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셀마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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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태풍 셀마 (1987년)는 1987년 7월 한반도에 상륙하여 큰 피해를 입힌 태풍이다. 괌 동쪽 해상에서 발생하여 필리핀을 지나 한반도로 북상했으며, 제주도와 고흥반도를 거쳐 한반도 내륙을 관통했다. 당시 대한민국 기상청의 예보 실패와 늑장 대응으로 인해 345명의 사망·실종, 10만여 명의 이재민, 6천억 원 이상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태풍 셀마는 대한민국 지상에서 관측된 최저해면기압 순위 8위를 기록했으며, 재산 피해 규모 7위, 인명 피해 8위를 기록하며, 기상청의 부실한 대응으로 인해 재난 대응 시스템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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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셀마 (1987년) | |
---|---|
기본 정보 | |
![]() | |
명칭 | 태풍 셀마 (Thelma) |
필리핀 명칭 | 카트링 (Katring) |
활동 기간 | 1987년 7월 6일 ~ 1987년 7월 16일 |
해역 | 북서태평양 |
세력 | |
최대 풍속 (JMA, 10분 평균) | 100 kt (51 m/s) |
최저 기압 | 915 hPa |
최대 풍속 (JTWC, 1분 평균) | 130 kt |
최대 크기 (직경) | 1850 km |
최대 강풍 반경 (KMA) | 930 km |
피해 | |
사망자 (확인) | 138명 |
총 피해액 | 2억 7200만 USD |
영향 지역 | 필리핀 대한민국 일본 |
인명 피해 (사망 · 실종) | 345명 |
관련 정보 | |
태풍 시즌 | 1987년 태평양 태풍 시즌 |
2. 발생과 진로
태풍 셀마는 7월 7일 오전 9시경 괌 섬 동쪽 해상에서 발생한 열대저기압으로부터 발달했다. 초기에는 느리게 북상하다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7월 8일 괌 섬 북쪽 약 100km 해상을 통과한 뒤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7월 9일 오후 3시에 제5호 태풍 셀마로 격상되었고, 이후 급격히 발달하여 7월 11일 오후 9시에는 중심기압 911hPa, 최대풍속 50m/s의 최성기를 맞이했다.[1][2]
당초 7월 10일경 북쪽으로 전향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태풍은 계속 서진하여 7월 12일 오전 필리핀 루손섬 동쪽 약 550km 해상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1] 북상하던 태풍은 7월 14일 일본 오키나와현의 미야코섬 서부를 통과한 뒤, 북위 26도를 넘어서면서 잠시 약화되었던 세력을 다시 발달시켜 중심기압 940hPa까지 강화되었다.
7월 15일 북동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셀마는 강한 세력을 유지하며 한반도를 향해 빠르게 북상했다. 같은 날 오후 3시 제주도 서귀포 남쪽 약 150km 해상까지 접근했고, 제주도 동쪽 해상을 스쳐 지나간 뒤 오후 10시경 중심기압 970hPa, 최대풍속 40m/s의 강한 세력으로 전라남도 고흥 반도에 상륙했다.[7] 이후 순천, 추풍령, 경상북도 상주, 강원도 강릉을 거쳐 한반도 내륙을 관통했으며, 7월 16일 오전 동해상으로 빠져나가 온대저기압으로 변질되었다.[7][2]
2. 1. 발생 초기

태풍 셀마의 기원이 되는 열대저기압은 필리핀 해에 위치한 몬순 골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JTWC는 잘 정의된 대기 순환을 근거로 7월 6일 06:00 UTC에 이 시스템의 감시를 시작했다.[1] JMA은 7월 7일 초에 추적을 시작했으며,[2] 같은 날 오전 9시 괌 동쪽 해상에서 공식적으로 열대저기압 발생이 확인되었다. 초기에는 느린 속도로 북상하며 발달이 더뎠다.
허리케인 헌터 항공기의 관측 정보를 바탕으로 JTWC는 TCFA를 발령했고, 7월 6일 18:00 UTC에 이 시스템을 열대저기압으로 격상시켰다.[1] 그러나 격상 직후 조직력이 약화되어 한때 열대 파동으로 약화된 것으로 분석되기도 했다.[1] 7월 8일 오후, 시스템은 괌 북쪽 약 110km 해상을 통과하며 서쪽으로 방향을 틀고 이동 속도를 높였다.[1] 이후 다시 조직화되기 시작하여 JTWC는 7월 8일 정오에 이 저기압을 열대 폭풍으로 격상시켰다.[1] 비슷한 시기 JMA는 최대풍속을 90 km/h로 추정했으며,[4] PAGASA도 추적을 시작하고 현지 이름 ''카트링''을 부여했다.[6]
JTWC는 당초 태풍이 북쪽으로 이동할 것으로 예측했지만, 셀마는 계속 서진하며[1] 점차 발달했다.[2] 띠 형태의 눈이 발달하기 시작했고, 허리케인 헌터 항공기는 지상 풍속 145 km/h를 관측했다. 이를 바탕으로 JTWC는 7월 9일 00:00 UTC에 셀마를 태풍으로 격상시켰다.[1] JMA도 6시간 뒤 태풍으로 격상했으며,[2] 한국 기상청 자료 기준으로는 7월 9일 오후 3시에 제5호 태풍 셀마로 인정되었다.
태풍 격상 이후 셀마는 급격히 발달하기 시작했다.[1] 7월 10일 오전 9시에는 중심기압이 975hPa로 낮아졌고, JMA는 같은 날 18:00 UTC에 최대풍속을 160 km/h로 추정했다.[2] 셀마는 계속 발달하여 7월 11일 오후에 최성기를 맞이했다. JTWC는 드보락 기법 위성 분석을 통해 셀마를 당시 시즌 첫 슈퍼 태풍으로 격상시키고 최대풍속을 240 km/h로 분석했다.[1] JMA는 최대풍속 185 km/h를 기록했으며,[2] 한국 기상청 자료 기준으로는 7월 11일 오후 9시에 중심기압 911hPa, 최대풍속 50m/s (180 km/h)를 기록하며 최성기를 맞았다.
2. 2. 필리핀 동쪽 해상
태풍 셀마의 기원이 되는 열대저기압은 7월 7일 오전 9시 괌 섬 동쪽 해상에서 발생했다. 처음에는 느리게 북상하며 발달이 더뎠으나, 7월 8일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괌 섬 북쪽 약 100km 해상을 통과한 뒤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미국 합동태풍경보센터(JTWC)는 7월 6일부터 이 시스템을 감시했으며[1], 일본 기상청(JMA)도 7월 7일 초부터 추적을 시작했다.[2] JTWC는 7월 7일 열대 저기압 형성 경보(TCFA)를 발령하고 18:00 UTC에 열대저기압으로 격상시켰다.[1]
하지만 시스템은 잠시 약화되어 7월 8일 00:00 UTC에는 열대 파동으로 약화된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괌 북쪽을 통과하며 서쪽으로 가속한 후 다시 조직화되어, JTWC는 7월 8일 정오에 열대 폭풍으로 격상시켰고[1], JMA는 당시 최대 풍속을 90 km/h로 추정했다.[4] 이 무렵 필리핀 대기 지구물리 천문 관리국(PAGASA)도 추적을 시작하며 현지 이름 '카트링'(Katringtl)으로 명명했다.[6]
7월 9일 오후 3시, JMA는 이 열대 폭풍을 제5호 태풍 셀마로 공식 인정했다. 눈이 발달하기 시작하자 JTWC는 허리케인 헌터 항공기의 관측(145 km/h 지상 풍속)과 드보락 기법 분석을 바탕으로 7월 9일 0000 UTC에 태풍으로 격상시켰고[1], JMA도 6시간 뒤 태풍으로 격상했다.[2]
이후 태풍 셀마는 급격히 발달했다. 7월 9일부터 36시간 동안 급격한 심화 기간을 거쳐[1], 7월 10일 오전 9시에는 중심 기압이 975hPa로 낮아졌다. 7월 10일 1800 UTC에 JMA는 최대 풍속을 160 km/h로 분석했다.[2] 마침내 7월 11일 오후 9시, 태풍은 최성기를 맞이하여 중심 기압 911hPa을 기록했다. 이때 JMA 기준 10분 평균 최대 풍속은 50m/s(185 km/h)[2]였고, JTWC는 셀마를 슈퍼 태풍으로 격상시키며 1분 평균 최대 풍속을 65m/s(240 km/h)로 평가했다.[1]
당초 7월 10일경 북쪽으로 전향할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셀마는 예상을 깨고 계속 서진하여 7월 12일 오전 9시에는 필리핀 루손섬 동쪽 약 550km 해상까지 도달했다. 최성기를 지난 후 눈 주변 상층부가 따뜻해지고 북쪽으로의 유출이 제한되면서 점차 약화되기 시작했으며[1], 이 시점부터 북쪽으로 전향하기 시작했다.
2. 3. 전향과 재발달
당초 7월 10일 즈음 전향할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태풍 셀마는 예상과 달리 서진을 계속하여 7월 12일 오전 9시에는 필리핀 루손섬 동쪽 약 550km 부근 해상에 이르렀다. 태풍이 전향을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시점으로, 진행 방향을 거의 90도에 가깝게 꺾어 북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JTWC는 7월 12일 능선의 붕괴에 대응하여 태풍이 북북서쪽으로 급격히 방향을 틀었다고 분석했다.[1]북쪽으로 이동하면서 태풍은 점차 약화되는 추세를 보였다. 7월 14일 오전 9시경에는 일본 오키나와현 미야코섬 서부를 통과했는데, 이때 섬의 기상 관청에서는 최저해면기압 952.2hPa과 최대순간풍속 43.3m/s를 관측했다. 당시 태풍의 세력은 중심기압 950hPa, 최대풍속 40m/s였다.[7]
전향 이후 지속적으로 약화되어 쇠약기에 접어드는 듯했으나, 태풍 셀마는 북위 26도를 넘어서면서 재발달하기 시작했다. 7월 14일 오후 9시에는 북위 27.4도의 비교적 높은 위도에서 중심기압 940hPa로 다시 강화되었다.
2. 4. 한반도 상륙과 소멸
7월 15일 오전 3시, 진행 방향을 북북동으로 바꾼 태풍 셀마는 7월 14일의 재발달에 힘입어 강력한 세력을 유지한 채 한반도를 향해 빠르게 북상하기 시작했다. 같은 날 오후 3시에는 중심기압 955hPa, 최대풍속 40m/s의 세력으로 제주도 서귀포 남쪽 약 150km 부근 해상까지 접근했다. 이후 약 45km/h의 매우 빠른 속도로 제주도 동쪽 해상을 스치듯 지나갔다.같은 날 오후 10시경, 셀마는 중심기압 970hPa, 최대풍속 40m/s의 '강'한 세력을 유지하며 전라남도 고흥 반도에 상륙했다.[7] 일본 기상청(JMA)은 상륙 당시 풍속을 145km/h로 추정했다.[2] 상륙 후 태풍은 순천, 추풍령, 경상북도 상주, 강원도 강릉을 차례로 통과하며 한반도 내륙을 관통했다. 내륙을 지나면서 세력은 급격히 약화되었다.
7월 16일 오전 6시경, 셀마는 동해상으로 빠져나갔다. 이후 동해 북부 먼 바다에서 온대저기압으로 변질되어 소멸했다. 합동태풍경보센터(JTWC)는 블라디보스토크 근처에서 소멸한 것으로 분석했지만,[7] JMA는 그 잔해를 이틀 더 추적했다.[2]
3. 특징
태풍 셀마는 여러 가지 뚜렷한 특징을 보였다. 첫째, 매우 넓은 영향 범위를 가졌다. 발생 초기부터 "대형"의 크기를 유지했으며, 최성기에는 강풍역(풍속 15m/s 이상 범위) 직경이 1850km에 달해 "초대형" 태풍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한반도에 상륙할 때에도 세력이 다소 약화되었지만 여전히 "대형" 규모를 유지하며 한반도 전역과 일본 규슈 지방까지 영향권에 두었다.
둘째, 강한 바람을 동반했다. 태풍이 한반도를 남서에서 북동으로 관통하면서 경로 오른쪽의 위험반원에 속했던 전라도 동부, 경상도, 강원도 지역에 특히 강한 바람이 불었다. 여수, 통영, 부산 등 남부 지방에서는 기록적인 최대순간풍속이 관측되었다. 이는 태풍의 빠른 이동 속도와 북상 중에도 세력이 크게 약화되지 않은 점 등이 원인으로 분석된다.[31]
셋째, 많은 비를 뿌렸다. 7월 15일부터 16일까지 강원도 영동 지방과 남부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산청, 강릉, 남해 등 여러 곳에서 200mm가 넘는 많은 비가 내렸다. 당시로서는 기록적인 강수량이었으나, 태풍의 빠른 이동 속도로 인해 총 강수 시간은 길지 않았고, 짧은 시간에 비가 집중되는 양상을 보였다.
넷째, 강력한 세력으로 상륙했다는 점이다. 한반도 상륙 시 중심기압 970hPa, 최대풍속 40m/s의 세력을 유지했는데, 이는 2003년 태풍 매미 이전까지 한반도에 상륙한 태풍 중 가장 강한 풍속 기록이었다.[32]
3. 1. 넓은 영향 범위
태풍 셀마의 일차적인 특징은 매우 넓었던 영향 범위이다. 발생 초기부터 “대형”의 크기를 유지하면서, 최성기를 맞았던 7월 11일 중에는 영향 범위의 기준이 되는 강풍역 (풍속 15m/s 이상의 강풍 범위)의 직경이 한때 1850km에 달하였다. 태풍의 크기 분류 중에서 가장 높은 단계인 “초대형”의 조건을 충족한 것이다. 이로 인해 당시 태풍의 서쪽에 위치했던 필리핀의 루손섬에서는 태풍 중심과의 거리가 500km를 넘고 있었음에도 직접적인 영향에 의한 높은 파도와 폭우에 의해 20여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북상하여 한반도 상륙을 수 시간 앞두었던 7월 15일 오후의 무렵에는 태풍의 쇠약과 함께 그 영향 범위도 꽤 축소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대형”의 규모는 잃지 않은 채, 한반도에는 남동쪽 반경 550km, 북서쪽 반경 450km 만큼의 강풍역을 가진 “대형의 강한 태풍”으로서 상륙했다. 한반도 전역은 물론, 일본의 규슈 지방까지 이르는 폭넓은 지역이 이 영향권 내에 들어갔다.게다가 태풍이 고흥 반도를 거쳐 한반도를 남서에서 북동으로 종단하는 경로를 밟았기 때문에, 태풍 경로의 오른쪽, 즉 위험반원에 놓여 있던 전라도 동부, 경상도, 강원도 일대에는 매우 강한 바람이 불었으며, 남부 지방에서는 기록적인 풍속이 잇달아, 여수 40.3m/s, 통영 39.6m/s, 부산 39.5m/s 등의 최대순간풍속을 관측했다. 태풍의 중심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었던 일본의 규슈 지방에도 이에 못지않은 최대순간풍속 30~40m/s 의 폭풍이 몰아쳤다. 이와 같이 위험반원의 바람이 강했던 원인으로는, 태풍의 진행 속도가 약 45km/h 로 상당히 빨라 바람의 힘을 강렬하게 만들었던 것과 태풍이 고위도까지 북상했음에도 세력이 크게 약화되지 않았던 것[31] 등이 꼽히고 있다. 다만, 태풍의 빠른 이동속도는 위험반원의 바람 세기를 증대시켰던 반면에 가항반원의 바람을 약해지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강수량은, 태풍이 한반도에 영향을 미쳤던 7월 15일 ~ 16일 사이에 강원도 영동 지방과 남부 해안가 지역을 중심으로 산청 296.5mm, 강릉 270.6mm, 남해 265.5mm 등을 관측, 여러 지점에서 200mm 이상을 기록했다. 이 강수량은, 1990년대 이후 태풍 글래디스, 태풍 재니스, 태풍 루사와 같은 큰 비를 수반한 태풍이 한반도에 잇달아 내습했기 때문에 현재의 기준에서는 그렇게 많은 강수량이 아니지만, 당시로서는 기록적인 것이었다. 강수량의 90% 이상은 태풍 전면에 분포된 강력한 강수대에 의한 것이었는데, 태풍이 빠르게 진행하여 비교적 단 시간 만에 한반도를 빠져나감에 따라 이 강수대의 영향을 받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따라서 전체적인 강수 시간 역시 줄어들게 되었으나, 태풍이 내륙에 머물렀던 약 7시간 동안에 많은 비가 집중적으로 쏟아져, 다른 의미로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는 결과가 되었다.
한편, 태풍 셀마의 상륙 시 세력 (중심기압 970hPa / 최대풍속 40m/s) 은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으로, 이보다 강한 풍속으로 한반도에 상륙한 태풍은 2003년의 태풍 매미 밖에 없다.[32]
3. 2. 강풍
태풍 셀마는 발생 초기부터 “대형”의 크기를 유지했으며, 최성기에는 강풍역(풍속 15m/s 이상의 강풍 범위) 직경이 한때 1850km에 달해 “초대형” 태풍으로 분류되었다. 이로 인해 태풍 중심에서 500km 이상 떨어진 필리핀 루손섬에서도 높은 파도와 폭우로 사상자가 발생했다. 한반도 상륙 직전인 7월 15일 오후에는 세력이 다소 약화되었지만 여전히 “대형” 규모를 유지하며, 남동쪽 반경 550km, 북서쪽 반경 450km의 강풍역을 가진 “대형의 강한 태풍”으로 상륙했다. 이 영향권에는 한반도 전역과 일본 규슈 지방까지 포함되었다.태풍이 한반도를 남서에서 북동으로 관통하면서 경로의 오른쪽, 즉 위험반원에 해당했던 전라도 동부, 경상도, 강원도 일대에는 매우 강한 바람이 불었다. 특히 남부 지방에서는 기록적인 풍속이 관측되었다.
태풍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일본 규슈 지방에서도 최대순간풍속 30m/s~40m/s에 달하는 강풍이 몰아쳤다. 위험반원의 바람이 강했던 주요 원인으로는 태풍의 빠른 진행 속도(약 45km/h)와 고위도까지 북상했음에도 세력이 크게 약화되지 않았다는 점이 꼽힌다.[31] 반면, 태풍의 빠른 이동 속도는 가항반원의 바람을 약화시키는 효과도 가져왔다.
한편, 태풍 셀마의 상륙 시 세력(중심기압 970hPa / 최대풍속 40m/s)은 주목할 만하며, 이보다 강한 풍속으로 한반도에 상륙한 태풍은 2003년 태풍 매미가 유일하다.[32]
3. 3. 폭우
태풍 셀마는 대한민국에 영향을 미치던 7월 15일부터 16일 사이에 많은 비를 뿌렸다. 특히 강원도 영동 지방과 남부 해안가 지역을 중심으로 강수량이 집중되었다. 주요 지점별 강수량은 산청 296.5mm, 강릉 270.6mm, 남해 265.5mm 등으로, 여러 곳에서 200mm 이상의 많은 비가 관측되었다.당시로서는 이 강수량이 기록적인 수준이었으나, 1990년대 이후 글래디스, 재니스, 루사와 같이 더 많은 비를 동반한 태풍들이 연이어 한반도에 영향을 주면서 현재 기준으로는 특별히 많은 양은 아니게 되었다.
셀마로 인한 강수의 약 90% 이상은 태풍 전면에 형성된 강력한 강수대에서 비롯되었다. 태풍의 이동 속도가 빨라 한반도를 비교적 단시간에 통과했기 때문에 강수대의 영향을 받는 시간 자체는 길지 않았다. 그러나 태풍이 내륙에 머무른 약 7시간 동안 비가 집중적으로 쏟아져,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비가 내리는 위험한 상황을 초래했다.
4. 대한민국 기상청의 오보와 늑장 대응
태풍 셀마는 대한민국 기상청의 예측 실패와 미흡한 대응으로 인해 막대한 인명 및 재산 피해를 야기하며 큰 오점을 남긴 대표적인 사례이다.[33] 당시 기상청은 태풍의 진로를 잘못 예측했을 뿐만 아니라, 태풍 통과 이후 이동 경로를 축소·조작하여 발표했다는 비판을 받았다.[34][35] 이러한 오보와 늑장 대응은 결과적으로 큰 피해로 이어졌으며, 재난 예보 시스템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4. 1. 예보 실패와 늑장 대응
태풍 셀마는 대한민국 기상청의 예보 능력에 큰 문제점을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반도 상륙 하루 전인 7월 14일, 기상청은 태풍이 일본 규슈 지방으로 향해 한반도에는 간접적인 영향만 줄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7월 15일, 태풍은 예상과 달리 한반도를 향해 계속 북상했고, 같은 날 다른 나라 기상 기관들은 이미 태풍의 한반도 상륙 가능성을 예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기상청은 태풍이 대한해협을 통과할 것이라는 기존 예측을 약간 수정하는 데 그치며, 한반도에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상청의 예보를 믿고 태풍 대비에 소홀했고, 이는 매우 취약한 상태로 이어졌다. 결국 태풍 셀마로 인해 345명의 사망·실종자와 10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는 큰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사망·실종자 345명 중 절반 가까이는 태풍의 한반도 상륙 정보를 알지 못해 피항하지 못한 선박들의 침몰 및 좌초 사고 때문이었다. 이처럼 잘못된 진로 예측이 피해를 키운 것이 명백했으나,[33] 기상청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듯, 태풍이 이미 한반도를 지나 동해로 빠져나간 뒤에도 "태풍 셀마는 대한해협을 지나 동해로 빠져나갔다"며 실제 이동 경로와 다르게 발표했다.[34] 이러한 사실 조작은 이후 기상청이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면서 공식적으로 밝혀졌다.[35]4. 2. 더불어민주당의 비판과 재난 대응 시스템 개선 촉구
(주어진 원본 소스에는 '더불어민주당의 비판과 재난 대응 시스템 개선 촉구'에 해당하는 내용이 없습니다. 원본 소스는 주로 기상청의 예보 실패와 그로 인한 피해, 그리고 경로 조작 논란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요청하신 섹션 내용을 작성할 수 없습니다.)5. 피해
태풍 셀마는 이동 경로에 있던 여러 국가에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대한민국에 상륙하여 심각한 인명 및 재산 피해를 야기했다. 대한민국에서는 1959년 태풍 사라 이후 가장 큰 피해를 남긴 태풍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또한 필리핀 남부 지역과 일본에서도 폭우와 강풍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했다.
5. 1. 대한민국
처음에 지역 기상학자들은 태풍 셀마가 한반도 남쪽 지역만 스쳐 지나갈 것으로 예측했다. 이로 인해 많은 주민들이 폭풍에 대비하지 못했으며, 정부 관계자는 이러한 경고 부족이 사상자와 피해를 키웠다고 밝혔다.[12]셀마는 한반도 상륙 전에 상당히 약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서는 1959년 사라 이후 대한민국을 강타한 최악의 태풍으로 보도했다.[13] 전국적으로 강수량은 다양했으나, 강릉에서는 최고 270mm를 기록하며[13] 강물이 범람하는 사태가 발생했다.[14] 피해는 광범위하게 발생했으며, 특히 경상북도와 강원도 지역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14]
구분 | 내용 | 출처 |
---|---|---|
사망 | 123명 | [26] |
실종 | 212명 | [26] |
부상 | 114명 | [26] |
이재민 | 약 29,000명[12] (최소 6,600명[20]) | |
파괴/손상 건물 | 8,881채[25] (이 중 가옥 6,500채 파괴[7]) | |
침수 농경지 | 약 62000ha[7] | |
손상 선박 | 3,879척[23] (2,829척 파괴/심각 손상[24], 100척 전복[16]) | |
총 피해액 | 2.72억달러[26] (재산 피해 2.22억달러[23]) | |
참고: 인명 피해 (다른 출처) | 사망·실종 345명, 이재민 10만여 명 | [36] |
참고: 재산 피해 (2002년 화폐가치) | 약 6000억원 | [36] |
지역별 피해 상황은 다음과 같다.
- 부산에서는 16명이 사망했고,[15] 폭풍 해일로 인해 50척의 배가 침몰하거나 파손되었다.[18] 초기에는 약 150명의 선원과 어부가 실종된 것으로 보고되었으며,[16] 여기에는 해상에서 전복된 '한진호'( 999ton급 화물선)의 선원 23명도 포함되었다.[28] 그러나 7월 18일, 당국은 실종자 수색을 중단했다.[17] 또한, 다른 화물선( 약 2721555.00kg급)도 부산 근처에서 침몰하여 선원 9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16]
- 신안군 해상에서는 대형 어선 침몰로 2명이 사망하고 23명이 실종되었다.[20]
- 밀양시에서는 산사태로 주택이 매몰되어 일가족 4명이 사망했다.[18]
- 광주광역시에서는 산사태로 주택이 붕괴되어 일가족 7명이 사망했으며,[19] 홍수로 인해 다른 18명이 구조되었다.[20]
- 경상남도에서는 최소 6,600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건물 993채가 파괴되어 피해액이 1300만달러로 추산되었다.[20][21]
- 남동부 지역에서는 산사태로 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22]
전국적으로 총 8,881채의 구조물이 파손되거나 붕괴되었으며,[25] 이 중 약 6,500채의 가옥이 파괴되어[7] 약 29,00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12] 또한, 약 62000ha의 농지가 침수되었다.[7] 선박 피해도 심각하여 총 3,879척이 피해를 입었고,[23] 이 중 2,829척이 파괴되거나 심각하게 손상되었으며[24] 100척이 전복되었다.[16] 이는 당시 대한민국 전체 어선의 약 4%에 해당하는 규모였다.[25]
피해 복구를 위해 군 예비군 수천 명을 포함한 정부 공무원 167,000명 이상이 동원되어 실종자 수색, 도로·수로·건물 복구, 전력선 수리 작업 등에 투입되었다.[28][27] 대부분의 이재민은 구호 센터에 수용되었다.[27] 한편, 산청군에서는 농민 약 100명이 정부의 응급 구호 지연에 항의하며 차량으로 도로를 막고, 파괴된 주택과 농작물에 대한 완전한 보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16] 이에 정부는 총 2.37억달러 규모의 지원책을 마련했다. 재원은 중앙 정부 지원금 2500만달러와 채권 발행으로 조달되었다. 재산 피해를 입은 어민과 농민은 은행에서 최대 3720USD의 무이자 대출을 받고 세금 감면 혜택도 받았다. 또한 정부는 사망자 유족에게 3720USD를 지급했다.[30]
5. 2. 필리핀
태풍 셀마는 필리핀 해안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태풍 순환과 관련된 폭풍 해일로 인해 필리핀 남부 섬에서 약 500채의 집이 쓸려나가 3,500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7] 나몰란에서는 불어난 산호세강에서 어선이 전복되어 2명의 여성을 포함한 4명이 익사했다.[8] 또한 네그로스 해상에서는 선박이 침몰하여 130명이 구조되었으나, 최소 8명이 사망했다.[9]5. 3. 일본
일본 전역에 걸쳐 셀마는 폭우를 쏟았다. 에비노에서는 1185mm의 강수량을 기록했으며, 그중 370mm는 단시간에 쏟아졌다. 또한, 구마모토시는 전국 24시간 강수량 최고치인 400mm를 기록했다.[10] 이 폭우로 인해 19개 현(県)에서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11] 총 3명이 사망했는데,[22] 젊은 여성이 차량 침수로, 중학생이 산사태로, 41세 남성이 차량 침수로 각각 사망했다. 총 3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1,000채 이상의 가옥이 침수되었다.[11]6. 기록
태풍 셀마가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동안 여러 지역에서 강한 바람과 많은 비, 낮은 기압이 관측되었다. 주요 지점별 기록은 다음과 같다.
'''최대풍속'''
'''최저해면기압'''
'''일최다강수량'''
'''기간강수량 (7월 15일 ~ 7월 16일)'''
'''1시간 최다강수량'''
6. 1. 최대순간풍속
태풍 셀마의 영향으로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매우 강한 바람이 기록되었다. 주요 지점별 최대순간풍속 기록은 다음과 같다.
7. 관련 통계
(190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