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사정
1. 개요
곡사정은 수나라의 인물로, 신채군공 홛사 회의 아들이다. 친위로 시작하여 군공을 세워 의동의 지위에 올랐으며, 양소에게 발탁되었다. 양제의 총애를 받았고, 양현감 형제와 교류했으나, 양현감의 반란으로 고구려로 망명했다. 이후 고구려가 수나라에 강화를 요청하면서 송환되었고, 금광문에 묶여 사살된 후, 유해는 삶아져 연회에서 제공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곡사정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 이름 | 곡사정 |
|---|---|
| 원어명 | 斛斯政 |
개인 정보
| 출생일 | 미상 |
|---|---|
| 출생지 | 미상 |
| 사망일 | 614년 |
| 사망지 | 수나라 |
| 사인 | 사형 |
| 국적 | 수나라 → 고구려 → 수나라 |
| 성별 | 남성 |
가문
| 부모 | 미상 |
|---|---|
| 배우자 | 미상 |
| 자녀 | 미상 |
| 친척 | 미상 |
경력
| 복무 | 미상 |
|---|---|
| 복무 기간 | 미상 |
| 근무 | 미상 |
| 근무 기간 | 미상 |
| 최종 계급 | 병부시랑 |
| 지휘 | 미상 |
| 주요 참전 전투/전쟁 | 고구려-수 전쟁 |
| 서훈 내역 | 미상 |
| 기타 이력 | 미상 |
기타
| 서명 | 미상 |
|---|---|
| 웹사이트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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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곡사정은 고구려-수 전쟁에 수나라 군인으로 참전했으나, 613년 양현감의 반란에 연루될 것을 우려하여 고구려로 망명했다.
614년, 수 양제의 3차 고구려 원정 때 고구려가 강화를 요청하면서, 곡사정은 수나라로 송환되었다. 그는 금광문 기둥에 묶여 수나라 관료들에게 활로 사살되었고, 그 시신은 가마솥에 삶아져 제후와 백관에게 제공되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2.1. 수나라에서의 초기 생애
신채군공 홛사 회(斛斯恢)의 아들로 태어났다. 처음에는 친위(親衛)가 되었고, 이후 군공(軍功)으로 의동(儀同)의 지위를 받았으며, 양소에게 발탁되었다.
대업 연간에 상서 병조랑(尚書兵曹郎)이 되어 병부상서(兵部尚書) 단문진을 보좌했다. 양제에게 총애를 받았고, 양현감 형제와도 교류를 가졌다. 단문진이 죽은 후, 병부시랑(兵部侍郎)이 되었다. 대업 9년(613년) 양제의 제2차 고구려 원정 때 양현감이 반란을 일으키자, 홛사정(斛斯政)은 양현감과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추궁을 두려워하여 고구려로 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