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
1. 개요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은 8세기 초 통일신라 시대에 제작된 금제 불상으로,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아미타불 좌상이다. 순금으로 제작되었으며, 광배와 대좌는 금동으로 만들어졌다. 당당한 신체 표현, 부드러운 옷 주름, 정교한 광배 문양 등에서 통일신라 불상 양식을 잘 보여준다. 706년 성덕왕 때 신문왕 등을 위해 제작되었으며, 금동사리함 뚜껑 안쪽 명문을 통해 아미타불상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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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 |
|---|---|
| 영어 이름 | Gold Seated Buddha from Guhwang-dong, Gyeongju |
| 국가 | 대한민국 |
|---|---|
| 유형 | 국보 |
| 지정 번호 | 79 |
| 수량 | 1구 |
| 지정일 | 1962년 12월 20일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
| 시대 | 남북국 시대 (706년 무렵) |
| 문화재청 ID | 11,0079000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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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불 -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은 692년에 제작된 통일신라 시대의 금제 불상으로, 삼국시대 고식 불상의 특징과 인도 불상의 영향을 보여주며 7세기 후반 통일신라 조각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
신라의 불상 -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은 김대성이 발원하여 조성된 불상으로, 이상적인 비례와 사실적인 옷 주름, 아미타정인 중 상품하생인의 수인, 주형 광배와 연화대좌를 갖추고 있으며, 명문을 통해 8세기 신라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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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은 굴불사에 있는 통일신라 시대의 사방불 형식 석조 조각상으로, 각 면에는 아미타불, 약사여래, 석가모니불, 미륵보살이 조각되어 있으며, 창건 설화와 함께 통일신라 시대 조각 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
서울특별시 공개자료를 인용한 문서 -
옻칠
옻칠은 우루시올을 주성분으로 하는 천연 수지로 만든 도료로, 동아시아에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마감재이며, 단단하고 견고하며 아름다운 광택을 내는 특징이 있으며, 가구, 그릇, 악기 등 다양한 생활용품과 예술품 제작에 사용되고, 옻칠은 우수한 내구성과 방수성을 지니지만, 자외선에 약하며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
서울특별시 공개자료를 인용한 문서 -
동국대학교
동국대학교는 1906년 명진학교로 시작하여 여러 캠퍼스를 운영하며 불교 정신을 바탕으로 교육하고 특성화된 학과와 부속 기관을 갖춘 대한민국 사립 종합대학교이다.
2. 특징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은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불상은 순금으로, 광배와 대좌는 금동으로 আলাদা 제작하여 결합하였다. 당당한 신체 표현, 부드럽고 사실적인 옷주름, 상현좌 형식의 대좌, 정교한 광배 문양 등에서 균형 잡힌 조형감과 세련된 조각 기법을 보여주며, 8세기 초 통일신라 불상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2.1. 불상
머리는 소발에 커다란 육계가 놓여 있으며 풍만한 얼굴에는 눈, 코, 입의 표현이 뚜렷하여 이상화된 부처로서의 위엄을 갖추고 있다. 어깨는 넓고 당당하며 그 위에 걸친 통견의 법의는 가슴 앞에서 옷 주름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면서 양 무릎을 거쳐 대좌 전체를 덮고 있는 상현좌의 형식을 이루고 있다. 가슴 위로는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로 비스듬히 걸쳐 입은 내의가 보인다. 신체의 윤곽은 두꺼운 법의로 인해 드러나지 않았지만 가늘고 날씬한 허리와 두 다리의 무릎에 보이는 양감 등은 중국 당대 불상양식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통일신라시대 불상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두 손은 불신에 비해 다소 작은 편인데 오른손은 위로 들어 올려 시무외인을 하고 있고 왼손은 손바닥을 편 채 무릎 위에 놓여 있다. 이러한 수인은 중국의 수나라나 당나라 불상에서 유행했던 것으로 중국의 경우, 명문에 아미타불상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예가 많이 남아 있어 아미타불이 취했던 손모양 중의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황복사 금제여래좌상 역시 명문에 의해 아미타불상임을 알 수 있는데 아미타불은 서방 극락세계에 살면서 중생을 위해 자비를 베푸는 부처로 대승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부처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정토사상의 발달과 함께 삼국시대부터 신앙되기 시작하여 통일신라시대에 크게 유행했던 불상형식으로 주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좌우의 협시보살로 배치하여 아미타삼존불을 이루고 있는 예가 많이 조성되었다.
2.2. 광배
광배는 두광과 신광으로 이루어졌으며, 두광에는 연화문을 중심으로 당초문과 화염문이 투각되었고, 신광 역시 당초문과 화염문이 장식되어 있는데, 문양 형태가 간략하지만 예리하게 처리되었다.
2.4. 조형적 특징
금제여래좌상은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것으로, 불상은 순금으로 만들었으나 광배와 대좌는 금동으로 따로 주조하여 결합시킨 것이다. 불상의 머리는 소발에 커다란 육계가 놓여 있으며, 풍만한 얼굴에는 눈, 코, 입의 표현이 뚜렷하여 이상화된 부처로서의 위엄을 갖추고 있다. 어깨는 넓고 당당하며 그 위에 걸친 통견의 법의는 가슴 앞에서 옷 주름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면서 양 무릎을 거쳐 대좌 전체를 덮고 있는 상현좌의 형식을 이루고 있다. 가슴 위로는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로 비스듬히 걸쳐 입은 내의가 보인다. 신체의 윤곽은 두꺼운 법의로 인해 드러나지 않았지만, 가늘고 날씬한 허리와 두 다리의 무릎에 보이는 양감 등은 중국 당대 불상 양식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통일신라시대 불상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두 손은 불신에 비해 다소 작은 편인데, 오른손은 위로 들어 올려 시무외인을 하고 있고 왼손은 손바닥을 편 채 무릎 위에 놓여 있다. 이러한 수인은 중국의 수대나 당대 불상에서 유행했던 것으로, 중국의 경우 명문에 아미타불상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예가 많이 남아 있어 아미타불이 취했던 손모양 중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광배는 두광과 신광으로 이루어졌으며, 두광에는 연화문을 중심으로 당초문과 화염문이 투각되었고 신광 역시 당초문과 화염문이 장식되어 있는데, 문양 형태가 간략하지만 예리하게 처리되었다. 연화대좌는 상, 중, 하대로 구성되었으나, 상대의 앙련이 불상의 옷주름에 가려져 있어 중대와 하대에 표현된 복련만 보인다.
이 금제여래좌상은 당당하면서 양감 있는 신체 표현이나 부드럽고 사실적인 옷 주름 표현, 상현좌 형식의 대좌, 정교한 광배 문양 등에서 균형감 있는 조형감과 세련된 조각 기법이 나타나 있으므로 8세기 초 통일신라시대 불상 양식을 잘 보여준다.
3. 기록
692년에 효소왕이 신문왕을 위해 세운 삼층석탑 속에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불사리 4개, 그리고 순금으로 된 6촌 크기의 아미타불상 1구를 성덕왕 때인 706년 5월 30일에 안치하여 신문왕을 비롯하여 신목왕후, 효소왕의 명복을 빌었다는 기록이 금동사리함 뚜껑 안쪽에 새겨져 있다. 이 명문에 나오는 아미타불상이 바로 이 금제불좌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되나, 실제 불상 높이는 12.2cm로 명문에 나오는 불상의 크기(6촌, 약 18cm)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4. 현대적 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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