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국조
1. 개요
고려 국조는 고려 태조 왕건의 선조에 대한 논쟁적인 기록을 다룬다. 김관의의 편년통록은 왕국조를 손호술(손호술)로, 보육(보육)으로 개명하고 의조 작제건의 외조부라고 기록했다. 그러나 이제현은 정화왕후가 강보육의 딸이라면 국조가 보육일 수 없다고 반박하며, 왕대종족기 및 성원록의 내용을 인용해 김관의의 설을 부정했다. 편년통록과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국조는 강보육이며, 강충의 아들로 작제건의 외조부이자 태조 왕건의 고조부인 강진의의 아버지이다. 고려 후기에는 보육을 국조로 식별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고, 이색은 국조가 강호경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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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신화의 인물 -
정화왕후
정화왕후는 고려 태조 왕건의 증조모이자 작제건의 어머니로, 신천 강씨 가문과 고려 왕실의 연결고리를 형성하는 중요한 인물이다. -
고려 신화의 인물 -
고려 세조
고려 세조 왕륭은 고려 태조 왕건의 아버지로, 의조 왕제건과 원창왕후 저민 사이에서 태어난 송악 호족 출신으로 궁예에게 귀부하여 금성태수를 지냈으며, 사후 아들 왕건에 의해 세조위무대왕으로 추존되었다. -
고려의 추존왕 -
고려 대종
고려 대종은 태조와 신정왕후의 아들로, 성종 즉위 후 왕으로 추존되었으며 능은 태릉이다. -
고려의 추존왕 -
고려 안종
고려 태조의 왕자이자 현종의 아버지인 안종은 헌정왕후와의 불륜으로 유배되었으나, 사후 효목대왕으로 추존되어 태묘에 합사되었다. -
개성 왕씨 -
왕영은
왕영은은 1981년 방송 데뷔 후 다양한 TV,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 CF 모델 활동을 한 대한민국의 방송인이며, 현재 SBS 《좋은 아침》, 현대홈쇼핑 《왕영은의 톡 투게더》 등을 진행하고 있다. -
개성 왕씨 -
우왕
우왕은 고려 제33대 국왕으로 공민왕의 아들이며, 이인임의 추대로 10세에 즉위하여 명덕태후의 섭정을 받았으나, 술과 여색에 빠져 국정을 소홀히 하고 왜구 침입, 명나라와의 관계 설정 문제, 요동 정벌 명령, 위화도 회군 등의 사건을 겪으며 폐위되어 처형되었다.
2. 국조의 정체에 관한 설
고려사에 인용된 김관의의 편년통록에 따르면 왕국조는 손호술(損乎述)이며 나중에 보육(寶育)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의조로 추정되는 작제건의 외조부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제현은 정화왕후 강씨가 강보육의 딸이라면 국조는 보육이 될 수 없다고 반박하였다. 이제현의 사론에 따르면 "《왕대종족기(王代宗族記)》에는 태조의 증조모 정화왕후는 왕국조의 왕후라고 하였다. 또 《성원록(聖源錄)》에는 보육성인(寶育聖人)이라는 자는 원덕대왕의 외조부라고 하였다."라고 하여 김관의의 설을 부정하였다.
『편년통록한국어』,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국조는 강보육이다. 중국경조군 출신 강숙의 차남의 67세 손인 강호경의 아들 강충은 이제건과 강보육을 낳았다. 강보육은 조카인 덕주를 아내로 맞아 강진의를 낳았다. 그 후 강진의와 중국인 사이에서 작제건이 태어났다. 왕제건의 아버지는 당나라 황족으로, 『편년통록한국어』, 『고려사절요』는 숙종, 『편년강목』은 선종이라고 한다. 왕제건은 아버지를 찾아 당나라로 가던 중 서해 용왕의 딸인 용녀(후의 원창왕후)와 혼인하였다. 『성원록』에 따르면 용녀는 중국평주 출신 두은점 각간의 딸이라고 한다. 왕제건과 용녀 사이에서 왕륭이 태어났고, 왕륭의 아들이 고려 건국자 왕건이다.
2.1. 강보육
고려사에 인용된 김관의의 저서 편년통록에 의하면 왕국조는 손호술(損乎述)이며 나중에 보육(寶育)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또한, 의조로 추정되는 작제건의 외조부라 하였다.
하지만, 고려사에 인용된 이제현의 사론에 따르면
"《왕대종족기(王代宗族記)》에는 태조의 증조모 정화왕후는 왕국조의 왕후라고 하였다. 또 《성원록(聖源錄)》에는 보육성인(寶育聖人)이라는 자는 원덕대왕의 외조부라고 하였다."
라고 하여 김관의의 설을 부정하였다. 정화왕후 강씨가 강보육의 딸이라면 국조는 보육이 될 수가 없다.
《편년통록한국어》과 《고려사절요한국어》에 따르면, 국조는 강보육이었다.
강보육은 강충의 아들이었다. 그는 이제건과 보승이라는 두 형제가 있었다. 강보육은 조카 강덕주, 즉 형 이제건의 딸과 결혼했고, 그들의 딸 강진의가 태어났다. 진의는 작제건의 어머니가 될 것이고, 작제건은 태조 왕건의 할아버지였다.
『편년통록한국어』,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국조는 강보육이라고 한다. 중국경조군 출신 강숙의 차남의 67세 손인 강호경의 아들 강충은 이제건과 강보육을 낳았다. 강보육은 조카인 덕주를 아내로 맞아 강진의를 낳았다.
2.2. 기타 인물
김관의의 저서 편년통록에 따르면 왕국조는 손호술(損乎述)이며, 나중에 보육(寶育)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또한, 의조로 추정되는 작제건의 외조부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제현은 정화왕후 강씨가 강보육의 딸이라면 국조는 보육이 될 수 없다고 반박하였다.
이제현은 전통적으로 왕씨(House of Wang)의 직계 남성 조상이 아닌 보육에게 묘호가 주어진 것에 의문을 제기하며, 국조는 왕씨의 직계 남성 조상이 아니기에 보육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왕대종족기》에서 묘호 국조는 진의의 남편이자 태조의 증조부에게 주어졌다고 지적했다.
이색은 국조가 보육 대신 강호경이라고 주장했다.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국조는 강보육이라고 한다. 강보육은 강호경의 아들 강충의 아들이었다.
3. 가계
정화왕후 강씨
《편년통록한국어》과 《고려사절요한국어》에 따르면, 국조는 강보육이었다.
강보육은 강충의 아들이었다. 그는 이제건과 보승이라는 두 형제가 있었다. 강보육은 조카 강덕주, 즉 형 이제건의 딸과 결혼했고, 그들의 딸 강진의가 태어났다. 진의는 작제건의 어머니가 될 것이고, 작제건은 태조의 할아버지였다.
강보육은 중국 경조군 출신 강숙의 차남의 67세 손인 강호경의 아들 강충의 아들이다. 강충은 이제건과 강보육을 낳았다. 강보육은 조카인 덕주를 아내로 맞아 강진의를 낳았다. 그 후 강진의와 중국인 사이에서 왕제건이 태어났다.
4. 추가 논의: 작제건의 출생과 정체
『편년통록』,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국조는 강보육이다. 중국경조군 출신 강숙의 차남의 67세 손인 강호경의 아들 강충은 이제건과 강보육을 낳았다. 강보육은 조카인 덕주를 아내로 맞아 강진의를 낳았다. 그 후 강진의와 중국인 사이에서 왕제건이 태어났다. 왕제건의 아버지는 당나라의 황족으로, 『편년통록』, 『고려사절요』는 숙종, 『편년강목』은 선종이라고 한다. 왕제건은 아버지를 찾아 황해를 건너던 중 서해 용왕을 만나 그의 딸(후의 원창왕후)과 혼인한다. 왕제건과 원창왕후 사이에서 왕륭이 태어났고, 왕륭의 아들이 고려의 건국자인 왕건이다.
4.2. 작제건과 원창왕후의 아들
국조는 강보육이라고 한다. 중국경조군 출신 강숙의 차남의 67세 손인 강호경의 아들 강충은 이제건과 강보육을 낳았다. 강보육은 조카인 덕주를 아내로 맞아 강진의를 낳았다. 그 후 강진의와 중국인 사이에서 왕제건이 태어났다. 왕제건의 아버지는 당나라의 황족으로, 고려사절요는 숙종, 편년강목은 선종이라고 한다. 왕제건은 아버지를 찾아 당나라로 가기 위해 황해를 건너던 중 서해 용왕의 딸인 용녀(후의 원창왕후)를 만나 부마가 된다. 성원록에 따르면 서해 용왕의 딸인 용녀(후의 원창왕후)는 중국평주 출신 두은점 각간의 딸이라고 한다. 그리고 왕제건과 서해 용왕의 딸인 용녀(후의 원창왕후) 사이에서 왕륭이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