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아데오다토 1세
1. 개요
아데오다토 1세는 615년부터 618년까지 재위한 로마 가톨릭교회 교황이다. 로마에서 부제로 봉사하다가 교황 요한 2세 이후 처음으로 사제 신분으로 교황에 선출되었다. 그는 교황청 행정직을 성직자로 채우고, 14명의 사제를 서임했으며, 교황 문건에 납으로 된 봉인을 사용한 최초의 교황으로 알려져 있다. 618년 로마에 지진과 옴이 발생한 후 사망했으며, 축일은 11월 8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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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0년 출생 -
무함마드
무함마드는 570년경 메카에서 태어나 이슬람교를 창시하고 최종 예언자로 여겨지며, 610년경 알라의 계시를 받아 이슬람을 전파하고 메디나로 이주하여 공동체를 건설, 아라비아 반도 통일에 기여했으나 그의 삶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논쟁이 존재한다. -
570년 출생 -
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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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8년 사망 -
영양왕
영양왕은 590년부터 618년까지 고구려를 통치하며 수나라의 침략을 막아내고 살수대첩에서 승리했으며 백제와 신라를 공격하고 역사서 편찬을 장려하다가 사망했다. -
618년 사망 -
내호아
내호아는 남북조 시대 후기 수나라 장군으로, 첩자 활동과 반란 진압에 기여하여 대장군으로 승진했으며, 수 양제를 보호하려다 함께 사망했다. -
6세기 이탈리아 사람 -
토틸라
토틸라는 6세기 중반 오스트고트 왕국의 왕으로, 고트 전쟁을 이끌며 이탈리아 대부분을 장악하고 로마를 두 차례 함락시켰으나, 타기나에 전투에서 패배해 전사하며 왕국의 몰락을 초래했다. -
6세기 이탈리아 사람 -
교황 그레고리오 1세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6세기 후반 로마 교황으로,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라는 칭호를 사용하며 교황권의 봉사 강조, 교회 개혁, 앵글로색슨족 기독교 전파, 전례 개정 및 그레고리오 성가 발전, 그리고 중세 영성에 큰 영향을 미친 저술 활동을 했다.
2. 생애
아데오다토 1세는 로마에서 부제 스테파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선출되기 전 40년 동안 사제로 봉사했으며, 533년 교황 요한 2세 이후 처음으로 교황으로 선출된 사제였다.
3. 교황 재위
아데오다토 1세의 교황 재위 기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는 보니파시오 4세가 교황청 행정직을 수도사로 채우던 관행을 뒤집고 성직자들을 등용했다. 618년 8월, 로마에 지진과 옴이 발생했다. 아데오다토 1세는 618년 11월 8일에 사망했으며, 보니파시오 5세가 그의 뒤를 이었다. 그의 축일은 11월 8일이다. 동방 정교회에서는 동서 분열 이전의 "로마의 정교회 교황" 중 한 명으로 성인으로 여겨진다.
3.1. 교황청 개혁
그레고리오 1세의 교황 개혁에 대한 반대 흐름을 주도하였는데, 사비니아노에 이어 두 번째였다. 그는 교황청 행정직에 수도사 대신 성직자를 등용하는 보니파시오 4세의 관행을 뒤집고, 14명의 사제를 서임했는데, 이는 그레고리오 1세 이후 로마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3.2. 교황 칙서
전통에 따르면, 아데오다토 1세는 교황 문건에 납으로 된 봉인(bullae, 불라)을 사용한 최초의 교황이었으며,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교황 칙서"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의 재위 기간의 한 불라가 여전히 보존되어 있는데, 앞면에는 양들 가운데 선한 목자가 있고, 그 아래에 알파와 오메가 글자가 있으며, 뒷면에는 "Deusdedit Papæ"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3.3. 자연재해
618년 8월, 로마에 지진이 발생했고, 뒤이어 옴이 발생하였다.
4. 사망과 유산
아데오다토 1세는 618년 11월 8일에 사망하였고, 보니파시오 5세가 그의 뒤를 이었다. 그의 축일은 11월 8일이다. 동서 분열 이전의 교황이었기에 동방 정교회에서도 성인으로 여겨진다.
5. 평가
동방 정교회에서도 동서 분열 이전의 교황으로서 성인으로 추앙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