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선
1. 개요
감선은 전한 무제 때 활약한 인물로, 뛰어난 일 처리 능력으로 승진을 거듭하여 어사와 중승을 역임했다. 주보언과 회남왕의 모반 사건을 다스리며 엄격한 법 집행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좌내사로 재직하며 치밀한 행정으로 관리들을 통제했다. 이후 우부풍으로 임명되었으나, 성신을 죽이려다 실패하고 대역죄로 몰려 일족이 몰살당하고 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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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01년 사망 -
구리호선우
구리호선우는 이치사 선우의 아들이자 아선우 치세에 우현왕을 지냈으며, 아들 선우가 즉위하자 우현왕이 되었다가 아선우 사후 선우로 옹립되었으나 한나라와의 대립 중 임문에게 패배하고 사망했다. -
기원전 101년 사망 -
유용 (장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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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의 정치인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한나라의 정치인 -
석편
석편은 전한 시대의 관료로, 기원전 138년에 내사에 임명되어 석경의 뒤를 이어 내사를 지냈으며, 정당시가 그의 후임자이다. -
전한 사람 -
전한 무제
전한의 제7대 황제인 전한 무제는 54년간 재위하며 유교 기반 중앙집권 강화, 흉노 정벌을 통한 영토 확장, 소금과 철의 전매제 등 경제 개혁을 추진하여 전한의 최전성기를 이끌었으나, 과도한 군사 지출, 사치스러운 생활, 무고의 난 등 부정적인 면모도 보였다. -
전한 사람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2. 생애
감선은 좌사(佐史)로 있으면서 맡은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여 하동 태수의 관청에서 일하게 되었다. 위청이 말을 사기 위하여 하동군에 갔을 때 감선의 뛰어난 일처리를 보고 무제에게 천거하여 대구승(大廐丞)에 임명되었다. 이후 조정에서도 뛰어난 업무 능력을 보여주어 승진을 거듭하여 어사(御史)와 중승(中丞)이 되었다.
왕온서가 중위에서 면직되었을 때, 감선은 원정 6년(기원전 111년)에 좌내사가 되었다. 쌀과 소금을 비롯해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직접 맡았고, 일개 현의 물품까지 관리하는 등 매우 치밀하게 다스렸으므로 현령, 현승(縣丞) 이하의 관리들이 제멋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 이를 어기는 일이 있으면 엄히 다스렸다. 감선은 관직에 몸담은 지 몇 해 만에 군 안의 모든 자질구레한 일까지도 처리하였는데, 이는 자기 능력에 기대어 일을 처리한 것으로 보통 사람으로서는 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후 벼슬에서 쫓겨났다가 우부풍이 되었다. 성신을 몹시 미워하였는데, 성신이 달아나 상림원에 숨자 미현의 현령에게 성신을 죽이도록 지시하였다. 미현의 이졸들이 성신에게 화살을 쏘아 죽였는데, 화살이 상림원의 문에 꽂히고 말았다. 이 일로 감선은 죄를 지어 형리에게 넘겨졌고, 대역죄로 일족이 몰살되고 자신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1. 출세
감선은 좌사(佐史)로 있는 동안 맡은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여 하동 태수의 관청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때 위청이 말을 사기 위하여 하동군에 갔었는데, 감선의 뛰어난 일처리를 보고 무제에게 천거하였다. 이후 감선은 대구승(大廐丞)에 임명되었다.
감선은 조정에서도 뛰어난 업무 능력을 보여주어 승진을 거듭하여 어사(御史)가 되고 또 중승(中丞)이 되었다.
2.2. 엄격한 정치
왕온서가 중위에서 면직되었을 때 감선은 원정 6년(기원전 111년)에 좌내사가 되었다. 감선은 쌀과 소금을 비롯해 크고 작은 일을 모두 직접 맡았고, 일개 현의 물품까지 관리하는 등 매우 치밀하게 다스렸으므로 현령, 현승(縣丞) 이하의 관리들이 제멋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 만약 이를 어기는 일이 있을 경우, 엄히 다스렸다.
감선은 관직에 몸담은 지 몇 해 만에 군 안의 모든 자질구레한 일까지도 처리하였는데, 이는 자기 능력에 기대어 일을 처리한 것으로 보통 사람으로서는 하기 힘든 일이었다.
2.3. 최후
이후 벼슬에서 쫓겨났다가, 우부풍이 되었다. 이때 감선은 성신을 몹시 미워하였는데, 성신이 달아나 상림원에 숨자 감선은 미현의 현령으로 하여금 성신을 죽이도록 지시하였다. 미현의 이졸들이 성신에게 화살을 쏘아 죽였는데, 화살이 상림원의 문에 꽂히고 말았다. 이 일로 감선은 죄를 지어 형리에게 넘겨졌고, 대역죄로 일족이 몰살되고 자신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