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산 노씨
1. 개요
곡산 노씨는 당나라에서 건너온 노수의 아홉째 아들 노원을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고려 충숙왕 때 판도판서를 지낸 노조를 1세조로 하며, 본관은 황해도 곡산이다.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1명을 배출하였으며, 주요 인물로는 노경린이 있다. 경기도 김포, 황해도 곡산, 옹진, 평산 등에 집성촌을 이루었고, 2000년에는 443가구, 1,367명이 있었다.
2. 역사
시조 노원(盧垣)은 당나라에서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역임하고 신라로 건너온 도시조(都始祖) 노수(盧穗)의 아홉째 아들로서 곡산백(谷山伯)에 봉해졌다고 한다.
원(垣) 이후에 계대를 알지 못하므로 고려 충숙왕 때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한 노조(盧兆중국어, 1300년 ~ 1367년)를 1세조(一世祖)로 한다.
3. 본관
곡산은 황해도 북동단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의 십곡성(十谷城)인데 통일신라 경덕왕이 진서(鎭瑞)로 고쳤고 고려 초에 곡주(谷州)로 개칭하였다. 1393년(조선 태조 2)에는 곡산으로 개칭하고 부(府)로 승격하였다. 1895년(고종 32년) 갑오개혁으로 23부제가 시행되면서 해주부 관할 곡산군이 되었다가, 1896년 13도제 실시로 황해도에 속하게 되었다. 곡산의 별칭은 덕둔홀, 고곡, 진서, 상산 등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곡산군의 토성(土姓)으로 우(禹)·노(盧)· 강(康)·한(韓)·용(龍)·연(延) 6성이 기록되어 있다.
4. 인물
* 노경린(1516년~1568년 5월 16일(음력 4월 20일)): 1539년(중종 34)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성균관학유·박사를 거쳐 공조·예조·호조·형조의 낭관(郎官)을 역임하였다. 그 뒤 사헌부지평에 올랐으나 진복창의 탄핵을 받아 좌천되어 나주목사·성주목사 등을 지냈다.
5. 과거 급제자
곡산 노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1명, 무과 급제자 9명, 사마시 급제자 2명, 역과 급제자 1명, 율과 급제자 2명, 의과 급제자 2명을 배출하였다. 고려 시대에는 문과 급제자 1명을 배출하였다.
5.1. 고려
고려 시대 문과에 급제한 인물로는 노조(盧朝)가 있다.
5.2. 조선
곡산 노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1명을 배출하였다.
| 종류 | 이름 |
|---|---|
| 문과 | 노경린 |
| 무과 | 노극겸, 노극제, 노극준, 노문표, 노세웅, 노의봉, 노제신, 노중빈, 노태기 |
| 진사시 | 노관하, 노의석 |
| 역과 | 노태일 |
| 율과 | 노상욱, 노학진 |
| 의과 | 노덕수, 노상철 |
7. 인구
| 연도 | 가구 | 인구 |
|---|---|---|
| 1985년 | 1,704가구 | 7,453명 |
| 2000년 | 443가구 | 1,367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