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겐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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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토겐부르크는 라인강과 투어강 사이의 유역에 위치한 스위스 장크트갈렌주의 지역이다. 젠티스, 쿠어퓌르스텐, 슈페어 산맥에 둘러싸여 있으며, 빌트하우스, 리히텐슈타이그, 바트빌 등의 마을이 있다. 선사 시대 유적과 로마 시대의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12세기 토겐부르크 가문이 이 지역을 통치했다. 1436년 가문의 단절 이후 취리히 구 연방 전쟁과 스위스 종교 개혁을 거치며 가톨릭과 개신교가 공존하는 지역이 되었다. 1803년 장크트갈렌주에 통합되었으며, 현재 10개의 지방 자치체로 구성되어 있다. 보덴제-토겐부르크 철도, 빌-에브나트-카펠 철도, 우즈나흐-바트빌 철도가 지나가며, 장크트갈렌 S-반과 포랄펜-익스프레스가 운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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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겐부르크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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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좌표 | 47 |
면적 | 488.75 |
인구 (2018년 12월 31일 기준) | 46,954명 |
인구 밀도 | 자동 계산 |
시간대 | CET (+1) |
하계 시간대 | CEST (+2) |
자치체 수 | 10 |
지리 | |
위치 | inline=y |
일반 정보 | |
공식 명칭 | Toggenburg |
현지 명칭 | Wahlkreis Toggenburg |
추가 정보 | |
언어 | 독일어 |
우편 번호 | 1860 |
지역 번호 | 5401 |
웹사이트 | 토겐부르크 공식 웹사이트 |
2. 지리
계곡은 라인강과 투어강 사이의 유역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내려가며 북동쪽은 젠티스(2504m), 남서쪽은 쿠어퓌르스텐(2306m) 및 스페어(1954m)이다. 강의 발원지에서 빌까지 길이가 약 45km에 달하는 비옥한 계곡이다.[7]
아펜첼 알프스 전역, 특히 빌덴만리스로흐 동굴에서 구석기 시대의 무스테리아 문화 흔적이 발견된다.
2020년 12월 31일 기준, 토겐부르크 발크라이스의 인구는 46,954명이다. 2000년 기준 외국인 인구는 독일인 584명, 이탈리아인 952명, 유고슬라비아 외 국가 출신 3,124명, 오스트리아인 167명, 터키인 1,137명, 기타 국가 출신 1,123명이다.[3] 2000년 기준 스위스 공용어 사용자는 독일어 41,718명, 프랑스어 107명, 이탈리아어 673명, 로만슈어 47명이다.[4] [4] [4]
2000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토겐부르크 지역의 종교 분포는 다음과 같다.
(km2)
가장 높은 마을인 빌트하우스에는 1484년 스위스 종교개혁가 훌드리히 츠빙글리가 태어난 집이 여전히 전시되어 있다.[7] 다른 마을로는 리히텐슈타이그, 키르히베르크 및 바트빌이 있다.
3. 역사
상부 투어 계곡은 로마 시대 스위스의 레티아 지방의 일부였으며, 초기 중세 시대에만 알레만니족 정착민들이 도달했다. 이는 상부 토겐부르크(슈타인 상류)에 상당한 언어 하부층의 후기 라틴어 지명이 존재한다는 사실로 입증된다.[2]
이 지역의 이름은 12세기부터 토겐부르크 지역의 일부를 통치했으며, 13세기에 백작(comesla)의 칭호를 얻고 상부 투어 계곡 전체를 포함하도록 영토를 확장한 토겐부르크 가문 (키르히베르크 근처의 그들의 성에서 이름을 따옴)에서 유래했다.
토겐부르크 백작 가문의 단절(1436)[1]은 취리히 구 연방 전쟁 (1440–46)으로 이어졌고, 결국 취리히주가 스위스 연방에서 일시적으로 추방되었다. 결국 토겐부르크는 발레주의 라론 영주에게 넘어갔고, 그는 1468년 장크트갈렌 수도원장에게 매각했다.[1]
토겐부르크의 일부는 스위스 종교 개혁을 따랐고, 울리히 츠빙글리의 지도하에 1530년에 독립을 선언했지만, 1538년 장크트갈렌 수도원장에게 재복종해야 했다. 그러나 수도원장은 두 종교를 모두 용인하도록 압력을 받았고, 토겐부르크는 가톨릭과 개신교가 공존하는 전통을 가진 몇 안 되는 스위스 지역 중 하나가 되었다.
1707년, 토겐부르크는 리켄 고개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건설하려는 수도원의 계획에 반발하여 다시 장크트갈렌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는데, 이는 가톨릭 군사 동맹을 위한 전략적 배치로 여겨졌다. 뒤이은 토겐부르크 전쟁 (1712)은 가톨릭과 개신교 칸톤 간의 세력 균형을 이루었고, 결국 스위스 연방의 형성을 이끌었다.
헬베티 공화국에서 토겐부르크는 장크티스주와 린트주로 분할되었다. 이 지역은 1803년 장크트갈렌주의 일부로 재통합되었다.
슈블리(소시지)는 이 지역의 전통 음식이다.
4. 인구
2000년 기준 연령 분포는 다음과 같다.연령대 인구 (명) 비율 (%) 0~9세 6,296 13.7 10~19세 7,444 16.2 20~29세 5,046 11.0 30~39세 6,784 14.8 40~49세 6,390 13.9 50~59세 4,926 10.7 60~69세 3,773 8.2 70~79세 3,269 7.1 80~89세 1,652 3.6 90~99세 326 0.7 100세 이상 1 -
2000년에는 개인 주택에 혼자 거주하는 사람이 4,967명(인구의 10.8%)이었다. 자녀가 없는 부부는 8,910명(19.4%), 자녀가 있는 부부는 27,097명(59.0%)이었다. 한부모 가정은 2,202명(4.8%), 부모와 함께 사는 성인 자녀는 318명, 친척으로 구성된 가구는 165명, 혈연관계가 아닌 사람으로 구성된 가구는 198명, 시설에 수용되거나 다른 유형의 공동 주택에 거주하는 사람은 2,050명이었다.[4]
2000년 기준 교육 수준은 다음과 같다.학력 인구 (명) 비율 (%) 초등 교육 이수 11,393 24.8 중등 교육 이수 15,123 32.9 고등 교육 이수 3,627 7.9 학교에 다니지 않음 2,291 5.0
2009년 10월 현재 평균 실업률은 2.9%이다.[5]
2000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종교 분포는 다음과 같다.5. 종교
6. 행정 구역
해발
(m)SFOS 번호 뷔치빌-간터스빌 610 3395 에브나트-카펠 43.57 630 3352 키르히베르크 42.59 735 3392 리히텐슈타이그 2.82 625 3374 뤼티스부르크 14.09 580 3393 모스낭 50.46 735 3394 네케르탈 49.03 660 3378 네슬라우 759 3360 바트빌 610 3379 빌트하우스-알트 장크트 요한 87.53 895 3357 align="center" | 토겐부르크 488.75 1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