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에우세비오
1. 개요
교황 에우세비오는 309년 4월 18일에 제30대 교황으로 선출되어 309년 8월 17일까지 재위한 인물이다. 그는 디오클레티아누스 박해 시기 배교자에 대한 엄격한 태도로 인해 로마 교회 내에서 갈등을 겪었으며, 서로마 제국 황제 막센티우스에 의해 시칠리아로 추방되었다. 310년 시칠리아에서 사망 후 갈리스토 묘지에 묻혔으며, 교황 다마소 1세가 묘비명을 헌정했다. 에우세비우스는 엄격한 신앙적 태도를 인정받아 성인으로 시성되었으며, 축일은 9월 26일이다.
| 경칭 | 교황 성 |
|---|---|
| 이름 | 에우세비오 |
| 직함 | 로마의 주교 |
| 교회 | 초기 기독교 |
| 재임 시작 | 310년 4월 18일 |
| 재임 종료 | 310년 8월 17일 |
| 선임자 | 마르첼로 1세 |
| 후임자 | 밀티아데스 |
| 출생 | 3세기 |
| 출생지 | 로마 |
| 사망일 | 310년 8월 17일 |
| 사망지 | 시칠리아, 로마 제국 |
| 축일 | 8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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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된 사람 -
허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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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된 사람 -
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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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년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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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년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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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에우세비오는 310년 시칠리아에서 사망하여 갈리스토 묘지에 안장되었고, 이후 교황 다마소 1세가 그의 묘에 8행의 시로 된 묘비명을 헌정했다. 그의 축일은 9월 26일이다.
2.1. 교황 선출과 재위
309년 4월 18일부터 8월 17일까지 교황으로 재위하였으며, 마지막에는 서로마 제국 황제 막센티우스에 의해 추방되었다. 전임 교황인 마르켈루스 1세와 마찬가지로, 배교자에 대한 엄격한 태도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2.2. 배교자 문제와 갈등
에우세비오는 전임 교황인 마르켈루스 1세와 마찬가지로 디오클레티아누스 박해 시기 배교했던 신자들의 재입교 문제에 대해 엄격한 태도를 취해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이는 로마 교회 내에서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폭력 사태로까지 번지기도 했다.
2.3. 추방과 죽음
에우세비우스는 막센티우스에 의해 시칠리아로 추방되어 그곳에서 310년에 선종하였으며, 유해는 로마로 돌아와 갈리스토 묘지에 안장되었다. 이후 교황 다마소 1세가 그의 묘에 8행의 시로 된 묘비명을 헌정했다.
3.1. 묘비명
교황 다마소 1세는 에우세비오의 묘에 8행시 묘비명을 헌정하여 그의 업적을 기렸다.