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진교 버스 추락 사고
1. 개요
광진교 버스 추락 사고는 1974년 10월 28일, 동남교통 소속 567번 좌석버스가 광진교 남단에서 다리 난간을 부수고 13m 아래로 추락하여 17명이 사망하고 28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고이다. 사고 버스는 전조등 고장 상태에서 과속 및 난폭 운전을 했으며, 좁은 광진교의 안전 시설 부족과 노후 교량의 안전 문제가 사고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이 사고로 인해 광진교의 안전 문제가 부각되었고, 천호대교 건설을 추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 사건 | 광진교 버스 추락 사고 |
|---|---|
| 날짜 | 1973년 8월 18일 |
| 위치 | 서울특별시 성동구 풍납동 광진교 남단 60m |
| 원인 | 운전기사의 과실(과속) |
| 보고된 사망자 | 17명 |
|---|---|
| 보고된 부상자 | 28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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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고 개요
1974년 10월 28일 오후 10시 5분경, 동남교통(현 흥안운수) 소속 567번 좌석버스가 서울특별시 성동구 풍납동(현 강동구 천호2동) 광진교 남단 60m 지점에서 천호동 방향으로 달리던 중, 다리 위에 설치된 시멘트 구조물에 왼쪽 앞바퀴를 부딪힌 후 다시 오른쪽 앞바퀴까지 부딪혔다. 그 충격으로 운전기사가 핸들을 놓치면서 버스는 왼쪽 다리 난간을 부수고 13m 아래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승객 17명이 사망하고, 운전자를 포함한 승객 2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 직후 광진교는 다음날 차량 통행이 전면 통제됐다. 사고 버스는 당시 봉천동에서 천호동 구간을 운행하던 버스였다.
3. 사고 원인
사고 원인으로는 정비 불량, 운전기사의 과속 및 난폭 운행, 열악한 교통안전 시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사고 버스는 청계 2가 근처에서 전조등에 고장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가로등과 주변 차량 불빛에 의존하여 시내를 시속 60~70km로 주행했다. 운전기사는 워커힐 호텔을 지나 제한 속도 20km인 광진교에 진입한 후에도 50km로 과속했으며, 광진교 중간에서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뀐 것을 보고 속도를 줄였다가 다시 50km로 주행했다.
당시 교통 경찰은 전조등이 꺼진 채 주행하는 사고 차량을 발견하고 정지 신호를 보냈으나, 운전기사는 이를 무시하고 계속 운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광진교 상판의 도로 여건은 매우 열악했다. 도로 폭은 차량 1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았고, 가로등도 설치되어 있지 않아 야간 운행 시 사고 위험이 높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4. 사고 여파
사고가 발생한 광진교는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노후 교량으로, 6.25 전쟁 당시 폭격으로 파괴되었다가 이후 여러 차례 보수 공사를 거쳤다. 그러나 1972년 대홍수로 균열이 발생해 한때 폐쇄되고 보수 공사를 한 후 차량 통행을 재개하는 등 교량 자체에 심각한 안전 문제가 있었다. 이 사고로 노후 교량의 안전 문제가 부각되었고, 광진교의 교통량을 분산시키기 위해 천호대교 건설이 추진되었다. 천호대교는 1976년 7월 5일 완공 개통되었으나, 이후 천호대교에서도 유사한 버스 추락 사고가 발생하여 안전 대책 마련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