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드너 맥케이
1. 개요
가드너 맥케이는 미국의 배우, 작가, 예술가이다. 뉴욕에서 태어나 코넬 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했으나, 부친 사망 후 중퇴하고 조각가, 작가, 사진작가로 활동했다. 리처드 아베돈의 제안으로 모델 활동을 시작했으며, 배우로 활동하며 영화 《레인트리 카운티》, TV 시리즈 《어드벤처 인 파라다이스》 등에 출연했다. 연기 활동을 중단한 후에는 사진, 조각, 글쓰기에 전념했으며, 희곡, 소설, 회고록 등을 저술했다. 말년에는 하와이에 정착하여 지내다 2001년 전립선암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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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조지 캐도건 가드너 맥케이 |
|---|---|
| 출생일 | 1932년 6월 10일 |
| 출생지 | 뉴욕 |
| 사망일 | 2001년 11월 21일 (69세) |
| 사망 장소 | 하와이 카이, 하와이 |
| 직업 | 배우 미술가 작가 |
| 활동 기간 | 1957–1970 |
| 키 | 6피트 5인치 (1.96 m) |
| 배우자 | 매들린 매디건 |
| 자녀 | 2 |
-
미국의 단편소설가 -
필립 K. 딕
필립 K. 딕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 정체성 혼란, 기술 발달과 인간 소외 등 철학적 주제를 다룬 미국의 유명한 과학 소설 작가로, 그의 작품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대중적 인기를 얻었으며 사후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
미국의 단편소설가 -
스티븐 크레인
스티븐 크레인은 1871년에 태어나 1900년에 사망한 미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전쟁, 인간 심리, 사회 부조리 등을 다룬 자연주의, 리얼리즘, 인상주의 혼합의 독창적인 문학 스타일을 선보였다. -
20세기 미국 사람 -
앤드루 쿠오모
앤드루 쿠오모는 뉴욕 주지사를 역임한 미국 민주당 정치인으로, 코로나19 팬데믹 대응과 요양원 사망자 은폐 의혹 및 성추행 혐의로 논란이 되었다. -
20세기 미국 사람 -
지미 카터
지미 카터는 해군 장교와 땅콩 농장 운영을 거쳐 조지아 주지사를 역임하고 도덕적, 진보적 이미지로 미국의 제39대 대통령을 지냈으며, 퇴임 후 카터 센터 설립과 인도주의 활동으로 200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고 미국 역대 대통령 중 최장수 기록을 세웠다. -
21세기 미국 사람 -
앤드루 쿠오모
앤드루 쿠오모는 뉴욕 주지사를 역임한 미국 민주당 정치인으로, 코로나19 팬데믹 대응과 요양원 사망자 은폐 의혹 및 성추행 혐의로 논란이 되었다. -
21세기 미국 사람 -
지미 카터
지미 카터는 해군 장교와 땅콩 농장 운영을 거쳐 조지아 주지사를 역임하고 도덕적, 진보적 이미지로 미국의 제39대 대통령을 지냈으며, 퇴임 후 카터 센터 설립과 인도주의 활동으로 200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고 미국 역대 대통령 중 최장수 기록을 세웠다.
2. 초기 생애
가드너 맥케이는 뉴욕에서 광고 임원 휴 딘 맥케이(1894년 출생)와 사교계 명사 캐서린 "키티" 가드너 맥케이(1904년 출생)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조선업자 도널드 맥케이의 증손자였다. 아버지의 사업으로 가족은 파리로 이주했고, 맥케이는 사립학교에 다녔다. 가족은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에 미국으로 돌아왔고, 맥케이와 형 휴는 켄터키주 렉싱턴에 있는 조부모와 함께 살았다. 맥케이는 나중에 켄터키에 반해 그곳을 낙원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뉴욕주 이타카에 있는 코넬 대학교에서 2년간 미술을 전공했다. 그는 교내 신문인 코넬 데일리 선과 잡지에 글을 기고했다. 그는 부친의 사망 후 19세의 나이에 학교를 중퇴하고 그리니치 빌리지로 이사하여 조각가이자 작가로 활동했다. 맥케이는 또한 사진을 시작하여 그의 작품 중 일부가 뉴욕 타임스와 라이프 잡지에 게재되었다.
맥케이의 조각 작품은 뉴욕 현대 미술관에 전시되었고, 맥케이의 작품 전시회에서 사진작가 리처드 아베돈의 주목을 받았다. 아베돈은 맥케이를 파리로 초대하여 모델 수지 파커와 함께 일련의 사진을 촬영했고, 이는 모델 경력으로 이어졌다. 타운 앤 컨트리 잡지는 'Man About Town' 섹션에 맥케이와 그의 조각 작품에 관한 기사를 게재했고, 이를 통해 에이전트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3. 경력
맥케이는 배우 활동 외에도 사진, 조각, 글쓰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보였다. 할리우드를 떠나 예술가의 길을 걸었으며, 뉴욕 현대 미술관에 조각품을 전시하고 개인 전시회도 열었다. 안드레아 도리아 구명정 구조 사진은 국제적으로 출판될 정도로 사진작가로서의 실력도 인정받았다.
1977년부터 1982년까지 로스앤젤레스 헤럴드 익스미너의 문학 평론가로 활동했으며,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알래스카 대학교, 하와이 대학교 등에서 글쓰기 강의를 했다.
PBS의 할리우드 텔레비전 극장을 위해 TV 영화 Me(1973)를 쓰고 공동 연출했으며, 자신의 희곡 Sea Marks(1976)의 각본을 썼다.
희곡 Toyer는 1993년 뉴욕 아레나 플레이어스 레퍼토리 극장, 2009년 런던 아트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Sea Marks는 1981년 뉴욕 플레이어스 극장, 2003년 아메리칸 극장 앤 포 액터스(오프-오프 브로드웨이), 2014년 아이리쉬 레퍼토리 극장(오프-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었다.
배우이자 가수인 데이비드 소울의 노래 "Black Bean Soup"는 맥케이의 시를 가사로 사용했다. 이 곡은 히트 싱글 "Don't Give Up on Us"의 B면으로, 린 마르타와 듀엣으로 불렀다. 영국에서 116만 장 이상 판매되었고, TV 시리즈 스타스키 & 허치 두 에피소드의 사운드트랙에도 포함되었다. 맥케이는 소울의 데뷔 앨범 "The Wall", "Topanga"에도 공동 작사가로 참여했다.
3.1. 배우 활동
도어 셰어리에게 깊은 인상을 받은 맥케이는 MGM과 계약을 맺었다. 그는 씬 맨 에피소드에 출연했으며,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출연한 영화 레인트리 카운티에도 출연했다. 이후 MGM을 떠나 데스 밸리 데이즈, 'The Silent Service', 제퍼슨 드럼 등에 텔레비전 게스트로 출연했다.
1957년부터 1958년까지 맥케이는 38개 에피소드로 구성된 서부극 시리즈 부츠 앤 새들스에서 미국 육군 댄 켈리 중위 역을 맡아 존 픽커드, 패트릭 맥베이와 함께 출연했다.
20세기 폭스에서 건슬링거 TV 시리즈 스크린 테스트를 받았으나 배역을 얻지 못했지만, 스튜디오와 장기 계약을 맺게 되었다.
도미니크 던은 어드벤처 인 파라다이스 주연 배우를 찾던 중 스튜디오 커피숍에서 맥케이를 발견하고 배우냐고 물은 뒤 관심 있으면 전화하라며 명함을 건넸다. 맥케이가 전화했고, 10명의 배우와 테스트를 진행했으나, 테스트는 최악이었지만 모두가 그에게 반응했고, 특히 여성들이 그랬다고 한다.
맥케이는 시리즈 방영 2개월 전인 1959년 7월 6일 자 라이프 표지에 등장했다. 기사에서는 그가 어린 시절부터 배를 타온 숙련된 선원이라고 언급했다.
시리즈 방영 동안 맥케이는 홀리데이 포 러버스(1959), 더 라이트 어프로치(1961) 등 여러 폭스 영화에서 작은 역할을 맡았다.
1963년 할리우드로 돌아온 맥케이는 폭스의 더 플레저 시커스(1964)에서 조연을 맡았다.
맥케이의 마지막 영화는 1968년 아이 세일드 투 타히티 위드 앤 올 걸 크루이며, 리처드 L. 베어가 각본 및 연출을 맡았다.
맥케이는 "훌륭한 배우가 되기까지 100시간이 걸렸다. 그러고 나서 나는 전문적인 자살을 저질렀다."라고 말했다.
맥케이는 연기 경력을 끝내기로 결심했을 때, 조지 큐커 감독으로부터 마릴린 먼로와 함께 로맨틱 코미디 영화 섬씽스 갓 투 기브 출연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했다. 큐커와 먼로는 충격을 받았고, 먼로가 직접 전화해 마음을 바꿀 수 있는지 물었지만, 맥케이는 "그녀는 전화상으로 매우 사랑스럽고, 매력적이고, 유혹적이었다."라고 말했지만, "나는 연기에 어울리지 않았다."라며 거절했다. 그 역할은 딘 마틴에게 돌아갔고 영화는 완성되지 못했다. 대신 맥케이는 1년 반 동안 카리브해와 남아메리카에서 항해를 했고,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거기에 있을 이유를 스스로에게 주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소년 시절에 살았던 파리로 이사했다.
맥케이는 사진, 조각, 글쓰기에 대한 관심을 추구하기 위해 할리우드를 떠났다. 뉴욕 시의 현대 미술관에서 그의 조각품을 전시했으며, 개인 전시회도 열었다. 그의 안드레아 도리아 구명정 구조 사진은 국제적으로 출판되었다.
1976년에 맥케이는 "나는 연기를 끝냈다. 나는 다시는 시리즈를 하지 않을 것이다. 할 수 없다. 그것은 나에게 정신적인 혼란이다. 나는 내가 받을 자격이 없는 모든 종류의 관심을 받았고,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에 너무 예민했다. 사람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나를 사랑했고 미워했다."라고 말했다.
4. 작품 활동
맥케이는 배우이자 작가로, 영화, 희곡, 소설, 회고록, 단편 소설 등 다양한 장르에서 작품을 남겼다.
4.1. 영화
| 연도 | 제목 | 역할 |
|---|---|---|
| 1964년 | 아가씨들 멋대로 | 피트 맥코이 |
| 1957년 | 애정이 꽃피는 나무 |
4.2. 희곡
* 《바다의 흔적》(1972)
* 《바다의 지배자》(1991)
* 《행운의 섬》
* 《토이어》(1993)
* 《등장 순서대로》(2003)
* 《말할 수 없는 피해》
4.3. 소설
* 《토이어》 (1999)
* 《더 킨스맨》 (2011)
* 《트롱프뢰유》 (2015)
* 《텐, 블룸즈버리 스퀘어》 (2015)
5. 개인적인 삶
가드너는 비벌리힐스에 숲이 우거진 부지를 구입하여 사자, 치타, 개, 그리고 남아메리카 여행에서 데려온 원숭이를 포함한 동물원을 운영했다.
6. 수상 경력
맥케이는 국립 예술 기금 펠로우십(희곡 작가 부문) 3회, 드라마 비평가 협회 최우수 희곡상, 시드니 캐링턴 상을 수상했다. 또한 캐나다 지역 드라마 페스티벌에서 우승했으며, 헤밍웨이 단편 소설 공모전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7. 말년과 죽음
맥케이는 하와이에 정착했으며, 2001년 69세의 나이로 전립선암으로 사망했다. 그는 화가인 아내 마들렌 매디건과 두 자녀를 남겼다. 맥케이는 켄터키주 불리트 카운티 브룩스에 있는 헤브론 묘지에 묻혔다. 묘비 ID는 6001210이며, Find-a-Grave에서 확인할 수 있다.
8. 대중문화
가드너 맥케이는 지미 버핏의 1983년 노래 "We Are the People Our Parents Warned Us About"에서 언급되었으며, 이 곡은 그의 앨범 One Particular Harbour에 수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