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성곽
1. 개요
개성 성곽은 고려 시대에 축조된 성곽으로, 외성(나성), 내성(반월성), 궁성, 황성으로 이루어진 4중 구조를 갖는다. 황성은 태봉국이 송악산 기슭에 쌓은 발어참성을 고려가 사용하였으며, 궁성은 919년에 축조되었으나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파괴되었다. 외성은 거란의 침입을 막기 위해 1009년부터 1029년까지 축조되었으며, 내성은 1391년에 건설되어 1393년에 완공되었다. 현재는 개성 남대문만이 남아 있으며, 한국 전쟁으로 파괴된 것을 1954년에 복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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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 | 개성옛성 |
|---|---|
| 한자 | 開城古城 |
| 로마자 표기 | Gaeseong-yetseong |
| 구분 | 북한 |
| 출처 | http://www.naenara.com.kp/en/video/?215+550+440 Foreign Languages Publishing House (North Korea) http://www.raskb.com/transactions/VOL80/VOL80-4.docx |
| 국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
| 유형 | 사적 |
| 이름 | 개성 성곽 |
| 한자 표기 | 開城 城郭 |
| 번호 | 46 |
| 주소 | 개성직할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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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사적 -
혁명사적지
혁명사적지는 북한에서 김일성 일가의 항일 투쟁과 사회주의 혁명 활동을 기념하는 장소로, 혁명의 성지로서 김일성 일가의 업적을 선전하고 주민 충성심을 고취하는 데 활용된다. -
개성역사유적지구 -
공민왕릉
공민왕릉은 고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능으로, 9년에 걸쳐 건설되었으며, 석상과 함께 일제강점기 훼손 후 북한에서 보수되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개성역사유적지구 -
고려왕릉
고려왕릉은 유교와 풍수지리 사상에 따라 조성되었으며, 석상과 석수 등이 배치된 봉분과 돌담으로 둘러싸인 장방형 능역을 갖추고 있고, 잦은 외침과 도굴로 피해를 입었으며, 2013년에는 일부 왕릉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개성시의 건축물 -
통일각
통일각은 1985년 북한이 남북회담을 위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북쪽에 지은 지상 1층, 지하 1층 규모의 건물로, 남측의 평화의 집에 대응하는 시설이며, 남북은 이곳과 평화의 집에서 번갈아 회담을 진행하고, 내부에 CCTV와 마이크가 설치되어 평양에서 회담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다. -
개성시의 건축물 -
판문각
판문각은 1968년 군사분계선에 건설되어 북측 남북연락사무소 역할을 수행하는 건물로, 남쪽의 자유의 집과 마주보고 있으며 남북 간 연락사무소와 직통 전화가 처음 개설된 장소이자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의 판문점 회동이 이루어진 곳이다.
2. 역사
고려 때 지어졌고 밖에서부터 외성(나성)·내성(반월성)·궁성·황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황성은 896년 태봉국이 송악산 기슭에 쌓은 궁성인 발어참성을 고려가 그대로 쓴 것이다. 문은 동 광화문·남 주작문·서 영추문·북 장평문을 비롯해서 모두 20개가 있었다. 궁성은 919년에 쌓았는데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부수어졌다. 외성은 거란의 침입을 막기 위해 1009년부터 쌓기 시작해 1029년 준공했다. 큰 문 8개, 중간 크기 문 4개, 작은 문 13개가 있었는데, 지금은 3개만 남아 있다. 1391년에 방어를 두텁게 하기 위해 내성을 짓기 시작하여 1393년(태조 2년)에 완공했다. 남대문·동대문·동소문·서소문·북소문·진언문 등 7개의 성문이 있었는데, 지금은 남대문만이 남아 있다. 남대문은 한국 전쟁 때 부서진 것을 1954년에 복구한 것이다. 누각에는 연복사종이 있다.
2.1. 황성
고려 때 지어졌고 밖에서부터 외성(나성)·내성(반월성)·궁성·황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황성은 896년 태봉국이 송악산 기슭에 쌓은 궁성인 발어참성을 고려가 그대로 쓴 것이다. 문은 동 광화문·남 주작문·서 영추문·북 장평문을 비롯해서 모두 20개가 있었다.
2.2. 궁성
궁성은 고려 때 지어졌으며, 919년에 쌓았는데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부수어졌다. 문은 동 광화문·남 주작문·서 영추문·북 장평문을 비롯해서 모두 20개가 있었다. 밖에서부터 외성(나성)·내성(반월성)·궁성·황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황성은 896년 태봉국이 송악산 기슭에 쌓은 궁성인 발어참성을 고려가 그대로 쓴 것이다.
2.3. 외성
개성의 외성(나성)은 고려 때 거란의 침입을 막기 위해 1009년부터 쌓기 시작해 1029년에 준공되었다. 큰 문 8개, 중간 크기 문 4개, 작은 문 13개가 있었는데, 현재는 3개만 남아 있다.
2.4. 내성
고려 때 지어진 개성 성곽은 외성(나성), 내성(반월성), 궁성, 황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황성은 896년 태봉국이 송악산 기슭에 쌓은 궁성인 발어참성을 고려가 그대로 쓴 것이다. 궁성은 919년에 쌓았는데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부서졌다. 1391년에 방어를 두텁게 하기 위해 내성을 짓기 시작하여 1393년(태조 2년)에 완공했다. 내성에는 남대문, 동대문, 동소문, 서소문, 북소문, 진언문 등 7개의 성문이 있었는데, 지금은 남대문만이 남아 있다. 남대문은 한국 전쟁 때 부서진 것을 1954년에 복구한 것이다. 누각에는 연복사종이 있다.
3. 구조
개성 성곽은 고려 때 지어졌고 밖에서부터 외성(나성), 내성(반월성), 궁성, 황성으로 이루어진 4중 구조이다. 황성은 896년 태봉국이 송악산 기슭에 쌓은 궁성인 발어참성을 고려가 그대로 쓴 것이다. 궁성은 919년에 쌓았는데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부서졌다. 외성은 거란의 침입을 막기 위해 1009년부터 쌓기 시작해 1029년 준공했다. 1391년에 방어를 두텁게 하기 위해 내성을 짓기 시작하여 1393년(태조 2년)에 완공했다.
3.1. 4중 구조
개성 성곽은 고려 때 지어졌고 밖에서부터 외성(나성), 내성(반월성), 궁성, 황성으로 이루어진 4중 구조이다. 황성은 896년 태봉국이 송악산 기슭에 쌓은 궁성인 발어참성을 고려가 그대로 쓴 것이다. 궁성은 919년에 쌓았는데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부서졌다. 외성은 거란의 침입을 막기 위해 1009년부터 쌓기 시작해 1029년 준공했다. 1391년에 방어를 두텁게 하기 위해 내성을 짓기 시작하여 1393년(태조 2년)에 완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