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혁명당
1. 개요
고려혁명당은 1926년 4월 5일 만주 지린성에서 현익철, 양기탁, 고할신 등 독립운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창당된 단체이다. 정의부의 민족유일당 운동의 일환으로 정의부와 협력했으나, 당내 사회주의자와 민족주의자 간의 이념 갈등과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분열되었다. 1927년 주요 간부들이 체포되면서 활동이 위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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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정당 -
조선공산당
조선공산당은 1919년 사회주의 사상을 접한 조선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결성되어 일제강점기 동안 탄압받았으며, 광복 후 남북으로 분열되어 남조선로동당과 북조선노동당으로 개편되었다. -
일제강점기의 정당 -
신한청년당
1918년 상하이에서 창립된 신한청년당은 여운형, 장덕수 등 6인이 주도한 청년 독립운동 단체로, 2·8 독립선언과 3·1 운동을 이끌고 임시정부 수립에 기여했으며, 민족주의, 민주주의, 공화주의를 이념으로 1922년 해산했다. -
홍범도 -
고려공산당
고려공산당은 1920년대 초 러시아와 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한인 공산주의 정당으로, 한인사회당에서 시작하여 코민테른의 승인을 받았으나 상하이파와 이르쿠츠크파로 분열되어 자유시 참변을 겪은 후 해체되었으며, 조선공산당 창당에 영향을 주었고 초기 공산주의 및 민족 해방 운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
홍범도 -
자유시 참변
자유시 참변은 1921년 러시아 자유시에서 대한독립군단이 소련 붉은 군대에 공격받아 와해된 비극적인 사건으로, 독립군 내부 갈등과 소련의 정책적 판단이 작용한 결과이며 한국 독립운동사에 큰 상흔을 남겼다. -
고려혁명당 -
현익철
현익철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여러 단체에서 활동했으며,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 추서받았다. -
고려혁명당 -
오동진 (1889년)
오동진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교육 계몽 운동을 하다 만주로 망명하여 무장 독립 투쟁을 전개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협력했으며, 다양한 독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다 체포되어 옥사,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2. 연원 및 변천
1926년 4월 5일, 만주 지린성에서 현익철, 양기탁, 고할신 등 독립운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창당되었다. 초대위원장은 양기탁, 책임비서는 이동구였다. 위원에는 정이형, 현정경, 고할신, 오동진, 이동락, 김봉국, 현익철, 이규풍, 최동희, 주진수, 곽종대 등이 있었다.
초기에는 정의부의 민족유일당 운동의 일환으로 정의부와 긴밀하게 협력하였다. 그러나 당원 중 사회주의자가 많아 사실상 공산당이라 하는 사람도 있었고,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섞여 조직되었기 때문에 항상 내분이 존재했다. 또한 일제의 탄압과 분열을 시도하는 간계가 끊이지 않았다.
2.1. 창당 배경
1926년 4월 5일 중국 만주 지린성에서 만주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현익철, 양기탁, 고할신, 최동희, 현정경, 이규풍, 김봉국, 주진수, 이동구, 이동락, 정이형, 송헌, 곽종대, 오성환 등이 조직했다. 초대위원장은 양기탁, 책임비서는 이동구였다. 위원에는 정이형, 현정경, 고할신, 오동진, 이동락, 김봉국, 현익철, 이규풍, 최동희, 주진수, 곽종대 등이 있었다.
정의부의 민족유일당 운동으로 이루어져 정의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으나, 당원 중 사회주의자가 많아 사실상 공산당이라 하는 사람도 있었고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섞여 조직되었기 때문에 항상 내분이 존재했다. 또한 일제의 탄압과 분열을 시도하는 간계가 끊이지 않았다.
2.2. 주요 인물
2.3. 이념 갈등과 분열
1926년 4월 5일 중국 만주 지린성에서 조직된 고려혁명당은 정의부의 민족유일당 운동으로 이루어져 정의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그러나 당원 중 사회주의자가 많아 사실상 공산당이라 하는 사람도 있었고,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섞여 조직되었기 때문에 항상 내분이 존재했다. 또한 일제의 탄압과 분열을 시도하는 간계가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러한 이념 갈등과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당은 분열되고 기능이 마비되었다. 다수의 민족주의자들이 탈당하고 정의부와의 연계도 끊어졌다. 주진수와 이규풍은 소련으로 돌아갔고, 현익철은 민족유일당운동에 참여하는 등 주요 인사들이 이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