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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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민족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중심으로 한반도와 그 주변에 거주하는 민족을 지칭한다. 한국에서는 '한민족' 또는 '한인'으로, 북한과 중국 등에서는 '조선민족'으로 불린다. 한민족은 단일민족이라는 인식이 강하며, 한국어와 한글을 사용하고 유교, 샤머니즘, 불교, 기독교 등 다양한 문화를 융합하여 발전시켜 왔다. 한민족의 기원은 고조선, 부여, 예맥 등 다양한 고대 민족에서 비롯되었으며, 유전학적으로는 중앙아시아 몽골인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연구된다. 현재 전 세계에 약 8천460만 명의 한민족이 거주하며, 대한민국과 북한 외에도 중국, 미국, 일본, 러시아 등지에 많은 재외동포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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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사람 - 이흥선 (1898년)
이흥선은 1898년에 태어나 대한제국 법무부 협판의 아들이자 언론인 이능선의 형으로, 센슈 대학을 졸업하고 경기도 시흥군 북면 신길리 구장, 금강산선 현리역 역장, 매일신보사 동경지사 영업주임을 역임했다.
한민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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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
기본 정보 | |
민족명 | 한민족/조선민족 |
현지어명 | 韓民族 / 朝鮮民族 |
총인구 | 약 8,450만 명 (2024년) |
주요 거주 지역 |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미국 중국 일본 캐나다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러시아 오스트레일리아 카자흐스탄 필리핀 브라질 독일 프랑스 영국 뉴질랜드 아르헨티나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키르기스스탄 우크라이나 스웨덴 캄보디아 멕시코 인도 아랍에미리트 덴마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
사용 언어 | 한국어 제주어 한국 수어 |
주요 종교 | 무종교 민간신앙 기독교 (프로테스탄트, 카톨릭) 불교 무속 유교 천도교 |
인구 | |
대한민국 | 51,709,000명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25,250,000명 |
미국 | 2,615,419명 |
중국 | 2,109,727명 |
일본 | 824,977명 |
캐나다 | 241,750명 |
우즈베키스탄 | 177,270명 |
베트남 | 172,684명 |
러시아 | 169,933명 |
오스트레일리아 | 167,331명 |
카자흐스탄 | 109,923명 |
필리핀 | 85,125명 |
브라질 | 48,281명 |
독일 | 44,864명 |
프랑스 | 40,780명 |
영국 | 40,770명 |
뉴질랜드 | 38,114명 |
아르헨티나 | 23,063명 |
인도네시아 | 22,774명 |
싱가포르 | 21,406명 |
말레이시아 | 20,861명 |
태국 | 20,200명 |
키르기스스탄 | 18,515명 |
우크라이나 | 13,070명 |
스웨덴 | 12,721명 |
캄보디아 | 11,969명 |
멕시코 | 11,897명 |
인도 | 11,273명 |
아랍에미리트 | 10,930명 |
덴마크 | 9,581명 |
네덜란드 | 8,601명 |
노르웨이 | 7,667명 |
문화 | |
문화 | 한국 문화 |
음악 | 한국 전통 음악 |
언어 | 한국어 |
음식 | 한국 요리 |
무용 | 한국 무용 |
종교 | 한국의 종교 |
관련 집단 | |
관련 집단 | 제주인 |
주요 인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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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계통 | |
민족 계통 | 동아시아인 |
기원 발상지 | 만주와 한반도 지역 |
근연 민족 | 만주족 일본인 몽골인 제주인 |
2. 명칭
대한민국에서는 이전 대한제국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이라는 국명을 사용하고 있으며,[129] 1950년 국무원고시 제7호[130]에 의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사용하는 '조선'이란 명칭 사용이 기피되면서 '한민족', '한인'(韓人)으로 호칭하고 있다.[13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비롯한 한자문화권인 중화인민공화국, 일본, 중화민국 등에서는 '조선민족'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한민족의 민족주의는 반만년 동안 혈연적 동일성을 지니고 이어진 단일민족임을 강조한다. 한민족은 한반도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한민족 고유의 왕조가 계속 지속되면서 오래전부터 고유한 언어적ㆍ문화적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한민족이라고 불리는 집단이 언제 어떤 경로로 형성되었는지는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133]
러시아 등 구 소련 지역으로 이주한 동포들은 고려인이라고 부른다. 신채호는 어윤적이 주창한 '배달'이란 호칭의 연원에 대해서 '믿기 어렵다.'고 하여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였다.[132]
대한민국 국민들은 자신을 '한국인'한국인|韓國人한국어 또는 '한국 사람'한국 사람한국어이라고 부르는데, 둘 다 "한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대한제국과 대한민국(한국)의 이름에 있는 "한(韓)"은 고대 남한반도의 연맹체가 아니라 삼국시대를 가리킨다.[15][16] 한국계 이민자들은 종종 '한인'한인|韓人|lit=한의 사람들한국어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북한 주민들은 자신을 '조선인'조선인|朝鮮人한국어 또는 '조선 사람'조선 사람한국어이라고 부르는데, 둘 다 문자 그대로 "조선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 용어는 마지막 조선 왕조인 조선에서 유래했으며, 그 자체가 최초의 한국 왕국인 고조선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마찬가지로, 중국 거주 한국인들은 중국어로 '朝鲜族'朝鲜族|중국어 또는 한국어로 '조선족', '조선사람'조선족, 조선사람한국어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문자 그대로 "조선 민족"을 의미하는 동족어이다.[17][18] 일본 거주 한국인들은 일본어로 在日朝鮮人, 朝鮮人|Zainichi Chousenjin, Chousenjin일본어 또는 한국어로 '재일조선인', '조선사람', '조선인'재일조선인, 조선사람, 조선인한국어이라고 부른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는 한국계 사람들은 918년부터 1392년까지 존재했던 한국 왕조인 고려를 가리키는 '고려 사람'고려 사람|키릴 문자: Корё сарам한국어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Korea'라는 단어의 어원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국가의 후렴구에서는 한국인을 '대한사람'대한사람|tr=위대한 한의 사람들한국어이라고 부른다.
남북한 간의 맥락, 예를 들어 한국어족이나 전체 한국 민족을 다룰 때, 대한민국에서는 한겨레|tr=한의 민족/사람들한국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3. 기원
미국, 중화인민공화국, 러시아 등과 같이 여러 민족이 공존하는 다민족 국가와 달리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한민족이 전체 주민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국가이다. 민족이란 동일한 언어와 문화를 바탕으로 공동체 의식을 지닌 집단이기 때문에 여러 민족도 하나의 민족 집단으로 융화된다. 예를 들어 거란 전쟁에서 거란인들을 노예로 끌고 오기도 하였는데, 오늘날 동일한 언어와 문화, 공동체 의식을 지닌 한민족으로 융화되었다. 곧 한민족 집단이 언제나 지배적 지위에 있으면서 여기에 여러 이질적인 요소를 지속적으로 한민족화시켜 왔다고 볼 수 있다.[134]
한민족의 근간은 몽골족, 만주족, 터키족, 즉 ‘우랄 알타이어’ 계통족과 공통된 먼 공동 조상에서 분파된 일족이라고 생각되며, 그것이 문헌상으로 한(韓)이나 예맥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믿어진다. 이들은 북방에서 만주와 한반도에 살던 선주민들을 구축하면서 동으로 이동하여 왔던 것 같다.
한국인의 기원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언어학적, 고고학적, 유전적 증거를 바탕으로 기원지는 동북아시아 어딘가로 추정되지만, 한반도로의 확산 및 도착 과정은 불분명하다.[19] 유전학적 관점에서 한국인은 중앙아시아계 몽골인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20] 한국어와 한국인의 기원은 현재도 논쟁 중이다. 일부 이론은 알타이 제어와의 연관성을 제시하며, 몽골어족, 튀르크어족, 퉁구스어족을 포함한 북아시아의 언어와 인구와의 연관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결론이 나지 않았고, 많은 학자들은 한국어가 독자적인 한국어족에 속하며 독특한 언어적, 문화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22][23]
3. 1. 고고학적 연구
한민족이 언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133] 한국인의 기원은 언어학적, 고고학적, 유전적 증거를 바탕으로 동북아시아 어딘가로 추정되지만, 한반도로의 확산 및 도착 과정은 불분명하다.[19]
구석기 시대 한반도에는 충청남도 공주 석장리(石壯里), 함경북도의 동관진(潼關鎭)과 굴포리(屈浦里)·부포리, 연천 전곡리, 평안도의 검은모루 동굴 등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있다. 석장리 유적의 4·5층은 15만 년 이전의 전기 구석기, 중기 구석기 문화는 4만~10만 년 전, 후기 구석기 문화층은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에 따라 30,690년 전으로 추정된다.[135]
신석기 시대는 약 1만 년 전에 시작되어 기원전 1500년쯤에 청동기 시대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신석기 문화를 대표하는 것은 빗살무늬 토기 문화이다. 청동기 시대에 만주에서 이동해 온 이주민들이 원 한국인이라는 고고학적 증거가 있다.[21]
원한국어 사용자들은 기원전 300년경 한반도 남부에 도착하여 일본어계 빗살무늬토기 농경민의 후손들과 공존하거나 동화시켰다는 주장이 있다.[26] 宮本一夫(미야모토 가즈오)는 원한국어가 요동반도의 "만곡형 토기 문화"(점토대 문화)와 함께 도래하여 빗살무늬토기-야요이 문화의 일본어 화자들을 점차 대체했다고 주장한다.[30] 토기문화는 요하 중류 지역에서 하가점상층문화가 소멸한 후, 그 계보를 이으면서 내몽골, 몽골고원 등의 기마 유목민의 영향도 받아 형성된 문화이다. 토기문화는 처음에는 한반도 서부에서 번성했지만, 기원전 2세기가 되면 후에 신라가 성립하는 지역인 한반도 동남부에서 세력을 갖게 된다.[105]
고조선과 동일한 시기에 한반도 중남부에는 진국(辰國)이라 불리는 나라가 있었다. 부여, 동예, 옥저,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였다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고조선과 진국의 구성원들 역시 같은 언어를 사용하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인돌이 한반도에 있다. 추정 3만 5천~10만 개의 고인돌로, 한국은 세계 총량의 거의 40%를 차지한다.
3. 2. 유전학적 연구
한민족은 한반도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공동체 의식을 지닌 집단이지만, 그 기원과 형성 과정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133] 미국, 중화인민공화국, 러시아와 같은 다민족 국가와 달리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한민족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역사적으로 외부 민족을 한민족으로 동화시켜왔다.[134]
최근에는 유전자 검사를 통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인은 몽골인을 포함한 북방계 몽골인종 집단으로 분류되며, DNA 분석 결과 만주족, 일본인, 몽골인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깝다.[137] 북시베리아 인종들과도 유전적 유사성이 있으며, 인류 Y-DNA 하플로그룹 분석에서는 아프리카에서 동남아시아를 거쳐 북아시아로 이동한 C형보다 늦게 출발한 O형이 더 많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137] 하지만 하플로그룹은 인종 구분의 척도가 아니며, 전체 DNA 분석 결과 한국인은 일본인, 만주인, 몽골인과 가장 가깝다.[137]
제4빙하기 이후 우랄산맥 서쪽 바이칼호 근처에 살던 황인종인 북방 몽골로이드가 기원전 2만 년부터 한반도에 진출하여 민족을 이루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들은 추운 지방에서 생활하며 얼굴에 두터운 지방층, 검은색 직모, 광대뼈 돌출, 흑갈색 눈동자, 몽고반점 등의 특징을 보인다. 몽고반점은 동남아 인종, 말레이 인종, 중국 인종을 비롯한 다른 인종에게는 나타나지 않지만, 중앙유럽, 터키, 코카서스,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몽골, 페노-스칸디나비아 반도, 아이누, 에스토니아, 불가리아, 티베트, 류큐, 일본, 아메리카 대륙의 이누이트와 아메리카 토착민에게도 나타난다.
한민족은 유전적으로 아난다미드와 세로토닌 활성이 원활하지 못하여 마약 중독과 정신적 후유증에 취약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138] 아주대학교 김경일 교수의 관련 강의도 있었다.[139][140][141] 췌장 크기가 작아 당뇨병 발병률이 높지만,[142][143][144][145][146] 암내는 적게 난다.[147] 고수를 싫어하는 유전적 변이도 다수 존재한다.[148][149][150] 서울대병원 연구에 따르면 한민족 특정 유전자인 NRG1은 갑상선암을 유발할 수 있지만,[147] RXFP4 유전자는 조혈모세포 치료 성공률을 높인다.[147]
한국인의 기원은 동북아시아 어딘가로 추정되지만, 한반도로의 확산 과정은 불분명하다.[19] 유전학적으로는 중앙아시아계 몽골인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며,[20] 고고학적 증거는 청동기 시대 만주에서 이동해 온 이주민이 원한국인이라는 것을 시사한다.[21] 한국어와 한국인의 기원은 논쟁 중이지만, 일부 이론은 알타이 지역과의 연관성을 제시한다.[22][23]
북쪽의 한국어 화자들이 남쪽으로 이동하여 일본어 화자들을 대체하고 동화시켰다는 주장이 있다.[24][25] Whitman (2011)은 원한국어 사용자들이 기원전 300년경 한반도 남부에 도착하여 일본어계 빗살무늬토기 농경민과 공존하거나 동화되었다고 주장한다.[26] Vovin은 원한국어가 삼국 시대 남부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서 사용되던 한국어의 변종과 동일하며, 고구려 이주민의 영향으로 한국 남부로 확산되었다고 제안한다.[27] 초기 한국인의 도착은 서요하 유역에서 확장된 청동기 단검 문화와 관련될 수 있다.[28] 고고학적 증거는 서요하 유역의 후기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 문화의 토기 제작 방식과 한반도 사이의 연관성을 보여준다.[29] Miyamoto 2021은 원한국어가 요동반도의 "만곡형 토기 문화"(점토대 문화)와 함께 도래하여 빗살무늬토기-야요이 문화의 일본어 화자들을 대체했다고 주장한다.[30]
한 인구 유전학 연구는 한국인의 기원을 조사하기 위해 437명의 한국인으로부터 얻은 혈액 유전 마커를 사용했다. 유전적 거리 분석 결과 한국인은 중앙아시아 몽골인에서 유래했으며, 일본인과 더 가깝고 한족과는 더 멀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는 한국인의 민족 역사적 기록과 일치하며, 중국 조선족이 독자적인 유전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32]
현대 한국인은 주로 요하 서쪽의 청동기시대 농민으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모델링될 수 있다.[33] 청동기시대 서요하 농민은 신석기 시대에 "신석기 황하 농민"과 고대 북동아시아인(아무르 수렵 채집인)의 결합으로 유래했다.[34] 원시한국어의 확산은 청동기시대 서요하 농민의 확산과 관련될 수 있으며, 이 조상이 고분시대 동안 초기 한국어 사용자에 의해 일본 유전자 풀에 도입되었다는 주장도 있다.[34] 상샤자뎬 문화는 청동기시대와 현대 한국인의 근원 대리로 사용될 수 있다.[35][36] 왕과 왕(2022)은 삼국 시대의 한국인이 조몬 조상을 가지고 있으며, 그 비율이 10%에서 95%에 이르렀다고 말했다.[37] 그러나 만주 출신 신규 이주민의 도착으로 이 조몬 조상이 '희석'되어 한국인이 유전적으로 동질적인 집단이 되었다.[38] 한 연구에 따르면 현대 한국인은 약 85%의 조상이 요하 서부 지역의 청동기시대 인구에서, 15%는 대만 한벤 문화와 관련된 정착민으로부터 유래했다.[39] [40]
한국인은 Y-DNA 하플로그룹 O2-M122(약 40%), O1b2-M176(약 30%), C2-M217(약 15%)의 높은 빈도를 보인다.[41]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O2-M122와 O1b2-M176의 비율은 서울·경기 지역에서 가장 높고(1.8065), 시계 반대 방향으로 감소한다(충청 1.6364, 전라 1.3929, 제주 1.3571, 경상 1.2400, 강원 0.9600).[42][43][44][45][46] C2-M217은 경상도 남성에서 약간 더 흔하고(약 17%), 제주도 남성에서는 약간 덜 흔하다(약 7%).[47] 북한 남성의 소규모 표본에서는 약 26%로 더 크게 나타났다.[48][49] 그러나 하플로그룹은 개인의 전체 조상을 나타내는 신뢰할 수 있는 지표가 아니며, 한국인은 다른 민족보다 상염색체에 대해 서로 더 유사하다.[50]
한국 인구의 미토콘드리아 DNA 마커는 만주족, 일본인, 몽골인, 북중국인과 밀접한 관계를 보였지만 동남아시아인과는 그렇지 않았다. Y 염색체 거리는 동남아시아 인구를 포함한 대부분의 동아시아 인구와 밀접했다.[51] 고대 게놈 비교는 한국인의 유전적 구성이 북한에 인접한 러시아 극동의 악마의 문 신석기 게놈과 양쯔 강 유역 벼농사 농업인 게놈의 혼합으로 설명될 수 있음을 밝혔다.[52] 이들은 현대 한국어, 일본어 사용 집단, 울치, 나나이, 오로첸과 같은 퉁구스어 집단과도 연관되어 있다.[53]
한국인은 야마토 일본인, 만주족, 퉁구스어를 사용하는 집단과 밀접한 유전적 관계를 공유하며, 북부 한족 인구와도 유전적 친화성을 보인다.[11][12][14][54][55][13] "동아시아 인구 형성에 대한 게놈 통찰" 연구는 FST 유전적 거리 측정을 기반으로 한국인이 야마토 일본인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깝다고 밝혔다.[56] Geno 2.0 Next Generation에서 사용된 한국인의 기준 인구는 동아시아가 94%, 동남아시아 및 오세아니아가 5%이다.[57]
현재 한국인이 가진 Y염색체 하플로그룹은 비율이 많은 순서대로 O2-M122(O-M122), O1b2-M176(O-M176), C2-M217(C-M217)이다.
하플로그룹 | 특징 | 비율 (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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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M122 | 동아시아 전역에 많음 | 41% |
O1b2-M176 | 일본, 류큐, 한반도에 많음 | 31% |
C2-M217 | 북아시아에 많음 | 14% |
O2-M122 계통은 한국인에서 약 41%로 확인되며, 중국인 등 동아시아에서 많이 나타난다. O1b2-M176 계통은 약 31%로, 한국인과 일본인(야마토 민족, 류큐 민족)에게 특징적인 차이가 있다. 한국인에서는 약 22% : 9% 비율로 확인되지만, 일본에서는 약 8% : 24% 비율로 거의 역전된다. C2-M217 계통은 약 14%로, 중앙아시아 및 북아시아, 북아메리카의 나-데네어족 등에 많다. 한족, 경족 등 동아시아에서는 약 10% 비율로 확인되며, 일본에서는 3%~6% 정도이다. C2-M217을 보유한 한국인 남성의 대부분(94.4%)은 동아시아에 많은 C-Z1338에 속하며, 북아시아 및 북아메리카에 많은 C-L1373은 5.6%에 그친다.[109]
그 외에 소수이지만 한국인 남성은 핀란드인, 리투아니아인, 야쿠트인 등 극북 유라시아에 많은 N-M231(N-M231)(약 4%), 대만의 원주민인 고산족과 기타 동남아시아 섬 지역에 많은 O1a-M119(O1a-M119)(약 3%), 동아시아 광역에 걸쳐 저빈도로 발견되는 O1b-P31(xM95, M176)(약 2%),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과 인도, 유럽 등에 많은 P-M45(P-M45)(약 2%), 일본인 고유의 D1a2 (D-M64.1) 계통(D-M64.1)(약 2%) 보유가 확인되고 있다. D1a2 (D-M64.1)는 구야한국과 신라 시대에 활약한 일본인의 일부가 귀화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조선민족)의 HLA를 계통 발생적으로 분석한 결과, 일본인과 산둥성의 한족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110] HLA 유전자 조사 결과 조선민족은 일본인, 만주족, 한족과 가까웠다.[111][112][113] HLA 하플로타입은 만주와 일본의 동해 연안에 B44-DR13, B7-DR1이 특징적으로 많이 나타난다.[114][115][116][117]
Kim 등(2020)의 연구에서는, 조선민족은 악마의 문 고인골에 대표되는 신석기 시대 시베리아 동부 집단과 고대 중국 남부 집단의 혼합체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 제시되었다.[118] Sun(2023) 등에 의한 중국 조선족 조사에서는 만주족, 한족과 비교하여 북동아시아 계통이 더 강하며, 현대 한국인, 일본인 및 청동기 시대 서요하인과의 강한 유연성이 확인되었다. 또한 고대 DNA를 이용한 모델링에서는 서요하 청동기 시대 85%, 대만의 한본 15%의 혼혈로 모델링할 수 있다는 것도 제시되었다.[119]
고대 DNA 연구에서는 개체별 차이가 크지만, 일본 죠몬인과 관련된 조상과의 혼혈을 보여주는 데이터가 적지 않게 나오고 있으나, 현대 한국인에서는 희석되어 있다. Robbeets 등(2021)의 신석기 시대 한반도 남안의 4개체 샘플에서는 0~95%의 일본 죠몬인 조상과의 혼혈 비율을 보여주는 데이터가 나왔다.[120] Gelabert 등(2021)은 삼국시대의 가야였던 4~5세기 김해시 출토의 8개체 샘플을 분석하여 일본 죠몬인과 관련된 조상의 유전자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제시했다.[121]
4. 역사
한민족의 민족의식이 언제, 어떤 경로로 형성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설이 존재한다. 크게 근대 이전에 형성되었다는 전근대형성설과 근대 민족국가 수립 과정에서 형성되었다는 근대형성설로 나뉜다. 전근대형성설은 다시 신라의 삼국통일을 계기로 형성되었다는 학설, 발해 유민까지 통합한 고려 건국을 계기로 형성되었다는 학설, 조선 건국을 계기로 형성되었다는 학설 등으로 나뉜다.
삼국 시대 각국 주민 간 교류는 있었으나, 민족의식은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신라 정부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후 민중 사이에는 삼국 각국 국민이라는 의식이 퍼져 있었으나, 고려 건국 이후 비로소 공통된 민족의식이 확립되었다는 학설이 유력하다.[136]
한국인의 기원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언어학적, 고고학적, 유전적 증거를 바탕으로 동북아시아 어딘가로 추정되지만, 한반도로의 확산 및 도착 과정은 불분명하다.[19] 유전학적으로는 중앙아시아계 몽골인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20] 고고학적 증거는 원한국인이 청동기 시대에 만주에서 이동해 온 이주민이었음을 시사한다.[21]
한국어와 한국인의 기원은 현재도 논쟁 중이다. 일부는 알타이 지역과의 연관성을 제시하며, 몽골어족, 튀르크어족, 퉁구스어족을 포함한 북아시아 언어 및 인구와의 연관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결론이 나지 않았고, 많은 학자들은 한국어가 독자적인 한국어족에 속하며 독특한 언어적, 문화적 기원을 가진다고 주장한다.[22][23]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인돌이 한반도에 있으며, 그 수는 3만 5천~10만 개로 추정된다. 이는 세계 총량의 약 40%에 해당한다.
1945년 광복 이후 한반도는 38선을 경계로 미국과 소련의 군정 통치를 받다가, 1948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분단되었다. 문화적으로는 한성, 유교, 한자 등 역대 중국 왕조로부터 강하게 영향을 받았고, 일제 강점기에 유래한 것들도 있다. 한편, 최근 개량된 한복, 김치, 불고기 등의 한국 요리, 판소리, 탈춤 등에는 독특한 특징이 나타난다. 언어는 한국어, 문자는 한글을 사용한다.
북한은 2023년 7월 10일부터 "남조선" 대신 한국(대한민국)으로 부르며, 한국을 통일 대상이 아닌 별개 국가로 간주하고, “우리 민족”이라는 표현과 통일 정책을 공식 삭제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남북 통일을 전제로 하는 방침에서 전환했기 때문으로 추측한다.[101] 2024년 1월 5일, 북한은 한국과 같은 민족이 아니라고 선언했다.[102]
4. 1. 고대
한민족은 한반도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한민족 고유의 왕조가 계속 지속되면서 오래 전부터 고유한 언어적ㆍ문화적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한민족이라고 불리는 집단이 언제 어떤 경로로 형성되었는지는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133]고조선과 동일한 시기에 한반도 중남부에는 진국(辰國)이라 불리는 나라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그 외에 기록은 확실치 않다. 즉 이런 제한된 기록에서 고조선 당시에 한반도 중남부에는 한반도 북부와 남만주 일부를 차지하고 있던 고조선과는 구분되는 정치세력이 형성되어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의 후신인 부여, 동예, 옥저,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였다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고조선과 진국의 구성원들 역시 같은 언어를 사용하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한반도인들은 구석기 시대에서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 토기 로 발전되어 나아갔다. 충청남도 공주 석장리(石壯里)의 유적은 대표적인 구석기 시대의 것으로 추측되며, 한국의 구석기 문화 유적지로는 함경북도의 동관진(潼關鎭)과 굴포리(屈浦里)·부포리, 충청남도의 공주 석장리(石壯里) 외에도 연천 전곡리, 평안도의 검은모루 동굴 등이 있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석장리의 유적이며 이곳에서 전기·중기·후기의 고대 한반도인들이 거쳐 간 흔적이 보인다. 이 유적의 4·5층의 것은 15만 년 이전의 전기 구석기로 그 위층의 중기 구석기 문화는 4만~10만 년 전으로 추정되며 또 후기 구석기 문화층에 속하는 상층은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에 따라 30,690년 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구석기 문화가 상당한 기간 이어지고 구석기가 발전하여 신석기 문화를 가진 빗살무늬 토기가 나타났을 것으로 추정된다.[135]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발전하여 이른 민무늬토기, 눌러찍기무늬 토기, 기하문토기 등으로 발전된다.
한민족의 근간은 몽골족·만주족·터키족, 즉 ‘우랄 알타이어’ 계통족과 공통된 먼 공동조상에서 분파된 일족이라고 생각되며, 그것이 문헌상으로 한(韓)이나 예맥(濊貊)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믿어진다. 이들은 북방에서 만주와 한반도에 살던 선주민들을 구축하면서 동으로 이동하여 왔던 것 같다. 여기에서의 선주민이란 구석기 시대인과 즐문토기 문화인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신석기 문화는 한국의 경우 약 1만년 전에 시작되어 기원전 1500년쯤에 청동기 시대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 신석기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 빗살무늬 토기 문화이다. 적어도 기원전 10세기 전부터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서 살기 시작한 예맥은 북방적 요소가 강한 청동기 문화를 수용하면서 각처에서 부족 국가를 건설하였다.
선사 시대의 한반도는 빗살무늬토기( 우랄어족과 관련)를 가진 요하문명권[96][97]에 속해 있었다. 이 우랄계 민족이 한국 민족의 기층을 이루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고대 한반도는 현재와 비교해 인구도 적었고 여러 종족이 산재해 있었는데, 남부에는 왜인, 북부에는 옥저, 예, 부여 등의 예맥계, 읍루를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었다.
그중 중국 만주 남부에서 건너온 부여에서 발전한 고구려가 남하하면서 한반도에 세력을 확장하였고, 이와 연동하여 한반도 중부에서 북부의 마한 여러 나라를 통합한 백제, 한반도 동남부에서는 진한 여러 나라를 통합한 신라가 성립하여 삼국이 정립(鼎立)하게 되었다.[98] 삼한 시대를 대표하는 백제, 신라, 고구려는 각각 종족의 편향은 있었지만 국가였다. 이후 한반도 동남부를 근거지로 하는 삼한계 국가인 신라가 백제·고구려 등 부여, 예맥계 국가를 격파하고 한반도 중남부를 점령하였고, 한반도 북부와 만주를 잇는 부여계 국가는 사라졌다.
4. 2. 중세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각국의 주민 간 교류는 있었으나 하나의 집단으로서 민족의식은 신라 정부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그러나 민중 사이에는 여전히 삼국 각국의 국민이라는 의식이 퍼져 있었고, 고려 건국 이후 비로소 공통된 민족의식이 확립되었다는 학설이 유력하다.[136]고구려가 남하하면서 한반도에 세력을 확장하였고, 이와 함께 한반도 중부에서 북부의 마한 여러 나라를 통합한 백제, 한반도 동남부에서는 진한 여러 나라를 통합한 신라가 성립하여 삼국이 정립(鼎立)하게 되었다.[98] 이후 신라가 백제·고구려 등 부여, 예맥계 국가를 격파하고 한반도 중남부를 점령하면서 한반도 북부와 만주를 잇는 부여계 국가는 사라졌다. 통일 신라 시대에 신라는 옛 백제와 고구려의 일부 영역을 지배하고 다스렸지만, 주민들의 옛 국가에 대한 귀속 의식은 여전히 남아 후삼국 시대로 이어졌다. 고구려계 주민이 건국한 발해와 대립하였으나, 발해 멸망 이후 새로 건국된 고려가 귀순해 온 일부 유민을 받아들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현재의 민족 의식 확립은 13세기경으로 추정된다. 비록 삼국 시대(신라·고구려·백제를 가리킴)부터 민족 집단으로서의 역사는 계승되었다고 여겨지지만, 몽골에 지배받던 13세기에 들어 『삼국사기』 편찬과 민족의 계몽 및 통합이 활발해지면서 13세기 후반에 현재의 민족으로서 자기 고유성의 성숙과 유전적인 일치가 거의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 민족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 외부 민족으로는 한족, 왜인, 만주족이 있다. 한반도에서는 고대부터 중국으로부터 온 도래인에 의해 정복(기자조선)·식민 지배를 받았고, 위씨조선 멸망 후 한사군이 설치되어 한족에 의해 한반도 북부가 직접 지배됨으로써 한인의 유입이 있었고, 후에 토착화되었다. 고려 시대 초기에는 이민족 23만 8000명 이상이 귀화하였으며,[99] 거란 멸망 후 고려에 도래한 거란인은 100만에 달한다는 기록도 있다.[100] 따라서 조상이 중국에서 도래한 도래인이 많다.
남부에서는 전방후원분 등 왜인과의 관련이 지적되는 유적이 현재도 남아 있다. 신라나 임나 등 한반도 남부 국가에서는 구성 민족으로 왜인이 정착했을 뿐만 아니라, 지배층에도 많은 왜인이 있었다.
동북부에는 여진 등 퉁구스 민족의 유입·도래가 잇따랐다.
4. 3. 근세
한민족으로서의 민족의식이 언제, 어떻게 형성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다. 크게 근대 이전에 형성되었다는 전근대형성설과 근대 민족국가 수립 과정과 함께 형성되었다는 근대형성설로 나뉜다. 전근대형성설은 다시 신라의 삼국통일을 계기로 형성되었다는 학설, 발해 유민까지 통합한 고려 건국을 계기로 형성되었다는 학설과 조선 건국을 계기로 형성되었다는 학설 등으로 나뉜다.삼국 시대에는 각국의 주민 간 교류가 있었으나, 하나의 집단으로서 민족의식은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신라 정부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민중 사이에는 삼국 각국의 국민이라는 의식이 퍼져 있었으나, 고려 건국 이후 비로소 공통된 민족의식이 확립되었다는 학설이 정설에 가깝다고 알려져 있다.[136]
고구려가 남하하면서 한반도에 세력을 확장하였고, 이와 연동하여 한반도 중부에서 북부의 마한 여러 나라를 통합한 백제, 한반도 동남부에서는 진한 여러 나라를 통합한 신라가 성립하여 삼국이 정립(鼎立)하게 되었다.[98] 이후 한반도 동남부를 근거지로 하는 삼한계 국가인 신라가 백제·고구려 등 부여, 예맥계 국가를 격파하고 한반도 중남부를 점령하였고, 한반도 북부와 만주를 잇는 부여계 국가는 사라졌다. 통일 신라 시대에 신라는 옛 백제와 고구려의 일부 영역을 지배하고 다스렸지만, 주민들의 옛 국가에 대한 귀속 의식은 여전히 남아 후삼국 시대에 들어선다. 고구려계 주민이 건국한 발해와 대립하였으나, 발해 멸망 이후 새로 건국된 고려가 귀순해 온 일부 유민을 받아들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현재의 민족 의식의 확립은 13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삼국 시대(신라·고구려·백제를 가리킴)부터 민족 집단으로서의 역사는 계승되었다고 여겨지지만, 몽골에 지배받던 13세기에 들어 『삼국사기』의 편찬과 민족의 계몽 및 통합이 활발해지면서 13세기 후반에 현재의 민족으로서의 자기 고유성의 성숙과 유전적인 일치가 거의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 시대 초기 이민족이 23만 8000명 이상 귀화하였다.[99] 거란이 멸망한 후 고려에 도래한 거란인은 100만에 달한다는 기록도 있다.[100]
4. 4. 근대
한민족으로서 민족의식이 언제, 어떤 경로로 형성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설이 존재한다. 크게 근대 이전에 형성되었다는 전근대형성설과 근대 민족국가 수립 과정과 더불어 형성되었다는 근대형성설로 나뉜다. 전근대형성설은 다시 신라의 삼국통일을 계기로 형성되었다는 학설, 발해 유민까지 통합한 고려 건국을 계기로 형성되었다는 학설, 조선 건국을 계기로 형성되었다는 학설 등으로 나뉜다.삼국 시대 각국의 주민 간 교류는 있었으나, 하나의 집단으로서 민족의식은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신라 정부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민중 사이에는 삼국 각국 국민이라는 의식이 퍼져 있었으나, 고려 건국 이후 비로소 공통된 민족의식이 확립되었다는 학설이 정설에 가깝다고 알려져 있다.[136]
4. 5. 현대
1945년 광복 이후 한반도는 38선을 경계로 미국과 소련의 군정 통치 아래 놓였다가, 1948년 각각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분단되었다.북한은 2023년 7월 10일부터 "남조선" 대신 한국(대한민국)으로 부르기 시작하며, 한국을 통일 대상이 아닌 별개 국가로 간주하고 있다. 또한 "우리 민족"이라는 표현과 통일 정책을 공식적으로 삭제하였다.[101] 전문가들은 북한이 남북 통일을 전제로 하는 방침에서 전환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101] 2024년 1월 5일, 북한은 앞으로 한국과 같은 민족이 아니라고 선언하였다.[102]
5. 인구
2017년 12월 말 기준 외국인을 제외한 대한민국의 총인구는 5,177만 명[125]이고, 2016년 말 기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구는 약 2,537만 명으로 추산된다. 해외 거주 한인(韓人)은 2017년 기준 중화인민공화국에 258만여 명, 미국에 223만여 명, 일본에 89만여 명(조선적 3만 명 포함[151]), 구 소련 지역(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에 약 50만 명 등 총 746만 명[126][151]이며, 이들을 모두 포함한 전체 한민족의 수는 약 8,460만 명이다.
대규모 한국 이민은 18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어 주로 러시아 극동과 중국 동북부(역사적으로 외칭인 만주로도 알려짐)로 이루어졌다. 이후 이 지역의 중국 거주 한국인은 200만 명 이상으로 증가했고, 고려인(중앙아시아와 구 소련에 거주하는 한국계 사람들)은 수십만 명에 달하게 되었다.[65][66] 1910년부터 1945년까지의 일제 강점기 동안 한국인들은 종종 일본 본토, 가라후토(사할린) , 만주국에서의 노동 징용에 동원되거나 강제로 동원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일본에 남기로 선택한 사람들은 재일 한국인으로 알려졌고, 소련의 침공 이후 가라후토에 갇힌 약 4만 명의 한국인들은 일반적으로 사할린 한국인으로 불린다.[67][68]
2012년 6월 대한민국 인구는 5,000만 명에 달했으며,[69] 2016년 말에는 5,100만 명을 넘어섰다.[70] 2000년대 이후 대한민국은 저출산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일부 연구자들은 현재의 인구 추세가 지속될 경우 21세기 말에는 인구가 약 3,800만 명으로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한다.[71] 2018년 10월 신생아 수가 26,500명에 그치고, 연간 신생아 수는 약 32만 5천 명으로 추산되면서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임이 다시 한번 국제적인 논쟁거리가 되었다.[72][73][7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구의 규모, 증가율, 성비 및 연령 구조를 추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1989년 공식 자료가 발표될 때까지, 1963년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연감이 인구 수치를 공개한 마지막 공식 간행물이었다. 1963년 이후 인구 통계학자들은 인구를 추정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다. 그들은 최고인민회의에 선출된 대표자 수(1962년 이전에는 대표 1명당 5만 명, 이후에는 3만 명)를 합산하거나, 특정 활동에 종사하는 특정 인원 또는 인구의 특정 비율에 대한 공식 발표에 의존했다. 따라서 1977년 김일성 주석의 발언을 바탕으로 그 해 인구는 1,720만 명으로 계산되었다. 1980년대에는 기대 수명과 사망 원인을 포함한 건강 통계가 점차 외부 세계에 공개되었다.[75]
1989년, 조선중앙통계국은 1948년 국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전국 인구 조사를 실시하는 데 UNFPA(유엔인구기금)의 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유엔인구기금에 인구 통계 자료를 발표했다. 유엔에 제공된 수치가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외부 세계에 대한 개방을 시도한 것과 마찬가지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 또한 인구 통계 분야에서 어느 정도 개방된 것으로 보인다. 숙련된 인구 통계학자가 부족하지만, 가구 등록, 이동, 출생 및 사망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당국이 이용할 수 있다. 미국의 학자 Nicholas Eberstadt와 인구 통계학자 Brian Ko에 따르면, 주민에 대한 중요 통계 및 개인 정보는 농촌 지역에서는 '리'(마을, 지방 행정 단위) 단위, 도시 지역에서는 '동'(구역 또는 블록) 단위의 기관에서 관리한다.[75]
한민족은 주로 한반도 지역에 거주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및 중화권에서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민족 명칭을 '''조선족'''이라고 부르지만, 대한민국(한국)에서는 '''한민족'''이라고 부른다. 총인구는 약 8,000만 명이며, 한국인이 약 5,200만 명, 북한인이 약 2,500만 명, 한국계 미국인이 약 250만 명, 한국계 영국인, 한국계 캐나다인, 한국계 오스트레일리아인 등이 각 100만 명 이상 거주하고 있다(북한은 자국민의 해외 진출 규제 때문에, 특히 영어권에서는 한국계 이외의 인구는 매우 적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조선계 중국 국적 소수민족인 조선족이 약 170만 명, CIS 국가에 거주하는 고려인이 약 50만 명 등이 분포하고 있다.[95]
현대 한민족에 의한 한반도의 통치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분단되어 있다. 북쪽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이고, 남쪽은 '''대한민국'''(한국)이다. 둘 다 국제 연합(UN)에 가입하여 한반도 유일의 주권 국가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는 내전의 휴전 중이라는 명분 아래, 냉전 시대부터 이어지는 미국과 러시아(당시 소비에트 연방)의 패권 다툼의 극동 지역 완충 지대로서 분단된 반도이다.
군사 분계선은 항상 감시되고 있으며,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월경에 대해 단속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양국 간에 직접적인 교류를 할 기회는 제한적이다.
6. 언어
한민족은 한국어를 쓴다. 대한민국에서는 '한국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조선말'로 부르며, 러시아 사할린 및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는 '고려말'이라고도 한다.[64] 현재의 한국어는 삼국의 공통 언어에서 유래되었다는 견해와, 신라어 또는 고구려어를 위주로 발전되었다는 견해, 전기 중세 한국어가 상층어는 신라어, 저층어는 고구려어를 중심으로 발전했다는 학설 등이 있으며, 삼국시대 이전의 고대어는 자료가 극히 미미하여 발전 경로를 쉽게 파악하기 어려우나, 한반도에는 고아시아어의 일종인 고대 한국어가 있었다는 의견이 있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을 주요 문자 체계로 사용한다. 한자의 일상적인 사용은 한반도에서는 단계적으로 사라졌으며, 일부 남한 신문 및 미디어 회사에서 주요 정치인(예: 현직 및 전직 대통령, 주요 정당 지도자)이나 소수 국가(예: 중국, 일본, 캐나다, 미국, 영국)를 약칭으로 언급할 때만 사용된다. 그 외에는 한자는 학술적, 역사적, 종교적 목적으로만 사용된다. 로마자는 특히 외래어에 대해 남한에서 사실상의 보조 문자 체계이며, 일상적이고 공식적인 의사소통에서 널리 사용된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어 화자는 7800만 명이 넘는다.[64]
7. 문화
북한과 한국은 공통된 유산을 공유하지만, 1945년 이후 정치적 분단으로 인해 현대 문화에 일부 차이가 발생했다.
풍습·습관 측면에서는 조선 시대에 민중에게 널리 퍼진 유교의 영향이 자주 지적되며, 애니미즘을 배경으로 한 샤머니즘적인 신앙과 유교와의 혼합 형태에 의한 조상숭배가 뿌리내리고 있다. 참고로, 조상숭배는 동아시아 지역 공통의 특징이기 때문에, 그 기원이 어디에 있는지 묻는 것은 어렵다고 여겨진다.
여기에 더하여, 불교 신앙이 있다. 불교는 고려 시대에 국교로 여겨지는 등 한때는 번성했지만, 조선이 유교를 국교로 정하고 불교를 탄압했기 때문에, 현재는 소수파가 되었다.
근대에는 서양에서 들어온 기독교가 급속히 퍼졌다. 특히 북부에서는 기독교가 깊이 침투했다. 또한, 이러한 새로운 외래 종교에 자극받는 형태로 조선 민족 고유의 종교인 천도교가 생겨났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특히 한국에서 기독교가 강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의 침투는 상당히 깊으며, 전후 포교가 중단된 북한에서도 뿌리 깊은 신앙이 남아 있다고 여겨진다.
8. 관련 문제
근현대에 디아스포라와 식민지 지배, 남북 분단 등의 상황을 겪었고, 징병제가 존재하여 민족 귀속 의식은 높지만, 지역 향토 의식도 강하게 남아있다. (한국 지역 갈등) 특히 경상도와 전라도의 대립은 박정희 이후 경상도가 엘리트 모집과 자원 배분에서 오랫동안 우대받은 것이 배경이 되고 있다.[124] 서북 지역의 대립은 남북 분단으로 인해 실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1945년 이후 정치적 분단으로 인해 북한과 한국은 공통된 유산을 공유하면서도 현대 문화에는 일부 차이가 발생했다.[1] 양국 국민은 모두 한민족에 의한 국가라는 자의식을 공유하며, 서로를 다른 민족으로 인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2017년 12월 말 기준으로 외국인을 제외한 대한민국의 총인구는 5177만 명[125]이고, 2016년 말 기준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구는 약 2537만 명으로 추산된다. 해외 거주 한인(韓人)은 2017년 기준으로 중국에 258만여 명, 미국에 223만여 명, 일본에 89만여 명(조선적 3만 명 포함[151]), 구 소련 지역(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에 약 50만 명 등 총 746만 명[126][151]이며, 이들을 포함한 전체 한민족의 수는 약 8460만 명이다.
1965년 이민 및 국적법 통과 이후, 한국계 미국인 공동체가 상당한 규모로 성장하였다. 2017년 기준, 약 185만 명의 한국인 이민자와 한국계 미국인들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76] 미국 내 로스앤젤레스 대도시권과 뉴욕 대도시권에는 한국 또는 중국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한국인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미국 인구조사국 2021년 인구조사 자료에 따르면, 한국계 미국인의 중간 가구 소득은 82946USD로, 당시 미국 평균 69717USD보다 약 19.0% 높았다.[77]
박노자는 1941년 말 한국에 5,747쌍의 한국-일본인 부부가 있었다고 말했다.[81] 박철은 전쟁 직후 일본에 7만 명에서 8만 명의 "반(半) 한국인"이 있었다고 추산했다.[82]
코피노는 필리핀인과 한국인의 혼혈이다. '2020년 혼혈 필리핀인 유산 법안'은 코피노가 약 3만 명이라고 추산했다.[83]
라이따이한은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인 남성과 베트남 여성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들을 가리킨다. 한국 학자의 추산에 따르면 전 세계 라이따이한의 수는 최소 5,000명에서 최대 15만 명에 이른다.[84][85][86]
8. 1. 남북 관계
1945년 이후 정치적 분단으로 인해 북한과 한국은 공통된 유산을 공유하지만, 현대 문화에 일부 차이가 발생했다.[1] 조선민족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은 한반도로, 대한민국과 북한이다. 하나의 민족이 2개 이상의 국가에 걸쳐 분포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양국 국민은 모두 조선민족/한민족에 의한 국가라는 자의식을 공유하고 있으며, 서로를 다른 민족으로 인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북한과 한국에는 민족 형성 전후에 유입된 소수민족이 존재하여 엄밀히 말하면 단일민족국가가 아니라 다민족국가이다. 사가와 같이 임진왜란 당시 귀화한 일본인도 있었다고 한다.[2]양국에서 조선민족의 인구는 한국과 북한 국내에 소수민족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각각의 총인구와 거의 일치한다.
국가 | 인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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