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쓰라 고타로
1. 개요
가쓰라 고타로는 일본의 공작이자 기업가이다. 1913년 조부 가쓰라 타로의 사망으로 공작 작위를 습작했으며, 1938년 귀족원 공작 의원에 취임하여 화요회에 소속되어 활동하다가 1947년 귀족원 폐지까지 재임했다. 도쿄 제국 대학 약학과를 졸업하고, 가쓰라 화학 연구소 및 가쓰라 화학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사장 및 상담역을 역임했으며, 타쿠쇼쿠 대학 고문으로도 활동했다. 배우자는 시라네 쇼스케의 장녀 가쓰라 후미코이며, 장남은 공작 작위를 계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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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쓰라 다로가 -
이노우에 사부로
이노우에 사부로는 가쓰라 다로의 아들이자 이노우에 가쓰노스케의 양자로, 일본 제국 육군 소장으로 육군사관학교와 육군대학교를 졸업 후 포병 장교 및 참모본부, 육군성 등에서 근무하다 예비역에 편입되었고, 1946년 공직에서 추방되었다. -
20세기 일본 사람 -
쇼와 천황
쇼와 천황은 메이지 천황의 손자로 태어나 124대 일본 천황으로 즉위하여 사망할 때까지 재위하며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 등 침략 전쟁에 관여했다는 논란이 있으며, 전후에는 상징적인 천황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고 그의 전쟁 책임 문제는 논쟁의 대상이다. -
20세기 일본 사람 -
스가마타 데쓰오
스가마타 데쓰오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하며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23경기에 출전했고, 히타치 제작소 축구부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1980년과 1982년 일본 사커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다양한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 -
일본의 공작 -
야마가타 아리토모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조슈번 출신의 사무라이 아들로, 일본 육군의 창설과 근대화에 기여하고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을 지휘했으며, 군국주의적 가치 강조와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을 추진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다. -
일본의 공작 -
가쓰라 다로
가쓰라 다로는 메이지 시대와 다이쇼 시대에 세 차례 총리대신을 역임하며 2,886일간 집권한 일본의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영일 동맹 체결 및 러일 전쟁 승리에 기여했으나 한일 병합 조약 체결 등으로 한국에서는 비판받기도 했다.
2. 생애
가쓰라 고타로는 도쿄시에서 가쓰라 요이치(가쓰라 타로의 장남), 테이(닛타 타다즈미의 차녀)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3년 조부 가쓰라 타로가 사망하자 공작 작위를 물려받았다. 1931년 도쿄 제국 대학 의학부 약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약학과 부수가 되었다. 1938년에는 귀족원 공작 의원으로 취임하여 1947년 귀족원 폐지 시까지 재임했다.
1948년 가쓰라 화학 연구소를 설립하고 사장으로 취임했으며, 1951년에는 가쓰라 화학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사장 및 상담역을 역임했다. 타쿠쇼쿠 대학 고문도 역임했다.
2.1. 가계 및 성장 배경
도쿄시에서 가쓰라 요이치(가쓰라 타로의 장남), 테이(닛타 타다즈미의 차녀)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3년 가쓰라 타로가 사망하자 11월 28일에 공작 작위를 물려받았다.
2.2. 학업 및 연구 활동
1931년 도쿄 제국 대학 의학부 약학과를 졸업했다. 같은 해, 도쿄 제국 대학 의학부 약학과 부수가 되었다. 그 후, 국민 체력 심의회 위원, 내각 위원, 후생성 위원, 국토 계획 심의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2.3. 정치 활동
1938년 1월 16일, 만 30세가 되어 귀족원 공작 의원으로 취임했다。화요회에 소속되어 1947년 5월 2일 귀족원이 폐지될 때까지 재임했다。
이후 국민 체력 심의회 위원, 내각 위원, 후생성 위원, 국토 계획 심의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