트 라이크 프레이잉"에 참여했다.[320]
2021년 현재 로페즈는 계속해서 정기적으로 자선 단체에 기부하고 지원하고 있다.[321] 2021년에는 라틴계 여성 기업가와 사업주를 지원하는 자선 단체인 Limitless Labs를 설립했다.[322] 2022년에는 비영리 단체인 그라민 아메리카와 파트너십을 맺고 전국 대사로서 여성이 이끄는 라틴계 기업에 140억달러의 사업 대출과 "600만 시간의 재정 교육 및 훈련"을 제공했다.[323][324]

LGBTQ+ 스트레이트 연대(Straight Ally)[567]로도 알려져 있으며, 자신의 쌍둥이 자녀 에메에 대해 여성에게 쓰는 "she/her"나 남성에게 쓰는 "he/him"이 아닌, 성별을 구분하지 않는 중성적인 "they/them"이라는 성 정체성 대명사(pronoun)를 사용했다.[568]
4. 2. 사업
"브랜딩 선구자"로 묘사되는 로페즈는 새로운 시대의 셀러브리티 브랜딩을 개척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527][541][411] 그녀의 첫 향수인 글로우 바이 제이로(Glow by JLo)는 2000년대 셀러브리티 향수의 부상에 영향을 미쳤다.[542][543][527][544] 그녀의 향수 라인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셀러브리티 라인이 되었으며, 2012년 기준으로 20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545] 로페즈의 의류 브랜드는 최초의 셀러브리티 패션 라인 중 하나였다.[546] 학자들은 그녀가 "패션이 어떻게 생산되고 다른 예술적 노력과 얽혀 있는지"를 재정의하고,[483] 패션과 화장품 분야에서 인종적 모호성을 브랜딩 목적으로 활용하는 트렌드를 대중화했다고 평가한다.[547] 2022년 현재, 그녀의 사업은 전 세계적으로 총 50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548]5. 예술성
제니퍼 로페즈는 음악, 춤, 연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다재다능한 예술가이다.
마돈나, 티나 터너, 제임스 브라운, 마이클 잭슨,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자넷 잭슨, 셰어, 베트 미들러, 다이애나 로스 등 다양한 아티스트에게서 영향을 받았다.[345][346][347][189][348][349][68] 특히 리타 모레노가 출연한 뮤지컬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61)는 어린 시절 로페즈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352]
음악적으로는 힙합을 기반으로 라틴 음악의 요소를 결합하며,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356] 빌보드는 그녀가 "자신의 라틴 정체성을 과소평가한 적이 없으며, 장르에 관계없이 항상 그것을 드러내려 한다"고 평가했다.[353] 그녀의 음악은 사랑, 성장, 여성의 권한 강화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365][62][366][367]
로페즈는 발레, 재즈, 플라멩코 등 다양한 스타일의 춤을 훈련받은 뛰어난 댄서이기도 하다.[383][385] 그녀의 뮤직비디오와 무대 공연은 화려하고 선정적인 안무로 주목받는다.[386][387]
연기 분야에서는 1986년 영화 《마이 리틀 걸: 빛나는 여름》(My Little Girl)으로 데뷔한 후, 다양한 영화에 출연하며 경력을 쌓았다. 1997년 영화 《셀레나》로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 올랐고, 1998년 영화 《아웃 오브 사이트》의 흥행으로 톱스타 반열에 올랐다. 그녀는 주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평범한 여성" 역할을 맡으며, 생존자의 이야기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406][407]
연도 | 제목 | 원제 | 역할 |
---|---|---|---|
1995 | 마이 패밀리 | My Family | 마리아 산체스 (20세기) |
1995 | 머니 트레인 | Money Train | 그레이스 산티아고 |
1996 | 잭 | Jack | 미스 마르케즈 |
1997 | 블러드 앤 와인 | Blood and Wine | 가브리엘라 "개비" |
1997 | 셀레나 | Selena | 셀레나 퀸타닐라 페레즈 |
1997 | 아나콘다 | Anaconda | 테리 플로레스 |
1997 | 유 턴 | U Turn | 그레이스 맥케너 |
1998 | 조지 클루니의 표적 | Out of Sight | 카렌 시스코 |
2000 | 더 셀 | The Cell | 카테린 딘 |
2001 | 웨딩 플래너 | The Wedding Planner | 메리 피오레 |
2001 | 엔젤 아이즈 | Angel Eyes | 새론 포그 |
2002 | 이너프 | Enough | 슬림 힐러 |
2002 | 러브 인 맨하탄 | Maid in Manhattan | 마리사 벤투라 |
2003 | 갱스터 러버 | Gigli | 리키 |
2004 | 저지 걸 | Jersey Girl | 커트루드 스타이니 |
2004 | 셜 위 댄스? | Shall We Dance? | 폴리나 |
2005 | 퍼펙트 웨딩 | Monster-in-Law | 샤롯테 찰리 칸티리니 |
2005 | 끝나지않은 인생 | An Unfinished Life | 진 길키슨 |
2006 | 보더타운 | Bordertown | 로렌 프레데릭스 |
2019 | 허슬러 | Hustlers | 라모나 |
2022 | 메리 미 | Marry Me | 카탈리나 "캣" 발데스 |
2022 | 샷건 웨딩 | Shotgun Wedding | 달시 |
2023 | 내 이름은 마더 | The Mother | |
2024 | 아틀라스 | Atlas | 아틀라스 셰퍼드 |
5. 1. 음악 스타일
로페즈는 마돈나를 자신의 "가장 큰 음악적 영향"으로 꼽으며, "저에게는 모든 것이 마돈나였습니다. 그녀는 제가 노래하고, 춤추고, 열심히 일하고 싶게 만들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345][346] 그녀의 다른 주요 영향으로는 티나 터너, 제임스 브라운, 마이클 잭슨이 있다.[347] 로페즈에게 또 다른 중요한 영향을 준 인물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로, 그녀는 "수년간 그녀의 경력을 지켜보면서, 그녀가 노래하고 연기하고 연출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저에게 매우 영감을 주었습니다."라고 말했다.[189] 로페즈는 자넷 잭슨을 자신의 춤과 뮤직비디오에 대한 주요 영감으로 언급하며, "아마도 저는 잭슨의 'The Pleasure Principle' 뮤직비디오 때문에 춤을 추기 시작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348][349] 그녀는 또한 셰어, 베트 미들러, 다이애나 로스의 경력을 주목했으며,[68] 레이디 가가와 같은 젊은 아티스트들에게서도 영감을 받았다.[350]성장하면서 그녀는 살사부터 바차타까지 다양한 라틴 음악 스타일과 셀리아 크루즈, 티토 푸엔테를 포함한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슈가힐 갱의 힙합곡 "Rapper's Delight"(1979)가 자신의 삶을 바꿨다고 말했다.[351] 로페즈의 유년 시절 또 다른 중요한 영감은 푸에르토리코 배우 리타 모레노가 뮤지컬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61)에서 보여준 연기였다. 라틴계 사람들이 텔레비전에 거의 출연하지 않던 시절에 모레노는 로페즈가 공감할 수 있었던 유일한 연기자였다.[352]
음악적으로 로페즈는 '''버라이어티'''와 '''포브스'''와 같은 매체에서 "카멜레온"으로 묘사될 정도로 다양한 장르를 실험하고 넘나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419][353][354][355] 그녀의 음악은 힙합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동시에 라틴 음악의 "낭만적인 순수함"을 탐구한다.[356] '''빌보드'''는 그녀가 "자신의 라틴 정체성을 과소평가한 적이 없으며, 장르에 관계없이 항상 그것을 드러내려 한다"고 지적했다.[353] ''On the 6''와 ''J.Lo''는 로페즈가 라틴 소울이라고 칭한 앨범으로, 다양한 라틴 장르를 R&B와 힙합과 융합했으며 댄스팝 요소도 포함되어 있다.[353][85][62] 대부분 영어로 되어 있지만, "Cariño"와 같이 스페인어와 영어가 섞인 노래도 포함되어 있으며,[357] 로페즈는 "Let's Get Loud"와 같은 노래에서 스페인어로 말하며 라틴 정체성을 강조한다.[358][359] 이전 작품과는 달리 ''This Is Me... Then''은 1970년대 소울 음악과 "거리의" 힙합을 혼합했다.[360] ''Rebirth''는 "편안한" 분위기로 주목받았고, ''Como Ama una Mujer''는 "매끄러운 스페인풍의 사데 숭배"로 특징지어졌다.[419]
자전적인 것으로 묘사되는[361] 로페즈의 음악은 대부분 사랑의 "흥망성쇠"를 중심으로 한다.[365] 가사적으로 ''This Is Me... Then''은 주로 그녀와 벤 애플렉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Dear Ben"이라는 노래는 앨범의 "빛나는 중심"으로 묘사된다.[362] 후속 앨범인 ''This Is Me… Now''는 애플렉과의 재회와 결혼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로페즈는 이를 "지난 20년간의 감정적, 영적, 심리적 여정"이라고 불렀다.[363] ''Como Ama una Mujer''는 로맨스, 가슴 아픔, 자기혐오에 대한 내성적인 가사를 담고 있다.[364] ''Love?''에 대해 로페즈는 "배울 것이 아직 너무 많다. 그래서 물음표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365] 로페즈 음악의 다른 반복되는 주제로는 브롱크스에서의 성장,[62][366] 사회 계층,[355] 그리고 여성의 권한 강화가 있다.[367]
로페즈는 "가볍다"고 평가받는 소프라노 목소리[368]에 대해 엇갈린 평가를 받았는데, 비평가들은 그녀의 목소리가 제한적이고, "라디오 친화적"이며 음악의 프로덕션에 가려진다고 여겼다.[369][370] ''On the 6''에 대해 '''볼티모어 선'''은 로페즈가 "숨 막힐 듯한" 스타일리시한 음역을 가지고 있지만 개성이 부족하다고 평가했고,[371] '''롤링 스톤'''은 "로페즈는 힘든 보컬 기교 대신, 당신이 이미 주목하고 있음을 아는 동네 슈퍼스타의 절제된 R&B 속삭임을 고수한다... 그녀는 조금의 '매력'과 많은 '매력'으로 큰 효과를 낸다"고 말했다.[372]
''Love?''에 대한 리뷰에서 올뮤직은 그녀의 목소리를 "가볍다"고 평가하고 "로페즈는 결코 노래 실력으로 주목받은 적이 없다. 그녀는 스타일로 주목받았다"고 적었다.[373] '''피치포크'''는 ''This Is Me… Now''에서 그녀의 "악명 높게 실용적이고, 공기처럼 가볍고 얇은"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고 묘사했지만, "목소리의 얇음은 종종 중요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의 초기 경력에 도움이 되었다"고 지적했는데, 그녀의 초기 경력은 "브롱크스의 평범함"으로 특징지어진다.[374] 로페즈는 데모 가수들의 보컬을 사용한 것에 대해 비판을 받았고, 그녀 자신의 목소리 대신 플레이백 가수의 보컬이 사용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375][376] 그러나 로페즈와 함께 작업한 프로듀서와 백킹 보컬리스트들은 이러한 소문을 일축했다.[377][378] "Play"의 작사가이자 백킹 보컬리스트로 참여한 크리스티나 밀리안은 이 논란을 "우스운" 일이라고 부르며 "마이클 잭슨이 노래에 백킹 보컬을 사용하거나 브리트니 스피어스도 마찬가지다. 음악이 만들어지는 방식은 이와 다르지 않다"라고 말했다.[378]
1999년 로드니 저킨스 등의 지원을 받아 가수로 데뷔했다. 데뷔 앨범 ''On the 6''의 싱글 ''If You Had My Love''는 빌보드 핫 100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고, 앨범은 미국 내에서 300만달러 이상 판매되었다.
두 번째 앨범 ''J.Lo''는 부진한 성적을 거둘 것처럼 보였으나, 어빙 고티에게 리믹스를 의뢰하여 위기를 극복했다. 이후로는 순조롭게 음악 경력을 쌓아나갔다.
음악적 성향은 푸에르토리코계 출신이라는 점을 반영하여 영어 외에도 스페인어로 노래하는 곡(''Qué Hiciste'' 등)도 있다. R&B를 의식한 음악 제작을 하며, 뉴욕에서 활동하는 많은 래퍼들을 피처링으로 참여시켰다. 또한 가수 데뷔 전 재닛 잭슨의 백댄서로 활동한 경험이 있으며[569], 댄스 음악의 요소도 강하다.
레이블은 데뷔 이후 에픽 레코드였으나, 2010년 1월 발매 예정이었던 앨범 ''Love?'' 발매 직전에 계약을 해지하고, ''Love?''는 아일랜드 레코드(일본에서는 유니버설 뮤직)에서 2011년 4월에 발매되었다. 이 앨범의 싱글 ''On the Floor''는 빌보드 핫 100에서 3위까지 오르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5. 2. 댄스, 비디오, 무대
댄스계의 "가장 큰 성공 사례" 중 하나로 여겨지는[168] 제니퍼 로페즈는 정교하게 구성된 춤 실력[368][379][380]과 뛰어난 기술적 역량으로 찬사를 받는다.[381] 어린 시절부터 춤에 대한 감정적인 연결을 느꼈던[382] 로페즈는 발레, 재즈, 플라멩코, 볼룸,[383] 폴 댄스,[384] 브레이크댄스, 스트릿 댄스, 힙합 등 다양한 댄스 스타일을 훈련받았다.[385] 경력 초창기부터 MTV에서 주요 인물로 활동하며, 신체를 부각하는 뮤직비디오와 선정적인 안무로 잘 알려져 있다.[386][387] CNN의 홀리 토마스는 "로페즈의 수년간의 전문적인 댄스 경험은 그녀의 비디오에서 매혹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존재감을 선사했다"고 말했다.[388] MTV의 매들린 로스는 "그녀의 다양한 비디오는 21세기 가장 기억에 남는 영상 중 일부를 담고 있다"고 썼고,[389] ''롤링 스톤''의 작가 브리타니 스파노스는 "춤 실력과 자신의 명성을 가지고 노는 능력이 그녀의 비디오를 새로운 밀레니엄 팝 캐논의 중요한 부분으로 만들었다"고 언급했다.[390] 그녀의 비디오는 때때로 성적 암시로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391][392] 2000년대 패션 트렌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393]무대에서 로페즈는 쇼맨십, 섹스어필, 그리고 종종 보디수트를 포함하는 의상으로 인정받는다.[394][395] 프리실라 페냐 오발레는 저서 ''댄스와 할리우드 라티나: 인종, 섹스 그리고 스타덤''(2011)에서 로페즈를 "메인스트림 경력을 가진 워킹 퍼포머로서의 주도권을 얻기 위해 춤을 사용했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의 역할은 그들의 신체를 인종적으로 그리고 성적으로 대상화했다"는 라틴 스타 중 한 명으로 언급했다.[396]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트로이 패터슨 또한 그녀가 무대에서 신체를 강조하는 데 사용했다고 언급하며, "그녀는 자신을 포스트 페미니스트 파워의 하이퍼버전인 플라이걸로 만들어 과잉의 위협을 가지고 놀면서 자신의 통제력을 과시했다. 결과적으로 그녀의 스타는 초신성이 되었다."고 말했다.[397] 그녀의 시그니처 동작에는 "살사 힙 서클과 연속적인 몸통의 물결치는 움직임을 가진 시계 방향 회전"이 포함된다.[398] 경력 초기에는 립싱크를 했다고 알려져 있지만,[399][400] 로페즈의 Dance Again 월드 투어는 라이브 보컬과 안무를 동시에 선보인 것으로 찬사를 받았다.[368][401][402] 그녀의 라스베이거스 레지던시인 All I Have에 대한 리뷰에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작가 놀란 피니는 그녀의 춤이 "의심할 여지 없이 쇼의 중심"이라고 말했다.[394]
그녀의 선정적인 무대 공연은 때때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데일리 비스트''의 로빈 기반은 그녀가 누드 보디수트를 입고 공연한 2011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공연을 비판하며, "모든 잘못된 방식으로 관심을 갈구했으며" "평범한 자랑"이었다고 말했다.[403] 2013년 5월, TV 시리즈 ''브리튼스 갓 탤런트'' 피날레 공연은 가족 친화적인 TV에 부적절하다고 여겨졌고, Ofcom에 시청자들의 불만이 제기되었다.[404] 2015년 음악 축제 마와진에서의 논란이 된 공연 이후, 모로코 총리 압델일라흐 벤키란은 그것을 "품위 없고" "수치스럽다"고 불렀고, 한 교육 단체는 그녀가 "공공 질서를 어지럽히고 여성의 명예와 존경심을 훼손했다"고 주장했다.[405]
5. 3. 연기
로페즈는 1986년 영화 《마이 리틀 걸: 빛나는 여름》(My Little Girl)으로 데뷔했다. 1995년 영화 《마이 패밀리》로 본격적인 영화 데뷔를 했다.1997년 영화 《셀레나》로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 올랐고, 이듬해 영화 《아웃 오브 사이트》의 흥행으로 톱스타가 되었다.
연도 | 제목 | 원제 | 역할 |
---|---|---|---|
1995 | 마이 패밀리 | My Family | 마리아 산체스 (20세기) |
1995 | 머니 트레인 | Money Train | 그레이스 산티아고 |
1996 | 잭 | Jack | 미스 마르케즈 |
1997 | 블러드 앤 와인 | Blood and Wine | 가브리엘라 "개비" |
1997 | 셀레나 | Selena | 셀레나 퀸타닐라 페레즈 |
1997 | 아나콘다 | Anaconda | 테리 플로레스 |
1997 | 유 턴 | U Turn | 그레이스 맥케너 |
1998 | 조지 클루니의 표적 | Out of Sight | 카렌 시스코 |
2000 | 더 셀 | The Cell | 카테린 딘 |
2001 | 웨딩 플래너 | The Wedding Planner | 메리 피오레 |
2001 | 엔젤 아이즈 | Angel Eyes | 새론 포그 |
2002 | 이너프 | Enough | 슬림 힐러 |
2002 | 러브 인 맨하탄 | Maid in Manhattan | 마리사 벤투라 |
2003 | 갱스터 러버 | Gigli | 리키 |
2004 | 저지 걸 | Jersey Girl | 커트루드 스타이니 |
2004 | 셜 위 댄스? | Shall We Dance? | 폴리나 |
2005 | 퍼펙트 웨딩 | Monster-in-Law | 샤롯테 찰리 칸티리니 |
2005 | 끝나지않은 인생 | An Unfinished Life | 진 길키슨 |
2006 | 보더타운 | Bordertown | 로렌 프레데릭스 |
2019 | 허슬러 | Hustlers | 라모나 |
2022 | 메리 미 | Marry Me | 카탈리나 "캣" 발데스 |
2022 | 샷건 웨딩 | Shotgun Wedding | 달시 |
2023 | 내 이름은 마더 | The Mother | |
2024 | 아틀라스 | Atlas | 아틀라스 셰퍼드 |
로페즈는 영화에서 종종 "공감대를 형성하는 평범한 여성"을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406] ''타임''의 케이디 랭은 "로페즈의 영화 경력의 오랜 특징은 생존자에 대한 이야기를 선호하는 경향입니다. 그녀의 캐릭터는 결코 수동적이지 않습니다."라고 썼다.[407] 자신이 끌리는 역할에 대해 논하며, 로페즈는 1998년에 "저는 그것들을 강한 여성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단순한 장식이 아닌 이야기의 실제 일부인 캐릭터를 좋아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그것들이 실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항상 강한 모습만 보이는 사람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408]
영화 평론가 스테파니 자카렉은 로페즈를 "지난 20년 동안 가장 재능 있고 매력적인 배우 중 한 명… 하지만 영화는 그녀와 그녀의 배우로서의 중요한 재능을 활용하는 방법을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라고 묘사했다.[409] ''뉴욕 타임스''의 작가 카일 부캐넌은 그녀의 로맨틱 코미디 출연 경향과 팝 음악 경력이 "비평적 신뢰도를 낮추었다"고 지적했다.[410] ''파커''에서 로페즈를 연출한 테일러 핵퍼드는 그녀가 "정말 연기를 잘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뉘앙스를 전달하고, 가장 미묘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녀에게 유머 감각이 있습니까? 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가장 깊은 드라마틱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411] 로맨틱 코미디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장르로 꼽는[412] 로페즈는 "로맨틱 코미디의 수호 성인"[409]이자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413][414]으로 불린다.
6. 대중적 이미지
로페즈는 1990년대 중반까지 고등학교 시절 남자친구였던 데이비드 크루즈와 거의 10년 가까이 교제했다.[249] 1997년 2월부터 1998년 1월까지는 쿠바 출신 웨이터 오자니 노아와 결혼했다.[252][253] 이후 법정 소송에서 노아는 그들의 결혼 생활에 대한 책 출판과 다큐멘터리에서 로페즈의 개인적인 신혼여행 영상 사용이 금지되었다.[254][255]
1999년부터 2001년 초까지 음반 제작자이자 래퍼인 션 콤즈(당시 "퍼프 대디")와 온-오프 관계를 맺었다.[256][257] 1999년 12월 27일 밤, 로페즈와 콤스는 타임스퀘어 나이트클럽에서 총격 사건 현장을 떠난 후 무기 불법 소지 및 절도품 소지 혐의로 체포되었다. 로페즈에 대한 혐의는 1시간 만에 취하되었고,[258] 콤스는 2001년 3월 재판에서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259] 로페즈는 2001년 9월부터 2003년 1월까지 전 백업 댄서였던 크리스 저드와 결혼했다.[261]
저드와의 이혼이 확정되기 전에, 로페즈는 2002년 중반부터 2004년 초까지 배우이자 영화 제작자인 벤 애플렉과 관계를 맺었다. 타블로이드는 이 커플을 "베니퍼"라고 불렀는데, 이는 ''베니티 페어''가 "그러한 타블로이드 브랜딩의 첫 번째 사례"라고 묘사한 합성어였다.[267] 그들은 2002년 11월에 약혼했지만,[268][269] 2003년 9월 14일 예정된 결혼식은 "과도한 언론의 관심" 때문에 4일 전에 연기되었다.[270][271] 그들은 2004년 1월 약혼을 끝냈다.[272]
2004년 6월부터 2014년 6월까지는 가수 마크 앤써니와 결혼했다.[277][278] 로페즈는 2008년 2월 롱아일랜드에서 남매 쌍둥이를 낳았다.[281][282] ''피플''지는 쌍둥이의 첫 사진에 대해 600만달러를 지불했는데, 당시 역대 가장 비싼 유명인 사진이었다.[283] 그들은 2011년 7월 결별을 발표했다. 앤써니는 2012년 4월 이혼을 신청했고[285] 2014년 6월에 최종 확정되었다. 로페즈는 두 자녀의 주 양육권을 유지했다.[286]
로페즈는 2011년 10월부터 2016년 8월까지 전 백업 댄서였던 카스퍼 스마트와 온-오프 관계를 맺었다.[288][289] 2017년 2월부터 2021년 초까지 뉴욕 양키스 야구 선수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데이트를 했다.[290][291][105] 그들은 2019년 3월에 약혼했지만[292] COVID-19 범유행으로 인해 결혼식을 두 번 연기했다. 그들은 2021년 4월 관계 종료를 발표했다.[294]
2021년 4월, 로페즈와 애플렉은 다시 데이트를 하고 있다고 보도되었고,[295] 로페즈는 그해 7월 그들의 재결합을 공개적으로 확인했다.[296] 2022년 4월, 로페즈는 첫 번째 프로포즈 20년 만에 두 번째 약혼을 발표했다.[297] 그들은 2022년 7월 16일 라스베이거스에서 결혼했고,[298] 다음 달 가족과 친구들을 위한 결혼식 파티를 열었다.[299] 2024년 8월 20일, 로페즈는 애플렉과의 이혼을 신청하여 2024년 4월 26일을 별거일로 명시했다.[300] 그녀는 또한 자신의 법적 이름을 제니퍼 린 로페즈로 되돌릴 것을 요청했다.[3]
로페즈는 2018년 ''타임''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499] 2012년에는 ''포브스''가 그녀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유명인이자 38번째로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선정했다.[128][500]
''보그''의 조너선 밴 미터는 로페즈를 "현대 유명인의 얼굴을 바꾼" 사람으로 묘사했다.[411] 그녀의 별명인 J.Lo를 통해 로페즈는 유명인이 약칭 별명을 얻는 트렌드를 시작했고, "베니퍼"는 유명인 커플의 이름 합성 관례를 시작했다.[355][507]
대중적으로 강조된 그녀의 풍만한 체형으로 인해 로페즈는 문화적 미의 기준 변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355][511][512][513] 2000년대 초 힙업 수술의 인기 급증은 로페즈 덕분이라고 여겨졌다.[514][515]
미국 패션 디자이너 협의회는 2019년 로페즈에게 "패션에 대한 오랜 기간의 세계적인 영향력"을 인정하여 패션 아이콘 상을 수여했다.[522] 그녀의 녹색 베르사체 "정글 드레스"는 ''데일리 텔레그래프(The Daily Telegraph)''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역대 가장 상징적인 레드 카펫 드레스 5위로 선정되었다.[523] 로페즈가 이 드레스를 입은 사진은 당시 역대 가장 인기 있는 검색어가 되었고, 이후 구글의 이미지 검색 기능의 개발로 이어졌다.[528]
"브랜딩 선구자"로 묘사되는 로페즈는 새로운 시대의 셀러브리티 브랜딩을 개척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527][541][411] 그녀의 첫 향수인 글로우 바이 제이로(Glow by JLo)은 2000년대 셀러브리티 향수의 부상에 영향을 미쳤다.[542][543][527][544] 그녀의 향수 라인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셀러브리티 라인이 되었으며, 2012년 기준으로 2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545]
7. 수상 내역
연도 | 상 이름 | 작품 | 결과 |
---|---|---|---|
1995년 |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드 | 마이 패밀리 | 수상 |
1997년 | 피플지 선정 '가장 아름다운 50인' | 수상 | |
1999년 | MTV 뮤직비디오상 | 'If You Had My Love' | 수상 |
2004년 | 왓카지노 선정 가장 섹시한 여성 | 4위 | |
2005년 | 피플지 선정 '가장 아름다운 50인' | 수상 | |
2007년 | 제57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앰네스티 예술가상 | 수상 |
8. 음반 목록
wikitext
- ''온 더 식스(On the 6)'' (1999)
- ''제이.로'' (2001)
- ''디스 이즈 미... 덴(This Is Me... Then)'' (2002)
- ''리버스'' (2005)
- ''코모 아마 우나 무헤르(Como Ama una Mujer)'' (2007)
- ''브레이브'' (2007)
- ''러브?(Love?)'' (2011)
- ''에이케이에이'' (2014)
- ''디스 이즈 미... 나우(This Is Me... Now)'' (2024)
1999년 로드니 저킨스 등의 지원을 받아 가수로 데뷔했다. 데뷔 앨범 ''On The 6''의 싱글 ''If You Had My Love''는 빌보드 핫 100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고, 앨범은 미국 내에서 300만 장 이상 판매되었다.
두 번째 앨범 ''J.Lo''는 부진한 성적을 거둘 것처럼 보였으나, 어빙 고티에게 리믹스를 의뢰하여 위기를 극복했다. 이후 순조롭게 음악 경력을 쌓아나갔다.
음악적 성향은 푸에르토리코계 출신이라는 점을 반영하여 영어 외에도 스페인어로 노래하는 곡(''Qué Hiciste'' 등)도 있다. R&B를 의식한 음악 제작을 하며, 뉴욕에서 활동하는 많은 래퍼들을 피처링으로 참여시켰다. 또한 가수 데뷔 전 재닛 잭슨의 백댄서로 활동한 경험이 있으며[569], 댄스 음악의 요소도 강하다.
레이블은 데뷔 이후 에픽 레코드였으나, 2010년 1월 발매 예정이었던 앨범 ''Love?'' 발매 직전에 계약을 해지하고, ''Love?''는 아일랜드 레코드(일본에서는 유니버설 뮤직)에서 2011년 4월에 발매되었다. 이 앨범의 싱글 ''On The Floor''는 빌보드 핫 100에서 3위까지 오르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아래는 발매가 중지된 앨범이다.
- ''Por Primera Vez'' (2017년) ※발매 중지
9. 출연 작품
원제
My Little Girl
Lost in the Wild
My Family
Money Train
勝生真沙子(후지TV판)
山像かおり(TV아사히판)
Jack
와타나베 미사(후지TV판)
Blood and Wine
Selena
Anaconda
佐々木優子(TV아사히판)
U Turn
Out of Sight
深見梨加(닛폰TV판)
Antz
The Cell
The Wedding Planner
松本梨香(TV아사히판)
Angel Eyes
Enough
本田貴子(TV도쿄판)
Maid in Manhattan
冬馬由美(기내 상영판)
Gigli
Shall We Dance?
岡寛恵(닛폰TV판)
Jersey Girl
Monster-in-Law
An Unfinished Life
Bordertown
El Cantante
The Back-Up Plan
'What to Expect When Youre Expecting''
Ice Age: Continental Drift
Parker
The Boy Next Door
Home
Ice Age: Collision Course
Second Act
Hustlers
Marry Me
HALFTIME
Shotgun Wedding
The Mother
Atl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