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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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최정희는 함경남도 단천 출신의 소설가로, 1931년 《삼천리》에 단편 〈정당한 스파이〉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카프 계열의 문학 활동을 하다가 신건설사 사건으로 투옥되었으며, 이후 여성의 시선에 주목한 작품들을 발표했다. 남편 김동환의 친일 행위로 인해 친일 문학인으로 분류되었으며, 해방 후에는 한국 전쟁에 참전하고 한국여류문학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딸 김지원과 김채원도 소설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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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최정희 |
원어 이름 | 崔貞熙 |
한글 | 최정희 |
한자 | 崔貞熙 |
로마자 표기 | Choe Jeonghui |
매큔-라이샤워 표기 | Ch'oe Chŏng-hŭi |
출생일 | 1912년 12월 3일 |
출생지 | 일제강점기 함경남도 단천시 (現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남도 단천시) |
사망일 | 1990년 12월 21일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직업 | 소설가, 시인, 수필가, 언론인 |
국적 | 대한민국 |
데뷔 작품 | 「 (正当한 스파이)」 |
필명 | 담인(淡人) |
학력 | |
학력 | 경성 숙명여고보 졸업 |
학력 | 경성 중앙보육학교 전문학사 |
가족 | |
부모 | 최재연(부) |
배우자 | 김동환(재혼), 김유영(이혼) |
자녀 | 김지원(첫째 딸) |
자녀 | 김채원(둘째 딸) |
경력 | |
경력 | 한국여류문학인협회 고문 |
경력 | 한국소설가협회 대표위원 |
작품 활동 | |
장르 | 소설, 시문학, 수필 |
활동 기간 | 1931년 - 1990년 |
주요 작품 | 소설 《인맥》, 《지맥》, 《천맥》 |
영향 | |
영향 | 임옥인 등에게 영향을 줌. |
2. 생애
최정희는 함경남도 단천에서 태어나 함경북도 성진(현 김책시)에서 성장했다.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와 중앙보육학교를 졸업하고, 1931년 김동환이 발행하던 잡지 《삼천리》의 기자로 입사하면서 문단에 발을 들였다.
초기에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의 영향을 받아 현실참여적인 작품을 썼으나, 1934년 신건설사 사건으로 전주형무소에 수감된 이후로는 여성의 내면세계와 애정 문제를 다루는 작품을 주로 발표했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에 참가하는 등 친일 행적을 보였으며, 이로 인해 해방 후 친일 논란에 휩싸였다.
1950년 한국 전쟁 발발 후에는 대한민국 공군 종군작가단인 창공구락부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종군기자로 참전했다. 이후 한국여류문학인협회 회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등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소설계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서울시문화상(1958년)과 3·1문화상(1983년)을 수상했다. 남편 김동환은 한국 전쟁 때 납북되었고,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딸 김지원, 김채원 역시 소설가로 활동했다.
2. 1. 초기 생애 및 교육
함경남도 단천 외가에서 출생하였고, 함경북도 북청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후 함경북도 성진(현 김책시)에서 성장하였다.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와 중앙보육학교를 졸업했다.[3][1][2]1924년 서울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28년 졸업 후 중앙보육학교에 입학하였다. 1929년 중앙보육학교를 졸업하고 경상남도 함안의 함안유치원에 보모로 부임하였다. 1930년 18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미카와 유치원 보모로 일했다. 이때 유치진 등과 알게 되어 "학생극예술좌"에 참여하며 문예 운동에 뛰어들었다.[8] 1931년 귀국하여 삼천리를 발행하는 삼천리사에 입사했다.
2. 2. 문단 등단 및 초기 작품 활동
1931년 《삼천리》에 단편 〈정당한 스파이〉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3][1][2] 1930년 일본에서 유치진을 중심으로 유학생들이 신극 운동을 할 때 참가하여 문예 운동에 뛰어들었다. 1934년 카프 계열 연극인들이 창단한 극단 신건설을 빌미로 신건설사 사건이 발생하였고, 이때 최정희도 체포되어 전주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카프계 영화인 김유영의 부인이었던 최정희는 이 사건에서 여성 작가로는 유일하게 옥고를 치렀다.[8]1934년 카프 관련 사건으로 검거될 때까지는 카프의 경향파 문학을 토대로 한 현실참여적 작품을 발표하였다. 출옥 후에는 여성의 시선에 관심을 두고 남녀간의 애정이나 미망인을 소재로 다룬 작품을 쓰면서 문학적 경향이 변모했다. 가난 때문에 흉가를 얻어 사는 한 여성 가장의 삶을 1인칭 시점에서 묘사한 〈흉가(凶家)〉(1937)와 1939년부터 2년간 차례로 발표한 〈인맥〉, 〈지맥〉, 〈천맥〉의 3부작이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2. 3. 결혼과 카프 사건
1931년 최정희는 김동환이 발행하는 잡지 《삼천리》 기자로 입사하면서 김동환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김동환은 첫 부인과 결혼하여 자녀들을 두고 있었으나, 최정희와 사랑에 빠져 집을 나간 뒤 새살림을 차렸다.[8]1934년 카프 계열 연극인들이 창단한 극단 신건설을 빌미로 신건설사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때 최정희도 체포되어 전주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카프계 영화인 김유영의 부인이었던 최정희는 이 사건에서 여성 작가로는 유일하게 옥고를 치렀다.[8]
2. 4. 작품 경향의 변화와 친일 논란
1931년 《삼천리》에 〈정당한 스파이〉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1934년 검거될 때까지는 카프 경향파 문학을 토대로 현실참여적 작품을 발표했으나, 출옥 후에는 여성의 시선에 관심을 두고 남녀 간의 애정이나 미망인을 소재로 다룬 작품을 쓰면서 문학적 경향이 변모했다.[8] 가난 때문에 흉가를 얻어 사는 한 여성 가장의 삶을 1인칭 시점에서 묘사한 〈흉가(凶家)〉(1937)와 1939년부터 2년간 발표한 〈인맥〉, 〈지맥〉, 〈천맥〉 3부작이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중일전쟁부터 4·19 혁명까지의 근대사를 배경으로 지식인 남녀를 주인공으로 그린 《인간사》(1960 ~ 1964)는 한국 전쟁 후 발표한 장편 소설이다.일제강점기 말, 김동환이 삼천리사를 발판으로 친일 활동을 하면서, 최정희도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에 참가하여 〈군국의 어머니〉라는 제목으로 연설하는 등 태평양 전쟁 지원에 나섰다.[9]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과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2008)에 선정되었다. 소설 〈장미의 집〉(1942) 등 총 14편의 친일 작품이 밝혀졌으며,[9]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4]
2. 5. 해방 이후 활동
김동환은 광복 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되는 등 고초를 치르다가 한국 전쟁 때 납북된 뒤 1958년 사망하였고, 최정희는 대한민국 공군 종군작가단인 창공구락부의 일원으로 참전했다.[8] 이후 대한민국 소설계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로 활동하면서 한국여류문학인협회 회장을 지냈고, 대한민국예술원 회원도 역임했다. 서울시문화상(1958년)과 3·1문화상(1983년)을 수상했다.[8]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잠시 대구까지 피난했다. 1951년 창공구락부의 일원으로 종군하여 종군 기자로 활동했다. 또한 대구에서 무대가 열렸을 때 주연으로 참여했는데, 이것이 인기를 얻어 부산에서도 앙코르 공연이 열렸다. 전쟁이 안정되자, 창작 활동도 재개했다. 1954년 서울시 문화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58년에는 『인생찬가』로 서울시 문화상 본상을 수상했다. 만년에는 문학 보급 활동에 힘썼으며, 예술원 위원 및 여류문인회 고문, 조연현 문학상 운영위원, 한국소설가협회 대표위원 등을 역임했다.
사후에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었다.[4]
2. 6. 정치 활동
1934년 카프 계열 연극인들이 창단한 극단 신건설을 빌미로 신건설사 사건이 발생하였다. 최정희도 이때 체포되어 전주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카프계 영화인 김유영의 부인이었던 최정희는 이 사건에서 여성 작가로는 유일하게 옥고를 치렀다.[8]일제강점기 말기에 김동환이 삼천리사를 발판으로 활발한 친일 활동을 하면서, 최정희도 여성 명사들이 구성한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에 참가하여 〈군국의 어머니〉라는 제목으로 연설하는 등 부부가 함께 태평양 전쟁 지원에 나섰다.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과 민족문제연구소가 2008년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선정되었다. 밝혀진 친일 작품 수는 소설 〈장미의 집〉(1942) 등 총 14편이며,[9]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광복 후 최정희는 대한민국 공군 종군작가단의 일원으로 참전했다. 한국 전쟁 이후 대한민국 소설계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로 활동하면서 한국여류문학인협회 회장을 지냈고, 대한민국예술원 회원도 역임했다. 1978년 2월부터 8월까지 신민당 당무위원을 역임하였다.
2. 7. 가족 관계
2. 8. 사망
김동환은 광복 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되는 등 고초를 치르다가 한국 전쟁 때 납북된 뒤 1958년 사망하였고, 최정희는 대한민국 공군 종군작가단의 일원으로 참전했다.[8] 이후 대한민국 소설계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로 활동하면서 한국여류문학인협회 회장을 지냈고, 대한민국예술원 회원도 역임했다. 서울시문화상(1958년)과 3·1문화상(1983년)을 수상했다.[4]3. 작품 세계
최정희는 초기에는 현실 참여적인 경향의 문학 작품을, 중기에는 여성적 시각으로 애정 문제를 다룬 소설을, 후기에는 역사적 격동기의 인간 군상을 그린 작품을 발표했다. 대표작으로 「지맥」, 「인맥」, 「천맥」[1], 「인간사」 등이 있다.
3. 1. 초기: 현실 참여적 경향 문학
최정희는 1930년대에 현실 참여적인 경향의 문학 작품을 발표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1931년 『삼천리』에 발표한 「정당한 스파이」, 1932년 『시대공론』에 발표한 「명일의 식대」, 1937년 『조광』에 발표한 「흉가」, 1938년 『조선일보』에 발표한 「곡상」 등이 있다. 1939년에는 『문장』 8호에 중편 소설 「지맥」을,[1] 1940년에는 『문장』 15호에 중편 소설 「인맥」을,[1] 1941년에는 『삼천리』 143호에 중편 소설 「천맥」을 발표했다.[1]3. 2. 중기: 여성적 시각과 애정 문제
최정희는 1930년대 후반부터 여성적 시각으로 애정 문제를 다룬 소설들을 발표했다. 대표작으로는 1939년 『문장』에 발표한 「지맥」, 1940년 『문장』에 발표한 「인맥」, 1941년 『삼천리』에 발표한 「천맥」 등이 있다.[1]3. 3. 후기: 역사적 격동기의 인간 군상
최정희는 1939년 중편 소설 『지맥』을 문장 8호에 발표했고, 1940년에는 『인맥』을 문장 15호에, 1941년에는 『천맥』을 삼천리 143호에 발표했다.[1] 1960년대에는 『사상계』와 『신사조』에 『인간사』를 연재했다.4. 연보
- 1912년 12월 3일, 함경북도 성진군 례동에서 출생.
- 1924년,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입학.
- 1928년, 중앙보육학교에 입학.
- 1929년, 경상남도 함안의 함안유치원에 보모로 근무.
- 1930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미카와 유치원 보모로 근무.
- 1931년, 귀국하여 삼천리사에 입사. 김동환과 결혼.
- 1932년, 장남 홍조 출생.
- 1934년, 제2차 KAPF 일제 검거로 전라북도 전주형무소에 수감.[4]
- 1935년, 출옥 후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여 출판부에 소속.
- 1942년, 장녀 지원 출생.
- 1946년, 차녀 채원 출생.
- 1954년, 서울시 문화위원으로 선출.
- 1958년, 서울시 문화상 본상 수상.
- 1964년, 제1회 여류문학상 수상.
- 1971년, 예술원 문학부문 작품상 수상.
- 1983년, 삼일문학상 수상.
5. 학력
6. 가족 관계
참조
[1]
서적
New Women in Colonial Korea: A Sourcebook
https://books.google[...]
[2]
서적
Who's Who in Contemporary Women's Writing
https://archive.org/[...]
[3]
서적
A Ready-made Life: Early Masters of Modern Korean Fiction
https://books.google[...]
[4]
웹사이트
06년 12월6일 이완용 등 친일반민족행위자 106명 명단 확정 공개
https://m.hankookilb[...]
2021-12-06
[5]
웹사이트
최정희
http://100.daum.net/[...]
2011-09-09
[6]
웹사이트
프로필
http://search.nate.c[...]
2011-09-09
[7]
웹사이트
최정희
http://terms.naver.c[...]
2011-09-09
[8]
웹인용
인간사
http://digest.mk.co.[...]
매일경제
2008-08-24
[9]
저널
친일문학 작품목록
http://www.artnstudy[...]
2007-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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