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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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구그룹은 1973년 청구주택개발(주)로 창립하여 대구·경북 지역의 주택 건설 및 분양 사업을 시작으로 성장했다. 1982년 서울에 진출하여 사업을 확장했으며, 1989년 수도권 신도시 사업 참여를 통해 그룹으로 성장했다. 1990년대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여 방송, 유통, 금융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했으나, 1997년 IMF 외환 위기 당시 무리한 사업 확장과 자금난으로 인해 부도가 발생, 12월 27일 그룹이 해체되었다. 해체 이후, 청구그룹의 계열사들은 대부분 매각되거나 폐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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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그룹 - [회사]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청구 그룹(靑丘 그룹) |
창립 | 1973년 (청구주택개발공사, 이후 (주)청구로 상호변경) |
창립자 | 장수홍 |
해체 | 1997년 12월 27일 |
장소 |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동(옛 청구그룹 본사 사옥) 서울특별시 소재 서울사무소 사옥 등. |
인물 | 장수홍 (전 회장) |
산업 및 서비스 | |
산업 | 건설 및 유통, 방송, 전자, 레저, 정보통신 |
서비스 | 건설, 토목, 방송, 유통, 금융, 관광, 레저, 정보통신 등 14개 계열사 |
재무 정보 | |
매출액 | 7조 5천억원 (1997년) |
자산 총액 | 1조 1천억원(1997년) |
모기업 및 계열사 | |
모기업 | (주)청구 |
계열사 | 1996년 말 기준 (주) 청구 (주) 청구주택 (주) 청구조경 (주) 왕십리역사 (주) 블루힐백화점 (주) 파라비전 (주) 청구산업개발 (주) 청구공영 (주) 삼양코아 (주) 경일상호신용금고 (주) 호진제강 (주) 조방건설 (주) 중문개발 (주) 대구복합화물터미널 등 |
2. 기업 연혁
1973년 대구·경상북도 지역을 기반으로 청구주택개발(주)로 출발하여 주택 건설 사업을 시작했다. 1982년 지방 건설업체 최초로 서울에 진출하였고, 1989년 수도권 신도시 사업 참여를 계기로 크게 성장하며 주택 건설 업계에서 입지를 다졌다. 이후 그룹 체제를 갖추고 방송(TBC 대구방송), 유통(블루힐백화점), 금융, 관광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으나, 대부분의 신규 사업에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전부터 과도한 부채와 미분양 물량 누적으로 경영 불안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으며, 증권가에서는 부도설이 돌기도 했다.[1] IMF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자금 조달이 막히고 금리가 급등하면서 심각한 자금난에 직면했다. 결국 누적된 경영난과 외환위기의 충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1997년 12월 26일 화의를 신청했으며, 다음 날 그룹은 해체되었다.
2. 1. 청구그룹의 성장
1973년 청구주택개발(주)로 창립하여 대구·경상북도 지역에서 단독주택 및 아파트 건설 사업을 시작했다. 1982년에는 지방 건설업체로는 처음으로 서울에 진출하여 사업 영역을 수도권으로 확장했으며, 혁신적인 설계로 주목받았다. 1989년 수도권 신도시 사업에 참여하면서 회사는 크게 성장하는 계기를 맞이했고, 이를 통해 주택 업계에서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이후 그룹 체제를 형성하고 '탈주택 계획'을 추진하며, 블루힐백화점, 대구방송 설립 등을 통해 방송, 유통, 금융, 관광, 정보통신, 레저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빠르게 확장해 나갔다.2. 1. 1. 청구주택개발(주) 창립과 초기 성장
1973년 청구주택개발(주)으로 창립하였다. 초기에는 단독주택을 건설하여 판매하는 소규모 주택 사업으로 시작하였으며, 대구, 경상북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이후 단독주택 판매 사업과 더불어 아파트 건설 및 분양 사업도 추진하였다.연도 | 주요 활동 |
---|---|
1973년 | 청구주택개발(주) 창립 |
1973년 | 경상북도 대구시(현 대구광역시)에서 아파트 건설 시작 |
1975년 | 경상북도 대구시 중구(현 대구광역시 중구)에 건설한 아파트 입주 시작 |
2. 1. 2. 서울 진출 및 수도권 신도시 사업 참여
1982년, 청구는 지방 건설업체 중 처음으로 서울에 진출했다. 혁신적인 설계를 선보여 주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서울 및 수도권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1989년 수도권 신도시 사업 참여는 청구가 크게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 사업을 통해 주택 업계에서 입지를 굳혔다.2. 1. 3. 사업 다각화 추진
1989년 수도권 신도시 사업을 통해 주택 업계에서 입지를 다진 청구그룹은 '탈주택 계획'을 수립하고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였다. 기존의 주택 건설업에서 벗어나 방송, 유통, 금융, 관광, 정보통신, 레저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 영역을 빠르게 확장하였다.특히 방송 사업 진출은 청구그룹의 사업 다각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1994년 4월 9일 정부가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 4개 직할시에 지역민방 설립 계획을 발표하자, 청구그룹은 대구·경북 지역 민방 사업에 참여하였다. 대구방송 설립의 주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날짜 | 내용 |
---|---|
1994년 8월 10일 | (주)청구가 대구·경북 남부 지역 민영방송 사업자로 최종 선정되었다. |
1994년 10월 | (주)대구방송(현 TBC)을 설립하였다. |
1995년 5월 14일 | TBC 대구방송이 개국하였다. (호출부호 HLDE-TV, TV 채널 UHF 19번, 팔공산 송신소 출력 30kW, 방송권역: 대구광역시 전역, 경상북도 남부 및 중·서부 일부 지역) |
이 외에도 블루힐백화점 개점을 통해 유통업에 진출하는 등 사업 영역을 넓혀나갔다.
2. 2. IMF 외환위기와 그룹 해체
1997년 말 IMF 외환위기가 닥치기 이전부터 청구그룹은 무리한 신규 사업 진출과 과도한 부채로 인해 경영 위기에 대한 우려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었다. 증권가와 경제계에서는 이미 1~2년 전부터 부도설이 나돌았으며, 특히 분양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아파트 건설 강행으로 미분양 물량이 쌓여 자금 압박을 받고 있었다.[1]IMF 외환위기가 현실화되자 청구그룹은 직격탄을 맞았다. 금융기관의 여신 동결, 기존 대출 상환 압박, 회사채 발행 중단 등으로 자금 조달 길이 막혔다. 여기에 IMF 구제금융 체제 이후 금리가 폭등하면서 정상적인 기업 활동이 불가능해졌고, 아파트 분양 계약자들의 중도금 납입 포기 사태까지 겹치며 자금 유입마저 사실상 중단되었다.
이러한 위기 상황은 단순히 외부 충격 때문만은 아니었다. 신도시 특수가 끝나며 주택 건설 경기가 침체되는 상황에서도 청구그룹은 유통, 방송, 물류, 멀티미디어 등 여러 분야로 무리하게 사업을 다각화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규 사업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투자금 회수에 실패하며 그룹의 재무 부담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누적된 경영난과 IMF 외환위기의 충격을 극복하지 못한 청구그룹은 1997년 12월 26일 대구지방법원에 화의를 신청했고, 다음 날인 12월 27일 그룹은 해체되었다.
2. 2. 1. IMF 외환위기 이전의 징후
청구그룹은 신규 사업 진출과 부채 상환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금리나 중도금 납부 기일 등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했다. 이로 인해 IMF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1~2년 전부터 이미 증권가와 경제계에서는 부도설이 퍼지고 있었다.특히 신규 자금 확보를 목적으로 분양 가능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아파트 건설을 강행한 결과, IMF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11월 말에는 미분양 아파트가 1,626가구에 달했다. 이 미분양 물량에 묶인 자금만 2000억원에 이르렀으며, 그룹의 총부채는 총매출 규모와 비슷한 수준인 1.07조원까지 증가했다.
당시 업계에서는 청구가 소위 'TK(대구·경북) 정서'[1]라는 정치적 배경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으며,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더 이상 경영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2. 2. 2. IMF 외환위기와 자금난 심화
IMF 외환위기가 오기 1~2년 전부터 청구그룹은 무리한 신규 사업 진출과 부채 상환을 위한 자금 마련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불리한 금리 조건과 중도금 납부 기일에도 불구하고 사업 확장을 강행하면서 증권가와 경제계에서는 이미 부도설이 나돌았다. 특히 분양 가능성을 제대로 따지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아파트 건설을 밀어붙인 결과, IMF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11월 말에는 미분양 아파트가 1,626가구에 달했고, 여기에 묶인 자금만 2000억원에 이르렀다. 당시 그룹의 총부채는 총매출액과 맞먹는 1조 7백억 원 수준이었다. 재계 일각에서는 청구그룹이 소위 'TK(대구·경북) 정서'[1]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으며, 1997년 15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었다.청구그룹이 무너진 직접적인 원인은 IMF 외환위기로 인한 자금 시장 경색이었다. 금융기관들이 자구책 마련에 나서면서 여신이 동결되었고, 기존 대출에 대한 상환 압박이 거세졌으며, 회사채 발행도 불가능해지면서 1997년 들어 극심한 자금난을 겪었다. 1997년 12월 3일 대한민국 정부가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게 된 이후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일반 금리는 20%, 단기 금리는 40%까지 치솟으면서 정상적인 기업 활동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특히 시중 금리가 아파트 중도금 연체 이자율보다 높아지자, 아파트 분양 계약자들이 대거 중도금 납입을 포기하면서 그룹의 자금 유입은 사실상 중단되었다.
하지만 청구그룹의 위기는 IMF 사태 이전에 이미 예견된 측면이 강했다. 신도시 개발 특수가 끝나면서 주택 건설 물량이 급감했고, 우성건설, 유원건설, 삼익주택, 건영, 한신공영 등 주택 건설 명가들이 줄줄이 쓰러지는 상황에서도 청구는 유통, 방송 등으로 무리한 사업 다각화를 계속했다. 1996년에는 아파트 건설로 쌓은 주부들 사이의 인지도를 유통업으로 연결하겠다며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2000억원을 투자하여 블루힐백화점을 열었으나, 서울특별시 강남으로 향하는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실패하며 투자금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했다. 1995년에는 150억원을 출자하여 대구·경상북도 지역을 방송 권역으로 하는 지역 민영방송 TBC 대구방송을 설립하며 방송업에도 진출했지만, 설립 직후부터 자금난으로 인한 TBC 매각설과 청구 부도설이 끊이지 않아 곤욕을 치렀다. 이처럼 주력 업종의 침체와 사업 다각화 실패에도 불구하고, 청구는 왕십리역 민자역사 개발, 대구복합화물터미널 건설 등 물류 사업과 종합영상프로덕션 ㈜파라비전 설립 등 멀티미디어, 정보통신 사업에까지 손을 뻗치며 위기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
결국 청구그룹은 심화되는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해체의 길을 걷게 되었다.
날짜 | 내용 |
---|---|
1997년 12월 | IMF 외환위기로 자금난 발생 |
1997년 12월 1일 | 청구그룹 4개 계열사 합병 추진 발표 |
1997년 12월 3일 | 대한민국, IMF 구제금융 체제 시작 |
1997년 12월 26일 | 대구지방법원에 화의 신청 |
1997년 12월 27일 | 그룹 해체 발표 |
2. 2. 3. 사업 다각화 실패
주택 건설 경기가 침체되고 우성, 유원, 삼익, 건영, 한신공영 등 경쟁 주택 전문 업체들이 연이어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도, 청구그룹은 사업 다각화를 계속 추진하였다.1996년에는 아파트 건설로 쌓은 주부들 사이의 인지도를 바탕으로 유통업에 진출한다는 전략 아래,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2000억원을 투자하여 블루힐백화점을 개점했다. 하지만 서울 강남 지역으로 향하는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실패하면서 투자금을 회수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앞서 1995년에는 150억원을 출자하여 대구와 경상북도 지역을 방송 권역으로 하는 지역 민영 방송사인 TBC 대구방송을 설립하며 방송업에도 진출했다. 그러나 방송 사업 진출 직후부터 자금난으로 인해 TBC 대구방송 매각설과 청구그룹 부도설이 제기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이처럼 주력 업종인 주택 건설업이 침체되고 새로 진출한 유통, 방송 사업에서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청구그룹은 왕십리역 민자역사 개발, 대구복합화물터미널 건설 등 물류 사업과 종합 영상 프로덕션인 ㈜파라비전 설립을 통한 멀티미디어, 정보통신 사업에도 진출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무리한 사업 확장은 결과적으로 그룹의 재무 구조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2. 2. 4. 화의 신청 및 그룹 해체
청구그룹이 좌초한 직접적인 원인은 1997년 말 불어닥친 IMF 한파에 따른 자금시장 경색이었다. 금융기관의 자구책 여파로 여신이 동결되고 기존 여신에 대한 상환 압력이 커졌으며, 회사채 재발행마저 불가능해지면서 청구그룹은 1997년 들어 극심한 자금난을 겪었다. 특히 1997년 12월 3일 IMF 구제금융 체제가 시작된 이후에는 일반 금리가 20%, 단기 금리가 40%까지 치솟아 정상적인 기업 활동이 거의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설상가상으로 시중 금리가 아파트 중도금 연체 이자율보다 높아지자 아파트 분양 계약자들이 대거 중도금 납입을 포기하면서 자금 유입이 사실상 중단되었다.물론 청구그룹의 위기는 IMF 사태 이전에 이미 예견된 측면도 있었다. 신도시 특수가 끝나면서 주택 건설 물량이 급감했고, 우성, 유원, 삼익, 건영, 한신공영 등 경쟁 주택 전문 업체들이 줄줄이 부도 처리되면서 청구그룹 역시 위기설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그럼에도 청구그룹은 1995년 TBC 대구방송 설립에 150억원를 출자하여 방송업에 진출하고, 1996년에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2000억원을 투자하여 블루힐 백화점을 개점하는 등 유통, 방송 등으로 무리하게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였다. 이러한 신규 사업들은 대부분 투자금 회수에 실패하며 그룹의 재정 부담을 가중시켰다. 또한 주력 업종의 침체와 신규 사업 실패에도 불구하고 왕십리역사 개발, 대구복합화물터미널 건설 등 물류 사업과 종합 영상 프로덕션 ㈜파라비전 설립 등 멀티미디어, 정보통신 사업에도 계속 진출하며 위기를 심화시켰다.
결국 극심한 자금난 속에서 청구그룹은 1997년 12월 1일, 그룹 내 4개 계열사의 합병을 추진하며 자구책 마련에 나섰으나, 1997년 12월 3일 시작된 IMF 구제금융 체제 하의 급격한 자금 경색을 이겨내지 못했다. 결국 1997년 12월 26일, 대구지방법원에 화의를 신청하였고, 다음 날인 12월 27일 그룹은 최종 해체되었다.
3. 계열사 매각 및 현황
외환 위기 이후 경영난을 겪던 청구그룹은 결국 부도를 맞았고, 이후 대부분의 계열사가 청산되거나 매각되는 과정을 겪었다. 주력 사업 분야였던 청구주택은 그룹 해체 이후에도 유동성 문제로 다시 부도를 맞으며 사실상 사라졌고, 블루힐백화점은 롯데백화점에 인수되어 롯데백화점 분당점으로 변경되었다. 방송사인 대구경북 TBC는 주주 구성이 바뀌어 그룹과 분리되었으며, 다수의 철강, 건설, 운송 관련 계열사들은 폐업하거나 독립적인 회사로 분리되었다. 특히 경일상호신용금고는 임직원들의 불법 대출 및 부실 운영과 같은 심각한 비리 문제로 인해 영업인가가 취소되기도 했다.[3][4] 이처럼 그룹 해체 과정에서 대부분의 계열사가 정리되어 현재 청구그룹의 실체는 거의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3. 1. 주택, 조경
청구그룹 해체 이후에도 청구주택은 2010년대 들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유동성 및 자금 문제에 직면하여 다시 부도를 맞았다. 이로 인해 청구주택은 사실상 사라진 회사가 되었다. 한편, 청구조경은 그룹 부도 다음 해에 폐업하였다.3. 2. 방송, 광고
대구경북 TBC는 현재 (주)나노켐과 (주)귀뚜라미가 최대 주주이다. 영상 제작 업체였던 파라비전은 그룹 부도 다음 해에 폐업했으며, 광고대행사였던 청구애드는 분사하여 소규모 기업체로 운영되다가 해체되었다.3. 3. 철강, 건설
청구그룹의 철강 및 건설 관련 주요 계열사들은 그룹 부도 이후 폐업 수순을 밟았다. 각 회사의 폐업 시기는 다음과 같다.회사명 | 폐업 연도 |
---|---|
호진제강 | 1999년 |
청구산업건설 | 1999년 |
청구공영 | 2000년 |
조방건설 | 2007년 |
중문개발 | 2010년 |
3. 4. 운송, 무역, 관광
(주) 왕십리역사는 현재 (주) 비트플렉스로 사명을 변경했으며, 청구그룹과는 분리되어 운영된다.[2] (주) 대구복합화물터미널은 2006년 3월에 폐업했다.3. 5. 백화점, 금융
블루힐백화점은 1999년 1월 롯데백화점에 인수되어 롯데백화점 분당점이 되었다. 경일상호신용금고의 경우 임직원의 심각한 비리 문제(불법대출, 부실운영)로 인해 영업인가가 취소되었다.[3][4]3. 6. 기타 계열사
청구그룹의 15개 계열사 중 대부분은 청산되었다.3. 7. 스포츠
청구그룹에서 운영하던 청구씨름단은 해체되었다. 이는 씨름이라는 한국 전통 스포츠의 침체와 맞물린 현상으로 볼 수 있으며, 더불어민주당 등에서는 씨름의 부활과 지원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참조
[1]
웹인용
TK정서 TK 정서의 실체와 대안
http://blog.naver.co[...]
[2]
웹인용
성동구 왕십리 민자역사 및 한양대 젊음의 거리
http://blog.daum.net[...]
2014-08-14
[3]
웹인용
검찰, 경일상호신용금고 비리 수사
https://news.naver.c[...]
[4]
웹인용
경일상호신용금고영업인가취소(금융감독위원회공고제1999-12호)
http://academic.n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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