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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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가덕왕은 고대 번조선의 왕들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번조선은 기자조선과 연관되어 있었으며, 기후가 번조선을 건국한 후 여러 왕조를 거쳐 위만의 공격으로 멸망했다. 주요 강역은 번한성, 진번조선 등이었다.

가덕왕
기본 정보
이름가덕왕
한자嘉德王
로마자 표기Gadeok Wang
직업기자조선의 제36대 왕
사망 년도기원전 3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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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적 배경

2.1. 기자조선과의 관계

2.2. 번한과의 관계

3. 번조선의 성립과 발전

기후는 처음에는 번한성에 거주했다. 위략에는 "만번한을 경계로 한다"고 되어 있으며, 번한성은 만번한으로 여겨진다. 거란고전에는 만관간성(曼灌幹城)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걸석산에서 산해관에 이르는 지역으로 보인다. 기후는 번조선을 수립한 후에도 기자가 봉해진 곳에 계속 거주했다. 기원전 284년이 되자, 연나라의 진개의 공격을 받아 "동호는 천여 리를 쫓겨났다"고 한다. 동호는 기자조선이며, 번조선이다. 거란고전에는 ""으로 기록되어 있다. 기석은 연나라의 진개에게 쫓겨 천 리를 물러났고, 새로운 거주지는 대릉하 동쪽의 의무려산 부근의 진번조선이다.

3.1. 기후의 통치

기후는 처음에는 번한성에 거주했다. 위략에는 "만번한을 경계로 한다"고 되어 있으며, 번한성은 만번한으로 여겨진다. 거란고전에는 만관간성(曼灌幹城)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걸석산에서 산해관에 이르는 지역으로 보인다. 기후는 번조선을 수립한 후에도 기자가 봉해진 곳에 계속 거주했다. 기원전 284년이 되자, 연나라의 진개의 공격을 받아 "동호는 천여 리를 쫓겨났다"고 한다. 동호는 기자조선이며, 번조선이다. 거란고전에는 ""으로 기록되어 있다. 기석은 연나라의 진개에게 쫓겨 천 리를 물러났고, 새로운 거주지는 대릉하 동쪽의 의무려산 부근의 진번조선이다.

3.2. 연나라와의 갈등

기원전 284년, 연나라의 진개의 공격을 받아 "동호는 천여 리를 쫓겨났다"고 한다. 동호는 기자조선이며, 번조선이다. 《거란고전》에는 ""으로 기록되어 있다. 기석은 연나라의 진개에게 쫓겨 천 리를 물러났고, 새로운 거주지는 대릉하 동쪽의 의무려산 부근의 진번조선이다.

3.2.1. 진개의 침입

기원전 284년, 연나라의 진개의 공격을 받아 "동호는 천여 리를 쫓겨났다"고 한다. 동호는 기자조선이며, 번조선이다. 《거란고전》에는 ""으로 기록되어 있다. 기석은 연나라의 진개에게 쫓겨 천 리를 물러났고, 새로운 거주지는 대릉하 동쪽의 의무려산 부근의 진번조선이다.

4. 역대 군주

기후(箕詡)는 기원전 323년에 즉위하여 번조선(番朝鮮)을 수립하였다. 그는 수유인(須臾人)으로, 기자조선 사람이자 한인은 아니었다. 당시 진한·번한 두 나라는 연의 침공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기후(箕詡)가 자제 5천 명을 이끌고 와서 싸움을 도왔다. 이에 군세가 점차 떨쳐 일어났고, 진·번 두 한(韓)의 군사와 함께 협공하여 연나라 군대를 대파하였다. 연은 두려워하여 사신을 보내 사죄하고 공자를 인질로 보냈다.

기원전 323년, 수한(水韓)이 후사 없이 죽자 기후(箕詡)가 명을 받아 군령을 대행하였고, 연(燕)이 사신을 보내 이를 축하하였다. 기후(箕詡)는 명을 받들어 정식으로 번조선왕(番朝鮮王)이라 칭하고, 처음으로 번한성(番汗城)에 거주하며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였다. 그는 군사를 번한에 들여보내 이를 근거로 삼고, 스스로 번조선왕을 칭했다고 하며, 번한을 침략하여 왕이 되었다. 즉, 기자조선의 기후(箕詡)가 번한을 병합하여 번조선왕이 된 것이다.

기후(箕詡)의 아들 기욱(箕煜)은 기원전 315년에 즉위하여 기원전 290년까지 재위하였다. 기욱 사후, 아들 기석(箕釋)이 번조선왕으로 즉위하였다.

기석(箕釋)은 기원전 290년에 즉위하였다. 이 해에 주군(州郡)에 명하여 현량(賢良)을 거두게 하였는데, 한때 뽑힌 자가 270명이었다. 기원전 284년, 연나라의 침략을 받아 천리(千里)를 후퇴하였다. 기묘년(기원전 272년)에는 번한(番韓)이 직접 교외에서 밭을 갈았고, 을유년(기원전 266년)에는 연나라가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쳤다. 기석은 기원전 251년에 죽었다.

기윤(箕潤)은 기원전 251년에 번조선왕으로 즉위하여 기원전 231년까지 재위하였다. 기석(箕釋)의 아들로, 아버지 기석이 죽자 번조선왕을 계승하였다. 기윤이 죽은 후 아들 기부(箕丕)가 즉위하였다.

기부(箕丕, 기원전 231년 ~ 기원전 221년)는 기씨조선의 마지막 왕인 기준의 아버지이다. 기부(箕丕)는 종실 해모수와 은밀히 옥새를 교환하기로 약속하고, 해모수가 대권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왔다.

기준(箕準, 기원전 221년 ~ 기원전 194년)은 번조선의 마지막 왕이다. 기원전 195년, 연나라 사람 노관한(漢)을 배반하고 흉노로 망명하자, 그의 무리였던 위만이 망명을 요청했다. 당시 병을 앓고 있던 해모수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으나, 번조선왕 기준은 여러 차례 기회를 놓치고 위만을 박사(博士)로 임명하여 상하운장을 다스리게 하였다.

기원전 194년, 기준은 위만에게 속아 공격을 받아 패하고, 바다를 건너 한(韓) 땅으로 도망갔으며, 번조선은 멸망하였다.

4.1. 기후 (箕詡, 기원전 323년 ~ 기원전 315년)

기후(箕詡, 기원전 323년 ~ 기원전 315년)는 수유인(須臾人)으로, 기자조선 사람이자 한인은 아니다. 기원전 323년 당시 진한·번한 두 나라는 연의 침공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이때 기후(箕詡)가 자제 5천 명을 이끌고 와서 싸움을 도왔다. 군세가 점차 떨쳐 일어나자 진·번 두 한(韓)의 군사와 함께 협공하여 연나라 군대를 대파하였다. 이후 연은 두려워하여 사신을 보내 사죄하고 공자를 인질로 보냈다.

기원전 323년, 수한(水韓)이 후사 없이 죽자 기후(箕詡)가 명을 받아 군령을 대행하였고, 연(燕)이 사신을 보내 이를 축하하였다. 기후(箕詡)는 명을 받들어 정식으로 번조선왕(番朝鮮王)이라 칭하고, 처음으로 번한성(番汗城)에 거주하며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였다. 기후(箕詡)는 군사를 번한에 들여보내 이를 근거로 삼고, 스스로 번조선왕을 칭했다고 하며, 번한을 침략하여 왕이 되었다. 즉, 기자조선의 기후(箕詡)가 번한을 병합하여 번조선왕이 된 것이다.

4.2. 기욱 (箕煜, 기원전 315년 ~ 기원전 290년)

기욱/箕煜zh-Hant( ~ )은 번조선의 제2대 왕으로, 아버지는 번조선왕 기후이다. 기욱은 기원전 315년에 즉위하여 기원전 290년까지 재위하였다. 아버지 기후는 연나라의 침입을 막아내고 번조선을 건국하였다. 기욱 사후, 아들 기석이 번조선왕으로 즉위하였다.

4.3. 기석 (箕釋, 기원전 290년 ~ 기원전 251년)

기석(箕釋, 기원전 290년 ~ 기원전 251년)은 번조선의 왕이다. 기씨(箕氏)의 계통은 "기후(箕詡) → 기욱(箕煜) → 기석(箕釋) → 기윤(箕潤) → 기부(箕否) → 기준(箕準)"으로 이어진다. 기후(箕詡) 때 번조선왕이 되었다.

기석은 기원전 290년에 즉위하였다. 이 해에 주군(州郡)에 명하여 현량(賢良)을 거두게 하였는데, 한때 뽑힌 자가 270명이었다. 기원전 284년, 연나라의 침략을 받아 천리(千里)를 후퇴하였다. 기묘년(기원전 272년)에는 번한(番韓)이 직접 교외에서 밭을 갈았고, 을유년(기원전 266년)에는 연나라가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쳤다. 기석은 기원전 251년에 죽었다.

4.4. 기윤 (箕潤, 기원전 251년 ~ 기원전 231년)

기윤(箕潤)은 기원전 251년에 번조선왕으로 즉위하여 기원전 231년까지 재위하였다. 기석(箕釋)의 아들로, 아버지 기석이 죽자 번조선왕을 계승하였다. 기윤이 죽은 후 아들 기부(箕丕)가 즉위하였다.

4.5. 기부 (箕丕, 기원전 231년 ~ 기원전 221년)

기부(箕丕, 기원전 231년 ~ 기원전 221년)는 기씨조선의 마지막 왕인 기준의 아버지이다. 기부(箕丕)는 종실 해모수와 은밀히 옥새를 교환하기로 약속하고, 해모수가 대권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왔다.

4.6. 기준 (箕準, 기원전 221년 ~ 기원전 194년)

기준(箕準, 기원전 221년 ~ 기원전 194년)은 번조선의 마지막 왕이다. 기씨(箕氏)의 계통은 "기후 → 기욱(箕煜) → 기석(箕釋) → 기윤(箕潤) → 기부 → 기준(箕準)"으로 이어진다. 기후 때 번조선왕이 되었다.

기원전 195년, 연나라 사람 노관한(漢)을 배반하고 흉노로 망명하자, 그의 무리였던 위만이 망명을 요청했다. 당시 병을 앓고 있던 해모수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으나, 번조선왕 기준은 여러 차례 기회를 놓치고 위만을 박사(博士)로 임명하여 상하운장을 다스리게 하였다.

기원전 194년, 기준은 위만에게 속아 공격을 받아 패하고, 바다를 건너 한(韓) 땅으로 도망갔으며, 번조선은 멸망하였다.

5. 멸망

기원전 221년, 기준(箕準)이 즉위하였다. 번조선은 위만(衛滿)과의 초기 관계에서 위만이 망명했을 때 배신을 당했다.

기준(箕準)은 기원전 221년에 즉위하여 기원전 194년까지 번조선(番朝鮮)을 다스렸다. 위만(衛滿)에게 패한 후, 남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5.1. 위만과의 관계

기원전 221년, 기준(箕準)이 즉위하였다. 번조선은 위만(衛滿)과의 초기 관계에서 위만이 망명했을 때 배신을 당했다.

5.2. 기준왕의 최후

기준(箕準)은 기원전 221년에 즉위하여 기원전 194년까지 번조선(番朝鮮)을 다스렸다. 위만(衛滿)에게 패한 후, 남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6. 주요 강역

기후는 "처음에는 번한성에 거주했다"고 한다. 위략에는 "만번한을 경계로 한다"고 되어 있으며, 번한성은 만번한으로 여겨지며, 거란고전에는 만관간성(曼灌幹城)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걸석산에서 산해관에 이르는 지역으로 보인다. 기후는 번조선을 수립한 후에도 기자가 봉해진 곳에 계속 거주했다. 기원전 284년이 되자, 연나라의 진개의 공격을 받아 "동호는 천여 리를 쫓겨났다"고 한다. 동호는 기자조선이며, 번조선이다. 거란고전에는 ""으로 기록되어 있다. 기석은 연나라의 진개에게 쫓겨 천 리를 물러났고, 새로운 거주지는 대릉하 동쪽의 의무려산 부근의 진번조선이다.

6.1. 번한성 (만번한)

기후는 "처음에는 번한성에 거주했다"고 한다. 위략에는 "만번한을 경계로 한다"고 되어 있으며, 번한성은 만번한으로 여겨지며, 거란고전에는 만관간성(曼灌幹城)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걸석산에서 산해관에 이르는 지역으로 보인다. 기후는 번조선을 수립한 후에도 기자가 봉해진 곳에 계속 거주했다. 기원전 284년이 되자, 연나라의 진개의 공격을 받아 "동호는 천여 리를 쫓겨났다"고 한다. 동호는 기자조선이며, 번조선이다. 거란고전에는 ""으로 기록되어 있다. 기석은 연나라의 진개에게 쫓겨 천 리를 물러났고, 새로운 거주지는 대릉하 동쪽의 의무려산 부근의 진번조선이다.

6.2. 진번조선

기후는 처음에는 번한성에 거주했다고 한다. 위략에는 "만번한을 경계로 한다"고 되어 있으며, 번한성은 만번한으로 여겨진다. 거란고전에는 만관간성(曼灌幹城)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걸석산에서 산해관에 이르는 지역으로 보인다. 기후는 번조선을 수립한 후에도 기자가 봉해진 곳에 계속 거주했다. 기원전 284년이 되자, 연나라의 진개의 공격을 받아 "동호는 천여 리를 쫓겨났다"고 한다. 동호는 기자조선이며, 번조선이다. 거란고전에는 ""으로 기록되어 있다. 기석은 연나라의 진개에게 쫓겨 천 리를 물러났고, 새로운 거주지는 대릉하 동쪽의 의무려산 부근의 진번조선이다.

7.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