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성 광복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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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광복루는 공산성에 있는 2층 누각으로, 일제강점기 초에 웅심각 또는 해상루로 불리다가 1946년 4월 김구와 이시영이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광복루로 개칭되었다.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모든 면이 개방되어 있으며 층계가 설치되어 있다. 원래는 공산성 내 중군영의 문루였으며, 공북루 옆에 있던 것을 옮겨 지었다.

공산성 광복루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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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성 광복루
이름공산성 광복루
한자 표기公山城 光復樓
위치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2번지
문화재 정보
국가대한민국
소속충청남도
유형문화재자료
지정 번호50
지정일1984년 5월 17일
시대조선시대
소유지정되지 않음
수량1동
공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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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광복루는 원래 공산성 북문인 공북루 옆에 있었고, 공산성 내 주둔 군대를 지휘하던 중군영(中軍營)의 문루였다. 일제강점기 초, 일제가 이 문루를 현재 위치로 옮기고 웅심각(雄心閣) 또는 해상루(海桑樓)라 불렀다. 1946년 4월, 김구이시영이 이곳을 방문하여 나라를 다시 찾았음을 기리고자 광복루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2.1. 건립 배경

광복루는 원래 공산성 북문인 공북루 옆에 위치해 있었으며, 공산성 내 주둔 군대를 지휘하던 중군영(中軍營)의 문루였다. 일제강점기 초, 일제가 공산성 북쪽 문인 공북루 옆에 있던 문루를 이곳으로 옮기고 웅심각(雄心閣) 또는 해상루(海桑樓)라 불렀다. 1946년 4월, 김구이시영이 이곳을 방문하여 나라를 다시 찾았음을 기리고자 광복루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2.2. 웅심각 시대

일제강점기 초, 일제는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 옆에 있던 문루를 현재 위치로 옮기고 웅심각(雄心閣) 또는 해상루(海桑樓)라 불렀다.

2.3. 광복루로 개칭

광복루는 원래 공산성에 주둔한 군대를 지휘하던 중군영(中軍營)의 문루였다. 일제강점기 초 일제가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 옆에 있던 문루를 이곳으로 옮기고 웅심각(雄心閣) 또는 해상루(海桑樓)라 불렀다. 1946년 4월 김구이시영이 이곳을 방문하여 나라를 다시 찾았음을 기리고자 광복루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3. 건축 양식

광복루는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2층 누각으로 모든 면이 개방되어 있으며, 왼쪽에는 오르내릴 수 있도록 층계가 설치되어 있다.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며져 있다.

4. 현지 안내문

원래 공산성 내에 주둔한 군대를 지휘하던 중군영(中軍營)의 문루이다. 일제 침략기 초에 일제가 공산성의 북쪽 문인 공북루(拱北樓) 옆에 있는 문루를 이곳으로 옮기고 웅심각(雄心閣) 또는 해상루(海桑樓)라 하였다. 1946년 4월에 김구 선생과 이시영 선생이 방문하여 나라를 다시 찾았음을 기리고자 광복루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