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익철
1. 개요
현익철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1 운동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한족회에 가입했고, 1921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복역 후 1924년 다시 만주로 망명하여 정의부, 고려혁명당, 민족유일당 운동에 참여했다. 1931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7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탈출하여 상하이로 이동, 1937년 조선혁명당을 재건하고 중일 전쟁 발발 후 충칭으로 이동했다. 1938년 한국국민당 등과의 통합 회의에 참석했다가 이운한에게 저격당해 암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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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일 | 1890년 |
|---|---|
| 출생지 | 조선 평안북도 박천군 |
| 사망지 | 중화민국 창사 |
| 사망일 | 1938년 5월 7일 |
| 본관 | 연주 현씨 |
| 별명 | 호는 묵관(黙觀) |
| 직업 | 독립운동가 |
| 배우자 | 방순희(方順熙) |
| 이념 | 반공주의 |
| 소속 | 한족회 |
| 관련 활동 | 독립운동 |
| 웹사이트 | 국가보훈처 - 현익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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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혁명당 (1929년) -
양세봉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양세봉은 만주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이끌며 대한통의부, 참의부, 정의부, 조선혁명군 등에서 활약한 독립군 지휘관으로서, 한중 연합군을 편성하여 융링제 전투 등에서 승리했으나 일본군 밀정의 계략으로 암살당했고 남북한 모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
조선혁명당 (1929년) -
고이허
고이허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학생 운동을 시작해 만주에서 항일 운동에 투신, 국민부 결성에 참여하고 조선혁명당과 조선혁명군을 조직하여 이끌었으나 일본군에 체포되어 순국,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 추서받았다. -
박천군 출신 -
송지영
송지영은 남경중앙대학 출신으로 조선일보 논설위원을 거쳐 한국번역가협회 회장,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고문 등을 역임하며 언론 및 문화계에서 활동했고,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원장, 국토통일원 고문,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의원, 제11대 국회의원, 한국방송공사 이사장 등을 지냈다. -
박천군 출신 -
방일영
방일영은 평안북도 박천 출생으로 조선일보 사장 비서를 거쳐 경영권을 장악하고, 1980년대 발행 부수 1위 신문으로 성장시켰으며, 방일영장학회 등을 설립하여 문화 예술 발전에 기여했으나 권언유착 논란으로 비판받은 언론인이다. -
국민부 -
양세봉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양세봉은 만주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이끌며 대한통의부, 참의부, 정의부, 조선혁명군 등에서 활약한 독립군 지휘관으로서, 한중 연합군을 편성하여 융링제 전투 등에서 승리했으나 일본군 밀정의 계략으로 암살당했고 남북한 모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
국민부 -
고이허
고이허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학생 운동을 시작해 만주에서 항일 운동에 투신, 국민부 결성에 참여하고 조선혁명당과 조선혁명군을 조직하여 이끌었으나 일본군에 체포되어 순국,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 추서받았다.
2.1. 망명과 독립투쟁
1919년 3.1 운동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남만주의 한인자치기관인 한족회에 가입했다. 1921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 동안 복역한 뒤 1924년 다시 만주로 망명하였다.
같은 해 전만통일의회주비회에 참석하고 1925년 1월 결성된 정의부에 참여했다. 1926년 4월 양기탁, 고할신, 현정경, 이규풍, 최소수, 김봉국, 이동구 등과 함께 고려혁명당을 결성했다. 1927년 고려혁명당이 와해되자 민족유일당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1931년 자금교섭문제로 중국 펑톈에 갔다가 8월 31일 일본 경찰에 다시 체포되어 신의주에서 7년 형을 선고받았다. 복역 중에 국외로 도망쳐 만주를 거쳐 상하이로 갔다. 1937년 4월 난징에서 조선혁명당을 재건하고, 이후 중일 전쟁으로 중국 국민당이 충칭으로 남하하자 중국 후난성 창사로 남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