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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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계월향은 임진왜란 시기 평양의 기생으로, 일본군의 정보를 빼내기 위해 적장의 첩이 되어 활동하다가 그를 살해했다는 전설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과의 불일치, 자료 간의 상이함 등으로 인해 실존 인물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으며, 현재는 허구의 인물로 여겨진다. 계월향 설화는 소설,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제작되었으며, 북한에서는 역사적 인물로 간주되어 관련 유적과 교과서에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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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월향 | |
---|---|
기본 정보 | |
본관 | 경주 계씨 |
생몰년 | 미상 |
활동 시기 | 선조 |
가족 관계 | 슬하 1남 |
배우자 | 김응하 |
생애 | |
주요 사항 | 임진왜란 때 김응하와 함께 평양성 전투에서 공을 세움 |
기타 | |
관련 작품 | 계월향전 |
2. 생애 및 전설
계월향은 평양부의 부기[1]였으며, 평안도 병마절도사 김경서(金景瑞, 별명 김응서(金應瑞))의 애첩이었다. 1592년 임진왜란 발발 후 평양이 함락되자, 일본군의 동향을 정탐하기 위해 소서행장의 가신 내토여안(內藤如安)의 첩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내토여안은 임진왜란에서 죽지 않았고, 이후 관가의 전투에서도 살아남아, 기리시탄 금령 이후 필리핀으로 추방되어 1626년 마닐라에서 사망했다는 등, 사실과 크게 부합하지 않는다. 더욱이 계월향이 암살했다는 인물조차 자료에 따라 제각각이며 일정하지 않고, 단순히 "왜장"으로만 언급하고 개인 이름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자료도 있다. 따라서 사실이라는 근거는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으며, 모두 우화이며 계월향 역시 실존하지 않는 허구의 인물로 판단된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전설이 변천하여 역사 속에 녹아들었고, 특히 북한에서는 현재까지도 역사적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
2. 1. 나이토 조안 암살 설화
계월향은 평양부의 부기였으며,[1] 평안도 병마절도사 김경서(金景瑞, 별명 김응서(金應瑞))의 애첩이었다. 1592년 임진왜란 발발 후 6월 11일 평양이 함락되자, 일본군의 동향을 정탐하기 위해 소서행장의 가신 내토여안(內藤如安)의 애첩이 되어 김경서에게 정보를 흘렸다고 전해진다. 몇 달 동안 내토여안과 함께 지내다가 12월 어느 밤, 술에 취해 잠든 내토여안을 살해하고, 그의 목을 베어 김경서에게 보냈다고 한다.내토여안 암살 후 평양을 탈출한 계월향이 내토여안의 아이를 임신했기에, 분노한 김경서는 계월향을 죽이고 배를 갈라 태중의 아이까지 찢어 죽였다고 한다.[2]
하지만 내토여안은 임진왜란에서 죽지 않았고, 이후 관가의 전투에서도 살아남아, 기리시탄 금령 이후 필리핀으로 추방되어 1626년 마닐라에서 사망했다는 등, 사실과 크게 부합하지 않는다. 더욱이 계월향이 암살했다는 인물조차 자료에 따라 제각각이며 일정하지 않고, 단순히 "왜장"으로만 언급하고 개인 이름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자료도 있다. 따라서 사실이라는 근거는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으며, 모두 우화이며 계월향 역시 실존하지 않는 허구의 인물로 판단된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전설이 변천하여 역사 속에 녹아들었고, 특히 북한에서는 현재까지도 역사적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
2. 2. 역사적 사실과의 불일치
계월향은 임진왜란 당시 평양이 함락된 후 일본군의 동향을 정탐하기 위해 소서행장의 가신 내토여안(內藤如安)의 애첩이 되어 김경서에게 정보를 흘렸다고 알려져 있다.[2] 그러나 내토여안은 임진왜란에서 죽지 않고 관가의 전투에서도 살아남아 필리핀으로 추방되어 1626년 마닐라에서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어, 역사적 사실과 크게 다르다.계월향이 암살했다는 인물 또한 자료에 따라 "왜장" 등으로 다르게 나타나며,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계월향 이야기는 사실이라는 근거가 없으며, 우화이고 계월향 역시 실존하지 않는 허구의 인물로 판단된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전설이 역사 속에 녹아들었고, 특히 북한에서는 현재까지도 역사적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
3. 실존 여부에 대한 논란
계월향은 평양부의 부기(府妓)였으며[1], 임진왜란 당시 평안도 병마절도사였던 김경서의 애첩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녀가 암살했다는 인물에 대한 기록은 자료마다 다르고, 단순히 "왜장"으로만 언급되는 경우도 있어, 계월향의 이야기는 사실로 보기 어렵다.
계월향이 암살했다는 소서행장의 가신 내토여안은 임진왜란에서 죽지 않고, 관가의 전투에서도 살아남아 1626년 마닐라에서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2] 이는 계월향 관련 이야기와 크게 다르다.
따라서 계월향의 이야기는 역사적 근거가 없는 우화이며, 계월향 역시 실존하지 않는 허구의 인물로 판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조선시대에 널리 퍼져 역사처럼 인식되었고, 특히 북한에서는 현재까지도 계월향을 역사적 인물로 여기고 있다.
4. 문화적 영향
계월향은 문학,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예술 작품에서 다루어지며 문화적 영향을 끼쳤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1924년에 쓴 소설 『금장군』[1], 1815년에 그려졌으나 분실되었다가 일본 교토에서 발견된 『계월향 초상화 병찬』, 1835년에 건립된 『계월향 비』[1] 등이 대표적이다. 북한의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도 계월향 이야기가 실려 있다.
4. 1. 문학
1924년(다이쇼 13년) 1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금장군』(「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전집 5」 수록)을 저술하였다.[1] 아쿠타가와의 작품에서는 소소비가 내토 요아스가 아니라 고니시 유키나가로 비정되고 있으며, 역의 30년 전에 가토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가가 승려로 변장하여 조선 각지를 순례하며 국정을 살피는 모습이 그려져 있어, 전혀 허황된 내용이 되어 있다.[1]하지만, 해당 작품은 이 전설에 대해 "역사를 윤색하는 것은 반드시 조선만이 아니다."라고 하여 어디까지나 사실이 아닌 것을 전제로 쓰고 있으며, 그 내용에 대해서도 아쿠타가와가 어디까지 각색했는지 불명확하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1]
4. 2. 영화 및 드라마
4. 3. 기타
참조
[1]
문서
李氏朝鮮における官婢としての妓生
[2]
서적
桂月香物語の死の変遷("계월향 이야기"와 "죽음"의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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