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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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이화는 1916년 제주도 우도에서 태어나 해녀로 활동하며 일제강점기 제주잠녀항쟁에 참여했다. 14세에 해녀가 되어 '애기상군'으로 불렸으며, 1932년 제주잠녀항쟁 당시 시위에 참여하여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4·3 사건으로 시댁 가족을 잃는 아픔을 겪었으며, 이후 충청도와 백령도 등지에서 물질을 이어갔다. 2000년 첫 번째 제주해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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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녀 - 제주잠녀항쟁
제주잠녀항쟁은 일제강점기 제주 해녀들이 일본의 경제적 수탈과 억압에 저항하여 일어난 항쟁으로, 일본의 어업 침탈과 객주를 통한 폭리, 어용화된 해녀조합 등으로 어려워진 잠녀들의 생활고와 민족 교육을 통해 성장한 잠녀들이 부당한 현실에 맞서 항거한 사건이며, 항쟁 이후 일본의 탄압과 제주 출신 조선인들의 지원 활동, 현기영의 소설 《바람 타는 섬》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 해녀 - 해녀박물관
제주 해녀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 알리기 위해 2007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하우동에 개관한 해녀박물관은 5,000여 점의 유물과 해녀 관련 전시, 체험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며 해녀 문화를 알리는 데 기여한다. - 제주 4·3 사건 관련자 - 이정재 (1917년)
이정재는 일제강점기부터 한국 전쟁 이후까지 활동한 폭력배이자 정치 깡패로, 경찰 출신으로 동대문 상인 연합회 회장을 역임하며 자유당과의 유착을 통해 정치 테러에 가담했으나,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을 거치며 사형당해 권력과 배신의 삶을 마감했다. - 제주 4·3 사건 관련자 - 송요찬
송요찬은 일제강점기 일본군 부사관으로 복무하고 대한민국 국군 소위로 임관하여 4·3 사건 진압을 지휘했으며, 5·16 군사정변 이후 요직을 두루 거쳤으나 정치적 갈등으로 구속된 인물이다. - 제주시 출신 - 우근민
우근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행정가로, 총무처 공무원 요직과 제주특별자치도지사를 역임하며 민자당, 새정치국민회의, 열린우리당 등 다양한 정당 활동을 했으나, 공직선거법 위반, 성희롱 소송 패소, 새누리당 입당 논란 등 여러 논란이 있었다. - 제주시 출신 - 강금실
강금실은 1981년 사법시험 합격 후 판사, 인권 변호사, 대한민국 최초 여성 법무부 장관, 서울특별시장 후보, 법무법인 대표변호사, 사단법인 이사장, 경기도 기후대사 등을 역임한 법조인이자 정치인이다.
| 고이화 - [인물]에 관한 문서 | |
|---|---|
| 기본 정보 | |
| 이름 | 고이화 |
| 한자 표기 | 高利花 |
| 개정 로마자 표기 | Go Ihwa |
| 매큔-라이샤워 표기 | Ko Ihwa |
| 예일 표기 | Ko Ihwa |
| 출생일 | 1916년 3월 16일 |
| 출생지 |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제주도 |
| 사망일 | 2014년 10월 (99세) |
| 사망지 | 대한민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 국적 | 대한민국 |
| 직업 | 해녀 |
| 활동 기간 | 1929년~2003년 |
| 수상 | |
| 수상 | 제주해녀상 |
2. 어린 시절
고이화의 어린 시절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1916년 제주도 구좌읍 연평리(현재의 우도면)에서 태어나, 1929년 14세에 해녀가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3]
2. 1. 출생과 해녀 입문
1916년 3월 6일 제주도 구좌읍 연평리(현재의 우도면)에서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위로 언니 둘과 오빠 한 명이 있었다.[3] 아버지는 참봉 벼슬을 하여 우도에서는 고선달이라고 불렸다. 우도는 토지가 비좁아 누구나 바다에 의지해 살았고, 고이화 역시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따라 물질을 배웠다.[4] 1929년 14세에 해녀가 되었는데 그해 수심 깊은 곳에서 일하다 고막이 터졌다.[3] 15세부터 일본과 전국 각지로 출가 물질을 다녔으며, 남달리 몸집이 크고 숨이 길어서 어린 나이에 "애기상군"으로 불렸다.[4] [6]2. 2. 제주 해녀 공동체와 '애기상군'
제주 지역 어촌계에는 잠수회, 해녀회, 부녀회 등의 이름으로 해녀 조직이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강한 동료 의식을 가지고 있다. 해녀들은 스스로의 기량을 상군, 중군, 하군으로 구분한다.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출가 물질을 하던 해녀들이 한반도 전역은 물론 일본까지 진출하여 정착하기도 하였으며, 이들은 정착한 지역에 해녀 노젓는 소리와 같은 노래와 문화를 전파하였다.[5] 고이화는 몸집이 크고 숨이 길어 어린 나이에 "애기상군"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6]3. 항일 운동
고이화는 1931년부터 1932년까지 일어난 제주잠녀항쟁에 참여하여 일제의 수탈에 저항하였다.[7] 1932년 3월에는 우도 해녀들과 함께 구좌읍 종달리 두문포 해변에서 시위를 벌이다 일본 경찰에 구타당하기도 했다.[8]
3. 1. 제주잠녀항쟁 참여
1931년부터 1932년까지 제주잠녀항쟁은 일제가 만든 관제 해녀조합이 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에 터무니없는 가격을 매겨 착취하자 저항한 운동이다. 일제강점기 제주 해녀는 전국으로 출가 물질을 갔는데, 여자가 살갗을 드러내고 일한다고 멸시가 심했다. 1920년 해녀들은 권익 보호를 위해 해녀조합을 만들었지만, 1920년대 중반부터 일본인 제주도사가 조합장을 겸임하면서 수탈이 심해졌다. 채취한 해산물을 특정 상인이 독점 수매하도록 하여 시가의 절반에 팔도록 하고 각종 경비도 해녀에게 부담시켰다. 해녀들은 당시 야학을 하며 지원해 주던 사회주의 계열 청년들의 도움을 받아 항쟁에 나섰다. 해녀들은 도사의 자동차를 포위하고 요구 조건을 대부분 관철시켰지만, 이후 주동자 100여 명이 경찰에 체포되어 고초를 겪었다.[7] 1932년 3월 고이화는 우도 해녀 270여 명과 함께 10여 척의 풍선에 나눠타고 구좌읍 종달리 두문포 해변에 내려 시위를 벌이다 일본 경찰로부터 심한 구타를 당해 지금도 상처가 남아 있다.[8]3. 2. 강제 결혼과 도피
1933년 18세에 원치 않는 결혼을 했다. 결혼한 지 6일 만에 도망쳐 나와 숨었다가 이혼하기로 하고, 남편이 새장가를 갈 돈을 벌기 위해 시아버지와 함께 안흥으로 출가 물질을 갔다.[9] 그해 70JPY을 벌고, 다시 20세에 140JPY을 벌어 검은 두루마기와 돼지를 사서 남편을 다시 장가보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돌려보내며 양은대야가 깨진 것 같다고 슬퍼하였다고 한다.[10] 고이화는 그 후로도 출가 물질을 계속했다.[11]4. 4·3 사건
고이화는 일제강점기 대마도에서 광복을 맞아 제주도로 돌아와 살던 중 제주 4·3 사건을 겪었다.
4. 1. 4·3 사건과 가족의 비극
고이화는 대마도에서 해방을 맞았다. 제주도로 돌아와 살다 제주 4·3 사건이 일어났다. 임신 중이었던 고이화는 하혈기가 있어서 우도 친정으로 갔는데 그 사이 외도에 있던 시댁 식구가 모두 경찰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고, 남편마저 화병으로 죽었다.[12] 시아버지는 수용소에 끌려갔다 풀려난 그날 죽임을 당했는데 수용소 벽에 "내가 무슨 죄를 지어 죽이려 하느냐?"고 글을 적었다고 한다. 시댁은 비교적 부유한 집이었으나 당시 일본계 은행이었던 성산은행이 불타면서 맡겨두었던 자산마저 모두 불에 탔다. 딸 옥희가 태어나고 그 뒤로 충청도와 백령도 등지에서 물질을 계속했다.[13]5. 제주해녀상
일흔이 넘어 우도로 돌아와 계속 해녀 활동을 하고 있다. 2000년 첫 번째 제주해녀상을 받을 당시 우도에서는 "대상군"으로 통했다.[2]
참조
[1]
서적
김은실(2004년), 84쪽
[2]
뉴스
온 몸에 품은 제주 근·현대사의 흔적 - 제주잠녀 3부. 잠녀를 만나다 (158)소리를 따라-구좌읍 고이화 할머니
http://www.jemin.com[...]
제민일보
2010-06-30
[3]
서적
김은실(2004년), 88쪽
[4]
웹사이트
해녀 고이화
https://www.culturec[...]
한국콘텐츠진흥원
[5]
간행물
‘해녀’ 국가무형문화제 지정 가치 조사 보고서
문화재청
2016-12
[6]
서적
김은실(2004년), 91쪽
[7]
웹사이트
고이화 : 1932년 제주해녀항일운동 참가자
http://www.peoplepow[...]
참여연대
[8]
뉴스
첫 제주해녀상 고이화 할머니 인터뷰
http://legacy.h21.ha[...]
한겨레
2000-08-10
[9]
서적
김은실(2004년), 122-125쪽
[10]
간행물
좌혜경, 〈구비전승〉,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민속지》
국립민속박물관
2007
[11]
서적
김은실(2004년), 130-131쪽
[12]
뉴스
제주해녀상 첫 수상 고이화 할머니
http://news.joins.co[...]
중앙일보
2000-08-10
[13]
서적
김은실(2004년), 142-1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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