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왕 (발해)
1. 개요
간왕은 발해 고왕 계의 마지막 왕으로, 희왕 사후 대인수에 의해 왕위를 계승했다. 강왕 대숭린의 아들이며, 문왕 대흠무의 손자이다. 형으로는 정왕 대원유와 희왕 대언의가 있었고, 부인은 순목황후 태씨였으나 자녀는 없었다. 2004년 또는 2005년 룽터우산 고분군에서 순목황후의 무덤이 발굴되었으며, 묘지석을 통해 그녀의 시호와 성씨, 그리고 선왕의 연호가 확인되었다.
| 왕조 | 발해 |
|---|---|
| 호칭 | 왕 |
| 재위 기간 | 817년 - 818년 |
| 휘 | 대명충(大明忠) |
| 연호 | 태시(太始) : 818년 |
| 본명 | 대명충(大明忠) |
|---|---|
| 생년 | 미상 |
| 몰년 | 태시 원년 (818년) |
| 부왕 | 강왕 |
|---|---|
| 모후 | 미상 |
| 왕후 | 순목황후 태씨(순목황후 태씨) |
| 선대 왕 | 희왕 |
|---|---|
| 계승 왕 | 선왕 |
-
818년 사망 -
베르나르두스 (이탈리아)
샤를마뉴의 손자인 베르나르두스는 817년 루트비히 1세의 제국 분할령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 후 실명형의 후유증으로 사망하여 사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
818년 사망 -
권덕여 (당나라)
권덕여는 수나라 권영의 후손으로, 당나라 덕종과 헌종 시대를 거치며 재상까지 오른 시인이자 관료였다. -
발해 국왕 -
대현석
대현석은 대야발의 7대손이자 발해의 왕으로, 일본과 교역하고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하는 등 적극적인 대외 정책을 펼치며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
발해 국왕 -
대이진
대이진은 발해의 제11대 왕으로 당나라와의 외교 관계를 유지하며 문물 교류에 힘썼고, 중앙 집권적인 행정 제도를 확립하고 군사 기구를 발전시켜 국가 체제를 강화하려 했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2. 생애
희왕이 병사하자 그의 아우인 대명충이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간왕 역시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병사하였고, 이후 고왕 대조영의 동생인 대야발의 증손이자 권지국무로 있던 종부(從父) 대인수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이로써 간왕은 고왕 계열의 마지막 왕이 되었고, 선왕(대인수)부터는 대야발 계열이 발해의 왕위를 잇게 되었다.
간왕에게는 대연진(大延眞), 대연준(大延俊)이라는 조카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종부인 대인수에게 왕위가 넘어간 정확한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다.
3. 가계
희왕이 병사하자 그의 아우인 대명충이 왕위를 이어 간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러나 간왕 역시 즉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왕위는 고왕 대조영의 동생인 대야발의 증손이자, 당시 권지국무(權知國務)로 있던 간왕의 종부(從父) 대인수에게 계승되었다. 이로써 간왕은 고왕 계열의 마지막 왕이 되었으며, 선왕(대인수)부터는 대야발 계열이 발해의 왕통을 잇게 되었다.
간왕에게는 대연진과 대연준이라는 조카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위가 방계인 대인수에게 넘어간 구체적인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는 당시 발해 왕실 내 권력 구도의 변화나 정치적 상황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4. 순목황후와 룽터우산 고분군
2004년 또는 2005년경 중국 지린성 옌볜 조선족 자치주와 허룽 시에 걸쳐 있는 룽터우산 고분군에서 문왕의 부인인 효의황후와 간왕의 부인인 순목황후의 능이 발굴되었다. 룽터우산 고분군은 이전에 문왕의 딸인 정효공주묘가 발굴된 곳이기도 하다. 이 발굴을 통해 무덤 비문에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발해 간왕의 황후 시호가 '순목(順穆)'이며, 그녀의 성씨가 '태씨(泰氏)'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선왕의 연호인 '건흥'이 금석문에 등장하였다.
순목황후의 무덤은 고분군 중에서 M3으로 분류되었으며, 대형 돌방무덤의 형태를 띠고 있다. 묘지석은 홍갈색 사암으로 만들어졌고, 크기는 너비 34.5cm, 높이 55cm, 두께 13cm이다. 묘지석에는 세로 9행에 걸쳐 총 141자가 새겨져 있으나, 현재 중국 당국은 비문의 전체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발굴 조사를 진행한 중국 사회과학원이 발행한 학술지 '고고'(考古) 2009년호에 실린 내용 중 "渤海國順穆皇后卽簡王皇后泰氏也 (발해국의 순목황후는 곧 간왕의 황후 태씨이다)"와 "建興十二年七月十五日遷安▨陵禮也 (건흥 12년 7월 15일 ▨릉에 안장하니 예를 따른 것이다)"라는 구절을 통해, 이 무덤 발굴 사실이 뒤늦게 한국에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