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평공 (1083년)
1. 개요
광평공은 고려 문종의 손자이자 양헌왕 왕도의 아들로, 1083년에 태어났다. 그는 유교와 불교에 능통하고 의술에도 뛰어났으며, 숙종의 딸 안수공주와 결혼하여 광평백에 봉해졌다. 인종 때 광평후를 거쳐 광평공이 되었고 식읍이 늘어났다. 불교에 심취하여 『법화경』을 즐겨 읽었으며, 1170년에 88세로 사망하여 백악산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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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백작 -
태조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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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
고려 시대 윤관은 문종 때 과거에 급제한 무신이자 정치가로, 숙종 대 왕권 강화 정책을 추진하고 여진 정벌을 주도하여 동북 9성을 축조했으나, 정치적 음모로 실각한 후 그의 묘는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
고려의 왕족 -
왕우 (고려 왕족)
왕우는 고려 신종의 7대손이자 공양왕의 친형으로, 공양왕 즉위 후 정양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조선 건국 후에는 딸이 태조의 며느리가 되어 고려 왕실의 제사를 맡게 되었다. -
고려의 왕족 -
왕면
왕면은 고려 의종의 사위로, 수사공 등의 관작을 받았으며, 순후하고 침착한 성품으로 의술에 정통하여 종기를 치료하는 등 헌신적인 면모를 보였다. -
고려의 공작 -
왕면
왕면은 고려 의종의 사위로, 수사공 등의 관작을 받았으며, 순후하고 침착한 성품으로 의술에 정통하여 종기를 치료하는 등 헌신적인 면모를 보였다. -
고려의 공작 -
최충헌
최충헌은 1149년에 태어나 1219년에 사망한 고려 시대의 무신으로, 무신정변으로 권력을 장악하여 최씨 무신 정권을 수립하고 여러 왕을 옹립하며 도방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다가 몽골의 침략 시기까지 최씨 정권을 이끌었다.
2. 생애
1083년 문종과 인경현비의 손자이자 왕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상국 이정의 딸 인천 이씨이다.
1086년(선종 3년) 검교사공(檢校司空) 주국(柱國)에 임명되었고, 이후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수태부 상주국(守太傅 上柱國)이 되었다. 숙종 재위 기간 동안 수충공신 특진검교태위 수사도(輸忠功臣特進檢校太慰守司徒) 상주국에 가자되었다. 숙종의 셋째 딸 안수공주(安壽公主)와 혼인하여 광평백(廣平伯)으로 봉해졌으며,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로 승진했다. 인종 재위 기간 동안 광평후(廣平侯)를 거쳐 광평공(廣平公)으로 봉해졌으며, 식읍은 300호에서 3,000읍으로 늘어났다.
유교와 불교에 두루 통하였고, 의술에도 뛰어났다. 중년부터는 불교에 심취하여 『법화경』을 읽었으며, 집에 소장한 법화경은 거의 만 권에 가까웠다고 한다. 1170년 1월 12일 병으로 불령(佛嶺)의 집에서 사망하였고, 향년 88세였다. 1171년 12월 2일 백악산 서쪽 기슭에 매장되었다.
2.1. 가계와 초기 생애
1083년 문종과 인경현비의 손자이자 왕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상국 이정의 딸 인천 이씨이다. 형이 한 명 있었고, 장경왕후의 아버지, 의정왕후, 선정왕후가 될 남동생이 있었다.
2.2. 왕실과의 관계 및 정치 활동
1086년(선종 3년) 왕원은 검교사공(檢校司空) 주국(柱國)에 임명되었고, 이후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수태부 상주국(守太傅 上柱國)이 되었다. 숙종 재위 기간 동안 수충공신 특진검교태위 수사도(輸忠功臣特進檢校太慰守司徒) 상주국에 가자되었다. 그는 숙종의 셋째 딸 안수공주(安壽公主)를 아내로 맞이하여 광평백(廣平伯)으로 봉해졌으며,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로 승진했다. 인종 재위 기간 동안 광평후(廣平侯)를 거쳐 광평공(廣平公)으로 봉해졌으며, 식읍은 300호에서 3,000읍으로 늘어났다.
2.3. 학문과 의술
그는 유교와 불교에 두루 통하였고, 의술(醫術)에 더욱 뛰어나서 일찍부터 약으로 인민들을 널리 다스렸다. 중년부터는 불교에 심취하여, 항상 『법화경』을 읽으니 가내에 소장한 법화경본은 거의 만 권에 가까웠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