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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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갑용은 1997년 OB 베어스에 입단하여 선수 생활을 시작한 전 KBO 리그 포수이다.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는 등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OB 베어스에서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된 후, 삼성의 주전 포수로 활약하며 2002년, 2005년, 2006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2015년 은퇴 후 삼성 라이온즈 전력분석원을 거쳐 코치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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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갑용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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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진갑용 |
한자 표기 | 陳甲龍 |
로마자 표기 | Jin Gabyong |
개정 로마자 표기 | Jin Gabyong |
매큔-라이샤워 표기 | Chin Kabyong |
예일 표기 | Cin Kapyong |
공식 로마자 표기 | Jin Kab-yong |
일본어 표기 | チン・ガビョン |
영어 표기 | Jin Kab-Yong |
프로필 | |
포지션 | 포수 / 코치 |
팀 | 삼성 라이온즈 |
등번호 | 96 |
타석 | 우 |
투구 | 우 |
생년월일 | 1974년 5월 8일 |
출생지 | 부산광역시 |
선수 경력 | |
데뷔 리그 | KBO |
데뷔 년도 | 1997년 |
데뷔일 | 1997년 4월 12일 |
데뷔 팀 | OB 베어스 |
마지막 경기 | 2015년 6월 6일 |
최종 팀 | 삼성 라이온즈 |
소속 구단 (선수) | OB 베어스 (1997년–1999년) 삼성 라이온즈 (1999년–2015년) |
코치 경력 | |
코치 팀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7년) 삼성 라이온즈 (2018년 - 2019년) KIA 타이거즈 (2020년 - ) |
코치 역할 | 배터리코치 (2017년, 2018년 - 2021년) 수석코치 (2022년 - 2024년) 2군 감독 (2024년 - 현재) |
프런트 경력 | |
전력분석원 | 삼성 라이온즈 (2015년 - 2016년) |
감독 대행 | |
감독 대행 | KIA 타이거즈 (2024년) |
국가대표 경력 | |
대표팀 |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
올림픽 참가 | 1996년, 2008년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 2006년, 2013년 |
아시안 게임 참가 | 1994년, 1998년 |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참가 | 2003년 삿포로 |
유니버시아드 참가 | 1993년 버펄로, 1995년 히로시마 |
주요 기록 (KBO) | |
타율 | 0.275 |
홈런 | 151 |
타점 | 739 |
골든글러브 | 2002년, 2005년 ~ 2006년 |
메달 정보 | |
메달 | 2008 베이징 야구 금메달 2006 샌디에이고 동메달 1994 니카라과 은메달 1994 히로시마 은메달 1998 방콕 금메달 2003 삿포로 동메달 1993 버펄로 은메달 1995 후쿠오카 은메달 |
2. 선수 시절
1997년 드래프트 2차 1라운드에서 OB 베어스의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당시 OB 베어스는 실력 있는 포수들이 많아 '포수 왕국'으로 불렸고, 진갑용은 주전 경쟁에서 밀려 백업 포수로 활동하며 95경기에 출전했다.[1] 1999년에는 신인 홍성흔의 등장으로 출전 기회를 잃었다. 결국 그해 7월 31일, 트레이드 마감 기한에 맞춰 투수 이상훈을 상대로 40억원에 트레이드되어 포수가 필요했던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다.[1]
이만수의 노쇠화 이후 삼성 라이온즈는 박선일, 김성현, 김영진, 정회열 등이 포수 자리를 맡았지만, 이만수만큼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2] 이만수가 1994년 1루수로 전향한 후[4] 오랫동안 수준급 포수가 부족했던 팀 사정상, 그의 영입은 단비와 같았다.[5][6]
이후 삼성 라이온즈는 김동수를 FA로 영입했지만, 김동수는 부진했고, 진갑용은 당시 배터리코치였던 조범현의 지도를 받아 주전으로 자리를 굳혔다. 그의 트레이드는 팀의 성공적인 트레이드 중 하나로 꼽힌다.[7][8]
2002년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과 함께 데뷔 첫 골든 글러브를 받았다. 2003년 시즌 후 주장 자리를 물려받아 2008년 시즌까지 팀을 이끌었다.[9] 2005년과 2006년 연속 우승을 이끌었고, 2008년까지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기여하며 전성기를 누렸다.[10][11][12][13][14]
2009년에는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었고, 팀은 13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다.[12][13][14] 2010년 시즌에 복귀했지만, 잔부상과 체력 저하로 출전 경기 수가 줄었다.[15][16]
2011년 팀 주장 자리에 복귀하여 2011년 한국시리즈와 아시아 시리즈에서 우승했다.[17] 2012년까지 주장을 맡았다.
2015년 6월 8일에 2군으로 내려갔고, 그 해 8월 6일에 은퇴를 선언했다.[18] 2015년 한국 프로야구 최고령 선수가 되었으나, 같은 해를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2. 1. OB 베어스 시절
1997년 드래프트 2차 1라운드에서 OB 베어스의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당시 OB 베어스는 실력 있는 포수들이 많아 '포수 왕국'으로 불렸고, 진갑용은 주전 경쟁에서 밀려 백업 포수로 활동하며 95경기에 출전하는 데 그쳤다.[1] 1999년에는 신인 홍성흔의 등장으로 출전 기회를 잃었다. 결국 그해 7월 31일, 트레이드 마감 기한에 맞춰 투수 이상훈을 상대로 40억원에 트레이드되어 포수가 필요했던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다.[1]2. 2. 삼성 라이온즈 시절
이만수의 노쇠화 이후 삼성 라이온즈는 박선일, 김성현, 김영진, 정회열 등이 포수 자리를 맡았지만, 이만수만큼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2] 김영진은 1997년 낫아웃 오심 사건으로 인해 2001년 한화 이글스로 트레이드되었다.[3] 이만수가 1994년 1루수로 전향한 후[4] 오랫동안 수준급 포수가 부족했던 팀 사정상, 진갑용의 영입은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5][6] 그는 오랫동안 팀의 주전 포수로 자리 잡았다.삼성 라이온즈는 1990년대 내내 포수난을 겪었기 때문에, 트레이드로 진갑용을 데려온 후에도 LG 트윈스의 포수였던 김동수를 FA로 영입했다. 하지만 김동수는 오히려 팀에서 부진했고, 2001년 말 SK 와이번스로 트레이드되었다. 반면 진갑용은 당시 배터리코치였던 조범현의 지도를 받아 주전 경쟁에서 살아남아 주전 자리를 굳혔다. 그의 트레이드는 팀의 성공적인 트레이드 중 하나로 꼽힌다.[7][8]
삼성 라이온즈는 2002년 정규 시즌 및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달성했고, 진갑용은 이 해 데뷔 첫 골든 글러브를 받았다. 2003년 시즌 후 주장 자리를 물려받아 2008년 시즌까지 팀을 이끌었다.[9] 2005년과 2006년 연속 우승을 이끌었고, 2008년까지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기여하며 전성기를 누렸다.[10][11][12][13][14] 2008년 시즌 후 박진만에게 주장 자리를 물려줬다.[9]
2009년 7월 11일 SK전에서 투수 송은범의 공에 맞아 왼쪽 척골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어 시즌 아웃되었다. 그 해 양준혁, 박진만, 조동찬, 박석민, 오승환, 권오준, 안지만 등 주전 선수들이 대거 부상으로 전력이 약화되며 13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다.[12][13][14] 2010년 시즌에 복귀한 그는 여전히 주전 포수로 활약했지만, 잔부상과 체력 저하로 출전 경기 수가 줄었다.[15][16]
2010년에 부진했던 강봉규를 대신해 2011년 팀 주장 자리에 복귀했다.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고, 그 해 아시아 시리즈에서도 우승했다.[17] 2012년까지 주장을 맡았고, 2013년에는 최형우에게 주장을 넘겨줬다.
2015년에도 팀의 안방을 지키다가 6월 8일에 2군으로 내려갔고, 그 해 8월 6일에 은퇴를 선언했다.[18] 2015년, 한국 프로야구 최고령 선수가 되었으나, 같은 해를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고려대학교 시절부터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주축 선수로 활약했다.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2006년 WBC에서는 동메달을 획득했다.
특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대표팀 주장과 주전 포수를 겸하며 뛰어난 리더십과 경기력을 선보였다. 비록 대회 중반 허벅지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쿠바와의 결승전에서 9회말 1사 만루의 위기 상황에 강민호의 퇴장으로 급작스럽게 투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대현을 침착하게 리드하여 병살타를 유도하며 대한민국의 금메달 획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10][21][22]
3. 1. 주요 국제대회 경력
진갑용은 고려대학교 2학년 때인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 출전했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 참가했다.[19]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했다. 2006년 WBC에 참가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주장으로서 대표팀을 이끌며 9전 전승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기여했다.[10][21][22]1993년 2월, 부산고등학교 재학 중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오스트레일리아 퍼스에서 열린 제17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다. 고려대학교 재학 4년 동안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참가한 모든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
년도 | 개최지 | 대회 | 팀 순위 | 개인 기록 |
---|---|---|---|---|
1992 | 세계 주니어 야구 선수권 대회 | 5위 | ||
1993 |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 은메달 | ||
1993 | 유니버시아드 | 은메달 | ||
1994 | 아시안 게임 | 은메달 | ||
1994 | 야구 월드컵 | 은메달 | .389 (18타수 7안타) | |
1995 | 유니버시아드 | 은메달 | .333 (6타수 2안타), 1타점 | |
1995 |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 은메달 | ||
1995 | 인터컨티넨탈컵 | 4위 | ||
1996 | 올림픽 야구 | 8위 | .346 (29타수 10안타), 3타점 | |
1998 | 아시안 게임 | 금메달 | .250 (8타수 2안타), 1타점 | |
2003 |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 동메달 | .143 (7타수 1안타), 1타점 | |
2006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동메달 | .091 (11타수 1안타) | |
2008 | 올림픽 최종 예선 토너먼트 | 은메달 | .235 (17타수 4안타), 4타점 | |
2008 | 올림픽 | 금메달 | .100 (10타수 1안타) |
4. 은퇴 후
은퇴 직후 삼성 라이온즈의 전력분석원을 맡았고, 2017년에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다.[1] 그해 11월에 열린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에서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한국 대표팀 배터리 코치를 맡았다.[1]
연수를 마치고 귀국해 삼성 라이온즈 배터리 코치를 맡았으나, 2019년 시즌 후 삼성 라이온즈와 재계약하지 못하고 KIA 타이거즈 배터리 코치로 옮겼다.[1] 2018년 아시안 게임, 2019년 2019 WBSC 프리미어 12에서 야구 한국 대표팀 코치도 역임했다.[1] 김종국 감독 승격 후에는 KIA 타이거즈 수석코치로 선임됐다.[1]
5. 논란
2002년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 선발 도중 도핑에 적발되었다. 당시 그는 고려대학교 후배이자 같은 포수인 김상훈에게 국가대표팀 자리를 넘겨주려 소변에 약을 탔다고 주장했으나, 도핑 검사를 맡았던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분석한 결과 약물 복용이 확실하다고 밝히자 이후 주장을 번복하고 약물 복용을 인정함에 따라 팬들의 많은 비난과 여론을 받았다.[23]
6. 기타
아들 진승현은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이다.[23] '갑드래곤'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약물 복용 사건으로 인해 '약갑용', '약드래곤'이라는 오명도 있다.[23]
7. 수상 경력
연도 | 내용 |
---|---|
1991년 | 화랑기 최우수 선수상, 타격상, 안타상, 도루상 |
1992년 | 화랑기 최우수 선수상, 타격상 |
1994년 | 대학 선수권 타격상 |
1995년 | 백호기 수훈상, 화랑기 수훈상 |
1996년 | 대통령기 최우수 선수상 |
1997년 | 체육훈장 백마장 ![]() |
2002년 | KBO 골든글러브 포수 부문 |
2005년 | KBO 골든글러브 포수 부문 |
2006년 | KBO 골든글러브 포수 부문 |
8. 통산 기록
골든 글러브
타격 10위
포수 골든 글러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