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당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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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좌파당 (독일)은 1989년 동독의 민주화 요구에 따라 개혁을 추진한 독일 사회주의 통일당(SED)이 1990년 민주사회당(PDS)으로 당명을 변경하면서 시작되었다. 2005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발한 독일 사회민주당(SPD) 탈당파와 노동조합원들이 노동과 사회정의 – 선거 대안(WASG)을 창당하였고, PDS와 WASG는 2005년 총선에서 선거 연합을 구성한 후 2007년 합당하여 좌파당을 창당했다. 좌파당은 민주사회주의를 지향하며, 반자본주의 좌파, 공산주의 플랫폼 등 다양한 정파로 구성되어 있다. 헌법보호청의 감시, 극단주의 및 포퓰리즘 논란, 동독과의 연관성 논란 등 여러 논란이 있었으며, 주요 인물로는 그레고어 기지, 로타르 비스키, 오스카르 라퐁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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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당 (독일) - [정당]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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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
기본 정보 | |
이름 | 좌파당 |
원어 이름 | Die Linke |
로마자 표기 | Di Linke |
다른 이름 | Die Linkspartei |
로마자 표기 (다른 이름) | Di Linkspartai |
설립일 | 2007년 6월 16일 |
합병 | 민주사회당 WASG |
본부 | 카를 리프크네히트 하우스 Kleine Alexanderstraße 28 D-10178 베를린 |
학생 조직 | Die Linke.SDS |
청년 조직 | Left Youth Solid |
당원 수 | 52,000명 |
당원 수 기준 연도 | 2024년 7월 |
공식 색상 | 빨강 (공식) }} 보라 (관습) |
공식 웹사이트 | 좌파당 공식 웹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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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부 | |
공동 의장 | 이네스 슈베르트너 얀 판 아켄 |
부의장 | 아테스 귀르피나르 |
사무총장 | 야니스 에흘링 |
정치적 입장 | |
이념 | 민주사회주의 좌익대중주의 |
정치 성향 | 좌익 |
의회 의석 | |
독일 연방의회 의석 | 28석 (총 736석 중) |
독일 연방상원 의석 | 4석 (총 69석 중) |
주의회 의석 | 92석 (총 1894석 중) |
유럽 의회 의석 | 3석 (총 96석 중) |
주 총리 | 0석 (총 16석 중) |
국제 관계 | |
유럽 정당 | 유럽 좌파당 |
유럽 의회 | 유럽 의회 좌파 |
관련 단체 | |
싱크탱크 | 로자 룩셈부르크 재단 |
2. 역사
좌파당의 주요 전신은 민주사회주의당(PDS)으로, 동독 집권당이었던 독일 사회주의통일당(SED)에서 기원한다. 1989년 10월, 에리히 호네커가 사임하고 에곤 크렌츠가 뒤를 이었으나, 대중의 인기 하락으로 크렌츠는 제한적인 개혁을 추진, 베를린 장벽 붕괴를 야기한 여행 제한 완화 등을 시행했다. 11월,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은 "선도적 역할"을 포기했고 크렌츠는 사임했다. 그레고어 기시가 당 의장이, 한스 모드로가 사실상 국가 지도자가 되었다.
당은 이미지 쇄신을 위해 호네커 등 전 지도부 대부분을 축출, 새 정부는 야당과 자유 선거를 협상했다. 12월 중순 특별 당대회에서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포기, 2월에는 당명에 "민주사회주의당"을 추가했다. 민주사회주의당은 친민주적 사회주의와 동독 주권을 지지했으나, 1990년 동독 총선에서 16.4% 득표에 그쳤다.[7]
통일 직후 1990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서 2.4%를 득표한 후, 민주사회주의당은 1990년대 동부 주에서 반대 정당으로 인기를 얻었다. 1998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서 5.1%를 득표, 의석을 확보했고, 2000년대에는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을 제외한 모든 동부 주 의회에서 제2당이었다. 그러나 이념 분쟁, 회원 감소, 서부 지지 미약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1994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서는 기민련/기사련과 자유민주당이 적색-적색-녹색 연정(사민당–PDS–녹색당)을 막기 위해 "빨간 양말" 캠페인을 벌였다.[8]
2. 1. 창당 배경
1989년 동독의 서기장이던 에리히 호네커가 대중의 요구로 사임하면서, 집권 독일 통일사회당(SED) 내 개혁세력은 당의 정치적 윤곽을 새로 만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1989년 말까지 당 중앙위원회의 강경세력들을 모두 사임시키고, 1990년까지 당원 95%를 탈당시켰다.[7]1989년 12월 긴급 전당대회에서, 독일 통일사회당은 기존의 공산주의 이념을 버리고 민주적 개혁에 기반한 새로운 정책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1990년 2월, 당명을 "민주사회당"(PDS)으로 바꾸고, 그레고어 기지를 당수로 선출했다. PDS는 동독 주권을 지지하는 민주적 사회주의 정당을 표방했으나, 1990년 동독 총선에서 16.4% 득표에 그쳐 제3당으로 밀려났다.[7]
통일 이후 PDS는 동부 주에서 반대 정당으로 인기를 얻었지만, 서부 주에서는 지지 기반이 미약했다. 1994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서는 중도우파인 기민련/기사련과 자유민주당이 적색-적색-녹색 연정(사민당–PDS–녹색당)을 막기 위해 "빨간 양말"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8]
2005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아젠다 2010 노동 및 복지 개혁에 반발한 독일 사회민주당(SPD) 탈당파와 노동조합원들이 노동과 사회정의 – 선거 대안(WASG)을 창당했다. PDS와 WASG는 2005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서 선거 연합을 구성하고, 2007년에 최종적으로 합당하여 좌파당을 창당하기로 합의했다.[11]
2. 2. 창당 과정 (2005년 ~ 2007년)
2005년 총선에서 민주사회당(PDS)과 WASG은 선거 연합을 통해 8.7%를 득표, 연방하원 내 제4당이 되었다.[11] 두 정당은 2007년 3월 27일 합당에 합의하고,[11] 6월 16일 베를린에서 창당대회를 열어 좌파당(Die Linke)을 공식 출범시켰다. 로타르 비스키와 오스카르 라퐁텐이 공동 대표로 선출되었고, 그레고어 기지는 당의 연방의회 의원단 대표가 되었다.2005년 1월, 사회민주당 당원들과 노동조합원들이 게르하르트 슈뢰더 연방 총리의 아젠다 2010 노동 및 복지 개혁에 반대하며 좌파 정당인 노동과 사회정의 – 선거 대안(WASG)을 창당했다. WASG는 당원 수가 계속 증가했고, 이에 PDS 지도부는 두 정당 간의 연합을 제안했다. PDS의 기존 동독 기반과 WASG의 서독 성장 가능성을 바탕으로 두 정당은 함께 연방의회에 진출하기를 희망했다.
두 정당은 직선구에서 서로 경쟁하지 않고 양당 후보가 포함된 공동 선거 명부를 만들기로 합의했으며, 2007년에 단일 정당으로 통합하기로 합의했다. 새로운 관계를 상징하기 위해 PDS는 좌파당.PDS()로 당명을 변경했다. 공동 명부는 좌파당.PDS()라는 이름으로 출마했지만, 동독과의 연관성 때문에 PDS가 외면받았던 서독에서는 "PDS"를 생략할 수 있었다.
2005년 연방의회 선거에서 좌파당.PDS는 8.7%의 득표율과 53석을 얻어 연방의회에서 네 번째로 큰 정당이 되었다.
2. 3. 창당 이후 (2007년 ~ 현재)
좌파당은 창당 이후 서독 지역에서 지지세를 확장하며, 여러 지방 선거에서 의석을 확보했다. 2009년 총선에서는 11.9%를 득표, 76석을 확보하며 원내 제2야당으로 도약했다.[176] 2013년 총선에서는 8.6%를 득표, 64석을 확보하여 제3당이 되었고,[180] 이후 제1야당이 되었다. 2014년 튀링겐 주의회 선거에서 승리하여, 사상 처음으로 주 정부를 이끌게 되었다.[182]2017년 총선에서는 9.2%를 득표, 69석을 확보하며 원내 제5당이 되었다.[183][184] 2021년 총선에서는 4.9%를 득표, 39석을 확보하여 원내 제6당으로 후퇴했다.[185]
2023년, 자라 바겐크네히트를 포함한 10명의 연방의원이 탈당하여 자라 바겐크네히트 동맹(BSW) 창당을 시작하면서, 좌파당은 분당되었다.[187]
선거일 | 득표수(정당 투표) | 획득 의석 수 | |
---|---|---|---|
득표수 | % | ||
2005년 9월 18일 | 4,118,194 | 8.7 | 3 |
2009년 9월 27일 | 5,155,933 | 11.9 | 16 |
2013년 9월 22일 | 3,752,577 | 8.6 | 4 |
2017년 9월 24일 | 4,296,762 | 9.2 | 5 |
2021년 9월 26일 | 2,269,993 | 4.9 | 3 |
선거일 | 득표(정당 투표) | 획득 의석 | |
---|---|---|---|
득표수 | % | ||
2009년 6월 7일 | 1,968,325 | 7.5 | |
2014년 5월 25일 | 2,167,641 | 7.4 | |
2019년 5월 26일 | 2,056,010 | 5.5 | |
좌파당은 민주사회주의를 지향하며, 자본주의의 대안을 모색하는 정당이다.[59][60] 세계화에 반대하며, 당내에는 극좌 공산주의부터 중도 좌파 성향의 사회민주주의까지 다양한 정파가 존재한다.[64]
3. 이념 및 정책
2007년 3월 민주사회당과 선거대안의 합당 회의에서 주요 정책 방향이 결정되었고, 2011년 10월 에르푸르트 당 대회에서 공식 강령이 채택되었다.[64]
반파시즘[62] 및 반전주의[63] 정당으로, 유럽 연합의 시장근본주의적 정책과 나치즘 부활에 반대하지만, 유럽 통합은 지지한다. EU 집행부 민주화와 국제 정세에서 국제 연합의 역할 강화를 주장하며,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리스본 조약에 반대한다.[206]
2013년 독일 연방 선거에서 8.6% 득표율로 64석을 차지, 제3당이 되었고, 기민련(CDU)과 사민당(SPD)의 대연정 구성으로 제1야당이 되었다.[25] 2014년 투링겐 주 선거에서는 28.2% 득표율로 주 정부 수립에 성공, 보도 라멜로가 투링겐 주 총리로 선출되었다.
3. 1. 경제 정책
좌파당은 공공 투자, 교육, 연구 개발, 문화, 인프라 분야에 대한 정부 지출 증가와 대기업에 대한 세금 인상을 주장한다.[72] 상속세율 인상과 개인 순자산세(부유세) 부활을 요구하며, 저소득층의 세금 부담을 줄이면서 중산층과 고소득층의 세율을 인상하는 선형 소득세 체계를 목표로 한다. 이들은 세금 탈루 방지가 고소득층에게 유리하다고 보아, 이를 지속적인 문제로 제기한다.[72]
또한, 채권 및 파생상품 투기를 줄이는 등 금융 시장에 대한 정부 규제를 강화하고자 한다. 경제 분권화를 위해 반독점법 강화와 협동조합 강화를 추구한다. 좌파당은 노동자의 연대와 자주성 강화, 수압파쇄 금지, 민영화 반대를 지지하며, 연방 최저임금 도입을 주장한다.[72] 더 나아가 칼 마르크스의 "인간은 타락하고, 노예화되고, 버려지고, 비열한 존재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재산과 권력 구조의 타파를 목표로 한다.[73]
3. 2. 사회 정책
좌파당은 사회 복지 확대, 무상 교육 및 의료, 공공 주택 확충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 해소를 추구한다. 성 평등, 성소수자 권리 보호, 다문화주의를 지지하며, 차별 금지법 제정을 추진한다. 또한 난민 및 이민자 권리 보호, 시민권 취득 요건 완화를 통해 포용적인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3. 3. 외교 정책
좌파당은 국제적인 군축을 촉구하며, 어떠한 형태의 독일연방군(Bundeswehr)의 독일 외부 개입도 반대한다.[74] 이 당은 NATO를 해체하고 러시아를 회원국으로 포함하는 집단 안보 체제로 대체할 것을 요구한다.[74] 독일의 외교 정책은 분쟁보다는 민간 외교 및 협력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러한 요구가 즉각적인 시행을 위한 것은 아니며, 좌파-좌파-녹색 연정(red–red–green coalition)의 경직된 전제 조건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고도 말한다.[75][76]
좌파당은 에르도안(Erdoğan)의 터키처럼 국제법을 무시하는 NATO 회원국에 대한 모든 지원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77] 또한 예멘 전쟁에 참여하고[78]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권(Human rights in Saudi Arabia) 침해 혐의를 받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독일 방위 계획을 비판한다.[79]
좌파당은 유엔(United Nations),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세계은행(World Bank) 및 여러 국가 간의 양자 조약을 통한 협력을 통해 개발도상국의 부채를 탕감하고 개발 원조를 늘릴 것을 지지한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공정한 균형을 목표로 하는 유엔 개혁(reform of the United Nations)을 지지하며, 독일과 유럽 연합(European Union) 내 모든 미군 기지의 해체를 원한다. 유럽 통합(European integration)은 환영하지만, 유럽 연합의 신자유주의(neoliberal) 정책에는 반대하며, EU 기관의 민주화와 국제 정치에서 유엔의 역할을 강화할 것을 추구한다.[80] 아프가니스탄 전쟁(2001-현재)(War in Afghanistan (2001–present))과 이라크 전쟁(Iraq War),[72] 리스본 조약(Lisbon Treaty)에 반대했다.[81]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Russo-Ukrainian War)에 대한 좌파당의 입장은 복잡하다. 그레고어 기시(Gregor Gysi)는 러시아를 국가 자본주의(state capitalist) 국가로 묘사했고, 좌파당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annexation of Crimea by the Russian Federation)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군사 개입(Russian military intervention in Ukraine)을 불법으로 규정했지만, 당 원로들은 러시아와 소비에트 연방(Soviet Union)에 대한 강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다.[82] 2014년 5월, 좌파당은 우크라이나 정부 내에 파시스트가 존재하는 한 우크라이나는 독일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선언했다.[83] 일부 당원(예: 국회의원 안드레이 훈코(Andrej Hunko))은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Donetsk People's Republic)과 루한스크 인민 공화국(Luhansk People's Republic)을 강력하게 지지한다.[84] 또한 중국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며, 분데스타그에서 좌파당 부당수인 세빔 다그델렌(Sevim Dağdelen)은 EU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Ursula von der Leyen)의 중국에 대한 새로운 EU 정책 촉구 연설을 비판했다.[85]
4. 당내 정파
Antikapitalistische Linkede[210]는 연합 정부 구성을 비판하며, 자본주의에 맞서는 자세를 강조한다. 이들은 연정 참여 여부를 최소한의 기준(사유화 중단, 참전 거부, 복지예산 감축 중단)을 두고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산주의자 플랫폼(Kommunistische Plattformde, 약칭 KPF)은 독일 민주공화국에 대해 관대한 평가를 가지며,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한다.
Sozialistische Linkede는 2006년 8월에 결성되었으며, 케인스주의 좌파와 유로 공산주의자들이 주축이다. 이 그룹은 당이 노동운동에 참여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Emanzipatorische Linkede, 약칭 Ema.Li[211]는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경향으로, 사회의 탈집중화와 사회 운동을 지지한다.
Forum demokratischer Sozialismusde[212]는 민주사회주의 계열 당원들의 조직이며, 연립 정부 참여를 주장한다.
파벌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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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자본주의좌파 | 2006년에 설립되었으며 당의 반자본주의적 성격을 강화하려고 한다. 자신들을 "운동 지향적"이라고 묘사하며 의회 외 정당 및 좌파 운동과의 협력을 추구한다. 연방헌법수호청(BfV)은 극단주의 단체로 분류하며, 2020년 기준 1,060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었다.[100] 주요 회원으로는 토비아스 플뤼거, 울라 옐프케, 루시 레들러, 니에마 모바사트 등이 있다. |
공산주의 플랫폼 | 독일 민주 공화국을 덜 비판하며 정통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을 고수한다.[101][87] "전략적 목표"는 "실제 사회주의의 긍정적 경험을 사용하고 실수로부터 배우는 새로운 사회주의 사회 건설"이다.[102] 주요 지도자는 사라 바겐크네흐트였다. BfV는 극단주의 단체로 분류하며, 2020년 기준 1,122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었다.[100] |
민주사회주의포럼 | 민주사회주의 단체로[103] 당의 개혁파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진다.[87] 시민권과 사회적 진보주의를 강조하며 SPD와 녹색당과의 협력을 지지한다. 주요 회원으로는 디트마르 바르치가 있다. |
생태 플랫폼 | 녹색 정치와 생태 사회주의를 촉진하는 경향이다.[105] 1994년 PDS 내에서 설립되었으며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탈성장을 지지한다.[106] |
해방좌파 | 2009년 5월 카트야 키핑, 카렌 레이, 율리아 본크가 공동 설립한 자유주의적 사회주의 경향이다.[108] 급진적 민주주의, 분권화된 사회를 옹호하며 사회 운동을 지지한다.[109] |
게라 대화/사회주의 대화 | 2003년 2월 개혁 지향적 그룹의 영향력 증가에 대한 반응으로 형성되었다. 마르크스주의로부터의 이탈과 사회시장경제 모델로의 이동에 반대했다.[110] |
마르크스주의 포럼 | 1995년 고전 마르크스주의를 촉진하기 위해 PDS 내에서 설립되었다. 당의 개혁 지향적 날개와 입장을 비판하며 종종 GDR에 동정적이다. |
개혁좌파네트워크 | 2003년 사회민주주의를 촉진하는 PDS 내 경향으로 형성되었다.[112] SPD와 녹색당과의 연립 정부 참여를 지지한다. 페트라 파우, 얀 코르테, 슈테판 리비히 등이 주요 회원이다. |
사회주의좌파 | 케인스주의 좌파와 유로공산주의 개혁 공산주의자들을 포함하며, 당을 노동 운동으로 향하게 하려고 한다. 당의 좌파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진다.[87] BfV는 극단주의 단체로 분류하며, 2020년 기준 1,000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었다.[100] 주요 회원으로는 자닌 비슬러, 토마스 헨델, 위르겐 클루테, 크리스티네 부홀츠 등이 있다. |
인정된 플랫폼 외에도, 트로츠키주의 사회주의 대안(SAV)과 같이 여러 소규모 단체가 좌파당과 그 전신과 연합했지만, 루시 레들러를 포함한 일부 지도자들의 가입 신청은 처음에 거부되었다. 독일 공산당(DKP)과 같은 다른 좌파 단체들은 당과 지역 연합을 형성했지만 가입하지는 않았다.
5. 관련 논란
좌파당은 2013년 독일 연방 선거에서 8.6%의 득표율로 제3당이 되었지만, 2009년에 비해 의석수가 감소했다. 이후 기민련(CDU)과 사민당(SPD)의 대연정 구성으로 제1야당이 되었다.[25] 2014년 투링겐 주 선거에서는 주 선거 사상 최고 득표율(28.2%)을 기록하고, 보도 라멜로가 투링겐 주 총리로 선출되어 당원 최초로 주 정부 수반이 되었다.
2017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서는 득표율이 9.2%로 소폭 상승했지만, 자유민주당(FDP)과 독일을 위한 대안(AfD)에 밀려 5위로 떨어졌다.[26] 201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당 창당 이후 최악의 결과(5.5%)를 기록했다. 같은 해 튀링겐주 선거에서는 31.0%의 득표율로 주의회 제1당이 되었지만, 좌파-좌파-녹색 연정은 과반수를 잃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상황으로 당 대회가 연기되었다가 2021년에 온라인으로 개최되었다.[29]
2021년 독일 연방 선거에서 좌파당은 SPD, 녹색당과의 연정 구성에 적극적이었으나, 보수 정당들은 붉은 공포주의 선거운동을 펼치며 극단주의에 대한 공포를 조장했다.[33][34] 좌파당은 4.9%의 득표율로 창당 이후 최악의 성적을 거두었고, 특히 페트라 파우 연방의회 부의장이 낙선하는 등 큰 타격을 입었다.[37]
선거 이후 좌파당은 내부 갈등을 겪었고, 2022년에는 오스카 라퐁텐이 탈당하는 등 어려움이 계속되었다.[41]
5. 1. 헌법보호청의 감시
독일은 독일 연방기본법의 핵심인 "기본권적 자유와 민주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헌법 보호"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 제도의 일환으로 연방정부에 연방헌법보호청(BfV)을 운영하고 있다. 좌파당과 당내 일부 당직자들은 연방헌법보호청의 수사를 받고 있으며, 연방헌법보호청이 내는 연례보고서인 "국내 극좌세력의 동향과 사례"의 첫 머리에 실리기도 했다.[207]좌파당은 기민/기사 연합이 집권하고 있는 4개의 주(니더작센, 헤센, 바덴뷔르템베르크, 바이에른)에서 사찰 대상 리스트에 올라 있다.[207] 자를란트주는 2008년 1월 좌파당에 대한 사찰을 중단했다.[208]
독일 연방헌법수호청(BfV)은 독일 연방의 국내 정보기관으로, 민주 질서, 연방 또는 그 구성 주의 존재와 안보에 대한 위협에 관한 정보 수집을 담당한다. 여기에는 의심되는 극단주의 단체와 정당에 대한 감시 및 보고가 포함된다. Verfassungsschutz는 좌파당을 극단주의적이거나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지 않지만,[124] 당원과 당내 단체는 정기적으로 감시되어 때때로 논란을 야기했다.
당원 감시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였다. 2012년 1월, Der Spiegelde은 당의 76명의 분데스탁 의원 중 27명과 여러 주 의회 의원 11명이 감시 대상이었다고 보도했다. 여기에는 당의 분데스탁 지도부 거의 전부, 연방 공동 대표 게지네 뢰츠와 부대표 할리나 바브지니악, 그리고 분데스탁 부의장 페트라 파우가 포함되었다. 감시 대상 중 많은 사람들이 당의 공인된 극단주의 파벌과 관련이 없었다.[132][133] 이 감시는 SPD, 녹색당, FDP로부터 비판을 받았고, 연방 사법부 장관 자비네 로이트호이저-슈나렌베르거는 이를 "참을 수 없다"고 묘사했다.[134] 2013년 10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의원이 직무를 남용하여 헌법 질서를 훼손하거나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등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분데스탁 의원 감시를 위헌으로 간주했다.[135]
5. 2. 극단주의 및 포퓰리즘 논란
일부 언론과 정치학자들은 좌파당을 극좌 또는 좌파 포퓰리스트 정당으로 규정하기도 한다.[137] BBC[138], '''가디언'''[139], 유로뉴스[140], 슈피겔de[141] 등의 언론은 좌파당을 극좌로 묘사했지만, 슈피겔을 제외한 같은 언론사의 다른 기자들은 좌파당을 좌파 정당으로 언급하기도 했다.[142][143][144]학계에서는 좌파당 내 일부 세력이 극단주의적이라는 데에는 대체로 동의하지만, 정치학자 리하르트 슈테스는 이러한 세력이 당원 중 10% 미만이며, 이들이 당 지도부나 강령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평가한다.[145] 에크하르트 예세는 좌파당이 독일 국가민주당과 같은 정당들보다는 기본법을 더 존중하지만, 극단주의적 파벌이 존재하기 때문에 당 전체가 "온건 좌익 극단주의"를 띤다고 평가한다.[146] 정치학자 카를-루돌프 코르테는 좌파당이 헌법 질서에 잘 통합되어 있으며, 동독의 저항 운동을 의회 제도에 통합함으로써 "독일 민주주의에 상당한 공헌을 했다"고 평가하면서도, 극단주의 단체와의 연관성을 비판한다.[147]
카스 무데[149], 틸만 마이어[150] 등은 좌파당을 좌파 포퓰리스트 정당으로 분류하며, 플로리안 하르틀렙은 "사회 포퓰리스트"라고 평가한다.[151] 프랑크 데커는 오스카르 라퐁텐 지도부 시절의 좌파당을 좌파 포퓰리스트 정당으로 묘사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152] 2011년 연방의회 의원이자 훗날 당 공동 대표가 된 카트야 키핑은 좌파당이 유권자들에게 매력적인 정당이 되려면 "사회-생태적 재구조화와 좌파 포퓰리즘의 이중 전략"이 필요하며, "좌파 포퓰리즘은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표적으로 하고 날카롭게 겨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153]
5. 3. 동독과의 연관성 논란
민주사회주의당(PDS)은 동독의 집권당이었던 사회주의통일당(SED)에서 비롯된 정당이다. 1989년 에리히 호네커가 실각하고 에곤 크렌츠를 거쳐 그레고어 기시가 당권을 잡으면서, 당은 평화혁명을 지지하는 개혁적 성향으로 변화했다.[7] 이후 당명을 "민주사회주의당"으로 바꾸고 1990년 동독 총선에 참여했으나, 16.4%의 득표율로 3위에 그쳤다.[7]PDS는 통일 이후에도 동독 지역에서 꾸준한 지지를 얻었지만, 서독 지역에서는 동독과의 연관성 때문에 외면받았다.[8] 2005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정부의 아젠다 2010 정책에 반발한 사회민주당 탈당파와 노동조합원들이 노동과 사회정의-선거대안(WASG)을 창당하자, PDS는 이들과의 연대를 모색했다. 두 정당은 2007년 통합하여 좌파당(''Die Linke'')을 창당했다.[11]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좌파당은 동독과의 연관성에 대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154] 특히, 일부 당원들의 동독 옹호 발언은 논란을 더욱 증폭시켰다. 자라 바겐크네히트는 2009년 인터뷰에서 동독을 독재 국가나 불법 국가로 규정하는 것을 거부했다.[155] 2007년에는 요아힘 가우크의 독일 통일 기념일 행사 연설에 항의하며 좌파당 작센 주의회 대표단이 퇴장하는 사건도 있었다.[156][157][158]
그러나 좌파당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있으며, 동독 체제와는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6. 주요 인물

오스카르 라퐁텐

게지네 뢰츠슈

클라우스 에른스트

카트야 키핑

베른트 리크싱거

수잔네 헤닝-벨소

야니네 비슬러

마르틴 쉬르데반

이네스 슈베르트너
얀 반 아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