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대
1. 개요
강경대는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나 명지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 후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1991년 4월, 명지대학교 등록금 인하 시위 중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했다. 그의 사망은 '분신 정국'을 촉발시켰으며, 이후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인물로 평가받아 열사로 추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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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국통일상 수상자 -
문선명
문선명은 통일교를 창설하고 원리강론을 통해 사상을 체계화했으며 국제 합동 축복 결혼식을 주재했으나, 메시아 주장과 교리로 비판받았고 다양한 논란에 휩싸인 인물이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국통일상 수상자 -
여운형
여운형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독립운동 단체 활동, 임시정부 참여, 좌우합작을 통한 통일 노력으로 알려졌으나 해방 후 암살당했고 그의 삶과 죽음은 친일 논란과 암살 배후에 대한 논쟁을 낳고 있다. -
맞아 죽은 사람 -
블라도 체르노젬스키
블라도 체르노젬스키는 불가리아 출신으로, IMRO에서 활동하며 우스타샤와 협력하여 유고슬라비아 국왕 알렉산다르 1세를 암살하고 체포 과정 중 사망했다. -
맞아 죽은 사람 -
스티브 비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반 아파르트헤이트 운동가이자 흑인 의식 운동의 중심 인물인 스티브 비코는 흑인 중심의 반 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을 이끌며 흑인의 정치적, 사회적, 심리적 자각을 촉구했지만, 아파르트헤이트 정부에 의해 체포되어 고문으로 사망하여 국제적인 공분을 일으키고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운동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정경심
정경심은 자녀 입시 비리 혐의로 징역 4년형이 확정되어 복역 후 가석방된 대한민국의 영문학자이자 대학교수였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서형원
서형원은 환경운동연합 활동을 거쳐 과천시의회 의원 및 의장을 역임하고 녹색당 풀뿌리정치지원단장으로 활동한 환경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2. 생애
2.1. 학생운동
1972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1990년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했고 1991년 명지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하고서 민중가요 패 '땅의 사람들'에 가입해 활동했다.
1987년 13대 대선에서 노태우가 당선되고 그 이후에도 공안정국과 노태우정권의 수구적 작태로 인하여 사회분위기가 보수화되자, 호헌 철폐와 대통령 직선제를 주장하던 학생운동권 세력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당시 운동권 세력은 이미 조직되어 있던 동원 조직과 관리 체계를 계속 유지하려 했고, 이를 위해 새로운 이슈를 찾아야 되는 상황이 되었다. 상당한 혼선을 통해 선정된 학생운동권의 주제는 학내투쟁이었다. 이에 따라 각 대학 학생운동권은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 교내 강의실 학보 투쟁을 비롯한 학내 투쟁을 사회변혁을 운동하는 전진기지로서 삼고 때로는 총장실점거, 교수 감금 등 학내투쟁을 시작했다. 초기에 학내에서 시위하던 학내 투쟁이 주요 언론의 관심을 끌지 못하자, 학내 투쟁을 빙자해 공공의 도로를 점거하고 화염병을 던지고 투석하는 운동권의 폭력투쟁이 재개되었다. 노태우 정권을 비롯한 보수 세력은 이에 대응할 수 밖에 없었고, 이런 정권의 대응에 대해 운동권이 다시 폭력시위로 대응하면서, 학생운동권이 원하는 언론의 관심, 운동권 내부결속을 이루게 되었다. 학생운동 세력은 이런 상황에서 잘못된 정세 판단으로 말미암아 더 과격한 투쟁이 변혁의 관건이라고 판단하고 급진화·과격화 한다.
학생운동의 급진성으로 말미암아, 등록금 인상 반대를 위시해 학내 문제 해결을 주장하면서도, 학교 밖으로 진출해 가두를 점거하고서 투쟁하고 투석전을 벌이고, 화염병을 던지면서 도로를 점거해 교통을 방해하는 저항하는 방식이 계속되었다. 물론 당시 당국이 백골단을 비롯한 폭력을 이용해 진압하는 수위가 높았고 학생운동을 공안 정국으로 몰아가 탄압한 작태가 학생운동이 급진화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학생운동은 여전히 가두 투쟁 중심이었고 엄숙주의가 혼재하여 준군사조직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1991년 3월 22일 명지대학교 등록금 인하 주장하면서 가두를 점거하고 화염병 투척 시위하던 운동권 인사들이, 이들을 추적해 학교 내에 진입한 경찰관들의 최루탄에 의해 안면이 부상당하기도 했다.
1991년 4월 24일 명지대학교 총학생회장 박광철이 등록금 인하를 주장하면서 연세대학교 집회에 참석한 후 학교로 돌아오던 도중 경찰관에게 불법으로 연행당했고, 강경대는 등록금 인하 시위 중, 시위대의 퇴로와 비상 탈출로를 확보하려는 정찰조 역할을 맡았으나 백골단이 쇠파이프를 함부로 마구 휘둘러 무자비하고 무차별하게 구타한 탓에 두부에 심각한 타박상을 입고 죽는다. 이 끔찍한 일로 사건으로 말미암아 1991년 한 해 동안 민주화 운동 시위 도중 살해당한 최초 학생이 된다.
2.2. 사망
1991년 4월 26일 명지대학교 총학생회장의 석방을 위한 구출 대회가 명지대학교 앞에서 진행되었고 시위가 격렬해지자 경찰이 진압을 시도했다. 백골단이라 불리는 사복 경찰관들이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시위 진압을 시작하자 강경대는 학교 쪽으로 후퇴하고자 높이 1.5m 담을 넘으려다가 경찰관에게 붙잡혀 쇠파이프로 폭행당하고서 방치되었다.
다른 학생들에게 즉시 목격되어 이 학생들에 의해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한 시간 만에 사망하였다. 사후 망월동 당시 5.18 묘역에 안장되었다.
3. 시위와 분신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인 1991년 4월 27일, 당시 대통령 노태우는 사건을 문책하며 당시 내무부 장관 안응모를 다른 사람으로 바꿨다. 학생들은 대통령 노태우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면서 연세대학교 앞에서 시위했다. 4월 29일 전남대학교 학생 박승희가 강경대 사건 규탄 집회 중 분신하였고, 이어서 5월 1일 안동대학교 학생 김영균, 5월 3일 가천대학교 학생 천세용, 5월 8일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 5월 10일 노동자 윤용하 등이 잇따라 분신하여 이른바 '분신 정국'이 조성되었다.
4. 장례
명지대학교에서 영결식이 5월 14일에 열렸다. 영결식을 끝내고 운구 행렬은 서울특별시청으로 이동하여 노제를 지내려고 했으나 경찰관들이 저지하여 연세대학교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5월 18일 노제 장소를 서울역으로 옮기고 영결식을 다시 진행하였으나, 경찰관들이 또 다시 저지하여 공덕동에서 노제를 지냈다. 5월 20일 광주 망월동 망월묘지공원에 안장되었다.
5. 사후
강경대는 민주화 운동 과정 중 살해당한 사람으로서 평가되었고 강경대를 열사로 추모하는 사업이 조성되었다. 당시 시위대는 명지대학교 등록금 인상 반대를 주장하며 도로 점거, 화염병 투척, 투석전 등을 전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