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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령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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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령군은 조선 태종의 서자로, 12세에 후령군에 봉해졌다. 그는 무안군부인 평산 신씨와 동양군부인 한양 조씨를 부인으로 두었으며, 신숙주의 아들 신정과 혼인한 딸을 비롯하여 여러 자녀를 두었다. 32세에 사망하였으며, 시호는 희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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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령군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간(衦)
아버지태종
어머니숙의 이씨
출생일1419년

2. 가족 관계

관계이름비고
아버지태종
어머니숙의 이씨[1]
정부인무안군부인 평산 신씨신경종(申敬宗)의 딸
계부인동양군부인 한양 조씨
장녀신정신숙주의 아들과 혼인
서장남정해도정 이집
서차남암성수 이윤
서녀화순 배씨배맹종의 처



후령군은 태종과 숙의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1] 무안군부인 평산 신씨동양군부인 한양 조씨를 부인으로 두었다.

2. 1. 부모

2. 2. 배우자

후령군은 태종과 숙의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1]

부인본관생애비고
정부인 무안군부인(武安郡夫人)평산 신씨? ~ ?영(令) 증 찬성(贈 贊成) 신경종(申敬宗)의 딸
계부인 동양군부인(東陽郡夫人)한양 조씨? ~ ?



정부인 무안군부인 평산 신씨신숙주의 아들 신정(1442~1482)에게 장녀를 시집보냈으며, 슬하에 신영철(1471~?)과 신영홍을 두었다.

계부인 동양군부인 한양 조씨는 정해도정 이집을 낳았으며, 며느리는 여흥 민씨로 대호군(大護軍) 민전(閔悛)의 딸이다. 슬하에 미원부정 이범을 두었으며, 양민 출신 첩에게서 학림령 이범영, 서강령 이범찬, 서흥령 이범준, 다경령 이범돈을 얻었다.

또한, 암성수 이윤을 낳았으며, 며느리는 청주 이씨로 목사(牧使) 이숙견(李淑堅)의 딸이다. 슬하에 백령부수 이배(1480~?)와 김헌문의 처를 두었으며, 노비 출신 첩 어을운에게서 지산부령 이돈(1481~?)을 얻었다.

서녀는 화순 배씨 배맹종에게 시집보냈으며, 슬하에 배림을 두었다.

2. 3. 자녀

태종과 숙의 이씨 사이에서 태어난 후령군은 두 명의 부인을 두었다.[1] 첫 번째 부인은 무안군부인 평산 신씨로, 신경종의 딸이다. 신숙주의 아들 신정과 혼인한 장녀를 두었으며, 슬하에 신영철, 신영홍 등의 손자를 두었다. 두 번째 부인은 동양군부인 한양 조씨이다. 슬하에 서장남 정해도정 이집과 며느리 여흥 민씨, 손자 미원부정 이범, 서차남 암성수 이윤과 며느리 청주 이씨, 손자 백령부수 이배, 그리고 서녀는 화순 배씨 배맹종과 혼인하여 손자 배림을 두었다.

2. 3. 1. 정부인 소생

wiki

  • 정부인 : 무안군부인 평산 신씨(태종의 영(令) 증 찬성(贈 贊成) 신경종(申敬宗)의 딸)
  • 장녀 : 신정(1442 ~ 1482, 신숙주의 아들과 혼인)
  • 손자 : 신영철(申永澈, 1471 ~ ?)
  • 손자 : 신영홍(申永洪)

2. 3. 2. 계부인 소생


  • 계부인: 동양군부인 한양 조씨
  • * 서장남: 정해도정 이집(李緝)
  • ** 며느리: 신부인 여흥 민씨 - 대호군(大護軍) 민전(閔悛)의 딸

손자: 미원부정 이범(李範)

  • ** (첩)며느리: 양민 출신

서손자: 학림령(鶴林令) 이범영(李凡寧)
서손자: 서강령(西江令) 이범찬(李凡讚)
서손자: 서흥령(始興令) 이범준(李凡尊)
서손자: 다경령(多慶令) 이범돈(李凡敦)

  • * 서차남: 암성수 이윤(李綸, ? ~ ?)
  • ** 며느리: 신부인 청주 이씨 - 목사(牧使) 이숙견(李淑堅)의 딸

손자: 백령부수 이배(李培, 1480 ~ ?)
손녀: 김헌문(金獻文)의 처

  • ** (첩)며느리: 어을운(於乙雲) - 노비 출신

서손자: 지산부령 이돈(李墩, 1481 ~ ?)

  • * 서녀: 화순 배씨 배맹종(裵孟宗)의 처

손자: 배림(裵琳)

2. 3. 3. 첩 소생

항목내용
생모숙의 이씨[1]
이름
며느리양민 출신
어을운(於乙雲) - 노비 출신
첩에게서 얻은
손자
이름
며느리
(양민 출신)
학림령 이범영(李凡寧)
서강령 이범찬(李凡讚)
서흥령 이범준(李凡尊)
다경령 이범돈(李凡敦)
며느리
(어을운)
지산부령 이돈(李墩, 1481 ~ ?)


2. 4. 며느리

부인며느리손자
무안군부인 평산 신씨 (영(令) 증 찬성(贈 贊成) 신경종(申敬宗)의 딸)신정 (신숙주의 아들)
동양군부인 한양 조씨신부인 여흥 민씨 (대호군(大護軍) 민전(閔悛)의 딸)미원부정(迷原副正) 이범(李範)
(첩)며느리 : 양민 출신
rowspan="2"|신부인 청주 이씨 (목사(牧使) 이숙견(李淑堅)의 딸)
(첩)며느리 : 어을운(於乙雲) (노비 출신)지산부령(砥山副令) 이돈(李墩, 1481 ~ ?)


2. 5. 손자

태종의 손자
신정의 아들신영철(申永澈, 1471 ~ ?)
신영홍(申永洪)
정해도정 이집(李緝)의 아들미원부정(迷原副正) 이범(李範)
정해도정 이집(李緝)의 첩 소생 서손자학림령(鶴林令) 이범영(李凡寧)
서강령(西江令) 이범찬(李凡讚)
서흥령(始興令) 이범준(李凡尊)
다경령(多慶令) 이범돈(李凡敦)
암성수 이윤(李綸)의 아들백령부수(白翎副守) 이배(李培, 1480 ~ ?)
암성수 이윤(李綸)의 첩 소생 서손자지산부령(砥山副令) 이돈(李墩, 1481 ~ ?)
배맹종의 아들배림


2. 5. 1. 신정(申瀞) 소생


  • 장녀: 신정(1442 ~ 1482) - 신숙주의 아들
  • ** 손자: 신영철(申永澈, 1471 ~ ?)
  • ** 손자: 신영홍(申永洪)

2. 5. 2. 정해도정(貞海都正) 이집(李緝) 소생

태종의 서차남 정해도정(貞海都正) 이집(李緝)은 동양군부인 한양 조씨 소생이다.[1] 며느리는 대호군(大護軍) 민전(閔悛)의 딸 여흥 민씨이다. 슬하에 아들 미원부정(迷原副正) 이범(李範)을 두었다. 첩 며느리는 양민 출신으로, 서손자 학림령(鶴林令) 이범영(李凡寧), 서강령(西江令) 이범찬(李凡讚), 서흥령(始興令) 이범준(李凡尊), 다경령(多慶令) 이범돈(李凡敦)을 두었다.

2. 5. 3. 정해도정(貞海都正) 이집(李緝)의 첩 소생


손자: 미원부정(迷原副正) 이범(李範)

  • ** (첩)며느리: 양민 출신

서손자: 학림령(鶴林令) 이범영(李凡寧)
서손자: 서강령(西江令) 이범찬(李凡讚)
서손자: 서흥령(始興令) 이범준(李凡尊)
서손자: 다경령(多慶令) 이범돈(李凡敦)

2. 5. 4. 암성수(巖城守) 이윤(李綸) 소생

태종의 서차남 암성수(巖城守) 이윤(李綸) 가계
정부인평산 신씨
계부인한양 조씨
며느리청주 이씨
첩며느리어을운(於乙雲) - 노비 출신
친손자백령부수(白翎副守) 이배(李培, 1480 ~ ?)
친손녀김헌문(金獻文)의 처
서손자지산부령(砥山副令) 이돈(李墩, 1481 ~ ?)[1]


2. 5. 5. 암성수(巖城守) 이윤(李綸)의 첩 소생


  • 첩며느리: 어을운(於乙雲) - 노비 출신
  • * 서손자: 지산부령 이돈(李墩, 1481 ~ ?)

2. 5. 6. 배맹종(裵孟宗) 소생


  • 서녀: 화순 배씨 배맹종의 처[1]
  • * 손자: 배림

3. 생애

후령군 이간(李衦)은 태종의 서자로, 12세에 후령군으로 봉해지고 이듬해 정1품에 오르는 등 순탄한 삶을 살았다.[2][4] 그러나 모친 이씨가 태종에게 쫓겨난 과거 때문에 논란이 되기도 했다.[3] 32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자, 임금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장례를 후하게 치렀고, 시호는 ‘희도(僖悼)’를 내렸으며, 아들이 없었다.[4]

3. 1. 초기 생애

태종의 서자인 이우(李衧)는 12세에 후령군(厚寧君)으로 봉해졌다.[2] 이듬해 가정대부(嘉靖大夫)에서 정1품으로 올랐다.[4]

3. 2. 주요 사건

李衧|이우중국어를 후령군으로 봉하였다.[2]

후령군 李衧|이우중국어의 모친 이씨가 사망하자, 임금이 "후령군의 모친은 태종에게 쫓겨난 사람인데, 대군들이 복(服)을 입어야 하는가."라고 말하였다.[3]

후령군 李衦|이간중국어이 사망하였다.[4] 李衦|이간중국어은 태종의 서자로, 12세에 군에 봉해지고, 계자(階資)가 가정대부(嘉靖大夫)였는데, 이듬해에 예(例)대로 정1품에 올랐다. 이때에 이르러 사망하니, 나이가 32세였다. 임금이 육선(肉膳)을 거두고 조회(朝會)와 저자[市]를 3일 동안 정지하고 치조(致弔)하고 치전(致奠)하여 예(禮)대로 장례하였다. 시호(諡號)를 ‘희도(僖悼)’라고 내려 주니, 소심(小心)하여 두려워하고 꺼리는 것을 희(僖)라 하고, 중년(中年)이 되어 일찍 죽은 것을 도(悼)라 한다. 아들이 없었다.

3. 3. 사망 및 장례

태종의 서자 후령군 이간(李衦)이 32세로 졸(卒)하였다.[4] 12세에 군(君)에 봉해지고, 이듬해에 정1품에 올랐다. 임금이 육선(肉膳)을 중단하고, 조회(朝會)와 저자[市]를 3일 동안 정지하고, 치조(致弔)하고 치전(致奠)하여 예(禮)대로 장례하였다. 시호(諡號)는 ‘희도(僖悼)’인데, 소심(小心)하여 두려워하고 꺼리는 것을 희(僖)라 하고, 중년(中年)이 되어 일찍 죽은 것을 도(悼)라 한다. 아들이 없었다.

참조

[1] 문서 후령군 묘비 기록
[2] 실록 조선왕조실록 세종 11년 9월 30일 기록 1429-09-30
[3] 실록 조선왕조실록 세종 15년 윤8월 6일 기록 1433-08-06
[4] 실록 조선왕조실록 문종 즉위년 10월 6일 기록 145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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