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회
1. 개요
화요회는 일제강점기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한 사회주의 단체이다. 약 60여 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었으며, 김찬, 김재봉, 조봉암 등이 주요 인물이었다. 카를 마르크스의 생일이 화요일인 데 착안하여 1924년 신사상연구회에서 화요회로 이름을 변경했다. 조선공산당 창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엠엘파, 서울파 등과 대립했으나 북풍회와 연합하기도 했다. 1925년 제1차 조선공산당 탄압사건으로 활동이 위축되었고, 1926년 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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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성 | 192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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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산 | 1930년대 초 |
| 성격 | 사회주의 서클 |
| 주요 인물 | 김종범 이북만 김기전 신일용 오상근 박문희 김약수 주종건 정백 이재유 김태준 임화 박영희 이효재 최재하 |
| 특징 | 1926년, 김종범, 이북만, 김기전, 신일용, 오상근, 박문희 등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사회주의 서클. 김약수, 주종건, 정백, 이재유, 김태준, 임화, 박영희, 이효재, 최재하 등 참여. 사회주의 사상 연구, 문학 및 예술 활동을 통해 사회 변혁 추구.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과 연계. 민족주의 세력과 협력, 좌우 합작 시도. 1930년대 초 일제의 탄압으로 해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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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폐지 -
로비슨 필드
로비슨 필드는 과거 세인트루이스에 있던 야구장으로, 뉴 스포츠맨스 파크에서 리그 파크를 거쳐 최종적으로 로비슨 필드로 이름이 변경되었으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홈 구장으로 사용되다 스포츠맨스 파크 복귀 후 폐장되었고 그 자리에는 보몽 고등학교가 세워졌다. -
1926년 폐지 -
금산청년회 정구단
금산청년회 정구단은 1921년 전국체육대회 정구 청년부 남자 단체전에 참가하여 1경기를 치르고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
조선공산주의단체 -
남조선로동당
남조선로동당은 1946년 결성된 남한의 좌익 정당으로, 이승만 정부 수립에 반대하며 테러와 게릴라전을 전개하다가 대한민국에서 소멸했다. -
조선공산주의단체 -
조선공산당
조선공산당은 1919년 사회주의 사상을 접한 조선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결성되어 일제강점기 동안 탄압받았으며, 광복 후 남북으로 분열되어 남조선로동당과 북조선노동당으로 개편되었다. -
조선공산당 -
박헌영
박헌영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정치인으로, 조선공산당 창당에 참여하고 해방 후 조선공산당 재건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나, 한국 전쟁 이후 김일성 정권에 의해 처형되어 그의 생애와 활동은 논란과 재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조선공산당 -
김일성
김일성은 김성주라는 본명으로 1930년대 항일 무장 투쟁을 했고, 소련의 지원을 받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하여 통치했으며, 한국 전쟁을 일으키고 주체사상을 내세워 독재 체제를 강화하고 개인 숭배를 조장한 정치인이다.
2. 역사
화요회는 1924년 신사상연구회를 모체로 하여 결성되었다. 조선공산당 창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제1차 조선공산당 탄압사건 (1925년)으로 주요 인물들이 검거되어 활동이 중단되다시피 하다가 1926년 해체되었다. 화요회, 엠엘파(ML파), 북풍회 등의 한국 사회주의 운동 역사는 조정래의 역사소설 《아리랑》에서 조선인 유학생들의 비밀 집회 장면에서 일부 언급되어 있다.
2.1. 결성 배경
화요회는 서울에 본거지를 두고 약 60여 명의 회원을 가진 단체였다. 주요 인물로는 김찬, 김재봉, 윤덕병, 홍덕유, 홍증식, 조봉암, 박헌영, 임원근, 김태영, 조동호 등 일본 유학생 출신들이 있었다.
화요회라는 이름은 카를 마르크스의 생일이 화요일(1818년 5월 5일)인 것에서 유래한다. 1924년 11월 19일, 신사상연구회는 마르크스의 생일에 모임을 가졌는데, 그날이 화요일이었기 때문에 단체 이름을 화요회로 결정했다. '화요파'라는 명칭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2.2. 주요 활동
화요회는 조선공산당 창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김재봉은 제1차 조선공산당의 책임비서를 맡았다. 화요파는 상해파, 이르쿠츠크파와 결합하여 탄생하였으며, 같은 일본 유학생들이 결성한 사회주의 조직인 엠엘파(Marx-Lenin派), 서울파와는 대립관계에 있었다.
2.3. 타 단체와의 관계
화요회는 상해파, 이르쿠츠크파와 연합하여 결성되었으며, 같은 일본 유학생들이 결성한 사회주의 조직인 엠엘파(Marx-Lenin派), 서울파와는 대립 관계에 있었다. 북풍회와는 조선공산당 내의 지도적 위치를 놓고 한때 대립하기도 했으나, 1925년 3월 25일 합동을 결의했다.
3. 주요 인물
김찬, 김재봉, 윤덕병, 홍덕유, 홍증식, 조봉암, 박헌영, 임원근, 김태영, 조동호 등이 주요 인물이었다.
김재봉은 조선공산당 창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제1차 조선공산당의 책임비서를 맡았다.
4. 의의와 평가
화요회는 한국 초기 사회주의 운동의 중요한 흐름을 형성했으며, 조선공산당 창립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상해파와 이르쿠츠크파의 결합으로 탄생한 화요파는 엠엘파(Marx-Lenin派), 서울파와는 대립관계에 있었으며, 북풍회와 조선공산당 내의 지도적 위치를 놓고 한때 대립하기도 했으나, 1925년 3월 25일 합동을 결의했다. 화요파는 조선공산당이 처음으로 결성되었으나 일제의 탄압과 내분으로 와해된 사건인 제1차 조선공산당 탄압사건(1925년)으로 주요인물들이 검거, 활동이 중단되다시피 하다가 1926년 해체했다.
조정래의 역사소설 《아리랑》에서 조선인 유학생들의 비밀집회 장면에서 화요회, ML파, 북풍회 등 한국 사회주의 운동 역사의 일부가 언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