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평화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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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평화협회는 1910년 일제강점기 한일 병합을 앞두고 일본의 병합 찬성론자들과 교감하여 결성된 친일 단체이다. 심일택, 이용원, 김학진 등이 발기하여 통감부의 승인을 받아 설립되었으며, 고종의 형인 이재면을 총재로 추대하고 남정철이 취지서를 작성했다. 일본평화협회 측 일본인도 고문으로 참여했다. 한일 병합 후 일진회 등과 함께 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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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합방을 요구하는 성명서는 1909년 일진회 이용구가 발표한 문서로, 한일 병합을 통해 조선의 위기 극복과 조선 백성의 동등한 대우를 주장했으나, 일본의 강제 병합을 정당화하고 일진회의 친일 행태를 드러냈다는 비판을 받는다. - 한일 병합 - 경술국적
경술국적은 1910년 한일병합조약 체결에 협력한 이완용, 윤덕영, 민병석, 고영희, 박제순, 조중응, 이병무, 조민희 등의 고위 관료들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한국평화협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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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평화협회 |
2. 결성 배경
한일 병합을 앞둔 1910년, 대한제국 내 일부 세력과 일본 측 병합 찬성파가 교감하여 결성한 단체이다. 국민협성회 회원이던 심일택이 일본평화협회와의 논의를 거쳐 발기를 주도했으며, 전직 고위 관료와 왕족, 부호 등 당시 유력 인사들이 참여했다. 표면적으로는 한일 양국의 친선과 세계 평화를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일본의 대한제국 병합을 지지하고 병합 이후의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려는 목적을 가진 단체였다.
2. 1. 친일 단체의 난립
한국평화협회를 발기한 심일택은 국민협성회 회원이었다. 그는 관광을 목적으로 일본에 가서 일본평화협회 회장을 만나 대한제국에도 평화협회를 설립할 것을 논의했다. 이 단체는 표면적으로 한일 양국의 친선을 통해 세계 평화를 도모한다는 목적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일본의 한일 병합 찬성론자들과 미리 손을 잡고 병합 이후의 권력 분배를 준비하려는 의도를 가진 친일 단체였다.1910년 5월 27일, 심일택을 비롯해 이용원, 김학진 등 4명이 발기하여 통감부에 설립 승인을 요청했다. 심일택은 일본 및 통감부 내 합병론자들의 후원을 받고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원로 대신들의 참여를 유도하여 단체를 창설했다.
협회는 주요 인물들로 조직을 구성했다. 총재에는 고종의 형인 이재면을, 회장에는 남정철을 추대하여 그가 취지서를 작성했다. 부총재에는 김학진과 김윤식이 내정되거나 추대되었으며, 활동 경비는 부호인 민영휘가 담당하기로 했다. 또한 일본평화협회 소속 일본인도 고문으로 참여했다.
직책 | 이름 | 비고 |
---|---|---|
총재 | 이재면 | 고종의 형 |
회장 | 남정철 | 취지서 작성 |
부총재 | 김학진 | 발기인, 전직 고위 관료 |
부총재 | 김윤식 | |
경비 담당 | 민영휘 | 부호 |
발기인 | 심일택 | 국민협성회 회원 |
발기인 | 이용원 | 전직 고위 관료 |
한일 병합을 눈앞에 두고 일본 측 병합 찬성파와 교감하여 결성된 한국평화협회는 이처럼 화려한 인적 구성과 잘 갖춰진 조직 체계를 자랑했다. 그러나 활동 기간이 매우 짧아 조직 구성 외에 특별한 활동을 펼치지는 못했다. 신임 통감으로 부임할 예정이던 데라우치 마사타케에게 병합 찬성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낼 계획을 세우거나, 산하 기구와 지방 지부를 설립하는 등 준비 작업을 진행하는 사이에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었다.
결국 한국평화협회는 1910년 9월 12일, 한일 병합으로 인해 더 이상 존재 이유가 없어진 일진회 및 다른 유사 친일 단체들과 함께 해산되었다.
2. 2. 일본과의 사전 교감
한국평화협회를 발기한 심일택은 국민협성회 회원이었다. 그는 관광을 명목으로 일본에 가서 일본평화협회 회장을 만나 대한제국에도 평화협회를 설립할 것을 논의했다. 표면적으로는 한일 양국의 친선을 통해 세계 평화를 도모한다고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일본의 병합 찬성론자들과 미리 손을 잡고 병합 이후의 권력 분배를 준비하려는 목적을 가진 단체였다.1910년 5월 27일, 심일택을 비롯해 전직 고위 관료였던 이용원, 김학진 등 4명이 발기하여 통감부에 설립 승인을 요청했다. 심일택은 일본 및 통감부 내 합병론자들의 후원을 받고 있었기에, 이를 통해 원로 대신들과 함께 단체를 창설할 수 있었다.
협회의 총재에는 고종의 형인 이재면을 추대했고, 취지서는 회장으로 추대된 남정철이 작성했다. 부총재에는 김학진과 김윤식이 내정되었으며, 활동 경비는 부호인 민영휘가 담당하기로 했다. 또한 일본평화협회 소속 일본인도 고문으로 참여했다.
이처럼 한국평화협회는 한일 병합을 눈앞에 두고 일본 측 병합 찬성파와 교감하여 결성되었으며, 인적 구성이 화려하고 조직 체계도 잘 갖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실제 활동 기간은 매우 짧아 조직 구성 외에 특별한 활동을 하지는 못했다. 신임 통감으로 부임할 예정이던 데라우치 마사타케에게 병합 찬성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낼 계획을 세우거나 산하 기구와 지방 지부를 설립하는 등 준비 작업을 하는 사이에 한일 병합이 이루어졌다.
결국 한국평화협회는 1910년 9월 12일, 한일 병합으로 인해 더 이상 필요 없어진 일진회 및 다른 유사 단체들과 함께 해산되었다.
3. 주요 인물 및 조직 구성
한국평화협회는 한일 병합을 앞두고 일본 측 병합 찬성파와 교감하여 결성된 단체였다. 고종의 형인 이재면을 비롯하여 전직 고위 관료, 부호 등 당시 주요 인물들이 참여하여 인적 구성이 화려하고 조직 체계도 잘 갖추어져 있었으며, 일본평화협회 측 일본인도 고문으로 참여했다. 이는 명목상의 한일 친선과 달리, 실제로는 병합 후의 권력 분배를 염두에 둔 구성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협회는 1910년 5월 말 발기 이후 같은 해 9월 12일 일진회 등 다른 유사 단체들과 함께 해산될 때까지 활동 기간이 매우 짧았다. 신임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에게 병합 찬성을 청하는 편지를 보낼 계획을 세우거나 산하 기구와 지방 지부 설립 등 조직 정비를 준비하는 단계에서 한일 병합이 성립되어, 결국 조직 구성 외에 특별한 활동은 하지 못하고 해체되었다.
3. 1. 발기인
한국평화협회의 발기는 국민협성회 회원이던 심일택이 주도했다. 그는 관광을 명목으로 일본에 건너가 일본평화협회 회장을 만나 대한제국 내 평화협회 설립을 논의했다. 표면적으로는 한일 양국의 친선과 세계 평화를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일본의 병합 찬성론자들과 연계하여 병합 후의 권력 분점을 준비하려는 목적을 가진 단체였다.1910년 5월 27일, 심일택은 전직 고위 관료인 이용원, 김학진 등 3명과 함께 총 4명이 발기인이 되어 통감부에 협회 설립 승인을 요청했다. 심일택이 일본 및 통감부 내 합병론자들의 후원을 받고 있었기에, 원로 대신이었던 이용원과 김학진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협회 총재에는 고종의 형인 이재면을 추대했으며, 회장으로 추대된 남정철이 취지서를 작성했다. 부총재에는 김학진과 김윤식이 내정되거나 추대되었고, 활동 경비는 부호인 민영휘가 부담하기로 했다. 일본평화협회 소속 일본인도 고문으로 참여했다.
3. 2. 지도부
국민협성회 회원이던 심일택은 일본 관광 중 일본평화협회 회장을 만나 대한제국 내 평화협회 설립을 논의했다. 1910년 5월 27일, 심일택은 전직 고위 관료인 이용원, 김학진 등과 함께 발기하여 통감부에 승인을 요청했다. 심일택은 일본 및 통감부 내 합병론자들의 후원을 받고 있었기에 원로 대신들을 참여시켜 단체를 창설할 수 있었다.협회의 주요 지도부는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다.
이처럼 한국평화협회는 한일 병합을 앞두고 일본 측 병합 찬성파와 교감하여 결성되었으며, 전직 고위 관료와 왕족, 부호 등이 참여하여 인적 구성이 화려하고 조직 체계도 잘 갖추어져 있었다. 이는 명목상의 한일 친선과 달리, 실제로는 병합 후의 권력 분배를 염두에 둔 구성으로 볼 수 있다. 협회는 신임 통감으로 부임할 예정인 데라우치 마사타케에게 병합 찬성을 청하는 편지를 보낼 계획을 세우는 등 친일적인 행보를 보였다.
4. 활동 내용
국민협성회 회원이던 심일택은 일본 방문 중 일본평화협회 회장을 만나 대한제국 내 평화협회 설립을 논의했다. 그는 일본 및 통감부의 합병론자들의 후원을 받아 1910년 5월 27일, 전직 고위 관료인 이용원, 김학진 등과 함께 한국평화협회를 발기하고 통감부에 승인을 요청했다.
협회는 표면적으로 한일 양국의 친선과 세계 평화 도모를 목적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일 병합을 앞두고 일본의 병합 찬성론자들과 미리 연계하여 병합 이후의 권력 분배를 준비하려는 의도를 가진 단체였다. 고종의 형인 이재면을 총재로 추대하는 등 조직을 갖추려 했으나, 실제 활동은 미미한 상태에서 한일 병합이 이루어져 1910년 9월 12일 해산되었다.
4. 1. 제한적 활동
한국평화협회는 고종의 형인 이재면을 총재로, 전직 고위 관료인 남정철, 김학진, 김윤식 등을 회장 및 부총재로 추대하고 부호 민영휘가 경비를 담당하는 등 화려한 인적 구성을 갖추었다. 조직 체계 또한 잘 정비되어 있었으며, 일본평화협회 측 일본인도 고문으로 참여했다.그러나 한일 병합을 목전에 두고 일본 측 병합 찬성파와 교감하여 결성된 이 단체의 활동 기간은 매우 짧았다. 신임 통감으로 부임할 예정이던 데라우치 마사타케에게 병합을 찬성하는 편지를 보내려 계획하거나, 산하 기구와 지방 지부를 설립하는 등의 준비 작업을 진행하는 수준에 그쳤다.
결국 조직 구성 외에 구체적인 활동 성과를 내지 못한 채, 1910년 8월 29일 한일 병합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한국평화협회는 더 이상 존재 이유가 없어져, 같은 해 9월 12일 일진회 및 다른 유사 단체들과 함께 해산되었다.
5. 해산
1910년 9월 12일에 한일 병합으로 인해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어진 일진회 및 다른 유사 단체들과 함께 해산되었다.
6. 역사적 평가
한국평화협회는 한일 병합 직전에 결성된 대표적인 친일 단체 중 하나이다. 발기인인 심일택은 국민협성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평화협회 회장을 만나 대한제국 내 협회 설립을 논의했다.
표면적으로 한일 양국의 친선과 세계 평화를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일본의 병합 찬성론자들과 미리 연계하여 병합 이후의 권력 분점을 준비하려는 목적을 가진 조직이었다. 1910년 5월 27일, 심일택과 전직 고위 관료인 이용원, 김학진 등이 발기하여 통감부에 설립 승인을 요청했다. 심일택은 일본 및 통감부 내 합병론자들의 후원을 받고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원로 대신들을 끌어들여 단체를 조직했다.
총재에는 고종의 형인 이재면을 추대했고, 회장에는 남정철, 부총재에는 김학진과 김윤식 등이 이름을 올렸다. 활동 경비는 부호인 민영휘가 담당하기로 하는 등, 당시 친일 성향의 고위 관료와 유력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여 화려한 인적 구성을 갖추었다. 일본평화협회 소속 일본인도 고문으로 참여하여 일본과의 유착 관계를 드러냈다.
협회는 신임 통감으로 부임할 예정이던 데라우치 마사타케에게 한일 병합을 찬성하는 청원서를 보낼 계획을 세우고, 산하 기구와 지방 지부 설립을 준비하는 등 활동을 모색했다. 그러나 조직 구성 외에 실질적인 활동을 펼치기 전, 1910년 8월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었다. 결국 한국평화협회는 일진회 등 다른 친일 단체들과 마찬가지로 병합 이후 존재 이유를 잃고 1910년 9월 12일에 해산되었다.
결성 목적과 구성원의 면면을 볼 때, 한국평화협회는 한일 병합이라는 국권 피탈 과정에서 일부 지배층이 일본 제국주의 세력과 결탁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려 했던 단체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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