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일성왕릉
1. 개요
경주 일성왕릉은 신라 제7대 일성 이사금의 무덤이다. 북쪽 변방의 말갈족을 방어하고, 농업을 장려하여 제방을 쌓는 등 농업을 권장했으며, 사치 풍조를 막기 위해 금·은·보석의 사용을 금지하는 정책을 펼쳤다. 왕릉은 높이 5.3m, 지름 15m의 원형 봉토무덤으로, 자연석으로 둘레돌을 둘렀으며, 굴식돌방무덤으로 추정된다. 무덤 앞 2단 축대는 경내 보호를 위해 최근에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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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의 사적 -
불국사
불국사는 김대성이 부모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중창을 시작하여 신라시대에 완공된 경주시 토함산의 대표적인 사찰로, 석가탑과 다보탑 등 국보급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임진왜란 이후 복원을 거쳐 현재에 이르러 신라 불교 건축의 정수이자 한국 문화유산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
경주시의 사적 -
대릉원
신라시대 고분군인 대릉원은 경주 황남동 일대에 위치하며 미추왕릉, 천마총, 황남대총 등의 고분이 있고, 특히 천마총에서는 천마도가 그려진 말안장 드리개가 출토되었다. -
신라의 왕릉 -
문무왕
문무왕은 신라의 제30대 국왕으로 삼국 통일을 완수하고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통일 신라의 기틀을 다졌으며, 중앙 집권 체제 강화, 불교 장려 등의 정책을 통해 신라의 안정과 발전에 기여한 군주이다. -
신라의 왕릉 -
통일신라
통일신라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668년부터 고려에 병합된 935년까지 한반도 대부분을 지배하며 왕권 강화와 불교 문화 번성, 해상 무역 장악 등 전성기를 누렸으나, 9세기 이후 쇠퇴하여 후삼국 시대를 거쳐 멸망한 시대를 말한다.
2. 생애 및 업적
신라 제7대 일성 이사금(재위 134∼154)은 북쪽 변방의 말갈족 침입을 막고 농업을 장려하는 정책을 펼쳤다. 또한 백성들에게 금, 은, 보석 사용을 금지하여 사치 풍조를 멀리하게 했다.
2.1. 북방 방어
일성왕은 북쪽 변방에 침입하는 말갈족을 막았다.
3. 일성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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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제7대 일성 이사금(재위 134∼154)의 무덤이다.
일성왕은 북쪽 변방에 침입하는 말갈족을 막고, 농토를 넓혀 제방을 쌓는 등 농업을 권장했으며, 백성들에게 금·은·보석의 사용을 금지하여 사치 풍조를 멀리하게 했다.
3.1. 구조 및 형태
왕릉은 높이 5.3m, 지름 15m의 둥글게 흙을 쌓아올린 원형 봉토무덤이다. 밑둘레에는 자연석을 이용하여 둘레돌을 둘렀으며, 내부는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이다. 무덤 앞 2단 축대는 경내를 보호하기 위해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다.
3.2. 내부 구조
왕릉은 높이 5.3m, 지름 15m의 둥글게 흙을 쌓아올린 원형 봉토무덤이다. 밑둘레에는 자연석을 이용하여 둘레돌을 둘렀으며, 내부는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이다. 무덤 앞 2단 축대는 경내를 보호하기 위해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