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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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총독부 재판소는 일제강점기 조선에 설치되었던 사법 기관으로, 대한제국 사법권을 일본에 위임한 후 통감부 재판소와 조선총독부 재판소로 이어졌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일본인 재판을 담당하던 통감부 법무원에서 시작하여, 1910년 한일 병합 이후 조선총독부의 사법부로 편입되었다. 고등법원, 복심법원, 지방법원 체제로 운영되었으며, 판사와 검사는 조선총독부 판사, 검사로 불렸다. 1912년에는 조선민사령이 제정되었으며, 해방 때까지 큰 조직 개편 없이 유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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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재판소 | |
---|---|
지도 | |
기본 정보 | |
명칭 | 조선총독부 재판소 |
설치 | 1910년 10월 1일 |
폐지 | 1945년 9월 2일 |
조직 | |
최고 재판소 | 고등법원 |
하급 재판소 | 지방법원, 구재판소 |
관할 구역 | |
관할 지역 | 한반도 |
법원 종류 | |
법원 종류 | 지방법원 복심법원 고등법원 최고법원 구재판소 지방재판소 특별법원 |
기타 | |
관련 기관 | 조선총독부 |
2. 연혁
개항 이후 조선(한국)에서는 조계 제도가 시행되어 일본인 재판은 영사가 담당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이 보호국이 되고 통감부가 설치되면서 영사관은 폐지되고 이사청이 설립되었다. 1906년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영사 재판 상소를 처리하는 기관으로 서울에 통감부 법무원이 설치되었다.
대한제국 법부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재판 및 사법행정을 담당하였으나, 일본인 차관 및 사법관이 '초빙'되어 사법 제도가 정비되었다. 1908년 8월 1일에는 한국의 법원으로서 대심원(서울), 고등법원(3곳), 지방법원(8곳), 지방법원(7곳)이 편성되었다.
1909년 대한제국의 사법 및 감옥 업무를 일본에 위임하는 협약이 체결되면서 한국에서의 재판은 일본인과 한국인을 동일 기관에서 처리하게 되었다. 1909년 11월 1일에는 한국 법부 및 통감부 법무원이 폐지되고, 한국의 재판소와 감옥을 총괄하는 기관으로 통감부 사법청이 설치되었다. 1910년 대한제국 병합에 따라 조선총독부가 설치되면서 통감부 재판소는 조선총독부 재판소가 되었다. 1912년에는 고등법원, 항고법원, 지방법원이 설치되었고, 제령으로 조선민사령이 제정되었다. 이후 큰 조직 개편 없이 종전을 맞이하였다.
2. 1. 통감부 재판소 시대 (1906년 ~ 1910년)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이 보호국이 되고 통감부가 설치되면서, 영사관이 폐지되고 이사청이 설치되었다. 1906년에는 일본인 대상 영사 재판의 상소를 처리하기 위해 서울에 '''통감부 법무원'''이 설치되었다.[1]대한제국 법부는 한국인 대상 재판과 사법행정을 담당했지만, 일본인 차관과 사법관이 '초빙'되어 사법 제도가 정비되었다. 1908년 8월 1일에는 한국 법원으로 대심원(서울), 고등법원(3곳), 지방법원(8곳), 지방법원(7곳)이 만들어졌다.
1909년 7월 12일, 대한제국의 사법 및 감옥 업무를 일본에 위임하는 협약(한국사법 및 감옥사무 위탁에 관한 각서)이 체결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인과 일본인 대상 재판을 동일 기관에서 처리하게 되었고, 같은 해 11월 1일 한국 법부 및 통감부 법무원이 폐지되고, 한국 재판소와 감옥을 총괄하는 통감부 사법청이 설치되었다. 동시에 '''통감부 재판소령'''(칙령 제236호) 시행으로 "통감에게 직속하며 한국에서 민사, 형사 재판 및 비송 사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통감부 재판소'''가 설치되었다. 통감부 재판소는 고등법원, 지방법원, 지방법원으로 구성되었다.
1910년 10월, 대한제국 병합으로 조선총독부가 개청되자, 통감부 재판소령은 '''조선총독부 재판소령'''으로 개정되었고, 통감부 재판소는 '''조선총독부 재판소'''가 되었다.
2. 2. 조선총독부 재판소 시대 (1910년 ~ 1945년)
1910년(메이지 43년) 10월, 대한제국 병합에 따라 조선총독부가 개청되자, 통감부 재판소령은 '''조선총독부 재판소령'''으로 개정되었고, 통감부 재판소는 '''조선총독부 재판소'''가 되었다. 독립 관청이었던 사법청은 총독부의 내부 부서가 되어 조선총독부 사법부가 되었다. 조선총독부 재판소에 속하는 판사와 검사는 공식적인 직함을 '''조선총독부 판사''', '''조선총독부 검사'''라고 하여 일본 내지의 판사와 검사와 구분하였다.1912년(메이지 45년) 3월 18일, 총독부 재판소로서 고등법원, 항고법원, 지방법원이 설치되었고, 제령으로 조선민사령이 제정되었다. 이후, 큰 조직 개편 없이 종전을 맞이하였다.
3. 기구
1912년 개정 이후 조선총독부 재판소는 고등법원, 복심법원, 지방법원 및 지방법원 지청·출장소로 구성되었고, 각 법원에는 검사국이 부속되었다. 이는 당시 일본 내지의 제도와 유사했다.[4]
3. 1. 법원
1912년 3월 18일 개정 이후 기구에 큰 변경은 없었다.- 고등법원 - 경성
- 복심법원 - 경성, 평양, 대구
- 지방법원 - 경성, 대전(공주에서 이전[4]), 함흥, 청진, 평양, 신의주, 해주, 대구, 부산, 광주, 전주
- 지방법원 지청
- 지방법원 출장소
3. 2. 검찰
검사는 재판소 검사국의 소속이었다.[4]4. 역대 조선고등법원장 및 검사장
역대 조선고등법원장 및 검사장은 다음과 같다.
구분 | 이름 | 취임 | 이임 |
---|---|---|---|
고등법원장 | 와타나베 노부(渡辺暢) | 1910년 9월 30일 | 1923년 4월 7일 | |||
요코타 고로(横田五郎) | 1923년 4월 8일 | 1932년 1월 29일 | |||
후카사와 신이치로(深沢新一郎) | 1932년 1월 30일 | 1934년 9월 1일 | |||
오가와 데이(小川悌) | 1934년 10월 2일 | 1939년 4월 16일 | |||
하라 마사카나에(原正鼎) | 1939년 4월 17일 | 1943년 1월 27일 | |||
기토 효이치(喜頭兵一) | 1943년 1월 28일 | | |||
고등법원 검사장 | 국분 삼해 | 1910년 10월 1일 ~ 1920년 9월 20일 | |||
나카무라 타케조 | 1920년 9월 20일 ~ 1929년 10월 30일 | |||
마쓰데라 타케오 | 1929년 10월 30일 ~ 1932년 1월 30일 | |||
사카이 쵸사부로 | 1932년 1월 30일 ~ 1934년 10월 2일 | |||
카사이 켄타로 | 1934년 10월 2일 ~ 1937년 11월 2일 | |||
마스나가 쇼이치 | 1937년 11월 2일 ~ 1943년 1월 28일 | |||
미즈노 시게카타 | 1943년 1월 28일 ~ | |
4. 1. 역대 조선고등법원장
(渡辺暢)(横田五郎)
(深沢新一郎)
(小川悌)
(原正鼎)
(喜頭兵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